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의 시간
양정규
볕 좋은 오후였다. 해인은 아파트 단지 안 벤치에 앉아 초점 없는 눈으로 먼 데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다 죽어버렸나 봐. 이젠 울지도 않네.”
해인은 한 달 전만 해도 여기저기서 자지러지게 울어대던 매미 소리를 들으면서 남편에게 불평했었다. ‘울어도 적당히 울어야지, 귀가 먹먹해질 정도라니까.’ 그런 해인에게 남편은 ‘아마도 저 정도 소리쯤은 적응해둬야 할 껄? 한 달 뒤면 저것보다 더 큰 소리가 우리 집 거실 가득 쩌렁쩌렁 울릴 거니까.’라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해인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배 속의 아이를 상상하는 일이 썩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다. 대체 어떤 아이가 태어날까 궁금해 설레다가도 그녀와 열 달 동안 한 몸이었던 어떤 생명체가 따로 뚝 떨어져 나온다는 사실이 낯설고도 두려웠다. 게다가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당분간 일일이 곁에서 케어해 줘야 한다는 사실이 부당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난 지금은, 아이를 상상하는 일이 어쩐지 선물처럼 느껴졌다. 생각지도 못한 날 받아 든 서프라이즈 상자 같은 것. 아직 열어보지 않았지만 해인을 놀라게 할 만한 뭔가가 들어있을 것만 같은 그런 기분으로 날마다 아이에 대해 상상했다. 하늘 위에 뜬 새하얀 구름을 보면 ‘우리 아기 몽글몽글한 팔뚝 같네.’ 들풀을 보면서는 ‘우리 아기 숨결 같은걸.’ 보도블럭에 누군가 뱉고 간 풍선껌을 보면서는 ‘오 이건 우리 아기 분홍빛 볼인 것 같아.’ 엄마 손을 잡고 뒤뚱거리며 걷는 기저귀 찬 아기를 봐도 모두 그녀의 아이처럼 느껴져 어쩔 줄 몰라했다. 모두 제각각 다른 삶이 그 생명이 너무나 독특하고 귀여워서 볼이라도 꼬집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해인은 그녀 주변에서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이 이대로 영원히 그녀 곁에 있어주길 바랐다. 매미 소리도 그랬다. 지겹도록 듣기 싫었던 그 울음소리도 이제는 다시 듣고 싶었다. 우렁차게 울어대던 한여름의 시간들이 몹시도 그리웠다. 그렇게 혼자서 싱글거리며 온갖 상상에 빠져있을 때 마침 해인 곁을 지나가던 이웃 여자가 말을 걸었다.
“어머, 해인씨, 애 낳으러 갔다더니 벌써 온 거야? 애는?”
“아 있어요. 저어~기.”
“응? 어디?”
이웃 여자가 해인의 손이 가리키는 쪽을 향해 목을 길게 뺐다. 해인의 손은 해인의 집인 302호 쪽 창문을 가리키고 있었다. 마른 침을 한번 크게 삼킨 해인은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거, 거실요. 거실에다 재웠어요.”
해인은 겨우 이렇게 대답해 놓고 멋쩍게 웃으면서 말을 보탰다.
“애 낳고 나니까 쉬운 단어조차 생각이 안나요.”
이웃 여자는 과장되게 손사래를 쳤다.
“알지, 알지. 나도 지금은 우리 애들 이름도 잘 생각 안 나.”
둘 사이에 약 10초 동안 정적이 흘렀다. 정적 속에서 해인의 눈동자가 조금씩 흔들렸고 이윽고 눈물이 가득 고였다. 이웃 여자는 조금 당황했지만 티 내지 않으려고 더 명랑하게 말했다.
“그래도 애기가 순한가보다. 애기 재워놓고 이렇게 나와 있구. 그래도 갓난 애기들은 금방금방 깨니까 어서 들어가 봐.”
이웃 여자가 이렇게 말하면서 해인의 등을 살짝 밀었는데 해인은 자기도 모르게 등에 잔뜩 힘을 줬다. 다시 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이웃 여자는 뭔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어머어머, 내 정신 좀 봐. 나 바빠서 이만 갈게. 삼칠일 지나면 애 꼭 보여줘.”
서둘러 가던 이웃 여자가 갑자기 뒤돌며 또 말을 덧붙였다.
“아 참, 근데 애는 누굴 닮았어?”
대답을 기다리며 멈춰선 이웃 여자를 향해 해인은 대답 대신 빙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여자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더니 빠른 걸음으로 가던 길을 갔다. 해인은 멀어져가는 이웃 여자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누굴 닮았을까? 우리 아기는. 이름도 흔적도 없이 간 우리 아기는.’
해인의 아기는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죽었다. 뱃속에서 미끄러져 나왔을 때 만해도 매미만큼이나 우렁차고 자지러지게 울던 아이였다. 얼굴이 퉁퉁 부은 채 나와 얼굴이 어떻게 생겼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단지 품에 안겨 젖을 빨던 그 조그맣고 빨갛던 입술의 촉감만 선명하게 떠올랐다. 남편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었다. ‘우리 아기 건강하게 잘 태어났대. 손가락도 발가락도 다섯 개씩 다 있어.’
하지만 다음 날, 의사가 말했다. 죄송하다고, 최선을 다 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라고. 알 수 없는 이유라는 게 무슨 뜻인지 해인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해인은 아기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해인의 핸드폰 속에는 아직도 아기의 심장 뛰는 소리와 딸꾹질 소리, 그리고 제 손가락을 빨며 발을 차던 영상도 모두 저장돼 있었다. 임신 중 받았던 여러 가지 검사에서조차 우려될 만한 상황이 발견된 적도 없었다. 해인은 한동안 잠에서 덜 깬 듯한 멍한 표정으로 병실에 가만 누워있었다. 처음엔 눈물도 안 나왔고 이상하리만치 담담했다. 그럼에도 아기의 죽음에 대해 남편 이외의 누구에게도 말할 용기가 없었다. 무엇보다 해인 그 자신이 스스로를 이해시키기 어려웠다.
아파트 벤치 주변으로 어둠이 내리자 놀던 아이들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고 아파트 창문에도 하나둘 불이 켜졌다. 카톡음이 울려 확인해 보니 남편이었다.
-야근 때문에 늦을 것 같으니까 먼저 밥 먹어. 미안해.
해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핸드폰을 껐다. 사람들의 발길도 뜸해져 주위는 더 고요했다. 홀로 벤치에 앉아있던 그녀 곁으로 어디선가 바람이 훅, 불었다. 바람 소리와 동시에 벤치 옆에 서 있던 나뭇가지에서 무언가 뚝 떨어졌다. 해인이 허리를 숙여 그것을 살펴보니 매미가 벗어놓고 간 빈 허물이었다. 해인은 그 허물을 손에 들고 두리번거렸다. ‘혹시 아직 죽지 않은 매미가 있진 않을까, 몸을 뒤척이면서 구해달라고 애타게 누군가를 찾고 있진 않을까,’ 하고 해인은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어디선가 매미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해인이 벤치 앞에서 서성거리는 동안 302호의 거실엔 짙은 어둠만 무심하게 내려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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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규
201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등단. 소설집 『실전모국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