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03. 11
홈플레이트는 야구장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다. 선수끼리 충돌 가능성이 많아서 부상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홈플레이트는 2루와 더불어 집단 충돌의 발화지점이 되기 쉬운 곳이기도 하다.
1994년 8월 3일, 마산구장에서 오후 6시 29분부터 시작된 한화 이글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시즌 14차전은 양 팀 선발 정민철과 주형광의 팽팽한 투수전으로 전개됐다. 승부의 흐름은 단 한번, 3회 초와 말에 요동쳤을 뿐이다. 공교롭게도 그 대목에서 사단이 벌어졌다.
한화는 3회 초 1사 1, 2루에서 2번 진상봉의 중견수 키를 넘기는 깊숙한 3루타로 2타점 올려 2-0 앞서나갔다.
롯데는 3회 말 선두 8번 김미호(金美鎬)가 안타로 나간 뒤 9번 김선일의 삼진 다음 전준호 타석 때 초구에 2루를 훔쳤고, 1사 후 전준호의 안타 때 3루를 돌아 홈으로 파고들었다. 홈플레이트에는 한화 포수 김상국이 버티고 있었다. 김미호(당시 27살)는 김상국(당시 31살)의 가랑이 사이를 노리고 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지만 김상국의 미트가 그의 몸에 먼저 닿았다. 아웃이었다. 그런데 김상국의 행동이 좀 지나쳤다. 김상국이 미트로 김미호의 머리를 찍듯이 내려누른 것이다.
▲ 한화 포수 김상국이 롯데 김미호가 가랑이 사이로 치고 들어오자 미트로 머리를 내리 찍고 있는 순간. / 일간스포츠
김미호가 벌떡 일어나 김상국에게 대들자 양 팀 덕 아웃에서 선수들이 일제히 그라운드로 짓쳐 쏟아져 나왔다. 오석환 주심이 우르르 몰려나와 패싸움 일보직전까지 가며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한 양 팀 선수들 사이에서 뜯어말리느라 진땀을 흘렸다. 그로 인해 경기가 6분간이나 중단됐다.
롯데는 경기가 속행된 다음 2사 1, 2루에서 2번 김종헌의 볼넷과 정민철의 폭투로 1, 3루 기회를 잡았지만 3번 김응국의 우전 안타 때 전준호가 홈으로 들어와 한 점을 얻긴 했으나 4번 김민호가 중견수 뜬 공으로 물러났다. 그걸로 끝이었다.
롯데는 정민철에게 무기력하게 이끌리다가 9회 말 선두 김종헌이 볼넷을 골라 마지막 기회를 잡았으나 한화가 ‘대성 불패’ 별칭이 붙어 있는 구대성을 등판시켜 뒷문을 단속, 결국 2-1로 이겼다. 주형광의 2실점 완투가 아까운 경기였다.
당시 한화 감독은 롯데에서 1984년과 1992년에 한국시리즈를 제패했던 강병철 감독이었다. 강병철 감독은 1984년에 최동원을 앞장세워 롯데에서 첫 우승을 일궈낸 뒤 1986년에 이른바 ‘까자(과자)값’ 사건으로 롯데를 떠났지만 1990년 시즌을 마치고 다시 고향 팀으로 갔다가 1993 시즌 후 빙그레에서 이름을 바꾼 한화 사령탑으로 자리를 옮겼다. ‘까자값’ 사건이란, 강병철 감독이 1987년 재계약을 앞두고 코치들 가운데 이희수 코치를 그대로 남겨두기로 구단과 합의 했으나 그 과정에서 구단 간부와 이 코치의 재계약금 문제를 놓고 “재계약금으로 아이들 과자값 정도를 줘서는 곤란하다”고 말한 것이 화근이 돼 신준호 구단주의 화를 사는 바람에 감독 계약자체가 무산된 것을 일컫는다.
강 감독은 뒤에 신준호 구단주에게 그 일을 해명, 오해가 풀려서 롯데로 복귀했다가 두 번째 우승까지 시킨 후 한화로 떠났던 것이다.
▲ 양 팀 선수들이 우르르 달려나와 옥신각신 하자 오석환 주심이 뜯어 말리고 있다. / 제공=일간스포츠
그야 어쨌든, 그날 양 팀 선수들 사이에서 곤욕을 치렀던 오석환 주심은 희미한 옛 기억을 이렇게 되살려냈다.
“(김)상국이 형(오석환 주심보다 1년 위임)이 가랑이 사이에 끼고 있던 미트로 김미호를 찍어 누르는 기억이 난다. 포수가 홈을 안 비켜주니까 김미호가 가랑이 사이로 들어간 것인데, 누워 있는 상태에서 (김상국이) ‘감정을 조금 실어’ 머리를 찍은 것이다. 요즘도 그러기는 하지만 예전에는 포수가 홈플레이트를 안 비켜주고 그냥 막고 있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지 일부러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시 별다른 조치(퇴장 등)를 취하지 않을 걸로 봐서 고의성은 아니었던 걸로 판단했을 것이다.”
단순 충돌이었다는 얘기다. 다만 김상국의 홈 지킴 과정에서 ‘감정이 조금 실린 동작’으로 인해 벤치 클리어링 사태로까지 번졌다는 설명이었다.
오석환 주심은 “벌써 옛날 얘기가 됐다. 그 무렵 선수들은 가끔 격한 감정을 실어 경기를 하긴 했지만 지금은 동료의식 많이 생겨서인지 (다른 팀 선수끼리) 돌아서서는 말장난이나 농담도 하는 모습을 본다. 물론 오버하는 친구도 있고, 여러 모습이다”고 말했다.
그 때 오석환 주심은 양 팀 선수들의 다툼 한 복판에서 뜯어말렸지만 요즘은 그런 모습을 보기 어렵다. 그의 설명이 이어진다.
“요새는 심판이 선수들 중간에 끼어들어가지 않는다. 수십 명의 선수들이 달려 나와 툭탁거리는데 심판이 애꿎게 린치를 당해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요즘에는 심판들이 초장에 분쟁을 제지하다가 안 되면 옆으로 빠져서 누가 뭘 하는지 지켜보라고 한다. 그래야 후속조치를 취할 수 있으니까. 아닌 말로 선수들 사이에 끼어 ‘샌드위치’ 신세가 되면 상황을 제대로 못 보니까 보고서를 쓸 수 없다. 후배들한테 얘기하기를 1차적으로 막아 나서되 불가항력일 경우 빠져서 누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고 난 다음 퇴장 따위 조치를 내리면 된다.”
심판들이 한발 비켜서서 상황을 판별하는 것은 그 시절에 부산사직구장에서 일이 벌어졌을 때 중간에 끼어들었다가 그야말로 본의 아니게 ‘익명의 선수’에게 구타를 당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선수들의 신에는 ‘무기(징을 일컬음. 오석환 심판의 표현)’가 달려 있어 위험하고 일부러 그랬든 아니면 모르고 그랬든지 간에 당하면 심판만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시대가 달라졌다. 요즘에야 모든 프로야구 경기에 TV 중계가 달리니까 이상한 행동을 솎아 낼 수 있지만, 중계가 없을 때는 그렇게(벤치 클리어링 때 한 발 옆으로 비켜나서) 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벤치 클리어링 때 ‘어느 위치에 서느냐’도 심판은 염두에 둬야한다.
▲ 1994년 8월 3일 한화-롯데 경기의 기록지 일부 / 제공=KBO
그 경기의 한국야구위원회(KBO) 공식 기록지에는 김학효 기록원이 비고난에 ‘오후 7시 27분부터 7시33분까지 6분간 중단. 3회 말 롯데 공격 1사 주자 2루 1번 전준호의 안타로 2루 주자 홈에서 슬라이딩 아웃 된 후 한화 포수 김상국이 글러브로 주자의 머리를 치자 양쪽 선수들이 몰려나와. 진정 후 4심 합의 후 진행하려 하자 롯데 김용희 감독 어필’이라고 적어 놓았다.
홍윤표 선임기자
자료출처 : O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