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레가 칠 때는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뇌동한다는 말이 있다.
내가 우렛소리를 듣고 처음에는 가슴이 철렁하였다. 잘못한 일을 거듭 반성했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기에 그제야 몸을 펴게 되었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다. 나는 예전에 '춘추좌씨전'을 읽다가 화보가 아름댜운 여인을 만나 눈길을 떼지 못한 일을 잘못이라 여겼다. 그러므로 길을 가다가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면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돌려 달아났다. 그렇치만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려 달아나더라도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이것이 남몰래 미심쩍게 여기던 일이다.
또 한 가지 인지상정을 벗어나지 못하는 일이 있다. 누군가가 나를 칭찬하면 기뻐하지 않을 수 없고, 비방하면 안색이 바뀌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우레가 칠 때 두려워할 일은 아니지만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옛날에 어두운 방에서도 자신을 속이지 않는 사람이 있었는데, 내가 어떻게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해설>
이규보는 우렛소리를 듣고는 자신의 허물을 반성했다. 그런데 그가 떠올린 허물은 몹시 소소한 것이었다. 아름다운 여인에게 눈길을 주지 않으려 했지만 여인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은 없애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남에게 칭찬을 들으면 기뻐하고 비방을 받으면 안색이 바뀐다는 점이다.인지상정이라 할 수 있는 사소한 허물이니. 큰 잘못은 저지르지 않았다는 변명이라 하겠다.
그가 목표로 삼은 어두운 방에서도 자신을 속이지 않는 사람은 명심보감 천명에도 나오는 말이다. 사람들이 몰래 하는 말도 하늘은 우랫소리처럼 듣고, 어두운 방에서 자신을 속여도 귀신 눈에는 번개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