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 찾는 카페 중 한 곳 '화순하다'
통창 너머로 보이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좋아 자주 가곤 하는 곳이다.
오픈하자 마자 그저 커피 한 잔에 베이글 하나로 입을 달래며 노닥이다 보면 어느새 1시간이 훌쩍 지난다.
12시 30분 무렵이면 점심식사를 끝낸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왁자지껄해지고 그 무렵 우린 엉덩이를 떨치고 일어 선다.
오늘도 역시 주문하려는데 탁자 위에 책이 펼쳐져 있다.
평소에는 눈여겨 보지 않고 지나쳤는데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든다.
'모드 루이스 '
영화 '내 사랑'의 실제 주인공
아하, 그녀다.
넷플릭스를 통해 본 영화.
주위의 냉랭함을 견디며 힘겨운 삶의 무게를 묵묵히 이겨내는 그녀의 삶이 보는 내내 애잔하게 남아 있었던 영화.
이후로도 그녀의 모습은 질기게 들러 붙어 있었다.
잊고 있던 그녀가 불쑥 눈앞에 나타난 거였다.
반가웠다.
영화를 볼 때는 그녀의 받아들여지지 않는 모진 사랑이 먼저 눈에 들어 왔는데 책에서는 그녀의 작품이 다가온다.
이 책은 모드 루이스가 쓴 편지와 인터뷰, 그녀가 그린 노바스코샤의 사계절이 담겨 있다.
캐나다 민속화가 모드 루이스(1903~1970)
왜 민속화가 일까 의아했는데 자신이 태어난 곳을 벗어나 본 적이 없던 그녀는 고향 노바스코샤의 자연과 풍경을 그렸단다.
그녀의 작품이 되는 모티브들은 들판의 꽃과 동물들 마을의 풍경들이었다.
원색의 색감이 톡톡 튀어 오른다. 실제 색을 혼합하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대부분의 화가들이 그러하듯 모드 루이스도 살아 생전 자신의 작품이 명성을 얻지 못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한 물감, 도화지가 없어 그녀가 살고 있는 오두막 곳곳이 도화지가 된다.
벽과 유리창에는 나비 고양이 닭 등 여러 동물들과 수많은 잎 줄기 수선화 튤립같은 작은 꽃들이 피어난다.
오두막의 크기는 겨우 가로 3m 세로 3.7m의 비좁은 공간이었다.
그리고 남편이었던 에버릿 루이스가 가지고 온 나무더미들 속에서 구한 판자에 페인트로 작품을 완성했다.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지니고 있던 그녀는 굽은 손가락으로 느릿느릿 그림을 그려간다.
감자같았다는 손, 잔뜩 굽은 어깨 , 여기 저기 뒤틀린 몸, 불편한 다리, 아주 작은 키
불행의 조건이 즐비했음에도 그림을 그리는 그녀의 입가에는 늘 미소가 머물러 있다.
불편한 몸으로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림에도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말하는 그녀.
그림을 사랑하는 그녀의 마음이 여실히 나타난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즐거움이리라.
집으로 돌아와 한 번 더 영화를 본다.
주인공 샐리 호킨스
실제 장애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실감나게 연기를 한다.
민속화가 모드 루이스도 사랑스럽지만 연기하는 샐리 호킨스도 사랑스럽다.
영화 속 작품들이 눈에 들어 온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모드 루이스에 대해 알아 본다.
다행스럽게 쉰 한 살 때 신문을 통해 알려지고 에버릿이 경비원으로 취직을 한 후에 그녀는 그림에 전념할 수 있었다.
1970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 백악관에서는 그녀의 그림을 두 점 주문하기도 했다.
현재 모드는 캐나다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사람이 되었고, 그에 관한 책, 연극, 영화 등이 제작되었다.
모드의 작품은 대부분 노바스코샤 아트 갤러리, 복원된 옛 집에 전시되어 있다.
카페 화순하다 덕분에 다시 만나게 된 모드 루이스.
여리지만 강인한, 수줍지만 당당한, 멋진 그녀를 또 한 번 만나는 기회를 허락 받은 건 행운이었다.
캐나다로 여행하는 날이 오면 그녀의 갤러리를 방문해 직접 마주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첫댓글 오백원 자판기 커피에 익숙하다가 어느날 느닷없이 오천원 커피값을 지불할 때 얼마나 가슴이 쓰리던지요.
이제는 익숙해 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