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증
고등학교 1학년인 C양은 162cm에 54kg의 정상 체중이었는데, 약 6개월 전부터 갑자기 살이 쪘다면서 친구들과 함께 다이어트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후 함께 하던 친구들은 대부분 실패하거나 포기하였으나 C양만 한두 달 사이에 50kg까지 체중을 줄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후 그녀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살을 빼겠다고 하면서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계속한 결과, 머리카락이 빠지고 입가가 헐고 피부가 거칠어지는 등 이상 증후가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체중이 45kg까지 줄어들자 부모님이 크게 걱정하여 병원에 가보자고 하였으나, 본인이 원하지 않아 대신 비만클리닉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녀는 비만도 80%의 저체중 상태였으며 폭식하지도 않았다. 최근에는 하루 700kcal 이내의 열량을 섭취하고 있었으며, 매끼니마다 한두 가지 반찬과 밥 몇 수저를 뜨는 정도였다. 어머니가 더 먹으라고 성화면 더욱 화를 내며 먹지 않으려 들었고, 조금이라도 먹고 나면 운동을 하는 등 몸을 많이 움직였다. 어머니는 딸이 맹목적으로 지나치게 다이어트를 하는 것 같다며 걱정스러워했다.
다이어트 성공의 맹점
신경성 식욕부진증(Anorexia Nervosa)의 기본 특징 및 진단 기준은 다음과 같다.
▶ 나이와 키에 비해 최소한의 정상 체중 이상의 체중을 유지하기를 거부한다.
(예: 기대되는 체중의 85%보다 적은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체중을 줄이거나 성장 기간 중 예상되 체중 증가에 실패하여 기대되는 체중의 85%보다 적은 체중으로 조절한다.)
▶ 체중 미달인데도 살이 찌는 것에 대한 심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
▶ 자신의 체중이나 체형을 인지하는 데 장애가 있거나 체중이나 체형이 자기 평가에 과도하게 영향을 미치거나, 또는 현재의 심각한 체중 미달 상태를 부인한다.
▶ 월경을 하는 여성의 경우, 최소 3개월 연속적으로 월경이 없다.
◎ 세부 유형
제한형: 규칙적으로 폭식을 하거나 하제를 사용하지 않는다(즉 스스로 유도하는 구토 또는 하제, 이뇨제, 관장제를 남용하지 않는다).
폭식 및 하제 사용형: 규칙적으로 폭식을 하거나 하제를 사용한다(즉 스스로 유도하는 구토 또는 하제, 이뇨제, 관장제 등을 남용한다).
신경성 식욕부진증 환자를 방치할 경우에는 과도한 신체 허약 및 근육 소실, 심장 부정맥 등으로 중환자 치료를 받거나 심지어는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1970년대 <Top of the World>로 인기를 모았던 미국의 팝가수 카렌 카펜터스도 이 병으로 사망했다. 정신과적인 응급 질환으로 분류되어 적극적인 입원 치료를 요하는 이 질환 또한 폭식증과 마찬가지로 서구 산업 사회의 중상류층 여성들 사이에서 최근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또한 폭식증과 마찬가지로 스스로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다. 특히 자신의 판단과 선택이 옳고 적절하다고 믿고 있으며 기본 성격이 강박적·결벽증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폭식증보다 더 치료에 저항하게 된다. 또한 다이어트를 시도하여 처음에는 크게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어느 수준에서 다이어트를 멈추지 못하고 계속하여 나중에는 식욕부진증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으므로, 반드시 믿을 수 있는 전문가의 지도하에 적절한 방법만을 사용하여 적정 수준까지만 체중 조절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곡된 신체 이미지
물론 정상적인 신체와 질병에 걸린 신체는 양적 질적으로 확연히 구분된다. 따라서 일상 생활에서 다소 폭식이나 식욕 부진 경향이 있다고 해서 모두 섭식 장애 환자로 여길 수는 없으며, 진단 기준에 엄밀하게 적용되는 경우만을 질병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최근 급격한 서구화와 산업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 사회에는 날로 심각할 정도로 섭식 장애를 부추기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이제 섭식 장애는 정신적 문제를 안고 있는 일부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병리 현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최근 대도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연구 조사에 의하면, 남자의 40%와 여자의 55%가 자신의 체중에 불만족스러워하며, 보편적으로 희망하는 신체 사이즈가 남자는 신장 180cm에 체중 70kg, 여자는 신장 170cm에 체중 50kg이어서, 여자의 경우 심한 저체중 상태를 이상적인 체형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와 같이 먹는 것이 도처에 풍요롭게 널려 있으면서도 동시에 저체중을 정상적으로 생각하고 정상을 비만으로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에서는, 그만큼 섭식 장애의 발생 가능성이 높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출처: 프랜닥터 남재현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