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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말없이 짐을 싸서 떠나는 추남을 말없이 따라가던 강운은 궁금
함을 참지 못하고 물어보았다.
"형아, 근데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
"힘을 키울 있는 곳으로.. 어딘지는 나도 몰라. 하지만 어디든지 갈 거야.
힘을 키울 수만 있다면.. 어디든지. "
강운은 참으로 대책없기는 자신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하면서
추남의 뒤를 조용히 따라갔다.
강운은 사부와 헤어진 후 지금까지도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
고 무작정 달려오기만 했었는데 뒤늦게 추남에게서 이곳이 장백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냥 단순히 추남이 장백산이라고 하니까 자신이 바람과 같은 속도로 이
틀동안이나 잠도 안자고 뛰어온 건 생각하지도 않고 사부와 자신이 살던
곳도 장백산의 어느 구석탱이일 꺼라고 대충 짐작해 버린 강운은 추남과
함께 미련없이 장백산 산자락에 위치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살았었던 마을을 떠났다.
며칠 동안 강운과 함께 걸어오면서 추남은 강운의 그 느긋함에 혀를 내둘
러야 했다. 처음에는 장백산을 내려오다가 눈빛이 형형이 빛나는
거호를 만났는데 추남은 자신이 사냥꾼이었다는 것조차 있고 오줌이
찔끔 나올 정도로 몸을 떨었고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었는데 옆에 있는 강운이라는 놈은 어떻게 된게 호랑이가 앞에 있는
데도 불구하고 전혀 떤다거나 긴장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를 만났듯한 표정으로 다정다감하게
호랑이를 쳐다보면서 도망가기는 커녕 호랑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강운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호랑이는 조금씩 뒷걸음질 치더니마는 아까
보다도 더 맹렬하게 강운과 추남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호랑이가 맹렬하게 자신들을 쏘아보자 추남은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오랫동안 사냥을 해오면서 그는 어느 정도
동물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호랑이의 표정으로 보건데
이건 틀림없이 궁지에 몰렸을 때 마지막 발악을 하기전의 모습과 매우
흡사했다.
'이런.. 낭패가 있나.. 하필이면 이런 곳에서 호랑이를 만날 게 뭐람..
흑흑.. 어머님. 죄송합니다. 복수도 못하고 이렇듯 어머님 뒤를 따르는
아들을 용서해 주세요.. 근데 어째서 저 호랑이가 궁지에 몰렸다는
느낌을 받은 거지? 나와 운이가 호랑이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닐 텐데..
어째서지? '
강운은 앞에 있는 호랑이를 보자 집에 두고 온 백호가 생각나서 그냥 머리
나 쓰다듬어 주려고 가까이 다가간 거였는데 호랑이가 갑자기 허연
이빨을 내밀며 으르렁 거리자 몇대 후려 갈겨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호랑이와의 간격이 1장 정도까지 가까워지자 강운은 손을 번쩍 들어 호
랑이를 후려 칠 자세를 취했다.
추남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운과 자신을 보면서 으르렁 거리며 위협을 하
던 호랑이가 강운이 손을 번쩍 들자마자 갑자기 꼬리를 내리며 몸을 움추
리는 모습을 보며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놈의 호랑이가 미쳤나 왜 저러지? 꼭 주인한테 맞을까봐 겁먹은 모습
의 강아지 같구나.. 그건 그렇고 운이 쟤는 어쩔려고 저러는 건지..'
아직도 긴장되고 떨리긴 마찬가지였지만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추남은
사냥할 때 주로 사용하던 활을 들고 언제라도 화살을 날릴 수 있게
준비해두었다.
호랑이가 꼬리를 내리며 몸을 움츠리자 강운은 생각을 바꿔서 손을 내린
뒤에 조용히 말했다.
"호랑아.. 너 운 좋은 줄 알어. 오늘은 특별히 봐줄 테니까 괜히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시비걸지 말아라.. 알았지? 그럼 이만 돌아가봐도 좋아. "
말을 마친 강운은 몸을 홱 돌려서 추남에게 걸어왔고 호랑이도 바람같이
숲속으로 도망가 버렸다.
추남은 도무지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호랑이가 꼬리를 내밀며 도망가는 모습을 멍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가 그때마침 자신의 옆으로 돌아온 강운을 보고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의문을 표시했다.
"운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응? "
"뭐가? "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되물어 오는 강운을 보면서 추남은 머
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 강운과
만났을 때도 그 차가운 물속에서 빠져나온 아이치고는 너무나 멀쩡했지만
그냥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줄곧 같이 오면서
느꼈지만 강운이라는 아이는 보면 볼수록 이해하기가 힘든 아이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 강운에게 자세히 물어볼까 생각해봤지만 일단 지금은
안전한 곳으로 피하는게 우선이었다.
"음.. 운아 이따 다시 말하기로 하고 지금은 어서 빨리 산을 내려가는 게
좋겠구나.. "
"응. 그래 빨리 내려가자. 운이 배고파. "
"와~ 여기 사람 되게 많이 산다. 그치 형?"
"어.. 그래. "
길림성내에 들어온 강운은 연신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소리를 질러대
고 있었다.
추남이 보기에는 별로 특이할 만하다 할 것도 없었지만 강운은 사실상
태어나 처음으로 이렇 듯 사람이 많이 사는 곳에 와봤기 때문에 주변의
모든 것이 처음 보는 새롭고 신기한 것들이었다.
안 그래도 추남은 촌티가 흘러나오는 옷차림에 며칠씩 씻지도 못하고
밖에서 노숙을 하면서 걸어온 탓에 지나가던 거지들이 형님 할 정도로
행색이 말이 아니었는데 옆에 걸어가는 강운이 계속 주위를 두리번
거리면서 감탄사를 내뱉어 내고 있으니 그 둘은 영락없이 이제 갓
깡촌에서 살다가 이런 도시는 처음으로 와보는 촌놈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똑같이 노숙을 하면서 지냈는데도 불구하고 추남에 비해 강운은
옷이 전혀 더러워 지거나 하지 않았다. 추남이 처음 강운을 보았을 때나
지금이나 전혀 변화가 없어 보였다.
추남은 강운의 행색이 멀쩡한게 신기했지만 별로 티내지는 않았다.
이 강운이라는 아이한테는 보통 사람들하고는 좀 다른 뭔가가 있는 것 같
았기 때문이다.
항상 상식을 뛰어넘는 엉뚱한 행동을 일삼고 세상사는 전혀 모르는 것
같으면서도 어떨 때 보면 자신보다도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이상한
소년이 강운이었다.
"형아 저기 객점 있다. 나 배고프니까 빨랑 가서 밥 먹자. "
강운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그리 크지도 않고 초라하지도 않은
자그마한 객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음.. 좋아. 오늘은 저곳에서 머물고 가도록 하자. "
말을 마친 추남은 곧장 객점을 향해서 걸어갔고 강운도 그 뒤를 바짝 쫓
아갔다.
"음.. 좋아. 오늘은 저곳에서 머물고 가도록 하자. "
말을 마친 추남은 곧장 객점을 향해서 걸어갔고 강운도 그 뒤를 바짝 쫓
아갔다.
객점 안으로 들어선 강운에게 점소이가 다가왔다.
"어서 오십쇼. 손님 저 쪽으로 앉으시죠. "
점소이가 가르키는 방향은 식당 안에서도 가장 구석진 곳이었는데 강운의
모습이야 웬만큼 볼만했지만 추남의 모습이 가관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은근히 무시하는 태도가 깔려있는 행동이었다.
점소이가 무시하든 말든 강운과 추남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신
경 쓰지 않은게 아니라 점소이가 은근히 자신들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
조차 모르고 있었다. 자리에 앉은 그들에게 점소이가 다시 다가왔다.
"손님 뭘로 드리겠습니까? "
"소면 두 그릇하고 만두 한 접시만 주십시오. "
추남이 점소이에게 음식을 주문했지만 점소이는 추남의 말을 듣고도 강
운의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아저씨 왜 그러고 있어? 형아가 주문했잖아.. 나 배고프니까 빨랑 가져
와. 아! 목마르니까 물 한컵 좀 떠오고. 자 빨리빨리 움직이라고! "
"손님.. 소면 두 그릇하고 만두 한 접시를 가져올까요? "
"어? 아직 안 갔어? 빨리 빨리 움직이라니까. "
강운은 말을 마치고 객점 안을 두리번거리며 신기해 했다. 처음으로
객점이라는 곳에 와 본 탓에 마냥 신나있는 강운과는 반대로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것도 자신보다 한참 어린 소년에게 반말을 들은 점소이의 얼
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추남은 점소이가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가만히 있자 기분이 나빴지만
강운이 통쾌하게 한방 먹여 줘서 기분이 좀 풀렸다.
"형아 근데 이제 어디로 갈 거야? "
"음.. 글쎄. 일단은 사천성 쪽으로 가보려고 하는데.. "
"음.. 그래? 거기는 뭐하러? "
"특별한 이유가 있는건 아니고.. 그 지역에 무공을 가르쳐주는 곳이 많다
고 들었거든.. "
"무공을 배워보려고? "
"어.."
강운과 추남 사이에 잠시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강운으로서는 추남이 무
공을 배우겠다는 하는 말이 좀 의외였다. 말리고 싶었지만 벌써 추남은
단단히 결심을 한 모양이었다.
추남이 한 번 결정을 하면 말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강운은
추남을 말리는 대신에 사부가 준 단환 하나를 건네주었다.
"형아.. 이거 먹어. 우리 할아버지가 산에서 몸에 좋다는 약초만 모아서
만든 거니까 이거 먹으면 무공 배우는데 도움이 될 거야. "
강운이 건네준 단환을 찬찬히 살펴보던 추남은 이런 것이 과연 도움이 될
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별로 손해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바로 입 속으로
집어넣었다.
추남은 단환이 입에 넣기가 무섭게 스르륵 녹아 없어지자 약간 놀랐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건 결코 평범한 물건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힘이 세어진다던가. 단전이라는 곳에 어떤 기운이 생겨나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자신의 몸을 찬찬이 살펴봤지만 먹기 전하고 먹은
후하고 전혀 변화가 없어보였다.
사실, 강운이 준 단환을 먹은 추남의 몸에는 분명 몸의 변화가 오고 있었
지만 무공을 모르는 추남은 그런 것을 알 수 없었다.
'그럼 그렇지.. 운이 성의를 봐서 먹긴 했지만 괜한 기대를 한 내가 바보
스럽구나.. 하지만 왠지 모르게 몸이 가뿐하고 개운해지는 느낌이 드는데
약효가 아주 없는 건 아닌 것 같군. '
추남이 단환을 삼키고 자신의 몸을 살펴볼 동안 어느 새 주문했던 음식들
이 나와 있었다.
음식이 나오자 마자 강운은 재빨리 팔을 걷어부치더니 소면을 물 마시듯
이 먹어버렸다. 만두 역시 눈 한번 깜빡할 사이에 혼자 다 먹어버린 강운
은 아직도 음식을 먹지 않고 있는 추남에게 시선을 돌려 입맛을 다셨다.
추남은 잠시 딴 생각을 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새 강운이 소면
한 그릇과 만두 한 접시를 혼자 다 먹고서도 모자란다는 듯이 자신이
시킨 소면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운아 이거 너 먹어라. 나는 좀 전에 단환을 먹어서 그런지 배가 전혀 고
프지 않구나. "
"하하.. 그럴 줄 알았어. 그거 먹으면 1주일 동안은 밥 안 먹어도 끄떡없다
고 할아버지가 그랬거든. 그럼 이건 내가 먹을 게.. "
"후루룩~ 후루룩~ 맛있다. 쩝쩝.. "
"야.. 좀 천천히 먹어라. 누가 뺐어먹는 것도 아니고..
에.? 벌써 다 먹었네."
추남은 강운의 엄청난 식성에 혀를 내두르며 계산대로 가서 음식 값을 지
불하고 방 하나를 잡았다.
"야! 칠성아 손님들 방 좀 안내해 드려라. "
객점 주인이 돈을 선불로 먼저 받은 다음에 칠성이라는 사람을 불렀다.
점소이들이 모여 있던 방에서 투덜거리면서 나오는 사람은 처음에 강운과
추남을 안내했던 점소이였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