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정원
이리 작은 것으로 확실한 행복을 얻는 사람이 또 있을까. 국내외로 집이 세 개(?)인데다가 원체 양말 훌렁 벗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짝짝 양말이 생기는 거는 불가항력일 거다. 외톨이가 된 양말을 고이 비행기에 태워 차쿠로 데려온다. 이미 잘 빨아 놓은 짝짝 양말 집합 서랍을 열고 휘휘 젓는다. 마침내 짝을 찾아 이산양말을 상봉시켜 개어 넣을 때는 그야말로 머릿속이 다 시원해지는 이른바 소확행을 누린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정원은 자란다고 했던가?
이번에 차쿠의 정원에 성모상까지 모셔 놨다. 높이가 1미터밖에 안 되는 데 무게는 110킬로나 나가는 한단 백옥이시다. 오월의 정원에다 성모님을 모시던 날은 밤늦도록 날일日자로 뱅뱅 돌았다. 이튿날 역시 새벽부터 커튼을 열어 제친 이유는 사철 눈비를 맞아도 변치 않는다는 백옥이기도 하지만, 그 자리가 바로 동네 사람들의 쓰레기장이었었기 때문이다. 몇 년간 쌓였을지 모르는 쓰레기 더미를 파내고 그 위에 월계화(장미과)를 심었다. 작년부터 꺾꽂이로 준비를 해 왔고, 올봄 내내 5일 장에 나가 화분채로 사온 것들이다. 굳이 월계화를 택한 이유는 딱 한 가지, 개화기간이 길다. 5월부터 11월까지 핀다. 싼 티가 날 정도로 어이없이 크게 피어난다. 만주 민간에 이런 속설이 있다. 길림성의 성도省都가 장춘長春인데 왜 장춘이냐면 청황조가 백두산 일대에서 나는 3대 특산물(호피, 녹용, 산삼)을 장려하기 위해 봄에만 세금을 면제해 주었다고 한다. 백성들 입장에서 면세기간이 길었으면 하는 것은 당연지사, 사람들은 여기저기에 월계화를 심었다. 혹여 관리들이 세금의 세자라도 꺼낼 것 같으면 무슨 소리냐? 아직도 꽃피는 봄인데, 하며 월계화를 가리켰다고 한다. 다른 지방은 다 꽃 떨어졌는데 유난히 월계화가 만발한 지방을 일컬어 長春으로 회자되었다는 이야기다.
쓰레기 더미 위에 월계화 수십 송이를 심어놓고 그 복판에 백옥의 성모상을 모셨을 때는, 화룡을 하고 점까지 찍었다는 생각이었다. 차쿠 뜨락에 눈이 뜨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이 역시도 별 수 없는 소확행일 뿐이었으니...... 그저 정원 가꾸기에 불과했다. 성모님을 모셨다는 백옥지심白玉之心마저 사흘을 가지 못했으니 마음은 다시 지난 사제 연수 때 통계로 본 한국교회의 불확실성으로 먹구름 드리워졌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이라는 불확실성도 차쿠의 안개로 자욱해 왔다. 갑자기 뜨내기 인생 같다는 불확실성마저 꽃샘바람마냥 불었을 때는 완연한 봄이라도 으슬으슬하였다.
꽃이피면 무엇하리
만발하면 무엇하리
마음하나 피어나야
오월이요 봄날이지
성모님을 모셨어도, 천장지구 불변한다는 백옥 성모님을 모신 약발이 사흘도 못 갔다면 이건 필시 아무것도 아니요 그저 소일거리에 불과하다. 시새말로 소확행!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터이다.
그렇다면 정말 이래볼 수는 없단 말인가? 기왕 차쿠의 뜨락에 성모님을 모셨으니 마음의 뜨락까지 성모님을 들일 수는 없을까? 처녀로서 가장 불확실한 임신 앞에서, 언제라도 율법의 돌팔매가 날아들 가장 불확실한 현장에서 네, 하고 확실하게 답하셨던 성모성심을 내 마음 안에 모실 수는 없는 건가? 눈비바람 맞아도 상관없는 백옥처럼 불확실의 더미 위에 딱 세우고 살 순 없는 건가.
기도하면 무엇하리 백날하면 무엇하리
오직하나 필요한건 진복자의 마음인데
지상에서 불안한건 천상추구 부족인듯
오늘같은 봄밤엘랑 성모마음 청할거나
첫댓글 비행기에 태워 간 양말 한 짝에 제 짝을 찾은 대목과, 쓰레기장에 월계화를 심으신 대목에서 저도 모르게 제 손으로 제 이마를 쳤습니다.
아주 세게요.
겁나~ 통쾌합니다.
장춘의 일화에서 피하고 싶은 세금 이야기를 듣습니다.
백옥 성모님을 정원에 모셨으니
마음 안에 늘 봄날처럼 꽃이 피어나길 기도드립니다.^^
묵주 들고 정원을 도시는 신부님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신부님 정원에 모신 성모님이 얼마나 행복해 하실까요?
차쿠 성모님을 뵈올날 오겠지요?
월계화 피는 봄날
성모님을 모신 그곳에 하느님 말씀
꽃으로 만개할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