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6장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히 6:1)
도의 초보를 의미하는 3쌍, 6개 조항이다.
“침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히 6:2)
도의 초보의 사례
1)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
2) 침례들과 안수와
3)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
1)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회개 침례요한도, 예수님도 회개하라고 가르치심
신앙의 시작이 회개이다.
2) 하나님께 대한 신앙
하나님의 존재, 실존 인격
3) 침례들과 / 왜 복수인가? 요한으로 시작된 침례, 동시에 예수님 계실 때 정결의식의 논쟁, 유대인들의 정결의식 레11, 15장 부정하게 되었을 때 씻어야 되는 예식들을 포함한 침례와 정결예식들
4) 안수와
5) 죽은 자의 부활과
6) 영원한 심판
기본교리들을 말한다. 당시 유대인 독자들에게 대해 말한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히 6:3)
이것: 완전한대로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안에서 이루어지는 것, 앞으로 나아갈 사람들이야
깊은 진리대로 나아가자
6:4-8 그런데 뒤로 가는 사람들이 있어. 난해성경절 중의 하나이다.
“[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7]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8]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히 6:4-8)
7절 8절 비유이다.
가시와 엉겅퀴:창세기 3장
맥락속에서 두려운 경고
우리는 완전한데 나아가야지, 빛을 받고 뒤로 물러가면 저주만받아.
받는 사람들이 물러갈 사람들이라고 하나? 한번 은사를 받고 뒤로 물러가면 구원을 못받아?
6:4-8절을 바로 이해하려면, 키가 9절에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히 6:9)
4-8절의 이말, 사랑하는 자들아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젖먹는 상태, 답답한데, 4-8절의 상태로 나가지 않은 것을 전제로 하는 표현이다.
앞으로 이렇되지 말라는 경고이다.
이런 상태라고 진단, 단정 내리는 것이 아니다.
이 구절을 이용해서 너는 이런 사람이다 라고 하면 안된다. 그렇게 돼서는 안된다고 쓴 것이다. 문맥안에서의 의미는?
[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광야의 시대를 그시대 굥으로 적은 것이다.
한번 빛: 불기둥을 보았다.
하늘의 은사를 맛: 만나를 먹었다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모세의 기적들에 참여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6:4-8 히3장에서 이야기했던 광야에서 끝내 믿음을 합하지 않고 의도적, 계속적으로 거절했던 자들, 끝내 가나안 ᄄᆞᆼ에 들어가는 회중에 참여하지 못했던 이들을 말한다.
히3장 지속적, 의도적으로 거절하는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 완전한데서 나아가자
“[2] 침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3]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히 6:2-3)
6:4-7 광야에서처럼 뒤로 물러가지 말고,
비를 받아 좋은 열매를 맺자
6:9 그래도 너희 마음에 좋은 것이 남아있어, 믿음대로 잘 섬기고 나아가자
6:9-12 설교이다.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히 6:10)
목회자의 심정이 그대로 나타난다.
머물러 있는 자들을 향해 위험을 경고하면서,
히브리서 저자의 접근방식을 연역한 자들을 접근하자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히 6:11)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히 6:12)
6:10-12절 익숙한 3 단어가 나타나는가?
10절, 사랑, 11소망, 12절 믿음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 10:22)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히 10:23)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히 10:24)
고전 13:13 믿음 소망 사랑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왜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살전 1:3)
믿음의 역사 믿으면 역사해야 한다. 말로만 나발불면 안된다.
사랑의 수고, 사랑의 본질이 수고이다.
소망의 인내, 인내없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과거 현재 미래를 산다고 했을 때 그리스도인들의 과거는 항상 하나님을 믿는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과거가 다 해결이 되죠. 그들이 그러다 보니까 미래는 항상 소망의 영역이죠.
그러면 현재 표현되는 것이 뭐죠? 사랑이에요 다시 말해 시간이 믿음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곳이 현재잖아요. 누군가 믿음이 있다는 것을 뭘로 보이냐 이거죠. 그게 사랑이고 누군가 소망이 있다는 것을 뭘로 확인할 수 있느냐 그게 사랑이라는 거지요.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사실을 뭘로 알 수 있어요?
사랑이라는 것을 믿음으로 알고 소망이 있다는 것을 사랑한다는 것을 소망으로 아는 게 아니고 내 과거를 믿음으로 해결했다는 것을 현재의 사랑으로 확인되고 내 미래가 소망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현재의 사랑으로 확인된다는 거죠.
그러니까 다시 말해 사랑이 믿음보다 더 소중하고 사랑이 소망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고요. 그 믿음과 소망이 다 확인되어지는 현장이 지금이니까 그게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다라는 말로 확인되는 거죠.
여기 마무리 히브리서 기자가 바울 서신에 반복되고 편지서에 바울 서신 외에도 다른 곳에도 나와요.
다른 것이 또 반복되는 바로 그 믿음 소망 사랑을 다시 이렇게 반복해 꼭 이렇게 바울 서신처럼 믿음 소망 사랑, 데살로니가전서처럼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 이렇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이 세 가지 요소를 함께 묶어서 11, 12절에서 언급해 준 것은 우리들에게 그런 의미를 던져주는 거죠.
11-12절에서 3요소를 언급한다.
13-20 신망애를 가지라는 설교
5:11- 시작된 설교에 뒷이어서 확증시키
신약에 언약이란 단어가 나오나?
약속이란 단어는 어떤 차이가 있나?
신약적 의미
언약: 의식이 수반된다.
약속: 인격에 근거해서 말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의식개념이 사라지면서 전제되는 것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히 6:13)
언약이 아닌 약속하실 때에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창 22:16)
맹세: 누군가의 이름을 대고 맹세하는데
아브라함이 모리아 번제후에 주님의 말씀을 언급하는 말이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이니라”(히 6:16)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히 6:17)
하신 모든 말씀을 확증하셨다. 맹세로 하셨다. 절대로 변하지 않는 다는 것을 맹세의 보증이다. 약속과 맹세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히 6:18)
더 큰 분이 없기에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신다.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히 6:19)
우리가 가진 소망: 영혼의 닻
더 이상 흔들릴수 없는 영혼의 닻, 하나님이 자기를 가리켜 맹세로 주신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는 것이다.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맹세를 주신 것 , 더 이상 흔들 수 없는 닿이 된다.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히 6:20)
인간 대제사장은 연약에 휩쓸렸어
코 끝에 호흡을 의지하고는 인간에 불과했어.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시편 2편 7편과 시편 11편 4절이 약속하고 있는 아들 되신 분이고, 왕 되신 대제사장이야.
그리고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눈물과 기도로 모든 죽음을 이겨내시고, 그리고 시험 다 받으셔서 온전한 순종을 이루셔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 되었어.
그러니 하나님은 거짓말 하실 수 없어. 모든 것을 확증 지으셨어
간절히 호소하려는 전체 내용이다. 우리가 섬기는 예수님, 주님이라 부르는 그분,
그 멜기세덱은 누구이고, 새언약의 대사장은 어떠신지?
질문/ 새언약은 성경에 있다. 8:13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히 8:13)
옛언약이라는 말이 있나? 자주 쓰는 말이나 성경에는 없다.
옛언약 대신에 무슨 언약이 있나? 성경에는 뭐라고 표현하고 있고, 히 7장은 멜기세덱 만 설명하고 있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카타파우시스: 파우오+ 카타라는 전치사를 붙인 것이다.
접두사:아나-위에, 파우시스
예수님이 초청해 주신다.
아나파우시스: 거치게 한다. 중지시킨다..
예수님이 초청하신다.
히3,4장을 거셔서 히 5-6장 인간 대세장이 주지 못하는 것을 예수님이 주신다. 하늘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주시는 중보, 약속에 근거한 약속, 자기를 맹세로 하시면서 주시는 대제사장의 봉사 그 귀한 호소가 오늘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어서 정말 다시 주님을 온전히 굳게 영혼의 닻처럼 굳게 내리는 그런 또 하나의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사도 바울이 예수 없던 시대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애끓는 마음으로 예수를 전했던 바울의 심정을 깨닫게 하소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사는 그 신앙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신앙인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다고 하는 그 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호소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예수님을 믿고 사는 이 삶의 경험이 우리들 속에서 영혼의 닻처럼 견고해지고 우리들의 삶의 현실에서 사랑으로 구현되는 매일 매일이 될 수 있도록 지켜주옵소서. 전 세계에서 함께 이렇게 줌으로 만나 말씀을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다시 감사를 드리옵고, 다시 다음 주 만날 때까지 우리 삶의 있는 곳곳에서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도록 지켜주시기를 감사하며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