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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성회의 종말론 형성과정
아래의 글은 김성도 목사님의 책, ‘개혁복음주의 오순절신학 – 하나님의 성회 신학적 관점’(2012, 도서출판 멘토링)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이 글은 오순절 진영의 종말론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입니다. 김성도 목사님은 오순절신학의 정립을 위하여 애쓰셨으며 우리 교단 설립 50주년을 맞아 발간된 ‘기하성 50년사’에서 하나님의 성회 신학을 집필하셨습니다. 이 자료(672~679쪽)에는 각주가 생략되었지만 원문에는 있습니다.
제10장 전천년 재림(Premillennialism) 신앙
1914년 오순절 성도들이 보다 더 큰 협력과 연합을 위하여 알칸사스주 핫스프링(Hot Springs)에 모여서 하나님의 성회(AG) 총회를 결성할 때에 그들은 하나의 예언에 대하여 대단히 기뻐하였다. 그것은 늦은 성령의 부어주심은 말세의 예언의 성취라는 것이었고, 예수께서 천년왕국을 세우기 위하여 이 세상을 떠나셨던 것처럼 그대로 이 세상에 ‘곧 다시 오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항상 초기 오순절운동의 중심 주제 속에는 "예수께서 곧 다시 오신다"는 말이 들어가 있었다.
이러한 오순절 신학의 종말론은 오순절주의의 독자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근본주의(Fundamentalism)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서 그들은 계시록 20장의 천년왕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두 번째 강림하심이 천년왕국보다 먼저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는 전천년(Premillennial)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특별히 근본주의자들의 미래적 종말론인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에 강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하나님의 교회(Church of God)와 오순절성결교회(PHIC)의 신앙 선언문에서도 세대주의적 전천년 비전이 천명되어 있다.
한편 하나님의 성회(AG)는 세대주의에 꼭 연결되어 있지는 않지만 세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전천년 종말론 체제를 수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AG의 종말론은 세대주의 신학을 확립시킨 스코필드성경(Scofield Reference Bible)에서 그 구분 방법을 직접적으로 이끌어 온 것이 보인다. 초기 하나님의 성회 신학자 가운데 보이드(F. M. Boyd)와 리그스(R. M. Riggs)는 스코필드 세대주의 이론의 영향을 가장 강하게 받아 그 내용을 개작(改作)하여 오순절운동에 접목시킨 작품을 여러 편 썼다. 그러나 세대주의에 반드시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1. 역사적 고찰
역사적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네 가지 중요한 견해가 있었다. 첫째는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실제 육신으로 재림한다는 것을 인정치 않고 영적 의미(spiritualized view)로 해석하는 것이다. 둘째는 종교개혁 이후 언약 신학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후천년 왕국설(Postmillennial)이다. 셋째는 재림에 의하여 지상에 문자적 천년왕국은 없다고 보는 무천년 왕국설(Amillennial)이다. 이들은 왕국(the Kingdom)에 관한 모든 예언은 교회를 통하여 초림과 재림 사이에서 영적으로 모두 성취되었다고 본다. 넷째는 그리스도는 천년왕국 시대가 시작되기 전에 실제 육신으로 지상에 재림하여서 그의 왕국을 세운다는 전천년 왕국설(Premillennial)이 다.
일반적으로 사도 시대 이후 3세기 동안 교회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전천년 견해를 믿었다는 사실에 동의를 하고 있다. 사도들과 사도 요한의 제자 폴리갑(Polycarp),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a, AD40-100) 순교자 저스틴(Justin, 100-168), 이레니우스(Irenaeus, 140-220), 터틀리안(Tertullian, 150 -220), 캘타고(Carthage)의 감독이며 영적 은사가 강했던 키프리안(Cyprian. 200-258), 올림푸스(Olympus)의 감독 메도디우스(Methodius, 250-311) 등 초대교회 시대의 신앙인들은 전천년 재림을 믿었다.
히에라폴리스(Hierapolis)의 감독 파피아스(Papias 80-163)는 “죽은 자의 부활 후에 천년왕국이 있을 것인데, 그때 그리스도의 인격적 통치가 지상에 성취될 것이다”라고 기록하였다. 역사가 필립 샤프(Philip Schaff)는 “니케아 전 시대의 종말론의 두드러진 특징은 전천년(the prominent chiliasm)이다… 그것은 어떤 신경(信經)이나 신앙의 형태에 의하여 나타난 교회의 교리가 아니라 당시 유명한 교사들 사이에 널리 유포되어 있는 견해였다”고 진술하고 있다.
4세기 초 콘스탄틴(Constantine) 치하에서 교회와 정치가 연합하여 로마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영광의 나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기관으로 자처하게 되자 천년왕국에 대한 소망은 죽어가기 시작했다.
스미스(Smith)는 “사도 시대와 콘스탄틴 시대 사이의 구간을 묵시적 해석의 천년기(Chiliastic period)로 불리어졌다”고 말하면서 “콘스탄틴의 승리 직후 압제와 박해에서 해방되어 지배 계급이 되고 부유해진 기독교인들은 주님의 임박한 재림에 대한 강한 기대와 그리스도의 왕국에 대한 영적 개념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속된 그리스도의 지상통치의 성취는 기독교의 현세적인 지배권으로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기독교화된 로마 제국은 더 이상 예언적 경고의 대상이 아니라 천년왕국이 전개될 무대로 간주하였다. 한편 이 견해는 천년왕국은 모든 참된 신자의 가슴에 그리스도가 통치하신다는 비유적 해석과 결합되어졌다”고 평가했다.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는 ‘신의 도성’(The City of God)이라는 유명한 그의 저서에서 ‘보이는 교회는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왕국’이라는 사상을 펼쳤다. 엘리스(Oswald T. Allis)는 아우구스티누스가 발전시킨 천년 교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그는 천년왕국은 기독교회에서 성취되었으므로 영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는 사탄은 주님의 지상 사역 동안에 결박되었고(눅 10:18), 첫째 부활은 신자의 거듭남을 가리키므로(요5:25) 천년왕국은 초림과 재림 사이의 시대인 교회 시대와 일치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천년의 교회사가 끝날 때에 재림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무천년설(Amillennial)은 종교개혁자 캘빈(John Calvin)에게 영향을 주어서 그의 유명한 저서 ‘기독교 강요 3권’에서 “그러나 조금 후에 천년왕국론자들이 뒤를 이어, 그리스도의 통치 기간을 천년 동안으로 제한하였다. 그들의 조작은 너무도 유치해서 논박할 가치가 없다. 그들의 오류에 근거를 제공한 것이 계시록임에 분명하나, 그 계시록도 그들을 지지하지 않는다. 천(千)이라는 수(계 20:4)는 교회의 영원한 지속에 적용되는 것이다. 도리어 성경 전체는 선택된 자들의 지복이나 악한 자들의 형벌이 영원하리라고 선언한다(마25:41-46)”며 천년설을 경멸하였다.
이러한 캘빈의 영향으로 무천년설은 개혁교회와 루터교회, 정통 장로교회 계통의 보수주의자들 사이에서 지지되어오고 있다. 그들은 계시록 20:1-6의 “천년”을 문자적으로 보지 않고 영적 또는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에서 재림까지의 전 신약시대의 복음운동기간으로 해석해 오고 있다.
17세기 후반과 18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영국에서 아리안파(Arianism)의 다니엘 횟비(Daniel Whitby, 1638-1726)가 천년왕국에 관한 모든 약속들은 반드시 영적 및 우화적 의미에서 다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후천년설(Postmillennialism)을 가르쳤다. 이 후천년주의가 활성화된 것은 미국에서 대각성 운동 시절에 조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 1703-58)에 의하여 촉진되었다. 그는 세계는 그리스도께 돌아와 개종할 것이며, 유대인들은 그의 나라로 돌아가고, 교황과 이슬람은 멸망할 것이며. 성령은 부어져서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어 이 땅에 교회를 위한 영적 번영의 시대가 이루어지고 그 후에 주님이 재림하시게 된다고 보았다. 그 경건주의 청교도와 성결운동자들 사이에서 이 사상이 만연하여 지상 낙원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더욱 세상이 혼탁해지자 이때 전천년 재림론이 다시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일어나게 되었다.
특히 19세기 중엽 영국의 플리머스 형제단(Plymouth Brethren)의 다비(John Darby, 1800-1882)는 역사를 일곱 세대(dispensations)로 나누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는 일곱 번째 세대인 마지막 세대가 도래하였으므로 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사건들이 시작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마지막 세대에는 교회가 세상에서 은밀히 들림(secret rapture) 받을 것이며, 그와 함께 일천년 동안 통치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고, 7년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항상 긴박감과 언제라도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루어진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결국 이 종말신앙은 교인들에게 개인적인 성결과 전투적인 선교와 전도에 자극을 주게 되었다. 이러한 다비(Darby)의 가르침은 오순절주의가 나타나는 배경에 중요한 역할을 해 주었다. 그래서 초기 오순절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운동이야말로 휴거에 참여하여 환난을 피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보증이라고 단언하였다.
플리머스(Plymouth) 형제단은 19세기 초반에 팽배해 있던 영적인 냉랭함과 형식주의, 분파주의에 저항하여 일어난 운동이었다. 그들은 기존의 교단과 역사적 신조들과 역사적 전통 예배형태에서 분리하여 신약(New Testament) 형태의 교회를 회복하기를 기대하였다. 다비(Darby)는 영국국교회의 사제였으나 플리머스 형제단 운동에 가담하여 뛰어난 교사가 되었다. 다비를 중심으로 한 형제단 집회는 기도와 친교, 성경 예언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강조하고, 전도에 대한 열정이 강했다.
미국에서 다비(Darby)의 세대주의적 역사에 대한 견해와 성경 연구를 강조하는 것이 보수진영 사람들에게는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비록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 다비의 세대론과 휴거(rapture) 견해에 대하여 논쟁이 있었지만(어떤 사람은 완전히 거절했고, 다른 이들은 종말의 예언은 이미 성취되었다고 주장했으며, 어떤 이들은 이스라엘과 교회를 완전히 구분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 오심의 긴박성에 대한 전제와 매일의 삶 속에서 각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 대하여서는 동의하였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설은 준비되지 않은 자들에게는 영벌(eternal damnation)의 심판이 처해진다는 두려움과 함께 성도의 성결과 복음 전도를 고무(효력)시키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특히 다비의 복잡한 예언 도표보다는 그리스도 재림에 대한 단순한 기대에 더 많은 무게를 두었다. 전천년재림론의 가르침은 19세기말의 복음주의의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이미 “두 번째 오심의 그림자로써” “저녁 빛 성도”(evening light saints)로 살려고 했었기 때문에 그들의 삶과 사역에 생기를 불어넣어주게 되었다.
무디(D. L. Moody)는 후천년재림론이 만연되어 있는 19세기의 종교적 상황에서 전천년재림론의 선도적 기조(基調)를 형성하면서 이렇게 선언하고 있다:
“전천년 재림이란 그리스도께서 천년왕국 이전에 오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오시기까지는 천년왕국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성경에 분명히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전화, 증기기관, 쾌속 대서양 기선, 그리고 모든 현대 문명의 도구들에 의하여 천년왕국이 다가올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천년왕국 끝에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먼저 오실 것이라고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천년의 통치 이전에 오셔야만 한다. 그가 오시므로 천년왕국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후천년적 견해가 옳다면 천년왕국은 언제 시작될 것인가? 분명히 천년왕국은 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래하는 것 같지도 않은 듯하다… 먼저 세상이 더 좋아져야 한다면 우리는 아직도 천년왕국으로부터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
뛰어난 선교사 지도자이며, 전천년재림론의 옹호자인 피어슨(A. T Pierson)도 1886년 제2차 예언자 대회에서 비슷한 소감을 표현했다.
“우리 문명의 실제적인 특성이 무엇인가? 우리는 현실적으로 더 나은 편에 직면해 있다. 발명 발견, 그리고 사업, 위업 등 거대하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적으로 거대한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엄청나게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께 도전하고 있다… 철학은 지금 세련되게 꽃이 피었고 시적인 범신론, 무성하면서도 텅빈 물질주의, 교묘한 합리주의, 불합리한 불가지론, 과학은 진화의 체계로 구성되어가므로 인격적인 하나님을 제거하고 있다…
스트라우스(Strauss), 르난(Renan), 헤겔(Hegel), 콩트(Comte), 괴테(Goethe), 칸트(Kant), 밀(Mill), 스펜서(Spencer), 다윈(Darwin), 헉슬리(Huxley), 매튜 아놀드(Matthew Arnold), 테오드 파커(Theodore Parker) 같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교육을 받고, 세련되어지고, 성공한 것에서 기독교의 은혜를 받은 대표적인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들이 기독교를 공격하고 있다…
우리는 세속 문명의 가장 무르익은 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무르익었다는 것은 부패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황금시대는 천년왕국의 약속에서조차도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들은 후천년주의 재림의 비전은 오히려 그리스도의 통치의 평화의 시대가 아니라 점점 더 하나님을 대적하는 불신과 불의의 시대를 낳을 뿐임을 증명하고 있다. 그들은 인간적, 세속적 번영을 가지고는 그리스도의 왕국을 세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의 왕국이 아니라 인간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자들이라고 질타하고 있다. 만약에 후천년주의자의 비전처럼 세속문화를 가지고 천년왕국을 이루려고 한다면 천년왕국이 이루어지지도 않을뿐더러 영원히 그리스도의 재림의 약속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전천년주의자들은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빨리 오셔서 세속 문화를 무너뜨리고 그의 천년왕국을 세울 것을 고대하였다. 케직(Keswick) 지도자들은 다비(Darby)의 세대주의적 전천년 체제의 주요 요점들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 재림의 표징”을 결정하는 성경적 예언을 연구하는데 집중하게 되었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의 마지막 기회를 주기 위하여 세계적인 대부흥의 표징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성결운동을 통하여 세계 복음화를 속히 가져올 수 있도록 성령이 신자들에게 놀라운 능력을 부어주시는 제2의 오순절에 이르도록 해주기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개혁적 노선인 침례교, 국교회, 캘빈주의 배경을 가진 그들로서는 성취할 수 없음을 깊이 깨닫고, 완전주의 교리를 배격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성결운동의 사람들과는 다른 의미의 “능력 입히움”(endowment of power) 으로서의 성령세례 교리를 전하게 되었다.
이 케직(Keswick)의 가르침은 무디(D. L. Moody)를 통하여 더욱 확산되었고, 스코필드(C. L. Scofield), 그레이(James M. Gray), 피어슨(Arthur T. Pierson)이 이끄는 ‘나이아가라 성경 예언 대회’와 같은 집회를 통하여, 또는 고든, 심슨, 채프만과 같은 케직운동자들을 통하여 케직주의적인 성령세례와 전천년 재림 교리가 확산되게 되었다. 그들은 마지막 때에 사도적 능력과 영적 은사들이 나타나는 초대 기독교의 활력을 갱신하는 회복주의 종말론을 추구하였다. 그리스도의 전천년 재림을 준비하면서 사도적 은사를 통하여 세계 복음화가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였다.
오순절 운동을 통하여 세계적인 대부흥을 가져오게 된 것은 바로 ‘임박성’(imminent), ‘전천년’, ‘종말적 그리스도의 재림’(apocalyptic Second Coming) 같은 임박한 전천년 재림론의 가르침이 뒷받침이 되었기 때문이다. 즉 오순절운동이 발전하게 된 것은 ‘세대주의’(dispensational), 또는 ‘전천년주의’ 그리고 ‘성령세례’(the Baptism of the Holy Spirit)와 같은 케직의 가르침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대주의 종말론을 가르치는 근본주의자들과 오순절운동은 함께 연합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우리의 소망’(Our Hope)이라는 정기 간행물을 통하여 “구속 안에서”의 치유와 성령의 은사들(믿음, 이적 행함, 방언)은 사도시대로 단절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오순절 신학과 치유 방법을 비판하였다. 그들은 오순절주의가 신약의 은사들이 마지막 시대 교회의 증표라고 주장하는 것과 늦은 비(the Letter Rain) 견해는 거짓된 것이요, 믿을 가치도 없는 것이라고 혹평하였다. 심지어 오순절 신학의 성경적 근거를 삭제해 버리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순절주의자들은 스코필드의 사상을 거의 받아들였으며 그의 주석 성경을 자주 인용하였다. 그러나 오순절 신학을 거절하는 세대주의자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하였다. 그것은 마치 서로 반대되는 개념을 억지로 갖다 붙이는 꼴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오순절주의와 세대주의는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의 성회(AG)의 신학자 마이어 펄만(Myer Pearlman)은 각 오순절신학교의 교재로 사용된 ‘성서 교리학’(Knowing the Doctrines of the Bible)에서 미래에 대하여 세대주의적 비전을 가진 종말론을 말하고는 있지만, 그는 이스라엘과 교회와의 관계를 완전히 분리하는 세대주의적 방법을 용납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과 기독교회 사이의 연속성을 보았다.
또한 최근의 오순절 신학자에 의하여 쓰여진 종말론에 관한 책, 홀튼(Stanley Horton)의 ‘그의 오심의 약속’(The Promise of His Coming, 1997)과 ‘우리의 운명’(Our Destiny: Biblical Teachings on the Last Things. 1996), 가우스(R. Hollis Gause)의 계시록 (Revelation: God's Stamp of Sovereignty on History, 1983)에서 전천년에 대하여서는 쓰고 있으나 세대주의에 대하여는 용납하지 않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성경의 역사를 세대주의적 구분으로 분류하는 것을 거절하고 있다.
다만 하나님의 성회(AG)의 종말론이 세대주의적 체계를 사용하는 것은 전천년적 그리스도의 재림과 교회의 휴거, 칠년 환난, 천년왕국, 현재의 질서는 심판을 받는다는 것 등을 세대주의에서 빌려 온 것뿐이고, 역사를 분류하는 것이나 교회와 이스라엘을 구분하여 예언을 해석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에서는 세대주의를 떠나 있음을 볼 수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글렌 멘지스(Glen Menzies)와 앤더슨(Gordon L. Anderson)이 지적한 대로 하나님의 성회(AG)의 ‘근본진리 선언’ 복된 소망(The Blessed Hope)과 그리스도의 천년통치(The Millennial Reign of Christ) 항목에서 휴거와 환난과 재림의 관계를 정확하게 규정해 놓지 못하고 의도적으로 애매모호하게 만들어 놓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강의 요약과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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