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슨 크루소』와 『15소년 표류기』의 비교
이 철 우
어떤 책이 출간되어 그 책이 원전이 된다면 그 이야기가 후세 다른 작품의 모델이 될 수 있다. 교양으로서 어떠한 흔적을 남겼더라도 시대마다 조금씩 변하고 작가가 어느 쪽에 중점을 두었나에 따라 이후의 작품들이 차이가 날 수가 있다.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도 후세에 쥘 베른의 『신비의 섬』, 『15소년 표류기』, 골딩의 『파리대왕』, 오델의 『푸른 돌고래 섬』,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마텔의 『파이 이야기』, 스콧 감독의 『마션』 등 소설이나 영화가 출간 또는 제작되었다고 한다. 본인은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유영님이 번역한 『로빈슨 크루소』(2012)와 지경사에서 발간된 김혜숙님이 변역한 『15소년 표류기』(2010)을 중심으로 두 작품 사이의 차이점, 그러한 변화가 나타난 이유 등에 대해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요즘 아이들의 모험, 공상 스토리 배경이 우주라고 한다면, 쥘 베른의 작품 『15소년 표류기』와 18세기 다니엘 디포의 작품 『로빈손 크루소』는 쓰여 진 이후부터 현재까지, 모험과 서바이벌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작품이다. 또한 무인도 생존기의 교과서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두 작품의 배경은 바다와 무인도라는 공통점 외에도, 항해 중 난파되어 무인도에 내리면서 생존을 위한 자연의 위협, 악당과 식인종의 습격, 먹을 것 구하기와 거처 만들기, 도구 제작 등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모든 것을 스스로 만들고 얻어야 했다는 스토리 맥락도 비슷하다.
다만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로빈손은 홀로 모든 상황을 견디며 28년을 살아낸 1인칭 고백적인 스토리지만, 15소년 표류기는 15명의 소년들이 함께 견뎌낸 2년간의 생존기라는 것이다.
60세의 독설가이며 무명 작가였던 다니엘 디포를 단숨에 유명 작가로 끌어올린 작품 『로빈손 쿠루소』를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작품 배경은 1651년~1687년까지 로빈손이 겪은 이야기로 원주민과 노예 거래를 위한 항해 도중 좌초되어 노예로 지내다가 탈출한 1부),이후 안정된 생활을 하다가, 또 다시 항해 도중 난파되어 홀로 무인도에 고립되어 28년을 지낸 이야기 2부), 조국인 영국으로 돌아가 부유한 삶을 지내는 3부) 등 총 3부로 되어있는 소설이다.
로빈손을 보자면, 우선 심각한 고독의 문제와 아무 도움도 받을 수 없다는 극단적 고립의 시간, 언어가 있되 나눌 상대가 없다는 외로움은 의식주 해결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문제이지만‘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는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학문적 정의가 무색할 지경으로 잘 살아가기도 한다.
모든 생존을 위한 하루하루를 스스로 혼자서 해결한 것 같지만, 안전을 고려한 집의 위치 선정, 먹을 것을 얻기 위한 농사와 가축 기르기, 도구 만들어 사용하는 일들을, 예전에 보았던 기억을 더듬거나 편의를 위해 보완하고 고안하기도 한다. 로빈손이 무인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예전의 사회 속에서 음식을 익혀 먹던 오븐, 기억을 더듬어 만든 숫돌, 보트 형태 등을 떠올렸기 때문에 가능했다. 멘탈을 유지한 것도 신이라는 존재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신적 위안이 될 수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무인도에서 만난 원주민 프라이데이와 친구가 되어 인간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다른 문화와 인종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배우게 된다. 또한 친구가 되는 과정에서 겪는 일들은 현대 사회에서도 인간관계의 중요성과 가치를 담고 있다. 로빈손은 처음엔 생존을 위한 도전과 필수적 기술을 터득하고, 목장을 경영 한다던가 배를 만드는 등 차차 다양한 생존 지식을 습득하면서 그의 인내와 탐구적 자세, 끈기와 삶에 대한 열정도 갖게 된다.
『15소년 표류기』는 뉴질랜드 체어맨 기숙학교의 여름방학 때 뉴질랜드 연안을 일주하기로 한 15소년이 탄 배 슬루기 호가 좌초되면서 구조되기까지 2년간의 생존기이다.
쥘 베른은 15소년 표류기 외에도, 해저 2만리,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지어내기도 했지만 어린 소년 15명의 이타적이고도 협심, 협동의 장면들은, 요즘 단체나 함께의 개념이나 협동의 가치보다는, 개인주의가 일반화처럼 고착되어진 우리세대가 크게 성찰할 문제가 아닐까 여겨진다.
이들은 스스로 만든 규칙, 계획을 지키며 질서를 유지하고, 약이 없으므로 건강유지에 신경 쓴다든가 먹을 것 구하기와 공사를 할 경우엔 누구도 불평 없이 함께 해낸다. 악당과 싸워야 할 땐 위험을 무릅쓰며 친구를 돕는 등, 소년들은 서로를 사랑하고 우정과 희생, 용기와 지혜로운 판단으로 모든 난관을 극복해 낸다.
두 작품을 놓고 생각해 보건대 혼자서 견디는 것도 어렵고 힘들지만, 표류와 무인도 정착이라는 악조건에서, 자신만을 위한이기를 내려놓고 공공의 이익과 이타적인 일을 위해 뭉친다는 일 또한 쉽지 않아 보인다. 그야말로 가장 바람직하고, 탁월하고도 현명한 선택이지만, 이론을 떠나 실제 상황 앞에선 누구나 자신의 안위가 최우선이 되기가 쉽기 때문이다.
케이트의 엄마 같은 돌봄, 칼에 찔리기 직전인 브리앙을 위해 몸을 날려 친구 대신 칼에 찔린 도니펀, 고든의 현명함, 백스터의 손재주, 자크의 명랑함, 가축을 잘 돌보는 가넷, 서비스와 모코의 요리 솜씨, 용감한 코스타, 이외 친구들의 밝고 친절한 성격 등이 어우러진, 아름답고 작은 사회를 보는 것 같지 아니한가.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진부한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등장인물들의 성격, 심리적인 부분들이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는 모습들은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대인이 배워야 할 덕목이라 생각한다.
단순히 모험과 생존기로 가득한 흥미진진한 소설로 보기엔 두 소설이 철학적 깊이가 있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소통과 만남이 단절된 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절실히 통감하는 시기를 지냈다. 그리고 다시 회복된 만남과 관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다.
눈앞의 편의와 안락함을 추구하고 나만의 이익을 위한 행동보다는 각자의 다름을 이해, 수용하고 서로의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양보하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동할 때, 더 큰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는 『15소년 표류기』와 로빈손을 통해 인간은 함께 모여 사회를 이룬 곳에서 관계를 맺고 지내야 한다는 디포의 『로빈손 크루소』두 소설은 모험심 많은 소년들 뿐 아니라, 어른들이 모두가 읽고, 어울려 사는 사회가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 깨달아야 하는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