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요9:8-12) 주제: 내가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더라 25.1.23.새벽예배
말씀
8.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9.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10.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12. 그들이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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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말씀 9장을 보면 날 때부터 소경된 바디매오가 누구의 죄 때문에 소경이 되었을까?
라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정확하게 답변해주셨습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고자 하신 일이라는
핵심을 말씀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예수가 바로 세상의 빛으로 오셨다라는 것을 말하고자 함입니다.
"내가 세상에 빛으로 왔다"는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는 세상에서 우리의 영혼들이 어둠을 헤매고
있으니 그 어둠을 비추기 위해 오셨다라는 것, 그래서 예수가 세상의 빛으로 오심이 목적이니
이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낮과 밤이 있습니다.
그러나 소경된 바디매오는 태어 날 때부터 보고자 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이였습니다.
이것을 육의 개념으로 보면 단순히 볼 수 있는 것들을 보지 못한 사람이지만 결과적으로,
영적인 의미로 보면, 온 우주 만물의 빛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보았다라는 것입니다.
온 우주 만물을 비추는 빛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외에는 없습니다.
이 세상의 영혼들은 어둠속에서 헤맬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살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어둠을 비추기 위해 예수그리스도가 세상의 빛으로 오셨다라는 것을 예수님은 알리고자 함이였습니다.
예수님이 빛으로 내게 오셨을 때, 내 영혼은 어둠에 있지 아니하고 빛 가운데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소경 거지인 바디매오를 통해 알게 하신 것입니다.
바디매오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니 눈을 뜨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실로암의 의미는 보냄을 받았다는 것과 죄를 깨끗하게 한다는 뜻이 포함 되어있습니다.
이것을 소경인 바디매오는 믿었다라는 것입니다.
성경의 전체는 항상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소경 바디매오의 눈을 뜨는 기적은,
우리의 영혼을 깨닫게 하기 위해 특별 은총으로 하나님께서 바디매오에게 기적을 나타낸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행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단면적으로 또는 육신적으로만 생각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은 항상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영적의미를 가지고 균형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록되었다라는 사실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삶속에서 살아갈 때 많은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것은 내게 유익이 없다고 느껴 질 때나 하던 일들이 안되어 질 때,
또는 내 욕심이 채워지지 않을 때 일어나는 현상들입니다.
이런 것들을 내 마음에서 내려놓고 비워야 합니다.
그 이유를 성경은 바로 욕심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욕심은 죄를 낳고 죄는 사망(약1:15)이라는 결론을 내리기 때문입니다.
세상 것으로는 사람의 만족을 다 채울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오직 하나님이 내 마음에 채워지지 않으면 만족함이 없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만족은 세상 만물의 주인 되시는 예수그리스도가 믿어지고 하나님을 알게 될 때
비로서 만족함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만족함이 이루어졌을 때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가 “영광”이라는 단어입니다.
예를 들어 한해를 마치고 연예인들이 시상식에서 자기가 만족한 상을 받았을 때 감사와 기쁨의
표현으로 “영광”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만족이 다 이루어 졌을 때 쓰는 최고의 표현이 “영광”이라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내 영혼이 만족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영광” 이라는 단어는 사람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만 쓰는 표현임을 알아야 합니다.
세세 무궁토록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에게만 사용되어져야 비로서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 예수님이 빛으로 오셨음에도 유대인들은 알아보지 못하고
또 바디메오에게 나타낸 하나님의 일도 믿지 못하는,거짓되고 위선된 자로 연기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바리새인과 같은 유대인처럼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기가 뿌린 악한 죄로 인해 그 삶이 피폐하고 소망 없는 삶으로
죄가운데 반드시 죽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죄는 악을 통하여 오기 때문에 멸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즉, 죄 때문에 죽고 악 때문에 멸망한다는 것 입니다.
내가 살아가면서 내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안되고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내 악으로 인해 멸망의 삶을 살기 때문 입니다.
이것은 누구 때문도 아니고 전적으로 나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죄는 반드시 죽는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죄가 되기 때문에 죄는 반드시 죽습니다.
또한 악을 행하는 악인에게는 하나님의 진노와 멸망이 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을 주시고 거두시는 분은 하나님께만 있기 때문에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께 있고
잘되고 안되는 것은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이 모든 주권은 하나님께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리새인과 같은 거짓된 삶을 살지 말고 바디매오 처럼 예수님을
온전히 믿는 믿음의 삶으로 변화 받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다시 본문 말씀9장7절을 보면 소경거지인 바디매오가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니 밝은 눈으로 돌아왔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육적인 기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바디매오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구원을 이루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모든 것을 바라볼 때 내 기준으로 보는 것은 육적인 것에 치우쳐 질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기준에 두지 말고 항상 하나님 기준에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의 두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는 이 땅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존재 이기 때문에 사나 죽으나 주의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삶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이 일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이 소경 바디매오의 눈을 뜨게 한 것은
하나의 기적을 다룬 사건이 아니라,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영적 소경된 자들이
영적인 눈을 떠서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였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목적은 메시아로서 빛과 생명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영적으로 눈먼 자들에게 소경 바디매오가 예수를 만나 믿음으로 눈을 뜬 것처럼
종교생활로 거짓되고 위선된 우리도 예수를 만나 그분의 말씀을 믿으면,
영적인 눈이 떠진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더 쉽게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하자면,
내 앞에 전신을 볼 수 있는 거울이 있는데, 거울에 반사되어 비쳐 보이는 모습을 보고
나의 모습인 것을 알 듯이 빛으로 오신 생명의 예수가 나에게 반사되어 비쳐질 때
이것을 믿는 자는 비로서 영의 눈이 떠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세상 것을 구하지 말고 너희는 항상 그의 나라와(하나님나라)
그 의의(예수그리스도)를 먼저 구하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그리스도는 십자가의 대속으로 하나님의 의를 밝히시고
하나님나라가 있음을 계시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9절 말씀을 보면 소경 바디매오가 눈을 뜨게 된 것에 대해, 바리새인들과, 바디매오 자신,
이렇게 두 부류로 나누어져 “저사람은 바디매오가 아니다”와 “그가 맞다” 그리고 바디매오 자신이 “내가 바로 바디매오다“라고 말하면서 또 다시 부정하게 생각하는 사람과 긍정으로 생각하는 사람으로 2:1로 의견이 나눠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믿는 자와 믿지 못하는 자로 나눠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적인 것도 이와 같습니다. 영으로 빛되신 예수를 믿는 자와 안 믿는 자로 나눠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악하고 선한자로도 나눠짐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항상 구원 받은 자와 구원 받지 못한 자,악한 자와 선한 자가 있음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상대에 대해 비판 정죄가 나오지 않고,
하나님이 하신 것에 대해 인정이 되고 믿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구원과 연결이 되고 하나님나라 들어가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인정이 되고 믿어지면, 교회 안에도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도 있고 바디매오와 같은 사람도 있고
선한 자, 악한자, 의로운자, 불의한 자도 있다는 것이 인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에 시험이 들어 교회를 떠나는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항상 우리는 능동적으로 먼저 하나님을 인정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 자신이 항상 하나님과 1:1로 만나고 믿고 말씀대로 행하면,
바디매오처럼 ,내 삶속에서 두 가지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내가 믿고 씻었더니 보게 되었더라”
두 번째는 ”내가 믿고 구원을 받으니 하나님 나라이더라“
내가 잘 되는 원리도 이와 같습니다.
내 삶속에서 언제나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고 의지하면 반드시 행한대로 결과의 목적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가까이 하고 믿고 행해야하는 것입니다.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신30:14)
마지막으로 본문 9장1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바디매오에게
“그 들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실 때 ” “그 들이 알지 못하더라”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예수님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자만 (믿음이 된 자) 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믿어진다고 다른 사람도 다 믿어진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다 각각 다르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말씀이 있는 자 ,
늘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마음에 말씀을 두는 자는 믿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자,
즉 부정하고 악한 자들은 이렇게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축복의 원리는,
예수님이 하신 일을 마음에 믿고 순종하여 가서 실로암에서 씻었더니 "보이더라"와 믿었더니 "
구원이 성립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믿는 자에게는 예수님이 나를 인정해주시는 삶으로 진정한 축복이 이루어짐을 믿으시고
여러분의 삶속에서도 이와 같은 믿음의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축복 합니다.
첫댓글 아멘 입니다.
은혜의 말씀 감사합니다.
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