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토기
김성문
토기는 가야인들의 일상생활 도구였다. 가야 고분에서 출토한 토기(土器)들을 전시한 국내 박물관에 가 보았다. 무른 연질토기와 단단한 경질토기들이 있다. 연질토기는 주로 붉은색으로 가야 이전 시기부터 생산됐고, 경질토기는 주로 회색으로 광택이 없고 가야 시대 생산한 것으로 도질토기라고도 한다. 연질토기나 도질토기는 일상생활에 사용했고, 죽은 자에게 음식물을 바치던 부장(副葬) 용기로도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토기는 생산한 지역에 따라 약간의 특징이 있다. 가야 토기들은 신라 토기와 비슷하나 토기 굽다리에 뚫은 구멍 모양과 배열이 조금 다르다. 구멍 모양은 세모나 네모 모양으로 여러 개다. 신라는 대부분 지그재그식으로 뚫었으나, 가야는 지그재그식 또는 일직선으로 뚫었다. 특히 아라가야는 토기에 뚫은 구멍을 불꽃 모양으로 형상화하여 나타냈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구별할 수 있다. 토기는 만든 사람들의 미적 감각을 보여 주기도 하고, 그것을 사용한 사람들의 의식 구조를 엿볼 수 있게도 한다.
국립김해박물관에는 널따란 전시실 중앙 통로에 일반 토기들과는 색깔이 다른 붉은색의 토기 한 점이 유난히 빛나고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조그마한 청동기 시대의 붉은색 마연토기이다. 마연 토기는 표면에 산화철을 발라 잘 문지른 후에 구웠다. 붉은색의 고운 광택이 나고 있다. 그 시대 사람들이 특수한 목적에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주로 집터나 무덤에서 출토되고 있다. 무덤에서 나오는 것은 바닥이 둥근 항아리가 대부분이다.
전시실 중앙 통로에서 잠시 눈길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입구 지름이 약 30cm 되는 커다란 바리 모양 토기 한 점이 눈에 띈다. 무엇을 담았을까? 온갖 상상을 해 본다. 그런데 요즈음 구워낸 것처럼 광택이 있고, 세련되어 보인다. 그 당시 가야인들의 토기 구워내는 솜씨도 오늘날과 비슷한 것 같다.
전시실 중앙 통로 벽에 전시한 컵 한 개는 지금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매끈하다. 가야인들도 오늘날과 같이 컵에 음료수를 담아 정다운 담소를 나누며 마셨겠다는 생각이 든다. 뚜껑도 있고 손잡이도 있다. 음료수를 담는 크기로는 적당하다. 약 1,800여 년 전의 토기라고 믿기가 어렵다.
전시한 가야 토기들에 달린 손잡이는 둥근 고리 형태가 가장 많이 보이고, 꼭지도 그 생긴 모양에 따라 단추형 꼭지, 모자형 꼭지 등 아주 다양하다. 토기의 문양도 물결, 원, 빗금, 유충, 새의 발 모양 무늬 등 여러 가지로 표현했다.
가야 토기는 신라나 백제의 토기와 달리 여성적인 유연한 곡선이 특징이다. 이 특징은 긴 목 항아리 토기에서 잘 드러난다. 가야 토기를 측면에서 보면 옆선이 S자형으로 나타난다. 신라 토기는 목 부분이 주로 일자형이다. 가야 토기는 신라 토기에 비해 날렵하고, 세련되게 만들어졌다.
가야 지역에서는 신라 지역 토기와는 달리 상형(象形) 토기들이 무덤에서 출토되고 있다. 이 토기들은 죽은 자를 위한 것으로 추정한다.
배 모양 토기는 죽은 자의 영혼이 배를 타고 현세에서 내세로 간다고 믿고, 죽은 자를 무사히 저승으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신발 모양 토기는 죽은 자가 저승의 세계로 가는 머나먼 길을 편안히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 영혼을 운반하는 도구로 바쳐진 것으로 해석된다. 신발 모양은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고분에서 짚신 모양 토기가 출토되었다.
새 모양 토기도 많이 보인다. 새는 죽은 자의 영혼이 저세상으로 잘 날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존재로 믿고 있었던 모양이다. 즉,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 수 있는 존재로 믿었다. 장례를 치를 때 무덤에 큰 새의 깃을 넣었다. 이는 영혼이 새처럼 날아오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기록이『삼국지』 「변진」 조에 나온다.
수레바퀴 모양 토기도 수레가 굴러가는 느낌이다. 바퀴는 천체의 움직임이나 태양과 관계있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뿔잔 양쪽에 수레바퀴가 달린 특이한 형태의 토기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실어 저세상으로 보낸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제사와 같은 특별한 의식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거북 모양 토기는 가야국을 건국할 때 김해 구지봉에서 왕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소원을 빌 때 등장했다. 거북은 성스럽고 특별한 능력이 있는 존재로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말을 듣지 않으면 구워 먹겠다고 협박도 하는 것으로 보아 어리숙하지만 친숙한 존재로도 생각했다.
사람 머리모양 토기는 콧구멍이 뚫려 있고, 머리 위에는 작은 구멍이 일정한 간격으로 나 있다. 귀에도 구멍이 나 있어 꾸미개를 걸 수 있게 되어 있다. 전체 모습을 복원한다면, 깃털을 꽂고 각종 꾸미개로 장식한 흙 투구를 연상할 수 있다. 이것을 쓰고 의례를 집전했던 제사장의 모습도 연상할 수 있다.
말머리장식 뿔잔 토기도 있다. 가야인들은 말(馬)을 특별하게 생각한 것 같다. 아마도 북방 기마민족의 후예들이라서 그런 모양이다. 가야인들은 무덤에 살아있는 말을 같이 묻거나 말 모양의 토기를 부장했다. 그들의 의식 속에 말은 단순한 짐승이 아니라 현세와 내세를 이어주는 존재로 인식했다.
특히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상형 토기들로 봐서 내세(來世)가 있다고 믿은 것 같다. 그리고 같은 시대 다른 지역 토기들보다는 모양이 말쑥하고 품위가 있어 보이는 토기들이다.
가야 토기를 관찰하면서 잠시 가야 시대로 들어가 보았다. 오늘날의 생활 형태와는 다른 것 같으나, 그들 나름대로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다. 그들의 DNA 속에는 우수한 문화 의식이 숨어 있었던 것 같다.
가야 토기, 바리모양 그릇받침, 출처: 국립김해박물관
촬영: 서기 2020.07.05.(일), 출토: 함안 오곡리
첫댓글 김성문선생님의 탁월한 우리 고대사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좋은 역사공부를 하고 갑니다.
에구~~회장님! 과분한 칭찬이십니다.
감사합니다.^^
2019년 12월 국립중앙박물관 가야 유물 전시 때(가야 본성-칼과 현)
가야 토기는
손잡이 둥근 고리가 있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회장님! 읽으셨군요.
손잡이가 다양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