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고독과 마주했다
1969년 데뷔 이래 수많은 연극에 출연해 산전수전 다 겪은 배우 정동환 씨가 1인극 ‘대심문관과 파우스트’로 연극무대에 다시 섰습니다.(2020.9)
그가 맡은 1인극은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토대로 악마성과 천사성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하는 인간의 내면을 연기하는 일입니다. 그는 여전히 무대에 서는 일은 고독하다고 말합니다.
“최악의 고독과 마주했어요. 극에 이런 대사가 있어요. 인간은 절대적 고독 속에 신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한번 해 보는 거예요.”
연극(演劇)을 흔히 산행(山行)에 비유합니다. 높고 험준한 산을 오르는 일은 자신과의 끝없는 사투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산객(山客)들이 죽을 둥 살 둥 산에 오릅니다. 매우 힘들어도 멈추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산의 정상에 오르겠다는 일념으로 오르고, 또 오르기를 반복합니다.
산의 정상에 오르려는 이유는 고통마저 달콤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가파른 산의 정상에 올랐을 때 실감할 수 있습니다. 땀범벅의 온 몸을 씻어주는 시원한 바람, 파도처럼 출렁이며 이어진 능선들의 자태, 자연과 내가 하나인 무아지경의 황홀감, 정상에 선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극강의 쾌감입니다.
무대 위의 연극인도 산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산객이 정상에 오르려 끝없는 사투를 벌이는 것처럼 연극인 역시 무대의 막이 내려질 때까지 내면의 고독과 홀로 싸워야 합니다. 무표정한 관객들은 산행을 방해하는 돌부리 마냥 두 눈을 부릅뜬 채 무대 위를 주시합니다. 연극인은 그들의 따가운 시선을 처음부터 끝까지 홀로 감내해야 합니다.
나이든 두 노처녀가 점점 늙어 가는 것이 싫어서 닭을 키워볼 요량으로 양계장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암탉 10마리와 수탉 10마리를 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양계업자가 대답했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 있나요? 암탉 10마리는 몰라도 수탉 10마리까지는 쓸모없을 텐데요.”
그러자 두 노처녀가 동시에 말했습니다. “우리도 그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고독하다는 게 어떤 건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어요.” 사람은 고독이 싫어 홀로 있기를 두려워합니다.
누군가 외로움과 고독의 차이를 구별했습니다. ‘외로움’은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는 말이고,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외로움이든 고독이든 결국은 혼자라는 사실입니다. 홀로 이것저것들을 견뎌내야 합니다. 홀로 견뎌낼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무척 고독하다, 나 혼자여서.
혼자라서 문제될 것도 없는데….
세상을 비틀어보는 75가지 질문
Chapter 1.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