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홍나무꽃이 필 때면
이성교
한 숟갈 보리밥 물에 말아 배 채우고
오르던 언덕배기 정각 모퉁이
다랑논 바라보며 우뚝 선 나무 한 그루
쌀밥나무라 부르며 타고 놀던 시절 있었지.
가지 끝에 몽실몽실 꽃망울 붉을 즈음
보리쌀 위에 얹어질 쌀 한 줌 생각으로
백날을 헤아리며 피고 지는 꽃송이에
한 알 한 알 쌀밥 이야기 매어 달았지.
간지럼 태우며 다그칠 때면
한드렁거리는 이파리 보며
까르르 퍼지는 웃음소리에
영그는 벼 따라 메뚜기도 익어갔었지.
-2022년 국화축제 전시회 출품작-
<시작노트> 어느 날 화보로 양옆으로 붉게 핀 백일홍나무꽃을 보면서 어린시절이 떠올랐다. 놀이터가 없던 어린시절 정각이라 불렀던 만괴정 언덕에 있던 백일홍나무와 함께 배고픔을 달래며 함께 놀던 친구들이 사무친 그리움으로 찾아왔다.
화전놀이
이성교
유년의 뒷동산
자태 고운 해송 그늘
북장구 흥겨운 어른들
꽃놀이 한마당
화전 팔던 용상이 엄니
앞니 빠진 입이 귀에 걸리고
오동통한 볼살에 핀
복사꽃이 고왔다.
발길 끊긴 뒷동산
잡초에 묻힌 애잔한 그리움만
노을 드리운 노송 끝에
붉게 물들어 있었다.
-2023년 화순국화축제 시화전시회-
<시작노트>뒤까끔이라고 불렀던 박씨문중 묘역이 있는 마을 뒷동산, 그곳은 어른들의 화전놀이터였다. 해마다 진달래나 복숭아꽃이 필 무렵이면 곱게 차려 입은 동내 어른들이 반별로 음식을 장만해서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 막걸리가 거나해지면 당시 유일한 악기인 북과 장구 장단에 맞추어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 그 날은 모두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어린아이들은 물론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들까지도 함께 즐겼다.
나는 처음으로 어머니를 따라갔다가 동내 00이 어머니께서 반달떡(송편을 그렇게 불렀다)과 즉석에서 꽃 잎을 넣어 만든 붙임개라 부르던 떡을 팔던 모습을 잊을수가 없다.
그리고 추석이면 누군가 어김없이 짚으로 꼬아 만든 밧줄로 소나무에 그네를 매어 놓았다. 그러면 추석 성묘가 끝나는 정오 무렵부터 그네 타는 처녀들이 줄을 섰다. 한복자락 날리며 그네를 타는 모습은 바로 선녀들이었다. 그 모습은 동내 어디에서도 볼 수 있었다.
"너냐 나아냐 두리둥실 떠어서 ~~~~~~~~~~"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노나니~~~~~~"
화전놀이 하시던 어른들의 노랫가락은 귓가에 생생한데 인걸은 간데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