이상구 / 설치미술작가, 씨알공동체 회원
"형님! 느닷없이 모이라 하면 어떻게 합니까? 미리 말씀하셔야죠!" 아직 네팔 신부는 도착 안했지만 신혼집을 마련해 분가한 진호의 볼멘소리다. "진호! 네 입으로 한 달에 두 번 모임 갖자고 해놓고 두 달이 넘었다. 어떻게 된 거니?" "형님!" 어쩌고저쩌고 변명이 길어진다. 내 언성이 점점 높아진다. 투덜거리며 "이러면 공동체 못합니다! 형님!" 속으로 (어이구 인물 났다! 입에 버터 칠만 해 가지고!) "진호 너! 나를 도와주려거든 제발 어쭙잖은 변명 하지 말고, 임마! 너는 제갈공명이 돼야지! 그러니 ‘제발’ ‘공명’이 되어라! 알겠씀?" 이래서 진호 별명은 제 발 공 명 흐흐
언젠가 진호가 "형님! 후드가 지저분하네요! 분리해 놓으면 제가 씻겠습니다!" 책임지고 씻겠다고 해서 누렇게 기름때에 절은 후드를 분리해 싱크대에 올려놓았다. 아내도 몇 번, 진호도 몇 번 시도하다 슬그머니 없어진다. 출장비 주고 전문가를 모셔오기로 했는가 보다. 일하다 들어오니 누런 후드가 영 눈에 거슬린다. 결국에는 내가 씻는다. 옆에서 허리 때문에 걷기 훈련하던 윤둘람 선생 왈 "이 선생님! 진호 씨가 하다하다 안된다고 하던데요?" 아니 그러면 각 가정 마다 후드를 사용 할 텐데 방법이 없다면 누렇게 뜬 채로 사용 한다는 말인가? 싱크대 밑에서 세제를 찾아서 지워보니 잘 만 닦이는 것이 아닌가! 말이나 하지 말지, 정말 화가 난다. "윤 선생! 허리 아픈 윤 선생도 닦을 수 있어!" "저는요! 세제가 거기 있는 줄 정말 몰랐어요!" "윤 선생이 우리 집에 온지 일 년이 넘었어! 설거지 담당이 세제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 말이 돼? 그게 말이나 돼냐구!" 언성이 높아진다. "꼭 내가 어디 있는지 알아야 돼요? 모를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나는 알고 찾았어? 문제는 어디 있는지 찾을 생각이 없었다는 거야!" 한바탕 회오리가 지나간다. 융통성 없이 끝까지 자기주장을 고집하는 윤 선생 보다 끈기 없는 앞뒤 분간 못하는 진호 놈이 얄밉기 만 하다. 물론 윤 선생은 아픈데도 나름대로 빨래하지, 설거지 하지, 푸성귀도 뜯는다. 그러나 자기 설정 범위 안에서 만 행동하는, 아 ~ 우리 윤 선생! 이렇게 몇 번 화를 내다보니 진 인경 선생이 고맙게도 버럭 쟁이 라는 훈장을 달아 준다.
며칠 전 진 인경 선생이 "어떻게 화가 난다고 아내에게 욕을 할 수 있어요? 얼마나 상처를 받는 줄 아세요?" 7세의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나한테서 치유 받길 원하는 아내의 고백을 듣고 아내와 같이 언성을 높인다. 속으로 (욕? 욕은 정신 건강 치료제 인데... ) 아무튼 윤리 도덕가인 우리 집 고집불통 세여인!
내가 설 곳은 과연 어딘가? 내 내면 아이는 어디 가서 욕구를 푸나! 욕도 해야 하는데... 아흐~ 그래도 심리학의 대가인 진 인경 선생이 오고 난후 중간 조절을 잘 한 덕분에 아내가 나를 많이 이해하고 진 선생과 윤 선생과의 대화도 유연하고 아무튼 역할을 잘해서 모두들 좋아한다. 특히 아침마다 밭에서 난 무농약 야채로 만든 진 선생의 야채수프는 말이 필요 없다.
"띠링~띠링~" 핸드폰이 울린다." 이 선생님! 이번 주 토요일 텃밭 정리합니까? 비 온다고 하는데.." "어! 그래도 계획대로 할 거야!" "그러면 이번에 배추 심을 때는 확실하게 한 고랑씩 맡기십시오. 팻말도 다시 쓰고요! 규칙도 엄하게 해야 책임감이 생깁니다!" "알았어! 종철아!" 종철이는 씨알 카페에 글도 올리는 그림쟁이다. 아차! 씨알주말농장 카페에 이번 주에 모이라고 글 올려야지! 빠른 독수리 타법으로 급히 글 올리고 전화로 확인한다. "백성철 씨알님! 이번 토, 일요일에 오셔야 합니다!" "죄송합니다! 늑막염으로 입원해서 못갑니다!" 으잉?
"자기야! 교통사고로 나 문산 병원에 입원 했어! 서 있는데 뒤에서 박았어!" "자기야! 흑흑. “. "또 왜 그래?" " 엄마가~ 엄마가 대장암 말기로 수술 했는데 다른데도 전이가 돼서 흑흑..." 헉! 장인어른 상 치룬지 일 년 밖에 안됐는데 이번엔 장모님이? 새가 한쪽 귀에서 저쪽 귀로 통과 한다. 문산 병원으로, 부산 삼선 병원으로... 정말이지 없는 수염이 휘날리고 정신은 날라 다닌다.
다행히 아내는 경미해서 병원에서 그동안 부족한 잠을 푸~욱, 장모님도 대장 내시경 검사 중 장을 관통하는 의료 사고로 봉합 수술을 한 것 이었다. 처남 차로 부산 가는 도중에도 혹여 부정 탈까 장모님 얘기는 일체 안하고. 처남은 상복까지 준비 했지만 그것이 해프닝으로 끝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2박 3일 만에 상경하여, 금요일, 문산 병원에 도착해서 아내에게 경과보고를 한 뒤 집에 오자마자 피곤한지 코를 스르르 골기 시작한다.
드디어 토요일! 아내를 퇴원 시키고 종철이, 아내, 윤 선생, 진 선생과 함께 일을 시작했다. 묶은 끈을 자르고 남은 푸성귀와 토마토를 따고 있는데, "안녕하세요!" 민 달팽이 부부가 목을 내민다. 사 가지고 온 김밥과 있는 국으로 점심을 먹고 막걸리 한잔으로 수다를 떨자니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잠을 청하고. 모두 나와 일을 하는데 한 눈 판 사이 띠용~ 아내가 고추줄기 밑동을 낫으로 몽창 몽창 잘라 놓은 게 아닌가! 줄기째 잡고 뽑으면 되는데... 한두 개도 아니고 뿌리 캐느라 이중으로 고생, 돕는다고 한 일인데 워쩔 것이여! 마누라여! 사랑하는 그대여! 제발! 자기는 가만있는 게 돕는 것이여!~
휑한 텃밭을 뒤로 한 채 작업장 앞 데크에서는 고기 굽는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또 한 가지 노동 후의 막걸리 맛이란 천상의 물맛이 아니겠는가! 이때 윤 선생 아들인 을지가 생활 전선에서 일을 마치고 뒤 늦게 합석 한다. 이렇게 화기애애한 가운데 만찬을 즐기는데 대문으로 한사람이 들어온다. “지나는 과객인데 술 한 잔 주시면 안 될까요?” “어서 오시라요! 환영 합네다!” 자리를 잡고 인사를 나누니 집 앞 그린 빌라 관리인으로 있는 한 승협 이라고 소개를 한다. "너희들 그만 안할래!" 소리를 지르니 종철이 하고 을지가 말다툼하다 슬금슬금 피한다. 만찬은 끝났는데 저희들 끼리 마을회관 앞에서 술을 사다 먹고 천둥벌거숭이 을지를 훈계하다 언성이 높아진 것이다. "내일 밭 갈아야 하니까 그만 하고 집에 가서 일찍 자!" 달래서 보내고 한참 지난 한 밤중에 진호한테 전화가 왔다. "형님!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을지가 울면서 모두가 나를 싫어한다면서 얼굴이 피떡이 돼서 왔어요! 좋아하는 종철이 형이 올라타서 때렸는데 죽을 것 같아서 밀치고 왔다고 합니다!" 다음날 해장국을 끓이고 이놈들을 기다리는데 들어오는 을지의 몰골이 말이 아니다. 얼굴은 피멍이 들고 팔 한쪽은 접질려서 못쓰고 종철이는 발 한쪽을 들고 깨금발로 뒤 따라 들어온다. 기가 막히면 말이 없어진다.
뒤 텃밭은 민 달팽이네가 열심히 퇴비주고 밭을 일구는데 나 혼자 이 넓은 밭을 어쩌란 말인가! 이런 와중에 진호가 네팔 아내 주마하고 들어서는데 눈치도 없이 주마 일을 부탁 하러 온 것이 목적일 뿐이다. 그래! 너는 아내하고 잘 사는 게 나를 돕는 거다! 이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해가 숨을 때 쯤 첫 고랑을 만드는데 넓은 밭을 보니 내가 뭐하는 짓인가! 자괴감이 들면서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윤 선생은 안에서 어린 네팔 신부를 부탁하러온 진호와 싸운 종철이, 을지하고 얘기하기 바쁘고, 텃밭에서는 일산댁 지영씨, 진 선생이 풀을 뽑다 말고 철없는 네팔 주마와 대화를 하다가 한심한지 지영씨는 들어가서 막걸리를 들이 붓는다. 깝깝한 것이 자기 삶과 묘하게 교차됨을 본 것이리라. 그런데 갑자기 술 마시다 나온 지영씨 왈 "이 선생님! 쪼잘스러워 풀 못 뽑겠소! 삽질 할라요!" 술기운에 내가 처량했던지 객기를 부린다. 못 먹어서 빈혈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아파 안 먹어서 빈혈이 생겼다 던 일산댁. 어라! 삽질을 곧 잘하네! 호흡을 맞춰 양쪽에서 흙을 뒤 집는데 아니나 다를까! 여자의 힘이 어디까지 가겠는가! 흙을 뒤집어야 하는데 옆에 흙을 끌어 올리는 게 전부다. 결국 다 내가 할 일이다. 벌써 시간은 밤 열시를 넘어간다. "지영씨! 이제 그만 하자! 몸살 나!" "선생님! 한 고랑만 더 합시다!" "그러면 내일 남편 하고 싸우고 우리 집으로 뛰쳐 오는 거야! 어때! 그러면 내일 하루 더 할 수 있잖아!" 겨우 말리고 뒤를 보니 어느덧 세고랑 반을 한 것이 아닌가! 막걸리 한잔 더하고 보냈지만 병자인 여성의 몸으로 나를 돕겠다는 예쁜 마음! 그래! 지영씨는 밭 관리에서 제외 한다! 김장 할 때 와서 김장하고 수육에 막걸리 먹고 김장 챙겨가!
일요일을 놓치고 월요일 아침, 허리 아픈 몸으로 돕겠다고 윤 선생이 무장하고 뒤 텃밭으로 무우씨 뿌리러 나온다. 오후 네 시 반에는 두더지네 성원씨가 아들 신혁이와 딸 시온이를 데리고 도착 한다. 장 봐온 걸로 김치찌개를 준비하면서 아내와 진 선생하고 무슨 얘기가 오가는지 수다로 스트레스를 풀고 있을 때, 각본에 있는 것처럼 빌라 관리인 한승협 씨가 보다 못해 팔을 걷어 부치고 등장한다. "형님! 밥값을 하게 해 주십시오!" "그래? 너도 한고랑 줄 테니 배추 길러봐! "승협이 동생이 삽을 잡고 덤빈다. 둘이서 밭을 뒤집어 고랑을 만들면, 진 선생은 애들하고 밭두렁을 발로 다지고 해서 늦어서야 밭갈이를 마칠 수 있었다.
다음날 화요일 아침 진 선생은 남아 있는 풀을 저 세상으로 보내는 임무를 완수하고, 기분 좋게 아내 출근길에 합승해서 파주역으로 향했다. 밭에 붕소를 뿌리고 비닐 멀칭을 하는데 옆집 이모들이 삽을 들고 도와준다. "기분이다! 이모들도 한 고랑씩 갖으슈!" 드디어 비닐에 구멍을 뚫고 물을 듬뿍 준 후 배추 모종을 심기 시작했다. 자그마치 대략 300여 포기다. 고춧가루 모자라면 백김치요. 배추가 남으면 나눠 주면 되고 또 묵은지 만들면 되지? 이런 저런 생각 중에 백성철 씨알님의 문자가 날아온다. “~걱정해 준 덕분에 무사히 퇴원 합니다.~” 기쁜 소식도 얼마 안가 종철이 다리가 큰 수술을 받을지 모른다는 슬픈 소식이 날아온다. 내일 일산 병원에 데리고 가야겠다.
이제 텃밭은 씨알 식구들에게 일임하고 나는 개인전 준비에 몰두 하려고 한다. 많은 성원 부탁해요!
끝으로 기꺼이 이 글의 제물이 되어 주신 장모님과 아내, 처남, 진인경 샘. 윤둘람 샘, 진호, 종철이, 을지, 백 씨알님, 민 달팽이네, 관리인 동생, 옆집 이모들, 글에는 없지만 이쁜 소영이.
출연료는 없습니다.
몽땅 사랑해요~ 이제 막걸리 한잔하고 무거운 촉루를 눕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