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診有大方
([素問] 方盛衰論. 連前篇: 앞 篇에 連하느니라.)
是以診有大方 坐起有常(大方者 醫家之大法也 坐起有常 則擧動不苟而先正其身 身正於外 心必隨之 故診之大方必先乎此)
出入有行 以轉神明(行 德行也 醫以活人爲心 其於出入之時 念念皆眞 無一不敬 則德能動天 誠能格心 故可以轉運周旋 而無往弗神矣)
必淸必淨 上觀下觀(必淸必淨 則心專志一而神明見 然後上觀之以察其神色聲音 下觀之以察其形體逆順)
司八正邪 別五中部(司 候也 別 審也 候八節八風之正邪以察其表 審五藏五行之部位以察其裏)
按脈動靜 循尺滑澁寒溫之意(按脈動靜 可別陰陽 滑澁寒溫 可知虛實 凡脈滑則尺之皮膚亦滑 脈澁則尺之皮膚亦澁 脈寒則尺之皮膚亦寒 脈溫則尺之皮膚亦溫 故循尺卽可以知之 循 揣摩也)
視其大小 合之病能(大小 二便也 二便爲約束之門戶 門戶不要則倉廩不藏 得守者生 失守者死 故視其大小以合病能 能 情狀之謂)
逆從以得 復知病名(反者爲逆 順者爲從 必得逆從 必知病名 庶有定見而無差謬)
診可十全 不失人情(診如上法 庶可十全 其於人情 尤不可失也 愚按 不失人情 爲醫家最一難事 而人情之說有三 一曰病人之情 二曰傍人之情 三曰同道人之情 所謂病人之情者 有素稟之情 如五藏各有所偏 七情各有所勝 陽藏者偏宜於凉 陰藏者偏宜於熱 耐毒者緩之無功 不耐毒者峻之爲害 此藏氣之有不同也 有好惡之情者 不惟飮食有憎愛 抑且擧動皆關心 性好吉者危言見非 意多憂者慰安云僞 未信者忠告難行 善疑者深言則忌 此情性之有不同也 有富貴之情者 富多任性 貴多自尊 任性者自是其是 眞是者反成非是 自尊者遇士或慢 自重者安肯自輕 此交際之有不同也 有貧賤之情者 貧者衣食不能周 况乎藥餌 賤者焦勞不能釋 懷抱可知 此調攝之有不同也 又若有良言甫信 謬說更新 多岐亡羊 終成畵餠 此中無主而易亂者之爲害也 有最畏出奇 惟求穩當 車薪杯水 寧甘敗亡 此內多懼而過愼者之爲害也 有以富貴而貧賤 或深情而掛牽 戚戚於心 心病焉能心藥 此得失之情爲害也 有以急性而遭遲病 以更醫而致雜投 皇皇求速 速變所以速亡 此緩急之情爲害也 有偏執者曰吾鄕不宜補 則虛者受其禍 曰吾鄕不宜寫 則實者被其傷 夫十室且有忠信 一鄕焉得皆符 此習俗之情爲害也 有蔘朮入脣 懼補心先否塞 硝黃沾口 畏攻神卽飄揚 夫杯影亦能爲祟 多疑豈法之良 此成心之情爲害也 有諱疾而不肯言者 終當自悞 有隱情而不敢露者 安得其詳 然尙有故隱病情 試醫以脈者 使其言而偶中 則信爲明良 言有弗合 則目爲庸劣 抑孰知脈之常體 僅二十四 病之變象 何啻百千 是以一脈所主非一病 一病所見非一脈 脈病相應者 如某病得某脈則吉 脈病相逆者 某脈値某病則凶 然則理之吉凶 雖融會在心 而病之變態 又安能以脈盡言哉 故知一知二知三 神聖諄諄於參伍 曰工曰神曰明 精詳豈獨於指端 彼俗人之淺見 固無足怪 而士夫之明慧 亦每有蹈此弊者 故忌望聞者 診無聲色之可辨 惡詳問者 醫避多言之自慙 是於望聞問切 已舍三而取一 且多有幷一未明 而欲得夫病情者 吾知其必不能也 所以志意未通 醫不免爲病困 而朦朧猜摸 病不多爲醫困乎 凡此皆病人之情 不可不察也 所謂傍人之情者 如浮言爲利害所關 而人多不知檢 故或爲自負之狂言則醫中有神理 豈其能測 或執有據之鑿論 而病情多亥豕 最所難知 或操是非之柄 則同於我者是之 異於我者非之 而眞是眞非 不是眞人不識 或執見在之見 則頭疼者云救頭 脚疼者云救脚 而本標綱目反爲迂遠庸談 或議論於貴賤之間 而尊貴執言 孰堪違抗 故明哲保身之士 寧爲好好先生 或辯析於親疎之際 而親者主持 牢不可拔 雖眞才實學之師 亦當唯唯而退 又若薦醫爲死生之攸係 而人多不知愼 有或見輕淺之偶中而爲之薦者 有意氣之私厚而爲之薦者 有信其便便之談而爲之薦者 有見其外飾之貌而爲之薦者 皆非知之眞者也 又或有貪得之薦者 陰利其酬 關情而薦者 別圖冀望 甚有斗筲之輩者 妄自驕矜 好人趨奉 薰蕕不辨 擅肆品評 譽之則盜跖可爲堯舜 毁之則鸞鳳可爲鴟鴞 洗垢索瘢 無所不至 而懷眞抱德之士 必其不侔 若此流者 雖其發言容易 欣戚無關 其於淆亂人情 莫此爲甚 多致明醫有掣肘之去 病家起刻骨之疑 此所以千古是非之不明 總爲庸人擾之耳 故竭力爲人任事者 豈不岌岌其危哉 凡此皆傍人之情 不可不察也 所謂同道人之情者 尤爲閃灼 更多隱微 如管竅蠡測 醯雞笑天者 固不足道 而見偏性拗 必不可移者 又安足論 有專恃口給者 牽合支吾 無稽信口 或爲套語以誑人 或爲甘言以悅人 或爲强辯以斯人 或爲危詞以嚇人 儼然格物君子 此便佞之流也 有專務人事者 典籍經書 不知何物 道聽途說 拾人唾餘 然而終日營營 綽風求售 不邀自赴 儇媚取容 偏投好者之心 此阿諂之流也 有專務奇異者 腹無藏墨 眼不識丁 乃詭言神授 僞托秘傳 或假脈以言禍福 或弄巧以亂經常 最覺新奇 動人甚易 此欺詐之流也 有務飾外觀者 誇張侈口 羊質虎皮 不望色 不聞聲 不詳問 一診而藥 若謂人淺我深 人愚我明 此麤疎孟浪之流也 有專務排擠者 陽若同心 陰爲浸潤 夫是曰是 非曰非 猶避隱惡之嫌 第以死生之際 有不得不辨者 固未失爲眞誠之君子 若以非爲是 以是爲非 顚倒陰陽 掀翻禍福 不知而然 庸庸不免 知而故言 此其良心已喪 讒妬之小人也 有貪得無知 藐人性命者 如事已疑難 死生反掌 斯時也 雖在神良 未必其活 故一藥不敢苟 一着不敢亂 而僅僅冀於挽回 忽遭若輩 求速貪功 謬妄一投 中流失楫 以治必不可救 因而嫁謗自文 極口反噬 雖朱紫或被混淆 而蒼赤何辜受害 此貪倖無知之流也 有道不同 不相爲謀者 意見各持 異同不決 夫輕者不妨少謬 重者難以略差 故凡非常之病 非非常之醫不能察 用非常之治 又豈常人之所知 故獨聞者不侔於衆 獨見者不合於人 大都行高者謗多 曲高者和寡 所以一齊之傳 何當衆楚之咻 直至於敗 而後羣然退散 付之一人 則事已無及矣 此庸庸不揣之流也 又有久習成風 苟且應命者 病不關心 些須惟利 蓋病家旣不識醫 則倏趙倏錢 醫家莫肯任怨 則惟苓惟梗 或延醫務多 則互爲觀望 或利害攸係 則彼此避嫌 故爬之不癢 撾之不痛 醫稱穩當 誠然得矣 其於坐失機宜 奚堪耽悟乎 此無他 亦惟知醫者不眞 而任醫者不專耳 詩云 發言盈庭 誰執其咎 築室於道 不潰於成 此病家醫家近日之通弊也 凡若此者 孰非人情 而人情之詳 尙多難盡 故孔子曰 惡紫之奪朱也 惡鄭聲之亂雅樂也 惡利口之覆邦家者 然則人情之可畏 匪今若是 振古如茲矣 故聖人以不失人情爲戒 而不失二字最難措力 必期不失 未免遷就 但遷就則碍於病情 不遷就則碍於人情 有必不可遷就之病情 而復有不得不遷就之人情 其將奈之何哉 甚矣人情之難言也 故余發此 以爲當局者詳察之備 設彼三人者 倘亦有因余言而各爲儆省 非惟人情不難於不失 而相與共保天年 同登壽域之地 端從此始 有明者鑒之)
故診之或視息視意 故不失條理(視息者 察呼吸以觀其氣 視意者 察形色以觀其情 凡此諸法 皆診有大方 診可十全之道 知之者故能不失條理 條者猶幹之有枝 理者猶物之有脈 卽脈絡綱紀之謂)
道甚明察 故能長久 不知此道 失經絶理 亡言妄期 此謂失道(不知此道 則亡言妄期 未有不殆者矣)
따라서 診에는 大方이 있느니라. 坐起에 常이 있고(大方이란 醫家의 大法이니라. 坐起에 常이 있으면 擧動이 구차하지 않고 먼저 그 身을 正하게 하느니라. 身이 겉으로 正하면 心은 반드시 그를 따르니 故로 診하는 大方은 반드시 이를 먼저 하여야 하느니라.)
出入에 行이 있어서 神明을 轉하며(行은 德行이니라. 醫는 活人의 心을 갖고 出入할 時에 念念이 모두 眞하여야 하고 一이라도 敬하지 않으면 안 되느니라. 德은 능히 天을 動하고 誠은 능히 心을 格하니 故로 轉運(:실어서 보내다)을 周旋(:두루 보살피다)하므로 무엇이든 神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반드시 淸하고 반드시 淨하고는 上觀 下觀하여야 하느니라.(반드시 淸하고 반드시 淨한다는 것은 心이 專으로 一에 志하여 神明을 나타내니, 그 연후에 上觀하여 그 神色 聲音을 살피고 下觀하여 그 形體 逆順을 살펴야 하느니라.)
八의 正邪를 司하고 五中의 部를 別하며(司는 候이고 別은 審이니라. 八節八風의 正邪를 候하여 그 表를 살피고, 五藏 五行의 部位를 審하여 그 裏를 살펴야 하느니라.)
脈의 動靜을 按하고 尺의 滑澁 寒溫의 意를 循하고(脈의 動靜을 按하여 陰陽을 구별하고 滑澁 寒溫으로 虛實을 알아야 하느니라. 脈이 滑하면 尺의 皮膚도 滑하고 脈이 澁하면 尺의 皮膚도 澁하느니라. 脈이 寒하면 尺의 皮膚도 寒하고 脈이 溫하면 尺의 皮膚도 溫하느니라. 故로 尺을 循하면 곧 알 수 있느니라. 循은 揣摩(:문질러 탐색하다.)이니라.)
그 大小(便)를 視하여 病能에 合하고(大小는 二便이니라. 二便은 約束하는 門戶이니라. 門戶가 不要하면 倉廩이 不藏하니 守를 얻으면 生하고 守를 잃으면 死하느니라. 故로 그 大小를 視하여 病能을 合하느니라. 能은 情狀을 말하느니라.)
逆從을 얻어 다시 病名을 알면(反이란 逆이니라. 順은 從이니라. 반드시 逆從을 얻어 반드시 病名을 알아야 定見이 있고 差謬가 없느니라.)
診에 十全할 수 있으니, 人情을 不失하여야 하느니라.(위의 法과 같이 診하면 거의 十全할 수 있느니라. 人情에 있어서는 특히 失하면 안 되느니라.
내가 생각하건대 人情의 不失은 醫家의 最一로 어려운 事이니라. 그런데 人情의 說에는 三이 있느니라. 一은 病人의 情이고 二는 傍人의 情이며 三은 同道人의 情이니라.
소위 病人의 情이란 먼저 素稟의 情이 있느니라. 예로 五藏은 各 치우친 바가 있고 七情은 各 勝하는 바가 있느니라. 陽藏인 자는 凉이 치우쳐 宜하고 陰藏인 자는 熱이 치우쳐 宜하며 耐毒하는 자는 緩하게 하면 功이 없고 耐毒하지 못하는 자는 峻하게 하면 害하니, 이는 藏氣의 不同이 있기 때문이니라. 好惡의 情이 있으니, 飮食에 憎愛가 있을 뿐 아니라 또한 擧動에도 모두 心이 關하느니라. 性이 好吉한 자는 危를 말하여도 아니라고 보고, 意에 多憂하는 자는 慰安을 말하여도 거짓이라고 말하며, 不信하는 자는 忠告하여도 행하기가 어렵고, 善疑하는 자는 深言을 忌하니, 이는 情性의 不同함이 있음이니라. 富貴의 情이 있으니, 富는 대부분 任性이 있고 貴는 대부분 自尊하느니라. 任性이란 자기 스스로 옳은 것이 옳은 것이고 眞으로 옳은 것은 오히려 틀린 것이 되느니라. 自尊이란 士를 만나도 或 慢(:오만)하고 自重하는 자이니 어찌 自輕을 수긍하겠는가? 이는 交際의 不同이 있음이니라. 貧賤의 情이 있으니, 貧한 자는 衣食도 周하지 못하니 하물며 藥餌랴! 賤한 자는 焦勞(조바심)를 풀지 못하니 懷抱함을 알 수 있느니라. 이는 調攝의 不同이 있음이니라.
또 良言을 겨우 信하다가 謬說에 다시 新하니 多岐에서 羊을 亡하고 終으로는 그림의 떡(:畵餠)이 되느니라. 이는 中에 主가 없어 쉽게 亂하는 자의 害이니라. 특이한 것(:出奇)을 가장 畏하여 오직 穩當만을 구하여, 車의 薪에 杯의 水로 하니, 어찌 敗亡을 감내하겠는가? 이는 內에 懼가 많고 過하게 愼하는 자의 害이니라. 富貴하다가 貧賤하여 或 深情에 끌려서(:掛牽) 心이 戚戚하니 心病에 어찌 心藥으로 能하겠는가? 이는 得失의 情으로 害하는 것이니라. 急性에 遲病을 만나면 遭하면 更醫하고 雜投하며, 皇皇(당황)하게 신속함을 구하여 速變하고 速亡하니 이는 緩急의 情으로 害하는 것이니라. 치우침을 고집하는 자가 '나의 鄕에서는 補가 不宜하다.' 하니 虛한 자는 그 禍를 받고 '나의 鄕에서는 寫가 不宜하다.' 하니 實한 자는 그 傷을 입느니라. 十室에는 또 忠信이 있거늘 一鄕이 어찌 모두 符하겠는가? 이는 習俗의 情으로 害하는 것이니라. 蔘 朮이 脣에 들어가면 補心하기에 앞서 否塞을 懼하고 硝 黃이 口에 沾하면 神을 攻하여 곧 飄揚할까 畏하느니라. 杯의 影도 능히 祟가 되니 疑가 많아 어찌 良한 法이 되겠는가? 이는 成心의 情으로 害하는 것이니라.
疾을 諱하여 말하니, 부정(:不肯)하는 자는 끝내 自悞(:스스로 기만하다)를 당하고, 隱情이 있어 감히 露하지 않는 자가 어찌 그 詳을 얻겠는가? 그렇지만 여전히 有故하고 病情을 隱하며 試醫를 脈으로 試하니, 그 言이 偶中하면 信하여 明良하지만 言이 合하지 않으면 庸劣하다고 지목하느니라.
脈의 常體는 겨우 二十四이지만 病의 變象은 百千만 아님을 누가 알겠는가? 따라서 一脈이 主하는 것이 一病이 아니며 一病에 見하는 것이 一脈이 아니니라. 脈病이 相應하면 某病에 某脈을 얻으면 吉하고 脈病이 相逆하면 某脈에 某病을 마주치면 凶하느니라. 그러므로 理의 吉凶은 비록 그 融會가 心에 있지만, 病의 變態는 또한 어찌 脈으로 다 말할 수 있겠는가? 故로 知一 知二 知三하여 神聖은 이를 諄諄하게(:정성껏) 參伍하니, 工이라 하고 神이라 하고 明이라 하느니라. 精과 詳이 어찌 유독 指端에만 있겠는가? 俗人의 淺見은 사실 족히 怪할 것도 없지만 士夫의 明慧이라도 매번 이러한 弊를 밟게 되느니라. 故로 望聞을 忌하면 診하여도 聲色을 辨할 수 없고 詳한 問을 싫어하니 醫하여도 多言하는 부끄러움을 避하려 하느니라. 이러하므로 望聞問切에서 이미 三을 舍하고 一을 取하거나 또 대부분 一에도 明하지 못하면서 病情을 얻으려 하면 나는 반드시 안 된다는 것을 아느니라. 따라서 志意가 通하지 못하여 醫가 病을 困하게 하는 것을 免하지 못하고, 朦朧하게 猜摸(:의심을 가지다)하니 病이 대부분 醫를 困하게 하지 않겠는가? 이는 모두 病人의 情이니 살피지 않으면 안 되느니라.
소위 傍人의 情이란 浮言(:뜬 소문)이 利害와 關하지만 人이 대부분 檢(:단속)할 줄 모르니라. 故로 或 自負(:자신만만)하는 狂言을 하지만 醫 중의 神한 理를 어찌 능히 測하겠는가? 或 執하여 據하는 鑿論이 있지만 病情을 대부분 亥豕(:오기)하니 가장 알기 어려우니라. 或 是非하는 柄(:권세)을 잡고서 자기와 같으면 맞다 하고 자기와 다르면 틀렸다 하니 眞是 眞非는 眞人이 아니면 알지 못하느니라. 或 보여주는(:見在) 見에만 고집하여 頭疼하는 자가 말하는 대로 頭를 救하고 脚疼하는 자가 말하는 대로 脚을 救하니, 本標의 綱目은 오히려 요원한 庸談이 되느니라. 或 貴賤의 間에 議論하자면 尊貴한 자의 執하는 말을 누가 물리침(:違抗)을 감당하겠는가? 故로 明哲하고 保身하는 선비는 차라리 好好(: 고분고분) 先生이 되고 마느니라. 或 親疎의 際에 辯析할 때 親한 자가 主持하면 둘러싸여 뺄 수 없으니 비록 眞才 實學의 師이라도 또한 당연히 唯唯(:네 네)하면서 退하느니라. 또 醫를 薦하는 것은 死生가 係한 바이지만, 人이 대부분 愼할 줄 모르니라. 或 見이 輕淺한데도 우연히 中하여 薦하는 경우, 意氣에 私가 厚하여 薦하는 경우, 그 便便한 談을 信하고 薦하는 경우, 그 外飾의 모양을 보고 薦하는 경우가 있으니 모두 眞을 아는 것이 아니니라. 또 貪을 得하려고 薦하는 경우, 陰으로 그 酬에 利하고, 情이 關하여 薦하는 경우, 別의 圖를 冀望하느니라. 甚하면 斗筲之輩(:소인배)는 함부로 스스로 驕矜(:오만)하고 人에게 趨奉(:아첨)하는 것을 좋아하며, 薰蕕(:선악)를 辨하지 않고 제멋대로 品評을 하니, 譽하여 盜跖(:큰 도적)도 堯舜이 될 수 있다 하고 毁하여 鸞鳳도 鴟鴞가 될 수 있다 하느니라. 洗垢索瘢(잘못을 들추어내다.)하려면 至하지 않음이 없으니 懷眞 抱德한 士라도 반드시 侔(:힘쓰다)하지 않게 되느니라. 이와 같은 流는 비록 그 發言이 容易하여 欣戚(:기쁨과 슬픔)과는 無關하고 人情을 淆亂함이 이보다 甚할 수 없으니, 대부분 明醫가 이르러도 肘를 掣하여 去하게 하고 病家는 刻骨의 의심을 起하게 하느니라. 이는 千古의 是非가 不明한 까닭이니 總으로 庸人이 어지럽힌 것일 뿐이니라. 故로 力을 竭하면서 人을 위해 任事하여도 어찌 그 危에 급급하지 않겠는가? 이는 모두 傍人의 情이니 살피지 않으면 안 되느니라.
소위 同道人의 情이란 특히 閃灼(:번쩍이다)하며 더욱 隱微함이 많으니라. 管竅(:소견이 좁다)하거나 蠡測(식견이 얕다)하거나 醯雞(:우물 안 개구리)가 하늘을 보고 웃는 자는 사실 道(말)하기에도 부족하고, 見偏(:견해가 치우치다)하고 性拗(:성품이 비뚤다)하여도 반드시 바뀌지 않는 자와도 또한 어찌 족히 論하겠는가? 專으로 口給(:말솜씨가 좋음)만을 믿는 자는 牽合(:견강부회)으로 支吾(:둘러대다)하고 無稽(:황당무계)하게 信口(:함부로 말하다)하느니라. 혹 套語(:틀에 박힌 말)로 사람을 誑(:속이다)하거나 甘言(:달콤한 말)으로 人을 悅(:즐겁게 하다)하거나, 强辯(:생떼)으로 人을 欺(<-斯)하거나 危詞(:어지러운 말)로 人을 嚇(:노하다)하며, 엄연히 格物(:사물의 이치를 연구)하는 君子처럼 하니 이는 便佞(:공갈)하는 流이니라. 專으로 人事에만 힘쓰는 자는 典籍 經書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道聽途說하면서 人의 唾餘(:쓰레기 말)를 拾(:모으다)하니, 그러고는 종일 營營하게(:골똘히) 綽風(:너그럽게)으로 求售(:팔려고 꾀하다)하니 邀(:부르다)하여도 스스로 赴(:알리다)하고 儇媚(:잔재주를 부리다)하여 取容(:환심을 사다)하며 자기를 좋아하는 자의 心에만 치우쳐 投(:가담하다)하니 이는 阿諂(:아첨)하는 流이니라. 專으로 奇異한 것에만 힘쓰는 자는 腹에는 藏한 墨이 없고 眼에는 識하는 丁이 없으니, 神授하였다고 詭言(:속여 말하다)하고 秘傳을 僞托받았다고 하거나 假로 脈하여 禍福을 말하거나 弄巧(:잔재주)하여 經常을 어렵게 하여 매우 新奇하게 느끼게 하고 人을 매우 쉽게 動하게 하니 이는 欺詐(:사기)치는 流이니라. 外觀을 꾸미는데 힘쓰는 자는 誇張(:과장)하여 侈口(:입을 벌리다)하니 羊質虎皮(:겉과 속이 다름)이니라. 望色하지 않고 聞聲하지 않으며 詳問하지 않고 一診으로만 藥하면서 '다른 사람은 淺하지만 나는 深하다. 다른 사람은 愚하지만 나는 明하다.' 하느니라. 이는 麤疎(:어슬프다)하고 孟浪(:터무니 없다)한 流이니라. 專으로 排擠(:밀어내고 물리침)하는데 힘쓰는 자는 겉으로는 같은 心인 척하고 속으로는 浸潤(:빠져나가다)하느니라. 是하면 是하다고 하고 非하면 非하다고 하면 隱惡(:드러나지 않게 악함)의 嫌(:의심)은 피하느니라. 死生의 際에 辨하지 않을 수 없을 때만이라도 진실로 眞誠(:참되고 정성스럽다)의 君子를 잃지 말지니라. 만약 非를 是라 하고 是를 非라 하면 陰陽이 顚倒되고 禍福이 掀翻(:전복)되느니라. 모르고 그랬다면 庸庸을 免하지 못할 것이고, 알고도 일부로 말했다면 이는 良心을 이미 잃어서 讒妬(:참소와 시기)하는 小人이니라. 貪得(:욕심을 부리다)하고 無知하며 人의 性命에 어두운 자가 있느니라. 事가 이미 어려운 듯하고 死生이 손바닥 뒤집듯하는 이러한 때에는 비록 神이 좋아도 반드시 活할 수 있다 말할 수 없으니, 故로 一藥으로도 감히 함부로 하지도 못하고 一着에도 감히 어지러이 하지 못하니, 근근하게 挽回을 바라는 상황이니라. 갑자기 이러한 무리들을 만나면 求速 貪功하므로 함부로 잘못 投하니, 流의 가운데서 楫(:노)을 잃듯이 治로는 반드시 구할 수 없게 되느니라. 이로 인하여 스스로 꾸며 嫁謗(:떠넘겨 비방하다)하고 極口(:온갖 말)로 反噬(:뒤집어 씌우다)하니, 비록 朱紫(:비슷)는 混淆(:혼란)을 입으나 蒼赤(:다름. 여기서는 백성)은 무슨 허물로 피해를 받아야 하는가? 이는 倖(:요행)을 貪하는 無知한 流이니라. 道가 달라서 서로 도모하지 못하는 자가 있으니 意見을 各 持하지만 異同을 決하지 못하느니라. 輕하면 작은 謬는 不妨하지만 重하면 약간의 差에도 어렵게 되느니라. 故로 非常한 病에는 非常한 醫가 아니면 살필 수 없으니 非常한 治의 用을 또 어찌 常人이 알겠는가? 故로 홀로 들은 것은 衆과 侔(:같다)하지 않고 홀로 見한 것은 人들과 合하지 않느니라. 대체로 行이 高하면 謗(:비방)이 많고 曲이 高하면 和가 寡(:적다)하느니라. 따라서 일제히(:여럿) 傳하는 것이 어찌 衆楚(:여럿이 늘어놓다)의 咻(:떠들다)를 當해내겠는가? 敗에 바로 至한 후에 羣然(:떼를 지어)하게 退散하여 버리고 一人에게 부탁하니 事가 이미 미칠 수 없느니라. 이는 庸庸하여 揣(:헤아리다)하지 못하는 流이니라. 또 久習이 風이 되어 구차하게 命에 應하는 자가 있으니, 病은 關心이 없고 사소하게 오직 그 利만 惟(:도모)하느니라. 病家는 醫를 알지 못하니 갑자기 趙(:달아나다)가 되거나 갑자기 錢(:돈)으로 하려고 하며, 醫家는 任怨(:원망을 받다)을 수긍하지 않으면서 오직 苓으로 하거나 오직 梗으로만 하느니라. 혹 延醫(:의사를 초빙하다)에 많이 힘쓰니, 서로 관망하거나 혹(책임의) 利害가 관계되면 피차가 避嫌(:피하다)하느니라. 故로 爬(:긁다)하여도 癢하지 않고 撾(:치다)하여도 痛하지 않는 정도로만 하면서 醫는 '穩當하다. 誠然(:성심껏)하게 하였다.' 하느니라. 坐하여 機의 宜함을 잃으니, 어찌 悟의 耽을 감당하겠는가? 이는 다름이 아니라 오직 醫를 아는 자가 眞하지 않고 醫를 任한 자는 專하지 않은 것일 뿐이니라. [詩]에 이르기를 "發言이 庭에 가득 차면 누가 그 허물을 執(:책임지다)하겠는가? 길에 집을 건축하니 潰(:무너지다)하여 成할 수 없다." 하였느니라. 이는 病家와 醫家의 近日의 通弊이니라.
이와 같으니 무엇이 人情이 아니겠는가? 人情의 상세함은 많아서 다하기가 어려우니라. 故로 孔子가 이르기를 "紫가 朱를 奪하는 것을 싫어하여야 하고 鄭聲(:정나라 음악)이 雅樂을 어지럽히는 것을 싫어하여야 하며 利口(:말 잘하는 입)가 邦家(:집안)를 뒤집는 것을 싫어하여야 한다."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人情의 畏(:두려움)은 지금도 그럴 뿐만 아니라 예전에도 이와 같았느니라. 故로 聖人은 ‘人情의 不失’을 경계하였으니, 不失의 두 글자에 힘쓰기가 가장 어려우니라.
반드시 不失을 期(:기약)하려면 遷就(:망설이다)하여 免하려 하면 안 되느니라. 다만 遷就하기만 하면 病情에 장애가 되고 遷就하지 않으면 人情에 장애가 되느니라. 반드시 遷就하면 안 되는 病情이 있고 또 遷就하지 않으면 안 되는 人情이 있느니라.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甚하도다! 人情을 말하기 어려움이여! 故로 내가 이를 發하였으니 이러한 局에 해당하는 자를 위해 자세히 살피고 갖추었느니라. 만약 이 三人(:病人 傍人 同道人)이라면 내가 말한 것으로 인하여 各 儆省(:경계하고 반성)할 수 있으니, 人情을 不失하기가 어렵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서로 같이 天年을 보장하여 壽域의 地에 오를 것이니라. 端(:실마리)은 여기서부터 始하니 明한 자는 이를 살펴야 할지니라.)
故로 診할 때 視息 視意하여야 하니 故로 條理를 失하지 않아야 하느니라.(視息이란 呼吸을 살펴서 그 氣를 보는 것이니라. 視意란 形色을 살펴서 그 情을 보는 것이니라. 이러한 諸法은 모두 診에 大方이 있는 것이니, 診에 十全할 수 있는 道이니라. 이를 알면 故로 條理를 잃지 않느니라. 條란 幹에 枝가 있는 것과 같고, 理는 物에 脈이 있는 것과 같으니라. 곧 脈絡과 綱紀를 말하느니라.)
道를 심히 밝히 살펴야 하니, 故로 長久할 수 있느니라. 이 道를 모르면 失經 絶理하여 亡言 妄期하게 되니 이를 失道라 하느니라.(이 道를 모르면 亡言 妄期하니 위태하지 않음이 없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