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鳥頭)
차 은 량
봄이 되면서 내심 조마조마했다. 꽃모종을 심느라 뒤뜰 화단 앞을 오가는데 창고 처마 아래 마른 나뭇가지들이 소복이 흩어져있는 게 눈에 띄었다. 창고 처마에 또 새 둥지가 지어지고 있었다. 올 게 왔구나. 대나무 빗자루를 거꾸로 쳐들고 서까래 사이에 한창 신축 중인 둥지를 털어냈지만 떨어지는 양보다 남아있는 양이 많았다.
오후에 생각이 나서 가보니 처마 밑엔 내가 치웠던 만큼의 나뭇가지들이 다시 엮어져 있고 그 아래 바닥에는 적지 않은 건축자재들이 떨어져 있었다. 지난해 봄, 근 한 달을 물까치에게 뒤통수를 쪼인 걸 생각하면 새들이 알을 품기 전에 집짓기를 단념시켜야 했다. 다시 둥지를 털어내고 그 자리에 빈 플라스틱 물병을 가져다 끼워놓았다. 그리고 이삼일, 재건축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새 둥지의 기억을 까맣게 잊고 창고 옆을 오가며 풀을 뽑고 물을 주다가 다시 재건축의 현장을 보고 말았다. 빈 물병을 끼워놓은 자리보다 더 높은 용마루 쪽에 다시 집을 지어놓았다. 나의 방해로 공사 기간이 단축되어 그랬는지 둥지의 형태도 채 갖추지 못한 엉성한 모양새다. 새도 날림공사를 하는구나. 어디서 그런 못된 걸 배웠는지. 바닥엔 마른 나뭇가지와 마른 풀, 마른 이끼, 낡아 헤진 비닐끈과 함께 아주 작고 부드러운 새의 가슴털이 보였다. 마른 가지와 헤진 비닐끈으로 기초공사를 하고, 마른 풀과 보드라운 이끼로 도배를 하고, 자신의 가슴 털을 뽑아 요람을 만든 모양이다. 저렇게 머리가 좋은 새를 두고 조두(鳥頭) 운운했으니. 둥지라 할 수 없게 얼기설기 엮어진 모양새를 보니 어미의 해산날이 급했나 보다.
결혼 7년째인 며느리도 이십여 일 전에 몸을 풀었다. 자연분만한 며느리도, 아기도 건강하다고 아들이 고마운 소식을 보내왔다. 부랴부랴 서울로 가서 내 생애 첫 손녀를 만났다. 영상으로 보는 것보다 너무 작고 여린 생명체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다더니 그 말이 그 말이구나. 그래, 내 새끼가 중하면 남의 새끼도 중한 법. 손녀를 보고 돌아오면서 물까지의 집을 없애려는 생각을 단념했다.
현관문을 열면 맞은편 전선에 물까치 한 마리가 우리 집 현관문을 주시하고 있다가 내가 나가면 내 눈을 향해 레이저를 쏘아댔다. 대문간 옆 소나무 꼭대기에 한 마리, 창고 옆 전선에 두 마리. 도합 세 마리다. 나는 새에게 쪼일까 봐 조심조심 소리 죽여 마당 일을 하고, 차를 타고 외출하고, 돌아와 차에서 내릴 때도 이리저리 물까치의 위치부터 확인했다. 지난해 봄처럼 내 머리를 쪼겠다고 덤벼들지 않는 것만 해도 고마울 지경이었다. 머리를 쪼지도, 날카로운 경계음을 내지도 않던 물까치들이 어느 날부턴가 다시 그악스러워졌다. 여기서 꺄악, 저기서 꺄악, 꺄악꺄악 꺄아아악… 내가 마당에 나가기만 하면 새들은 아주 난리를 치며 서로 신호를 보내기에 바빴다. 어미가 몸을 풀었나 보다.
물까치가 사나워지기 시작한 지 닷새쯤 되었나, 기어이 물까치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스마트폰의 음악을 켜놓고 나는 화단의 잡초를 뽑느라 여념이 없었다. 갑자기 바람을 가르는 날갯짓 소리와 함께 물까지가 내 뒤통수를 가격하고 날아갔다. 멀리 가지도 않고 담장 위에 앉아 다시 나를 주시하는 물까치를 향해 호미와 전지가위를 마주 두드려대도 새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연이어 뒤통수를 둔중하게 치고 나가는 새의 육탄공격에 풀 뽑기를 단념했다.
3년 전 마을 뒷동산이 사라졌다. 해마다 이맘때면 아카시아 꽃향기로 마을이 향기로웠다. 오가는 사람들에게서도 꽃향기가 났다. 그 산을 허문 자리에 공장부지가 만들어졌다. 우리 집 뒤뜰 옹벽의 꼭대기 높이가 공장부지의 지표면과 같아 나는 이래저래 심란했다. 심란한 건 나뿐이 아니었다. 졸지에 터전을 잃고 오갈 데 없어진 짐승들은 마을로 내려올 밖에.
엊그제는 뒷마당에서 새들의 자지러지는 소리가 들려 가보니 못 보던 새들이 그늘막 테이블과 의자에서 난리를 치고 있었다. 푸른빛 긴 꼬리가 없는 걸 보면 물까치는 아닌 듯싶은데 사람이 가까이 가도 날지를 못했다. 이게 또 무슨 일인지. 새들에게 점령당한 내 집을 어쩌란 말인가. 저녁이 되었고, 뒷마당이 조용해졌다. 새들이 없었다. 새집도 조용하다. 그제야 알았다. 날지 못했던 새들이 알에서 부화한 물까치의 새끼들이었다는 것을. 새끼들의 몸집이 커지고, 날 때가 되자 어미 새가 새끼들을 둥지 밖으로 떠밀었을 테고, 서너 시간 서툰 동작 끝에 새끼들은 드디어 하늘을 날았을 터.
이튿날 어미 새들은 여전히 우리 집 주위에 포진해서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기 바빴다. 새끼 새들이 아직 주변에 있다는 표시다. 그날 저녁 모처럼 집주변이 조용해졌다. 어미 새들은 내가 마당에 나가도 눈길도 주지 않았다. 나는 더이상 물까치의 경계대상이지 못했다. 저들을 두고 누가 조두(鳥頭) 운운하는가.
2024. 에세이21 봄호
첫댓글 읽는 사람은 너무 재미있는데 당사자는 얼마나 황당할까요. 물까치와의 싸움이라니^^
그런데 졸지에 터전을 잃은 짐승들은 더 황당하겠네요...
새들에게도 절박한 문제죠.
물까치가 또 오기전에 창고처마 밑에 촘촘한 그물을 설치해야 하는데 엄두가 나질 않네요.
바람이 가장 심한 날을 골라 집을 짓는다는 새에게 배웁니다.
조두(鳥頭)는 역설적으로 뒷동산을 헐어버리고 꽃향기를 지워버린 이들에게 어울리는 말 같습니다.
물까치와의 전쟁,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