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현은 파평 윤씨로 자는 자용, 호는 국간이라 했다.
중종 신묘년 진사시에 합격했고 정유년 문과에 장원급제했다.
호조판서까지 지냈는데 재임 당시 해어진 돗자리와 청록색 베를 버리지 않고 모두 창고에 보관해 두니 사람들이 모두 비웃었다.
뒤에 해어진 자리를 조지서에 보내어 그것을 섞어 종이를 만들게 했는데 종이 품질이 매우 좋아졌다.
또 푸른 베로는 야인들의 옷 단추를 만들었다.
청렴과 근실하다고 소문이 이름이 났다.
尹鉉, 坡平人, 字子用, 號菊磵. 辛酉進士, 丁酉文科壯元, 官至戶判, 弊席地衣靑緣布, 悉藏之庫中, 人咸笑之, 其後弊席, 付造紙署作紙, 紙品甚佳, 靑布, 作野人衣軸. 以廉謹稱.
출처 : ≪목민심서(牧民心書)≫(丁若鏞, 1762-1836)
윤현(尹鉉 : 1514-1578)
조선 시대의 문신으로 자는 자용(子用)ㆍ국간(菊磵)이다.중종 32년(1537)에 식년 문과에 장원이 되었다. 명종 5년(1550) 장악원정으로 ≪중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고 호조에 있을 때 국가의 지출을 절약하였으며, 시문에도 능하였다. 문집으로 ≪국간집≫이 있다.
≪목민심서(牧民心書)≫
조선(朝鮮) 순조(純祖) 때 정약용(丁若鏞)이 지방(地方) 관리(官吏)들의 폐해(弊害)를 없애고 지방(地方) 행정(行政)을 쇄신(刷新)하려고 사례(事例)를 들어 풀이해 펴낸 책(冊)으로, 총 48권 16책이다.
정약용(丁若鏞) :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자는 미용(美鏞), 호는 다산(茶山)·사암(俟菴)·여유당(與猶堂)·채산(菜山)이다. 근기(近畿) 남인 가문 출신으로, 정조(正祖) 연간에 문신으로 사환(仕宦)했으나, 청년기에 접했던 서학(西學)으로 인해 장기간 유배생활을 하였다. 그는 이 유배기간 동안 자신의 학문을 더욱 연마해 육경사서(六經四書)에 대한 연구를 비롯해 일표이서(一表二書 : 經世遺表·牧民心書·欽欽新書) 등 모두 5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고, 이 저술을 통해서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