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베스트 컬렉션
그 대 로
밤 피어오르듯 별은
어제
그 자리에 빛을 내고
뜨거운 열기로 타오르는 사막에
오늘
목마름을 덜어내는
오아시스
사라지듯 기어이,
달아오르는 날빛
내일
또
그대로
0시 속(續) 0시
현재 시각 0시 조금 지나
귀뚜라미, 울지 않는다
창밖, 이미 떠 있는 달은
이별을 삼키고 날아가는
슬픈 새다
나는 알지 못하는 시간
허공에 뜬
해돋이가 선명하다, 어둠 속에서
귀뚜라미 울지 않고, 현재 시각
0시 조금 지나
과거로 돌아간 이별도
슬픔으로 남지 않는다.
저 혼자 우는 달,
저 혼자 뜨는 해,
세상이 비춰진 곳에서는
이별을 슬픔이라 말한다.
세상의 뒷골목에서
날지 못하는 새
목마른 울음에 지쳐간다,
나는 알지 못하는 시간
0시를
조금 지난.
“그리움”이 “허상”에 기대고 있다
그리움이란 단어를 노트 속에 동그란 종이로 접어, 그림이라는 걸 그려본다 새벽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우리에게선 떨어나가지 않은 천국의 시체들이 黎明(여명) 속에 하나둘 살아나고 난, 이 어둠에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다
그리움이 허상 속으로 기어들어간다 움츠린 어깨, 더욱 더 움츠리고 “너”라는 좁디좁은 동굴 속으로 빨려드는 그곳은 텅빈 가슴, 아무도 없다 젖무덤의 향내 나는 입술 사이 한숨이 새어나오고, 그․립․다
다이아 색채나는 반짓가락 만지작거리면 허영에 들뜬 마음이 움직인다, 바람이 지나친 바람에 쓰러진 나무들, 廟塔(묘탑)에 부은 시선들, 너마다 등을 돌려, 야윈 풀들은 꿋꿋하다 그리움은, 없․다
좁은 어둠 사이로 허상이 그리움을 잡아끌고, 살아있는 시체가 묻히고, 몰아치는 폭우가 무덤을 짓밟고 난, 그리움이란 단어 속에 들어가 “허상”에 기․대․고․있․다
금빛 토론·1 - 사람
어떠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대나무 같은 냉정함
어떠한 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갈대와 같은 침착함
벽 1
마른 나뭇가지
햇살에 타들어간다
너를 바싹,
태우고도 남을 세월
벽이 있다
벽 3
긴긴 세월 대답없는 너에게 나는 조금씩 지쳐간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너의 인내도 인내지만 이제는 나도 너를 배우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답 없던 네가 대답하기 시작했다 내 인내력이 극도(極度)에 달해 네 대답을 더 이상 강요하지 않는 내게 넌 대답한다 너의 대답은 그것이었구나 바로 그것이었구나 오늘도 침묵하는 너는 어둠 속에서 저 맑은 세상을 바라다본다
비 둘 기
자유를 바라며
날으는
새우리 안의
비둘기.
누군가,
열은 문을
차고 나오려는
날개짓.
푸른 허공
문 사이
흩어지는 그들의
한 맺힌
지저귐.
먹구름
몰려들어
그들을 버린
하늘.
비 뚫고
날아 오르는
새우리 안의
봉우리.
그저 한번
몸부림치던
날개 안의
설레임
소나기, 그 후
1. 콘크리트
사라지듯 툭 튀어오른 방울 같은 날들
너무 오랫동안 단단하여 쉽게 바꾸지 못하는 생(生)
그런 날이 지고 있다
2. 진흙더미
저 세상 끝 떨어진 칼날 같은 방울
갑자기 들이닥친 변화에 유유히 스며드는 삶
실패한 첫, 사랑처럼 파인다
3. 무지개
서로 다른 인생을 묵묵히 바라보다가
엇갈린 7가지의 목소리, 오늘도 아름다운 불협화음
초록빛의 0
빛이 빛을 쪼여 한낮의 모든 걸 매기고 있다 그 빛은 내게 모든 걸 다 주려 하진 않고 있어 나는 빛에게 말한다 내게 바람을 달라 내게 비를 달라 내게 구름을 달라 그 빛은 그럼 나는 당신에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주어야 하느냐고 무작정 따지기 시작했다
나는 바람을 쐬러 모두에게 나아가기 시작했는데, 푸르른 하늘이 나를 반기는 척 하더니, 이내 숲의 저편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어느 순간 내가 갈 수 있는 모든 곳에 머물렀고 내가 다가갈 수 없는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더니 이야기는 저 바다 너머 어딘가로 떠나겠다고 했다
자꾸만 허둥대기만 하는 어떤 날에 슬픔이 슬픔이 아니게 된 어느 날에 사랑을 하기만 하고 싶던 그 날에 나는 삶이라는 아주 흔한 것들을 마주하게 되었고 더 이상 아무도 내게 이야기를 붙이지 않게 될 그 날이 올 지도 모른다고 바다에게 투정했더니 바다는 그럼 나는 너의 무엇을 보아야 하느냐고 내게 묻고 있었다
아주 오랜 후 어느 날 나는 바다 위에서 햇살을 받으며 바람을 맞고 있었는데 그것은 꿈인 듯 지금인 듯 나중인 듯 했다 그리고 내게 닥쳐온 그 지금은 어느 덧 내가 지금까지 이야기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나는 달라진 나중을 이야기하려 했는데 지금은 내게 꿈이냐고 꿈인 거냐고 나는 맞을 거라고 맞을 거라고
강물이 있었다
슬픔에 빠진 어떤 새들,
때로는 강바닥에 처박힌 채
그들의 강물을 부어라 마셔라
먹이를 쪼고 있었다,
자칭 고니라 하는 새는
파란 하늘을 가끔 독학하며
그 섬에게
눈물을 보인다고도
때로는 내리쬐는 햇살 같은 것이
섬의 등을 토닥인다고도
강물을 퍼뜩퍼뜩
새들의 날개 달린 질주가
시작된 그곳엔
돌이 있었다 구름이 있었다
저기 날라간 퍼덕임이 있었다
그대 앞의 소멸
어느 누구가 되든, 그대 앞에 무언가 있다면 나는 그대에게 묻겠소. 이 사람이 맞나요? 이 물건이 맞나요? 당신은 무언가를 대답하겠지. 그렇다면, 당신은 이렇게 대답하겠지, 라고 나는 추측하겠소.
어느 날 내 앞에 그가 나타나 저 말을 하던 어느 순간, 나는 그에게 이 단어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그런가? 그럴까? 그렇다면? 그래서? 그러면? 그런 건가? 그리고 그에게 이 단어들의 속뜻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그 말이 정말이오? 그렇다면, 나는, 나는.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나는 정말 모르고 묻는 것인데, 당신은 왜 그렇게 우물쭈물 하고 있나요? 그가 계속 우물거렸다.
그는 별걸 다 기억한다면서, 계속 우물거렸고 나는 내가 뭘 기억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며, 그에게 별 투정을 다 부리고 있었다.
그대 앞에 무언가가 있다면, 나는 그대에게 묻겠소. 이 사람이 정말 맞나요? 이 물건이 정말 맞나요? 당신은 무언가를 추측하겠지. 그렇다면, 당신은 이렇게 추측하겠지, 라고 나는 대답하겠소.
목욕탕-개화(開花)
1
거품 부풀린 탕 속의 물뿌리, 깊게 흘러 넘쳐, 가장자리 섬세한 물결을 이룬다. 배관(配管)의 낡은 통로로 오래 묵은 때들이 배설(排泄)된다. 탕 안 가득 자연 향내 하수구로 흐른다. 동트는 날마다 게워지는 향내 뒤 아픔 서성이는 물살이 소리 없는 폭력을 행사한다. 탕 안 가득 움츠린 사람들 종일 지쳐 때묻은 마음의 문을 열고 자랑스럽게,
아들의 때를 밀어주는 아버지, 거품 부풀려 한 올 두 올 얽어가는 때타월의 심심한 액체, 요란한 방울 소리로 흘러내린다. 세월 따라 흐르는 어르신들의 걸죽한 입담, 탕 안 가득 메우고 절제된 수증기 절제된 온도 절제된 사랑. 까르륵 소리와 함께 흘러 비워져가는 마음. 창문으로 들어찬 어둠이 내내 흐렸던 하루를 잠재운다.
2
소리 없이 아침이 들어찬다. 밤새 헤어진 꼭지 틀어 새해는 콸콸콸 넘쳐 흐른다. 텅텅 빈 탕 안 가득, 한 주름의 물결이 맑은 마음 주르륵 배수구로 흐른다. 한 줄기 밝은 물줄기 맑게 비추어 아름다운 탕 안,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은 조용하다. 밤새 움츠렸던 사람들 비로소 기지개를 켜면, 희망 가득 안은 인사 나누는 얼굴에 미소 가득하다, 거품
사라진 탕 속의 물뿌리 흘러흘러 야위었던 시간이 채워져 간다. 흐르는 물결이 다시 일어서고 껄껄껄 걸죽한 웃음소리 절제되어 탕 안 가득 번진다. 세월이 매만진 자리, 새로 쌓인 때들이 물뿌리에 실려나간다.
3
탕 안의 비좁은 창가 겨우 비집고 힘차게 뻗은 하얀 빛줄기, 비로소 햇살을 인식할 때쯤 떠오른 아아 한 줄기 저 강한 마음.
물살에 부풀은 새해가 힘찬 포효로 일어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