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꽃상여(喪輿)
늦가을의 침침한 날씨에 바람마저 썰렁한 아침이었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학교에 가는 대신 혜경이 할머니 장사 지내는 일을 보러 가기로 했다. 길가 전봇대 위에 까마귀가 앉아 흩날리는 낙엽을 밟으며 지나가는 사람의 수를 세고 있었다. 혜경이네 가게에 도착하니 일찍 나온 사람들인지 여기서 밤샘한 사람들인지는 몰라도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대문을 드나들기도 하면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문이 닫힌 가게의 문짝에는 한지에 忌中(기중)이라고 붓글씨로 커다랗게 내려쓴 종이가 붙어있었고 골목길로 들어서는 입구 쪽에는 꽃으로 장식한 상여가 놓여있었다. 대문 옆에는 아래위로 눌렀다가 펼 수 있게 노란 종이로 커다랗게 호롱처럼 만든 통에 謹弔(근조)라고 쓴 등이 걸려 있었고 안마당에는 멍석을 깔아놓고 밤새워 먹다 남은 음식과 술상을 동네 아주머니들이 나서서 치우는 모습도 보였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사이에 영식이와 창현이, 용남이가 손을 흔들면서 다가와
“언제 왔어?”
하고 반가운 표정으로 물었다.
“응, 나도 방금 왔어.”
“혜경이는 만났니?”
용남이의 물음에
“아니. 어른들과 함께 있어서 만나지 않았어.”
“그럼, 우리 저쪽에 가서 있다가 상여 나갈 때 따라가자.”
영식이의 말에
“그래. 그게 좋겠다.”
하고 창현이도 찬성했다. 언제 왔는지 향이와 송이가 아래쪽 골목길 입구에서 우리를 쳐다보며 속닥거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마당 정리가 다 끝났는지 머리에 흰 천을 두른 상두꾼 아저씨들이 관을 운반해 상여(喪輿)에 안치하고 영여(靈輿)를 멘 사람이 앞에 서자 요령(搖鈴)을 든 선소리꾼(요령잡이) 아저씨가 상여 위에 올라섰다. 이어서 만장(挽章)을 든 사람이 상여 뒤에 서고, 상주(喪主)인 혜경이 아버지와 식구들이 모두 베옷이나 흰옷을 입고 남자들은 베 두건, 여자들은 베로 된 천이 달린 머리띠를 두른 채 서열대로 늘어서서 뒤를 따랐다.
상여 둘레는 여러 가지 꽃으로 장식하고 민화나 그림을 붙이기도 했는데 열대여섯 명이 넘는 상두꾼 아저씨들이 상여를 둘러메고 움직이기 시작하자 뒤따르던 유족들이 울음을 터뜨렸고 선소리꾼이 요령을 흔들며 행상가(行喪歌)인 상엿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어른들로부터 만가(挽歌)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기는 했으나 처음으로 직접 보고 듣는 상엿소리는 묘하게도 슬픔이 배어있으면서도 구성지고 흥이 나는 소리였다. 선소리꾼이 먼저
“북망산천 멀다더니”
하고 앞소리를 메기면 상여를 멘 상두꾼들이
“어허리 넘차 어허야.”
로 받는 소리를 내고
“내 집 앞이 북망일세.”
하고 이어 부르면
“어허리 넘차 어허야”
로 다시 화답하는데 선소리꾼이 내는 앞소리는 청아하고 낭랑했으며 상두꾼들의 받는 소리는 장중하고도 울림이 있는 소리였다. 나는 홀린 듯한 표정으로 이따금 가다 서다 하거나 앞뒤 또는 좌우로 상여를 흔들기도 하면서 소리에 맞춰 걸음을 옮기는 상두꾼들의 모습을 유심히 살피며 친구들과 함께 상여를 따라갔다. 동네를 돌아 동구 밖을 나서니 선소리꾼의 목소리가 달라지면서 힘이 실리고 받는 소리도 거기에 상응하면서 상여는 어른들이 걷는 속도로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상여가 장지에 이르자 소리꾼의 목소리가 느려지면서 애간장을 태우듯 이어졌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오실 날이나 일러주오”
“어허 어허하, 어허리 넘차 어하”
“한번 가면 다시 못 오네, 황천길을 누가 아나?”
“어허 어허하, 어허리 넘차 어하”
묘소에 관이 내려지자, 가족들의 통곡 소리가 한꺼번에 자지러지게 터져 나오고 혜경이 아버지가 ‘어머니!’하고 외치며 관을 잡으려는 것을 상두꾼 아저씨가 급히 말리는 모습과 그 곁에서 혜경이가 펑펑 우는 모습이 보였다. 전란 중에 수도 없이 많은 죽음을 목격했으나 한 사람의 죽음이 이처럼 애절하고 경건하면서도 슬프게 느껴지는 건 처음이었다. 함께 정을 나누며 지내던 사람이 죽음을 맞아 떠나는 일이 이처럼 큰 슬픔이라는 걸 알게 되자 나는 왠지 모르게 울컥하고 흐르는 눈물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향이와 송이도 울었고 창현이도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는데 영식이와 용남이는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으나 억지로 울음을 참고 있는 듯 굳은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이튿날 혜경이는 삼베로 만든 작은 리본을 가슴에 달고 학교에 나왔다. 장례를 치르고 나서도 많이 울었는지 눈가에 촉촉한 느낌이 드는 그늘진 모습이 배어있었다. 간혹 다른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땐 웃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이내 미륵보살처럼 무표정한 모습으로 되돌아오곤 했다. 나는 혜경이에게 어떻게 해서든지 위로의 말을 해주고 싶었으나 저런 근엄한 표정 앞에서는 무슨 말을 해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이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방과 후에 연극 연습을 시작했는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무용연습실에 있어야 할 혜경이가 한쪽 구석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내 역할이 끝나고 나는 연극 지도 선생님께 먼저 가도 되는지 허락을 구했다. 선생님의 허락을 받고 곧장 혜경이에게로 가서
“너 왜 연습 안 하고 왔어?”
하고 묻자, 눈길을 다른 애들이 연습하는 곳에 둔 채
“선생님이 먼저 가라고 하셨어.”
하고 대답했다. 아마도 큰일을 치른 뒤이기에 일찍 돌려보내서 쉬도록 배려하신 것 같았다.
“그럼 같이 가자. 나도 선생님 허락 받았어.”
어제와 비슷한 날씨로, 떨어져 내린 낙엽이 스산한 갈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는 길을 혜경이와 함께 걸으며 나는 혜경이의 마음을 풀어줄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를 않아 답답한 심정으로 애꿎은 낙엽만 발길로 걷어차며 걷는데 혜경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할머니가 허리가 아프다고 주물러 달라고 했는데 숙제 때문에 나중에 해 드린다고 했어.”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이미 돌아가신 걸 어떻게 하겠어.”
내가 위로의 말을 하자
“그때 숙제 다 끝내고 있었단 말이야.”
하더니 그만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주저앉았다. 몸이 아프셨던 할머니를 거짓말로 핑계를 대며 도와드리지 않았던 게 큰 죄를 지은 것처럼 미안하고 이제는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 수도 없게 되었으니 그 심정을 알 만했다.
“나중에 산소에 가서 할머니께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자. 여기서 이런다고 할머니가 살아나시겠어?”
나도 혜경이 옆에 쭈그리고 앉아 어른들이 하는 말투로, 위로하는 말을 하자
“그날 할머니 허리 주물러 드렸어야 했는데...”
헤경이가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혜경이 할머니는 동네에서 소문이 날 정도로 혜경이를 끔찍이 아꼈다. 공부 잘한다고, 반장이라고 자랑하면서 혜경이가 응석을 부리거나 잘못하는 일이 있어도 언제나 혜경이 편을 들었다. 오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혜경이와 나는 길가로 물러나 앉았다.
“할머니도 혜경이 마음 다 아실 거야. 너무 속상해하지 마.”
어떻게 해서든지 혜경이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어서 내가 말하자
“할머니... 내가 잘못했어... 할머니 보고 싶어!”
혜경이가 목이 메는 듯 흐느끼며 말하더니 또다시 눈물을 쏟았다. 얼마나 할머니에게 미안했으면 이처럼 마음 아파할까? 나는 말없이 혜경이 어깨를 토닥거리며 달랬다. 얼마쯤 그렇게 앉았다가
“이제 일어나서 가자. 다른 애들도 곧 올 텐데.”
내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그제야 혜경이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다른 애들한테 내가 울었다고 하지 마?”
하고 이따금 딸꾹질하며 다짐하듯이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슬며시 혜경이 손을 잡았다.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으나 말없이 걷는 발걸음은 전보다 한결 가벼워졌다.
8. 별이 빛나는 밤에 -계속-
첫댓글 상중에 관한 글을 다시 한번 배우게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