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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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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작품 1 | 천년의 미소, 수막새 |
대표 작품 2 | 신라 천년의 자취 소리 |
수상연도 | 2014년 |
수상횟수 | 제5회 |
출생지 | 경기 안양 |
[수상 작품]
천년의 미소, 수막새
조성원
지난 해 근무처를 쫓아 경주에 두 달 간 내려간 적이 있다. 짧다면 짧은 기간인데 허송세월, 나는 겉돌다가 경주를 떠난 셈이다. 기껏 숙소가 있는 성건동 주변을 맴돌았을 뿐이다. 늘 대하는 생맥주, 닭볶음 , 삼겹살, 삼거리 막걸리 그것 말고 달리 간 곳도 먹은 것도 생각 드는 게 없다.
경주를 떠나는 날, 그간 보고 가는 곳곳 하다못해 화장실이나 술병에도 박힌 말 ‘천년의 미소‘란 말이 무척 송구하게 느껴졌다. 솔직히 나는 한때 이 말이 경주의 독특한 술 이름인 줄 알았다. 술병마다 그 말이 찍혀서 더욱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러다 온 동네 간판 구석에 이 말이 낭자하여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 이후는 아 그게 아니라 천년의 고도 전 유산을 대표하는 아름다움을 상징한 말이라 여겼다. 그런데 또 그게 아니었다. 누군가가 수막새를 아느냐고 했다. 나는 그것을 또 오해했다. 이 동네에 사는 새 종류로 파악한 거였다. 이 역시 송구한 말이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수막새와 천년의 미소가 정분을 나눈 말임을 알지 못한다. 이에는 개중 유식하다는 친구조차 이 엄연한 사실을 모르기 때문 심증을 굳히는 표현이다.
수막새는 목조건축에서 지붕의 기왓골 끝에 얹는 연와로 무늬는 앞날의 평안을 소망하는 기원을 담은 연꽃이 대부분이다. 그렇지 않다면 악귀를 물리쳐 달라는 벽사적인 행위로서 무시무시한 형상을 그려 넣는다. 그런데 수막새로서는 특이한 얼굴무늬 수막새가 신라에 있다. 신라인의 재치와 덕으로 느껴지는 신라 천년의 미소가 다름 아닌 그 수막새다.
경주 어느 곳에서나 익히 눈에 띄는 얼굴무늬 수막새에 새겨진 여인의 미소. 얼굴은 손으로 빚었기에 양쪽 눈두덩과 광대뼈가 도톰하면서 비대칭을 이루고 있는 표정이 무척 세련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둥근 테두리 안에 수려한 코와 입 꼬리를 살짝 위로 올린 수더분한 미소다. 실은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찡그린 것 같기도 한 애매한 느낌도 느껴지는데 눈과 눈이 대칭이 아닌 게 삶의 여울을 말하는 것도 같고 큰 여백을 남긴다.
이 얼굴무늬 수막새는 영묘사 터에서 발견되었다. 영묘사는 신라 제27대 임금 선덕여왕 때 635년에 성신(星神)에 제사하기 위해 세워진 절이다. 누구는 그래서인지 그 수막새가 선덕여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럴지 모른다. 우리나라 최초의 왕인 그녀다. 당나라는 그녀를 왕으로 한동안 인정을 안했고 백제 무왕이 대야성을 함락하고 늘 대치를 하던 때의 왕이다.
김춘추는 그 전투에서 딸과 사위를 잃었다. 안에서도 그녀에 대한 반발이 끊이지를 않았다. 속이 편할 리 없는 그녀에게 절실한 것은 나를 따르라는 믿음이고 밝은 미래가 내게 있다는 확신이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느끼고 보면 미소는 또 그렇게 보인다. 선덕여왕의 통일의 꿈, 백성을 아끼고 사랑했던 따뜻한 마음이 겹쳐지는 후덕한 느낌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만 보고 싶지는 않다.
호국의 일념으로 보기엔 너무 수수하고 진솔한 표정인 것이 서민적 느낌이 풋풋하게 묻어나기 때문이다. 푸근하게도 느껴지니 누구는 또 미륵으로 볼지 모르지만 내게는 영락없는 여울진 한 시대를 사는 소박한 여인이다. 소박하다는 것은 웃을 때는 웃고 울 때는 소리 내 우는 주어진 대로 사는 수수한 인간상을 말한다. 이름 모를 와공의 멋진 솜씨, 그의 누이를 그리거나 엄마는 아니었을까. 수막새의 역할이 그러하듯 웃음으로 악귀를 쫓을 것이란 생각을 한 와공이라 한다면 당연 마음속에 그리는 여인이 맞다 여겨진다. 그가 그리워하는 믿음과 염원하는 뜻이 같기 때문이다.
온화하면서도 의연한 수막새 여인의 얼굴은 얼핏 하회 탈이 연상되기도 하지만 부드러운 삶의 진정성이 보다 더 강하게 느껴진다. 남자의 얼굴을 그린 수막새라 할 것이면 어떠했을까. 아마 그가 누구인지에 대한 말만이 무성 했을 것이다. 그려도 묵연한 표정 외에 달리 묘사하기도 어렵다. 히죽히죽하는 표정이라 한다면 도깨비를 연상하기 십상이다. 남자의 형상은 가치가 반감되거나 이내 소멸한다.
여인은 어느 표정이든 향기를 갖는다. 지구상 어디에서든 여인의 자취는 늘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여인은 내적 가치를 갖는 표정일 때가 가장 아름답다 여긴다. 모나리자도 그런 느낌이 드는 그림이다. 뭔가 말 할 듯 8부 능선쯤에 이른 아슬한 표정일 때가 더욱 감칠맛이 나고 아름답다. 모나리자 모습이 만약 활짝 웃는 모습이라면 아마 천박을 느끼고 상상을 다 거두어버렸을 것이다.
전사자가 넘쳐나 웃을 일이 별로 없는 세상, 와공은 불심이 곧 밝음이고 자신의 아내를 닮은 여인이 보살이라 여겼을 테다. 눈을 지그시 감고 행복했던 시간들을 떠올리자면 자연스레 위로 치켜지는 여인의 입술. 와공은 화사한 어느 봄날을 두고두고 마음에 새겨 두고 시련을 감내하였을 테다. 수막새 그 미소는 바로 와공이나 병사들 같이 고향이 그립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희망을 담은 것이다. 누구나 그러하듯 소중한 존재, 구현할 세상은 다름아닌 그들 역시 사랑이고 행복이었다.
비극적인 상황, 위로 받는 마음에는 그야말로 고운 자태의 모습이나 미소가 담긴다. 상상의 기쁨인 것이다. 깨진 수막새, 바로 그 의미의 미소다. 나는 그녀를 보면 왠지 너그러운 관용의 처용이 떠오른다. 용서할 테니 돌아오라는 전단에 부쳐도 그만인 포근함이다. 요염한 여인의 표정이 아닌 게 나는 정녕 고맙다. 또한 반은 깨진 게 다행이라 여겨진다. 활짝 핀 모습에선 또 다른 혹여 되바라진 여인의 유혹으로 변모할까 두려워서다.
반쯤 나무 끝에 가려진 달빛처럼 은은한 향기가 더 은근하며 그윽하다 여겨진다. 열정의 여인이 아닌 서러워도 나는 웃을 테다 하는 감복의 느낌을 담은 모습으로 그녀를, 천년의 미소를 나는 간직하고 싶다. 그녀가 그렇게 긴 시간 웃음을 잃지 않고 사랑을 받는 데는 아마도 모든 실수와 울고 웃는 모든 평이한 존재들의 모습들이 스며 있으면서 영원한 설렘과 마음의 평온을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천년의 미소는 우리의 희망이며 미래의 웃음이다. 나는 신라인의 담대함 그리고 평범함이 그냥 좋다. 누가 말하지 않던가, 평범함이 곧 비범함이라고.
[수상 소감]
학창시절 단답식으로 달달 외우던 역사공부 , 덕분에 머리만 하얗게 세고 다 까먹었다. 내가 흥미를 다시 갖게 된 것은 1996년 소설가 최인호 장편소설 「왕도의 비밀」이 TV다큐멘터리로 다시 태어나 방영되었던 것을 시청하고 부터다. 「왕도의 비밀」은 백제의 고도(古都)였던 이성산성에서 발견된 `#'문양의 조그만 토기를 실마리로 해서 한반도를 비롯해 멀리 만주벌판과 산동성 등 중국대륙에 널려 있는 고구려의 숨결을 되살려놓은 역사소설이다. 추리기법을 살린 이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역사무대를 방문하는 식의 탐방 개념에서 탈피, 수수께끼를 풀듯 우리 문화의 시원으로까지 거론되고 있는 찬란한 고구려 문화의 유적을 추적했다.
틈틈이 시작한 역사공부는 나날이 번창했다. 역사는 스스로 말을 해주지 않는다. 역사는 끊임없이 찾고 묻는 이에게만 대답해 줄 뿐이다. 멀고 먼 고대국가는 흔적조차 희미해 설령 찾고 묻는다하여도 진실은 늘 미궁 속에 빠지기 마련이다. 막막한 노릇이지만 오히려 나는 고대국가의 닿지 않는 숨은 미로가 마음에 든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상상하기 때문이다. 내게 역사는 어느 확고부동한 진실의 마침표가 아니라 추상의 끊임없는 도전 속에 비로소 다가오는 엷은 분홍빛 실루엣이며 지평선 너머로부터 끝없이 불어오는 선연한 시간의 바람이다. 나는 종종 은은한 옛 시대의 향취에 취해 미로 속에 갇히곤 한다.
마침 근무처를 따라 경주에서 근무할 기회가 있었다. 발품 팔기 좋고 쉽게 다가갈 수 있겠다 싶은 신라부터 이야기를 꾸려 보기로 했다. 신라하면 왕릉과 금관이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집중했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이를 창작이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굳이 이러한 글을 써야 하나 하는 의구심이 스스로 자생했다. 겁이 더럭 나는 노릇이기도 했다. 남이 기껏 일궈 논 터전을 가로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어디까지가 내 경계인지를 잘 모르겠지만 좀 더 알기 쉽게 역사에 다가가도록 하는 이른 바 스토리텔링이 내 책무라고 생각한다. 나는 슬기로운 우리의 조상들이 자랑스럽고 고맙기 그지없다. 그들이 남겨놓은 자산들을 이 책이 아니라 해도 한 번 조용히 탐미하듯 훑어 봐라, 엉성한 고대국가가 점차 변모하는 것이 흡사 거미가 거미 망을 얼기설기 갖추는 듯 허술한 구멍에서 시작하여 모든 영역에서 촘촘 빽빽하다. 또한 어디에도 그러한 독창성은 없다.
요즘은 역사 속에서 사는 기분이다. 그 무렵 알게 된 것이 역사는 서로를 엮는 묶음이고 그 묶음은 균형과 견제라는 관점에서의 함수풀이와도 같아 다시 이해되고 분해된다는 것이다.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에 의해 이해되고 고구려는 백제와 신라에 의해 또 다른 주변국에 의해서야 비로소 알게 되고 그 시대 상황도 제대로 파악이 된다. 덕분에 신라에 이어 테마를 잡은 게 고구려다.
고구려 글 탈고는 끝났지만 아내가 책을 낸다면 징글징글해서인지 돈을 안 준다. 마침 들려온 행복한 뉴스다. 글이 어줍은데다가 시대를 쫓다보니 당연 미흡한 문학성인 데 미력한 글을 어여삐 봐주신 심사위원들, 정말 감사하다. 이 상은 당연 ‘고구려 9백년 자취소리’ 라는 글 집을 낼 명분뿐 아니라 만주 땅 저 멀리 대흥안령산맥 넘어 지두우, 몽고에 이르는 고구려 땅을 찾아 볼 당위성까지 제공하였다.
역사는 캐면 캘수록 금이 쏟아진다. 노다지 광산이 가는 곳곳 즐비한 것이다. 그 길잡이를 해준 학자님들, 정말 고맙다. 고대 역사에 대한 여러분의 상상은 무조건 자유다. 거기서부터 추적은 시작되는 것이다. 계획 이전 상상이고 꿈이다. 차도 없던 시절 정말로 인류의 족적은 넓고도 광활하였다. 마치 개미가 부지런히 뭔가를 나르듯 본능과도 같이. 인류는 하얀 비단 길을 따라 때로는 추운 초원의 길을 따라 오래전부터 분주히 오갔다. 나 역시 그 길을 따라 늘 꿈같은 여행을 하고 싶다. 상을 주셔서 거듭 감사드린다.
[작가 프로필]
문단
•1957년 경기 안양 출생
•대학원 졸(기계공학 열유체 전공)
•문학저널 시부문 신인문학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수필 등단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수필집
•2005 「작게 사는 희망이지만」(엠아이지)
•2006 「2천년 로마 이야기」(에세이)
•2007 「송사리 떼의 다른 느낌」(선우미디어)
•2007 「2천년 스페인 이야기」(선우미디어)
•2008 「빈가슴에 머무는 바람1&2」(교음사)
•2009 「오후 다섯 시 반」(해드림)
•2010 「나 어릴적」(선우미디어)
•2013 「아내는 밥이다」(해드림)
•2014 「신라 천년의 자취 소리」(해드림)
수상
•제2회 천상병 문학제 시사문단 작가상 수상
•제2회 문학저널 창작문학상 수상
•제1회 수필문학 소운문학상 수상
•201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창작지원금 수혜
현)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재직 중
이메일: sw20654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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