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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성경본문) 요 3:1-16 모든 성경구절 가운데서 하늘가는 길을 가장 정확하게 가리키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바로 이 말씀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 말씀은 회심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를 말해 준다. 그리고 나의 친구들이여, 나는 이것이 신앙세계에 있는 피상적인 사업의 뿌리를 직접 강타한다고 그대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것은 또한 그대들이 특별한 변화 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하는 생각에 대해서도 일격을 가한다. 하나님의 진리가 우리의 심령 속에 자리잡게 될 때, 우리 속에서는 결정적인 변화가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진리는 우리의 생활과 성품을 거룩하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보된 진리를 가지고 있노라고 주장하는 자들에게서, 우리가 그것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때처럼, 의의 열매들을 볼 때, 거기에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배웠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일련의 행동이 있게 될 것이다.
니고데모에게 자신이 그렇게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들려 계실 때, 제자들의 희망은 그곳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 그들은 그 사실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사전에 그것에 관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셨던 모든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그들의 소망과 믿음은 되살아났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분을 전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악한 무리들이 어떻게 생명과 영광의 주님을 빼앗아 십자가에 못 박았는지, 그분이 죽은 자 가운데서 어떻게 부활하셨는지 말했다. 64 이와 같이 그들은 큰 용기를 가지고 생명의 말씀을 전하였고, 사람들은 그 말씀에 크게 놀랐다.
예수님께서 메시야라는 사실을 담대히 선언하는 제자들의 증거를 들은 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고 그분을 배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말하였다. 사실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배웠다는 것을 그들의 마음으로 수긍케 했다. 어떻게 세상의 각 시대를 통하여 그분의 제자들에게 그런 일이 있었는가? 그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을 배웠고, 그분의 학교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분의 학생이었고, 영혼이 하나님과 이루는 산 연결에 관하여 그리스도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산 믿음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므로 우리는 우리의 의, 그리스도,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구주의 보혈의 공로를 굳게 붙잡아야 한다.
인간의 영혼 주변에 몰려와 마음을 닫게 하는 흐린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이 의심과 불신의 분위기를 깨뜨리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생기에 넘치는 그의 관심을 일으켜서 그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구원받는 이치의 단순함
그리스도의 의를 붙잡고자 하는 자는 자기의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에 한순간도 지체해서는 안 된다. 그는 그리스도의 의를 붙잡기 전에 적절한 회개를 이룰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우리는 구원의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은 ABC처럼 단순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사람이 어떻게 회개할 것인가? 그것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어떤 일인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육신의 마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 때문이다. 육신의 마음은 회개할 수 있는 힘이 없는데, 어떻게 회개하게 되겠는가? 무엇이 인간을 회개하게 만드는가?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그 일을 하신다. 그분은 어떻게 사람들을 회개에 이르게 하는가? 그분은 수천 가지의 방법으로 그렇게 하신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시종 인간의 마음에 역사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초청이 주어져 있다. 65 비단 그곳에서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과 품성으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자들을 통해서도 초청은 주어진다. 그들이 직접 설교를 하거나 직접 사람들에게 다가와 그들의 회개하지 않은 상태에 대하여 지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 중 한 사람과 연결되었을 때,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않은 어떤 것이 제자들에게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제자들에게 있음을 보았다. 바리새인들은 무엇인가 놀라운 것을 보았으며,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으로부터 교훈을 배웠다는 사실을 마음속으로 깨달았다.
항상 계속되는 감명이 있다. 인간의 영혼을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가 있는데, 그것은 하늘의 것이 아니면 지옥의 것이다. 이 둘을 구별하는 선(線)이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에 있게 되거나 아니면 원수의 편에 있게 된다. 만일 우리가 영광으로부터 신령한 광채를 계속적으로 받아들인다면, 하나님의 천사들이 우리 곁에 머물면서 사람의 영혼을 감싸는 분위기가 된다. 우리의 모든 행위와 언어를 통해서 우리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에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 진정한 회개에 대해서 증거하게 된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이제 우리는 생명의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로서 포도나무에서 흐르는 수액으로 영양분을 공급받게 될 것이다. 수액은 항상 모든 가지로 흐를 것이며, 모든 가지는 하나님의 영광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며… 네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그렇다면 우리의 위치는 어디인가? 우리는 반드시 산 믿음의 위치에 있어야 한다.
이론적으로 이해할 수 없음
“이 문제를 이론적으로 밝혀내고 싶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다. 가능하다면 그렇게 해보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그대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그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대는 인간의 심령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일을 더 더욱 설명할 수 없다. 그대의 생애에 그리스도의 의를 가져다 주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와 부활하신 구주를 올바르게 붙잡는 이 믿음을 그대는 설명할 수 없다. 66 그대 자신의 의가 아닌 그리스도의 의가 옷입혀지면, 그대는 그대가 할 수 있는 일이나 혹은 그대가 행할 일을 의지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 없이 그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지 못하는가?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니라”(요 15:5)고 그분은 말씀하신다.
그대가 식탁에 앉을 때 그대가 먹는 음식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표현이다. 설교단으로부터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듣는 것은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보낸 기별이다.
그대들 중 누가 그리스도의 의를 가리우기 위해 모든 불신과 의심을 수집해 왔는가? 누가 이런 일을 하고 있는가? 그대들은 어느 편에 속해 있는가?
그대는 귀중한 진리의 핵심을 제시된 그대로 하나하나 붙잡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대 자신의 생각과 견해를 따르고 그대의 의견과 이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판단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지 않으면 그대의 사상과 이론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지고 와서 이 생명의 말씀이 그대의 사상과 이론 가운데 어디에 부족과 결함이 있는지를 그대에게 나타내 주게 하겠는가?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할 위치에 설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렇게 믿었고 사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사 8:20).
만일 빛이 필요한 백성이 지금껏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세상 역사의 마지막 때에 살고있는 자들이다. 우리는 성막 때에 살고있는 자들이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바를 알기를 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우리는 무한한 능력의 팔을 붙잡는 산 믿음을 원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다하여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께 의존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렇다. 우리의 영혼의 유익에 도움이 되게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대들은 산 포도나무에 연결될 수 있다. 그대들의 온 몸의 지체들이 그 포도나무에 연결될 수 있다. 그리하면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와 하나이셨던 것처럼 그대들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때까지 포도나무로부터 올라오는 수액과 영양분이 연결되어 있는 가지를 무성하게 할 것이다. 67 그래서 그분의 축복이 그대들에게로 나누어질 것이다. 그러나 형제들이여, 우리는 믿음이 없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불신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훼손시켜 왔다.
중풍병자의 믿음
나는 여러 해 동안 사지를 움직일 수 없었던 중풍병자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런 사람이 있었다. 제사장들과 관원들과 서기관들은 그의 상태를 살펴보고 희망이 없다고 단정지었다. 그들은 그가 지은 죄 때문에 그런 지경에 빠지게 되었으므로 그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노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는 큰 일을 이루고 있는 예수라는 분이 있다는 것을 소문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분은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셨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그분께 나갈 수 있을까?”그는 말했다.
그러자 그의 친구들이 대답했다. “우리가 자네를 바로 예수가 계신 곳으로 데려다 주겠네. 우리가 들어서 알고 있는 장소에 그가 지금 와 있다네.”
그리고 친구들은 희망없는 그를 데리고 그들이 알고 있는 예수님 계신 곳으로 갔다. 그러나 수많은 군중이 예수님이 계신 건물을 빽빽이 둘러싸고 있었으므로 그들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문으로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되었을까? 중풍병자는 지붕을 뚫고 기와를 벗기고 자기를 지붕을 통해서 내려보내 달라고 제안하였다.
그는 그의 열렬한 믿음을 그렇게 표현하였다. 그들은 그렇게 하였고, 그는 예수님께서 그를 바라볼 수 있는 바로 앞에까지 이르렀다. 예수님께서 그를 바라보시고 불쌍히 여겨 말씀하셨다.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막 2:5). 아,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예수님께서는 죄로 병든 그 영혼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셨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자신의 양심의 가책 때문에 고통을 받아 온 것을 아셨다. 그래서 그분은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그의 마음이 얼마나 홀가분해졌던가! 말할 수 없는 희망이 가슴을 채웠었다.
그때에 바리새인의 마음에는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는가?”라는 감정이 생겼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68 그리고 그분은 중풍병자에게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눅 5:24)고 명하셨다. 무어라고, 마비된 그의 팔로 침상을 들라고! 그리고 움직일 수 없는 그의 다리로 일어나 걸어가라구!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왜 그는 명령받은 그대로 행하였을까. 그는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행하였다. 의지의 힘은 그의 마비된 팔과 다리가 움직일 수 있도록 작용했다. 그러자 오랫동안 반응하지 않았던 그것들이 반응하였다. 이 표적은 죄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병을 치료하실 수 있는 한 분이 그들 가운데 계심을 사람들 앞에 분명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바리새인에게 주어진 그 큰 증거도 그들을 돌이키지 못했다. 사람들은 불신과 의심과 불신앙으로 스스로를 너무도 크게 두르고 있기 때문에 죽은 자가 살아나도 그들은 각성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들은 불신 때문에 동일한 불신의 상태에서 각성되지 않고, 돌이키지 않은 그대로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받아들이는 마음과 듣는 귀를 가진 모든 자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그들은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라고 외친다.
무기력한 자의 반응
무기력한 자가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그와 이야기할 때, 그가 치료받기 위해 물속으로 내려가고자 하는 바로 그때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먼저 내려가곤 한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그리스도께 이야기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요 5:6)고 질문하셨다. 이 얼마나 이상한 질문인가! 그것 때문에 그가 그곳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완전해지고자 하는 소원을 표현하기를 원하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명하셨을 때, 그는 그리스도께서 하라고 하신 그대로 했다. 그는 “오, 나는 이곳에서 30년이나 지냈지만 그 동안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논쟁을 하기 위해 머뭇거리지 않고, 그가 명령받은 그대로 했다. 그는 자기의 침상을 들고 걸어갔으며 그때로부터 치료되었다.
이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이다. 만약 그대가 모든 것을 설명하고 모든 점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멈추어선다면, 그대는 그대의 죄악 가운데서 죽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는 결코 만족을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구리뱀
69 여기에 그리스도께서 니고데모에게 제시하신 또 다른 예증, 곧 광야에서 들려진 구리뱀이 있는데, 그분은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요 3:14) 단언하셨다. 만일 그분이 들리워진다면, 그분은 모든 사람들을 그분께로 이끌어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하실”(요 3:15) 것이다. 지금 바로 그 구리뱀을 바라보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천사들을 보내어 그들을 돕고 보호하고 계신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백성들은 그들의 길고 지루한 광야의 여행에서 뱀에 의하여 멸망되지 않았다. 그들은 감사를 모르는 백성이었다.
우리가 바로 그러하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지켜주신 수많은 위험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그분께서 음식과 의복을 주시며, 우리를 돌보시기 위해 천사를 보내어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시는 큰 축복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매일 우리는 이러한 것들로 인해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사가 있어야 하고 매일 감사의 예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가야 한다. 우리는 매일 가족제단 앞에 모여 우리를 돌보시는 그분을 찬양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독이 있는 짐승으로부터 보호하고 계심을 잊어버렸다. 그러나 그분의 손이 거두어졌을 때 그것들의 쏘는 일이 그들에게 닥쳤다.
그때 어떤 일이 있었는가? 그리스도께서는 모세에게 장대를 준비하고 구리뱀을 만들어 그것을 장대에 매달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라볼 수 있는 장소에 세워서 그것을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살아날 수 있게 하라고 친히 말씀하셨다. 그들은 큰 일을 할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바라보아야 할 것이었다.
이제, 그들이 그것을 논리적으로 분명히 이해하기 위해 모든 것을 멈추고, “구리뱀을 바라보는 것으로 우리가 치료될 수가 없어! 그것에는 생명이 없어!”라고 말했다고 가정해 보라. 그러나 믿음으로 바라봄으로써 그들은 하나님께서 되리라고 말씀하신 그대로 치유되었다. 바라본 자들은 살아났다. 그것을 논쟁하고 설명하기 위해 멈추어 선 자들은 죽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70 바라보고 살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 3:14).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분을 바라보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그것은 어떤 종류의 믿음인가? 그것은 단순히 믿는 것인가, 아니면 용인(容認)하는 믿음인가? 여기 그와 같은 믿음을 가진 자들이 많이 있다. 그대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 그러나 그대들은 자신의 구원과 관계된 개인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그대들은 그리스도가 그대의 구주이심을 믿는가? 그분께서 갈바리의 십자가 위에서 그대를 구원하시기 위해 돌아가신 사실을 믿는가? 그리고 그대들이 그분을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그대들에게 선물로 주신다는 사실을 믿는가?
이것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이다
그렇다면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한 희생제물로 돌아가셨다는 것,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으시고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에게 그분 자신의 의를 나누어 주신 것을 완전히 수락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 의를 요구하고, 그것을 믿는다. 그리하여 그것이 우리의 의가 된다. 그분은 우리의 구주이시다.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셨으므로 우리를 구원하신다. 그분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실 수 있으신지에 대해 우리가 모두 설명할 수 있는가? 우리는, 우리를 더 좋게 만들어주고 죄의 얼룩과 더러움으로부터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고,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선(善)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솔직히 그렇지 못하다.
그대들은 젊은이가 그리스도께 와서 영생을 얻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질문하였을 때,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을 알지 못하는가. 그는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라고 말했다. 그 때 주님께서는 이 교훈을 그에게 분명히 깨우쳐 주시기를 원하셨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나는 온전하니이다”(마 19:20). 그는 그에게 무엇이 문제이며 왜 그가 영생을 얻을 수 없는지를 깨닫지 못하였다. 그는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마음속에 있는 병적인 요소를 지적하신다. 그분은 말씀하신다. “와서 나를 쫓으라, 그리하면 네가 영생을 얻으리라”
그는 어떻게 했는가? 그는 재물이 많았으므로 심히 근심하며 돌아갔다.
그는 전혀 계명을 지키지 않았었다. 71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주로 받아들이고 그분의 의를 굳게 잡았어야 했다. 그렇게 될 때, 그가 그리스도의 의를 가졌으므로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있었다. 젊은 법관은 그 율법을 발 아래 짓밟을 수 없었다. 그는 그것을 존중하고 사랑하여야 한다. 그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노력에 결합하기 위해 신령한 능력을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스스로 인성을 취하셨다. 그분은 당신의 신성을 옷입으셨고, 신성과 인성은 함께 결합되었다. 그분은 사단이 지켜질 수 없다고 단언했던 그 율법이 지켜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단이 거짓말 한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인성을 취하시고 이 세상에 서셨다. 그분은 신성과 인성의 결합으로 사람이 여호와의 율법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친히 인성을 취하셨다. 신성으로부터 인성을 분리해보라. 그러면 지금부터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그대 자신의 의를 이루기 위하여 애를 쓸지라도, 결국 실패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살아있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열렬한 기도로, 그리고 예수님의 공로를 의지함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로 옷을 입고 구원을 받는다. 누군가가 말한다. “그래, 우리는 아무런 행함이 없이 구원을 받는다. 사실 나는 구원을 받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구원을 받는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가 충성하게 하고자 이 세상에 오셨다.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일을 이루셨으므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그런 위치에 있는 것은 사망의 길에 서는 일이며, 그대는 진실로 범죄자의 한 사람이 된다.
그러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그대가 믿음으로 붙잡고 있는 그리스도의 의, 그분의 노력과 그분의 신령한 능력으로 공급된 의를 가지고 그대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듣고 이해하는 것이다.
나태함으로는 구원받지 못함
우리는 그 믿음을 원한다. 그러나 사람이 나태함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 결코, 결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동역자가 되어야 한다. 그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는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다”(고전 3:9). 그러면 어떻게 그 일을 하는가? 72 온 하늘은 인류를 죄의 타락으로부터 건져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온 하늘은 땅의 거민들을 위하여 열려있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구원받을 후사들을 위하여 봉사하도록 이땅에 보내진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그것이 그대들이 원하는 바를 행하는 믿음이다. 그것이 어떻게 역사하는가? 그것은 사랑으로 역사한다. 어떤 사랑인가? 물론,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빛나고 있는 사랑이다. 그것은 땅과 하늘 사이에 세워져 있으며,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구원을 얻는다. 아버지께서 그것을 받으셨고, 천사의 무리가 그 십자가 앞에 나왔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희생제물을 받으시면서 친히 머리를 숙이셨다. 그것은 하늘의 요구에 응답하고, 우리가 그분을 믿는 믿음만을 가지면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충분하고 완전하고 온전한 희생을 통하여 인간은 하나님과 화해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은 인간과 화해가 이루어진다.
이제, 형제들이여, 우리는 믿음을 원한다. 우리는 영혼을 믿음으로 교육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매 걸음이 믿음의 발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 이루어진 이 희생을 믿는 믿음을 원한다.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시 85:10)다. 이제 우리가 빛줄기를 볼 때, 우리는 그것을 붙들기를 원한다. 마귀는 항상 이 일에 반대하기 위해 일하고 있다.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증거하는 것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다. 그것은 나의 영혼을 위하여 그분께서 가졌던 바로 그 사랑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 그분은 무한한 값으로 나를 사시고, 당신께 범죄한 모든 것을 속량해 주셨다. 나는 그분의 동역자가 되어야 한다. 나는 그분의 멍에를 내 자신에게 지워야 한다. 나는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어야 한다. 나는 그분의 짐을 져야 한다. 나는 내가 빠져 있던 죄된 상태에서 어떻게 구출될 수 있었는지를, 또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의를 산 믿음으로 붙잡는 법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죄인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대는 그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음
이제 그대들은 그대의 의로움에 집착하고, 옳은 일을 행하고자 노력하고, 무엇보다도 이런 일을 행함으로 그대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73 그대들은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일을 행하신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먼저 회개하고, 그리스도 없이 내 스스로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면 그리스도께서 내게로 오셔서 나를 받아주신다.”
그대들은 그리스도 없이는 어떤 생각도 가질 수 없다. 그대들은 그분께서 성령을 통하여 인간의 마음속에 영감과 감동을 주시기 전에는 그분에게 나갈 어떤 성향도 가질 수 없다. 만일 이 땅 위에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로 향한 어떤 성향을 가진 자가 있다면, 그것은 그의 마음과 심령 속에 그러한 생각을 품을 수 있도록 역사하는 많은 영향력들 때문이다. 그런 영향력들이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을 일으키고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하신 위대한 일에 대해서 감사하게 한다.
우리가 스스로 회개할 수 있다고 언제나 말하지 않도록 하자.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용서해 주실 것이다. 진정 그렇다. 용서해 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분의 능력으로 우리를 회개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것이며, 모든 것이 그분께 속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한다. 왜 그대들은 집회에서 함께 만날 때 더 많은 반응을 하지 않는가? 왜 그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분의 구원이 그대들에게 나타날 때에 생기있게 하는 하나님의 영의 감화를 갖지 않는가? 그것은 그대들이 그리스도를 처음과 나중과 최선, 알파와 오메가, 시작과 끝, 바로 우리의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분이심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대들은 죄악 가운데 머물게 된다. 왜 그런가? 그것은 사단이 인간의 영혼과 씨름하고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사단이 바로 우리의 길목을 가로질러 지옥의 그림자를 던져 놓았기 때문에 그대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원수와 그의 세력뿐이다.
사단의 권세를 외면하고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는 분께로 시선을 돌려라. 왜 그대들의 믿음은 어두움을 지나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으로 나아가지 않는가? 그분께서는 사로잡힌 자들을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그분께서는 그리스도와 연결되지 않은 모든 영혼을 사단이 마치 그 소유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대들에게 가르쳐주실 것이다.
대쟁투에 있어서의 쟁점
74 사단은 사망의 창시자이다. 그리스도께서 사단을 사망의 지배 아래 두신 후 그분께서는 어떤 일을 하셨는가?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시면서 하신 그리스도의 최후의 말씀은 “다 이루었다”(요 19:30)였다. 사단은 스스로 도가 지나쳤음을 알았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통하여 사단의 죽음을 이루시고 불멸이 빛을 받게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 그분은 어떤 일을 하셨는가? 그분은 당신의 능력을 잡으시고 왕위에 오르셨다. 그분께서는 무덤을 열고 포로되었던 무리를 일으키심으로 그분께서 사망의 권세를 갖고 계시며 죽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구원하신 분이심을 우리의 세계와 피조물 가운데 있는 모든 자들에게 증명하셨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이 그때에 생명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그것은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한 하나의 예증, 곧 그분께서 그들을 하늘로 데려가셨기 때문에 사망과 무덤이 포로들을 붙들어 놓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하나의 예증에 불과했다. 그분께서 권능과 큰 영광으로 다시 오실 때, 그분께서는 무덤의 문을 여실 것이다. 감옥의 문이 열리고 죽은 자들이 영광스런 불멸로 다시 나아오게 될 것이다.
여기에 그리스도께서 당신과 함께 데리고가서 하늘의 우주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들 앞에 내 놓은 승리의 전리품들이 있다. 덮는 그룹이었던 루스벨에 대하여 그들이 이전에 가졌던 어떤 애정도 이제는 사라진다. 하나님께서는 루스벨에게 품성을 완성시킬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만일 그분께서 그 기회를 주지 않으셨다면, 공정한 기회를 그에게 주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께 대하여 불평한 것이 당연했다 라고 생각한 자들이 틀림없이 있었을 것이다.
생명의 왕과 흑암의 왕이 싸웠다. 생명의 왕이 승리를 거두었지만, 엄청나게 큰 희생을 치르었다. 그분의 승리가 우리의 구원이 된다. 그분은 우리의 대리자시요 보증인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이기는 자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사람이 해야 할 무엇인가가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말해 준다. 왜 그런가?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 3:21).
이기는 자의 몫
75 우리 구주께서는 승리해야 할 무엇인가를 갖고 있지 않으셨던가? 그분은 모든 면에서 승리자가 되실 때까지 흑암의 왕과 쟁투를 계속하지 않으셨던가? 그리고 그분은 당신의 추종자들의 손에 그 일을 바로 맡기셨다. 이제 우리는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우리는 승리를 이루고 얻어서 승리자의 몫을 받지 않았는가? 그분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함을 우리가 알기까지 한 단계씩 따라가지 않으려는가? 그들의 빛은 우리가 더 밝은 빛으로 나아올 때까지 비추일 것이다. 그대가 하늘 아버지께 간청할 때 그대는 그 빛을 붙잡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더 밝은 빛을 모으게 될 것이다.
야곱은 함정에 빠졌다. 그는 형의 장자권을 속여서 빼앗았다. 그가 그리스도와 씨름할 때에 자기의 죄가 머리속에 떠올랐다. 천사가 그와 씨름하면서 “나로 가게 하라”고 말하였을 때, 야곱은 “당신이 나를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 32:26)라고 대답하였다.
그대들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그대들이라면 오늘 이 집회 동안에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그대들에게 드러내신 것을 알 때까지 하나님과 씨름할 수 있겠는가? 그대들의 영혼을 고통스럽게 하는 죄악들이 있다. 그 죄악들이 그대들을 슬프게 한다. 그대들은 “이제, 주님 내 이름 곁에 용서라는 글자가 쓰여져야 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주님과 씨름하고 탄원하고, 그리스도의 의를 굳게 잡지 않겠는가.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셔야 한다. 나는 그분을 믿는다. 나는 그분을 말씀 그대로 받아들인다.” 자, 형제들이여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야곱은 승리를 얻었으며 그날로 그의 이름은 바뀌었다. 그것은 하나님과 싸워 이겼을 때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완전하고 값없는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신 것을 인해 매우 감사한다. 우리는 사단이 우리의 앞길에 펼쳐 놓는 어두움의 그림자를 바라볼 필요가 없다. 그는 하늘 나라와 예수님과 빛과 우리에게 있는 하늘의 권능을 가리고자 한다. 그런데 우리는 사단의 능력에 대해서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이사야는 이렇게 제시한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서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 나와 아버지가 하나임을 말하고 있지 아니한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신다. 형제들이여, 깨어 일어나 중풍병자가 한 것처럼, 무기력한 자가 한 것처럼, 마비된 사지를 가진 자가 한 것처럼 우리도 그리하자. 76 그들은 그들이 들은 대로 행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도록 도와주실 것이며, 그분께서는 온전히 구원해 주셔서 영생을 얻게 해주실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 중 많은 사람들이 진리에 반응하는 데 있어서 그대들의 영혼 속에서 활기가 부족한 것처럼 행동한다. 그대들 중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예수님께서 요셉의 새 무덤 속에 갇혀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분은 그곳에 계시지 않다. 그분은 사망에서 일어나셨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시는 살아계신 구주를 소유하고 있다.
그분의 사랑과 그분의 권능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그분을 찬양하라. 그대들이 만일 말할 수 있는 음성을 가졌다면, 하나님과 하늘 나라와 영생에 관해서 이야기하라. 집에서는 이웃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로 말하면서도, 집회에서는 일어나 거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몇 마디만 중얼거리는 사람들에 대해서 나는 들었다. 그대들은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고 있다는 사실과 그대들이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를 원한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니라”(롬 10:10). 그대들이 오늘 들은 진리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믿고 있는가? 그대들은 그 속에 빛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 몇 달이 더 지나가기를 원하는가? 그대들은 그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밝히기 위해 멈추어 서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그대들은 그 때가 오기 전에 죽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때문에 믿으라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에 그것을 믿으라.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다시 살아나신 구주의 공로의 보혈을 굳게 붙잡으라. 그분은 그대들의 유일한 희망이고, 그대들의 의이고, 그대들의 대리자요 보증인이고, 그대들의 모든 것이 되신다. 그대들이 그 사실을 깨닫게 될 때, 그대들은 그분에게 찬양의 제물만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그대들이 그리스도께 기꺼이 나오지 않고 그분이 이 모든 일을 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대들이 먼저 몇 발자국을 움직여서 나아가야 하나님과 만날 수 있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정확하게 가인의 제사와 같은 것이다. 가인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예수님의 보혈이 자신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고 그의 제사가 하나님께 열납되게 해준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다. 77 그리고 타락한 제물과 더럽혀진 희생물을 가지고 예수님의 보혈이 없이 드리는, 가인의 제사보다 더 나쁜 제사들이 있다. 그대들은 매 발걸음마다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가야 한다. 예수님의 보혈과 깨끗케하는 보혈의 능력을 가지고 그대들의 탄원을 하나님께 드리고 열렬하게 그분께 기도드려라. 그리고 이전 어느 때보다 더욱 열심히 성경을 상고하라.
“진리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있다.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믿어왔는가 하는 사실이 진리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대는 그대의 신조를 성경으로 가져가서 성경의 빛이 그대의 신조를 밝혀서 어디가 부족하며 어느 곳이 곤란한지를 비추이게 해야 한다. 성경이 그대의 표준이 되고, 여호와의 살아있는 말씀이 그대의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그대는 마치 감추인 보화를 찾듯이 진리를 찾아야 한다. 그대는 보화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내야 하며, 그때에 그대는 그 보석을 얻기 위하여 그 밭을 샅샅이 쟁기질해야 한다. 그대는 새로운 보석, 새로운 다이아몬드를 위하여, 진리의 광산에서 일해야 한다. 그러면 그대는 그것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대는 법왕권이 그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안다. 사람은 스스로 성경을 해석할 권리가 없다. 그들은 누군가가 그들에게 성경을 해석에 주어야 한다. 그대에게는 지성이 없는가? 그대는 이성이 없는가?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과 관원들에게 주신 것과 동일한 판단력을 일반 사람들에게는 주시지 않으셨는가? 생명과 영광의 주가 되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들이 그분을 알았다면, 그들은 결코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성경을 상고하라고 말씀하셨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경을 연구하는 학도가 되도록 도와주신다. 그대가 스스로 그 이유를 깨닫고 성경속에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를 알기 전에는 그대를 위해 성경을 해석해 주는 어떤 다른 사람을 신뢰하지 말라. 그대가 이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될 때, 그것이 그대를 위한 것이요 하나님의 진리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대는 말할 것이다. “내가 그것을 읽었다. 내가 그것을 보았다. 나의 마음속에서 그것을 굳게 붙들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내게 말씀하신 진리이다.” 이것이 우리가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각자 개인적인 경험을 할 필요가 있다. 유대인들처럼 우리는 돌이킬 필요가 있다. 만일 그대가 작은 빛을 보았다면, 그대는 뒤로 물러서서, “나의 형제들이 그 빛을 보게될 때까지 기다리겠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78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대는 계속 어둠속에 머물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진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만일 그대가 하나님의 진리를 발견하였다면, 그 빛을 따르고, 그대의 뒤에 빗장을 지르라. 육신을 무기로 삼지 말고 스스로 산 경험을 하라. 그러면 그대의 얼굴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날 것이다. 그대는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였고, 그분께서는 그대를 붙들어 주셨다. 그대는 그분과 씨름하면서 탄원하였고, 그분께서는 당신의 빛을 그대에게 비추어 주셨다.
믿음으로 말하고, 믿음으로 생활하고, 믿음으로 행동하라
형제들이여, 그대들이 지나치게 많은 의심과 의문 가운데서 그대 스스로를 교육시켜 왔으므로 이제 그대들은 믿음의 길에서 그대들의 영혼을 교육시켜야만 한다. 그대들은 믿음으로 말하고 믿음으로 생활하고 믿음으로 행동해야 한다. 그리하면 그대들의 믿음이 향상될 것이다. 산 믿음을 실천함으로 그대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강한 남녀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오늘 개최하고 있는 이 집회가 의의 태양이 그대들 위에 떠올라 가장 밝은 빛으로 그대들의 심령에 비추어, 그대들 모두가 온 세상에 빛이 되게 하는 그런 집회가 되도록 허락하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세상의 빛”(마 5:14)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그대로 그대들은 세상의 빛이 될 수 있다. 그대들은 그 빛과 소망과 믿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 마치 그분께서 그대들이 질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지시므로 항상 힘들여 일하신 분이셨던 것처럼 그대들이 그분의 사업에서 전진하는 과정에 신음하면서 나아가서는 안 된다. 이것은 경우가 다르다. 그분은 그대들이 기쁨으로 충만해지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충만해져서 지식에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의 길이와 넓이와 높이와 깊이를 알기 원하신다. 그분의 이름이 불려질 때 그분께서는 그것이 그대들의 심금을 울려서 그대들의 심령에 반응이 일어나기를 바라신다. 그 때에 그대들은 감사와 존귀와 영광과 찬양을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돌리게 될 것이다.
그대들은 이 땅에서 그 노래를 부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면 그대들이 순식간에 변화함을 입을 때, 그대들은 하늘의 천사들과 구원받은 성도들과 함께 승리의 노래를 부르게 될 곳을 바로 알게 될 것이다. 79 우리는 하늘의 궁륭(穹륭)을 찬양과 영광으로 울려 퍼지게 할 것이다. 이제, 이 땅에서 그 궁륭을 울려퍼지게 하자. 그대의 심령 속에서 이곳이 찬양으로 깨어나게 하자. 그대들이 이 땅에서 키 큰 나무들과 우단(羽緞)같이 푸른 초장을 바라볼 때 그대들의 심령에 찬양이 일어나게 하라. 우리가 아름다운 그대로의 이 세상에서 살게 될 특권을 받은 것을 하나님께 찬양하라. 우리는 더 나은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 땅은 정결해지고 녹아져서 죄 없는 곳이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하늘의 마음을 갖게 하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세속적인 것과 육욕적인 것, 천하고 무의미한 이야기, 희롱하는 말과 농담, 거짓 소문과 수다와 악한 추측들로부터 본래의 상태로 바로 잡을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 그것들을 모두 버려라! 그것들은 교회에 불명예스러운 것이다. 그것들은 교회를 약화시키고 쇠약하게 한다.
우리의 대화를 거룩하게 하도록 하자.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역 안에서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영역 안에서 거룩해지자, 우리는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돌아가신 귀하신 구주 안에서 즐거워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자. 이곳에서 우리의 찬양이 하늘과 연결되게 하고 하나님의 도성에서 하늘의 천사들의 노래와 연합되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