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20세에 국비로 자격증과정을 밟았다.
면사무소가서 국비로 영남간호학원 간호조무사를 할거라고 신청을 했다.
그리고 밀양까지 가서 허름한 기숙사를 쓰기로 하고 학원을 다녔다.
이론과 4개월실습 방학1주일 또 이론
그렇게 9개월을 다니고 아버지의 병환으로 집에 돌아왔다.
한석봉은 공부를 하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그의 어머니가 밤에 떡을썰테니 아들은 글을 써보라고 했다.
그리고는 아들을 다시 공부하러 보냈다고 하는데 나는 아무도 학원에 다시 돌려보내는 사람이 없었다.
12개월과정을 끝을 못내고 집에 돌아와 나는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다.그렇게 인생이 바뀌게 되었다.2개월있었다.
아버지는 딸을 살리기 위해 가퇴원을 시켜 굿도 했다.
굿하는 사람이 3박4일간 딸을 낫게하겠다며 여기저기 기도터에 데리고 다녔다.
머리를 감자며 자는 나를 깨우더니 욕실로 데리고가 샤워기로 얼굴에 물을 뿌려대기를 한참하고 나는 숨을 못쉬어 죽을뻔했다.지금 살아있는 것만도 기적이다.그렇게 당하고도 살아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겨울이라 1평방을 뜨겁게 한 산속어느 무당집에서 밖에는 도끼로 장작을 패고 나는 무서웠다.
움직이면 해를 가할것같아 꼼짝도 않고 한자세로 있었는데 오른쪽발등과 엉덩이를 뜨거운 방바닥에 화상을 입었다.
절뚝거리며 집에 돌아왔다.
화상을 낫는데만 시간이 꽤 소비됐다.
많이 아팠다.운동화도 못신고 아팠다.
그렇게 나의 자격증과정은 끝이 났다.
이건 요즘 안 건데, 팔자에 무당을 해야한다고 찾아온 사람보고 김금화만신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가서 절이나 교회를 다녀서 기도하고 살아라고.
중학생때 집에 굿을 하기는 했다마는 이렇게 또 무당을 겪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절이나 교회를 다니겠다고 생각했다.
간호조무사로 23살, 25살, 한의원에서 일을 했다. 오래는 안했다.끈기가 없거나 새로운 건의가 들어오면 현재일을 그만두고 새일을 향해서 가는 것같다.문제다.참.이직은 종무원으로 절에 있을때 인터넷에서 주워먹은 단어인데 나를 계속 따라다닌다.버려야할것.
자격증이 있으면 월180만원은 벌 수 있을텐데,정신병원 주치의가 조현병(환청)이 있으면 간호조무사 면허가 취소된다고 못하게 말렸다.
출산을 하고 간호조무사를 배워도 좋았겠다.그전 영남간호학원은 운영을 안하는 것처럼 보였다.그래서 다른간조학원경산간호학원에 가봤으나 가족부양을 하라고 해서 학원을 다니는 것이 거절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