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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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변화가 있었다. 변화는 방향전환이다. 방향전환은 충돌을 낳는다. 충돌의 접점을 공유하면 나란해진다. 나란해지면 변화가 닫힌계 내부에 감추어진다. 감추어지면 멈춘다. 멈추면 관측된다. 관측되면 존재다. 어떤 것이 존재한다면 그 이전에 많은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생각하려면 단서가 필요하다. 단端은 일의 실마리다. 일의 시작점을 찾아야 한다. 흔히 시작점을 잘못 찍는 오류를 저지른다. 첫 단추를 잘못 꿰는 것이다. 실마리를 찾지 않고 중간에서 시작한다. 존재로부터 사유를 시작하는게 보통이지만 존재는 사건의 시작이 아니라 결과다.
존재냐 변화냐? 처음 존재가 있었는데 어떤 외부적인 이유로 변화가 일어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변화가 있었는데 변화 내부의 결맞음에 의해 인간에게 관측된 것이 존재다. 존재의 변화는 외부요인에 의해 일어나지만 변화의 존재는 내부요인에 의해 일어난다는 점이 다르다.
태초에 사건이 있었다. 우리는 존재를 사건의 입구로 놓지만 틀렸다. 존재는 출구다. 존재는 사건이 종결된 다음의 결과다. 인류의 지식체계는 결과를 보는 관점에 맞추어져 있다. 틀렸다. 결과는 외부다. 내부를 보는 눈을 얻어야 한다. 입구와 출구 사이 의사결정을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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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대칭이다. 존재는 대칭이다. 언어는 대칭이다. 세상은 대칭이다. 대칭은 복제된다. 언어는 주어와 동사의 대칭이 동사와 목적어의 대칭으로 복제된 것이다. 대칭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되어 세상은 널리 이룩되었다.
대칭은 보존이다. 보존은 계 내부에서 밸런스의 복원력이다. 보존은 관성으로 나타난다. 관성은 외부 환경과 충돌하여 내부의 밸런스가 깨지는 결어긋남을 통해 감추어진 계 내부의 결맞음이 드러난 것이다. 대칭이 노출되었다.
언어는 왜곡된다. 주어는 인간이다. 인간은 나다. 나와 대칭되므로 나의 관측하는 눈높이에 맞추어 객체가 왜곡된다. 인간의 개입에 의한 관측의 오류를 방지하고 객체 내부의 자체 대칭을 추적해야 한다. 보존을 추적해야 한다.
에너지의 방향은 결맞음에 의한 수렴방향과 결어긋남에 의한 확산방향이 있다. 최초 존재의 출발은 결어긋남의 확산방향이다. 확산하면 충돌한다. 충돌하면 공유한다. 공유하여 나란하면 결맞음이다. 결맞음 회복이 보존이다.
궁극적으로 에너지의 방향전환이 있을 뿐이다. 결맞음에 의해 존재는 형태를 획득한다. 구조는 확산을 수렴으로 바꾼다. 입구와 출구가 있다. 확산으로 들어가서 수렴으로 나온다. 거기에 알아야 할 변화의 방향과 순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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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는 변한다. 우리가 변화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존재의 변화는 열역학 제1법칙을 어긴다. 원자는 쪼개지지 않으므로 변할 수 없다. 존재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존재 바깥에 별도로 있는 변화가 존재를 오염시키는 것인가? 사람들은 이 부분을 해명하지 않고 얼버무린다.
물질과 성질, 육체와 영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사물과 사건 사이에서 우리는 얼버무리고 있다. 물질에 원자가 있다면 성질에도 원자가 있어야 한다. 가장 작은 물질의 단위가 원자라면 가장 작은 성질의 단위는? 반도체 소자 하나에 대응하는 정보처리의 단위 1비트에 해당하는 것은?
존재는 관측자가 있다. 존재 1은 관측자와 일대일 대응이다. 변화 1은? 인간의 관측과 무관한 자체 방향전환 1회가 있어야 한다. 세상은 인간의 관측단위 원자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자체 방향전환 단위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 개념은 관측이라는 매개자에 의해 오염된 거짓이다.
양자역학의 관측은 인간의 관측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관측이다. 곧 상호작용이다. 원자는 외부 상호작용 단위다. 원자의 상호작용이 외부에 대응한다면 내부에 대응하는 것은? 그것은 구조다. 외부 관측 단위, 상호작용 단위가 있다면 내부 의사결정 단위, 방향전환 단위도 있어야 한다.
진실을 말하자. 존재는 변하지 않는다. 존재가 변하면 열역학 1법칙을 어긴다. 변화가 존재한다. 변화가 나란하면 결맞음이다. 우리는 변화와 관측의 결맞음을 존재라고 믿고 결어긋남은 성질이라고 여긴다. 궁극적으로 우주에 원자는 없고 방향전환의 결맞음과 결어긋남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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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나는 사람들이 말을 잘못한다고 생각했다. 뭔가 자연스럽지 않았다. 문장의 앞과 뒤가 호응되지 않아 어색하다. 사람들의 말하기 방법이 틀렸고 나의 말하기 방법이 옳다는 사실을 확인하려다가 구조론의 아이디어가 얻어졌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사람들은 우습다고 말한다. 이상하다. 웃음은 횡경막이 진동하여 발작적인 호흡이 터지는 것이다. 실제로 뇌와 배와 근육과 입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봐야 한다. 횡경막이 발작적으로 움직이면 폭소다. 횡경막의 발작적인 움직임을 막으려고 배에 힘을 주면 미소다. 웃음은 일종의 조건반사에 의해 호흡이 강제되는 것이다. 웃기 직전에 긴장하여 호흡이 차단되기 때문이다. 웃음은 긴장이 풀어지게 한다. TV에서 코미디언이 바나나 껍질을 밟으려고 하면 뇌가 긴장한다. 의식하지 못하지만 뇌 안에서 일종의 인공지능이 패턴분석을 통해 근육에 호흡중지 명령을 내린다. 조마조마한 상황은 호흡을 멈춘 상황이다.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으면 자기도 모르게 호흡을 멈추고 집중한다. 코미디언이 바나나 껍질을 밟고 미끄러지면 웃음이 터진다. 긴장하여 호흡을 참았다가 자신이 안전하다는 사실이 확인되어 호흡이 터져나오는 것이 웃음이다. 이 과정은 뇌 안에서 자동으로 진행되므로 의식하지 못한다. 분노는 호흡을 하지 않는 것이다. 맹수가 공격할 때는 호흡을 멈추고 무산소 운동을 한다. 숨을 쉬지 않으면 답답하다. 그러므로 화가 난다. 어떤 사람이 화를 낸다면 당신은 이렇게 말해줘야 한다. '호흡해! 너 지금 숨을 쉬지 않고 있어. 진정하고 숨을 쉬라구.' 그냥 화내지 마라고 하면 자신이 왜 화가 났는지 모르므로 계속 화를 낸다. 숨을 멈추니까 화가 나는 것이다. 화火는 불이다. 전투태세로 인해 체온이 올라간 것이다. 체온이 올라야 굳은 근육이 풀려서 주먹질이 가능하다. 의사결정이 일어나는 메커니즘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이 공격받는다고 느낄 때 조건반사에 의해 호흡이 중지되고 호르몬이 작용하여 체온이 올라가며 주먹질하기 좋은 신체가 되므로 폭력을 시작하면 멈추지 못한다. 몸이 후끈 달아오른 상태가 자신에게는 놀라운 발견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변화가 신선한 충격으로 느껴진다. 거기에 중독성이 있다. 스트레스는 무호흡이 누적되어 대미지를 주는 것이다. 한 숨을 쉬는 이유다. 숨을 참았다가 몰아서 쉰다. 뭐든 메커니즘이 있는 법인데 그것을 대충 뭉개고 넘어가는 사실을 나는 참을 수 없다. 그냥 바람이 분다고 말하지 말고 기압의 변화에 따른 밸런스의 복원력이라는 관성력의 작용에 의하여 낮에 데워진 공기가 팽창했다가 밤에 수축하며 만들어진 진공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해야 직성이 풀린다.
뭐든 원인이 있고, 결정이 있고, 결과가 있는 법인데 우리는 원인의 시작과 중간의 결정을 빼먹고 마지막 결과만 말하는 잘못된 말하기 방법을 사용한다. 생각하기 습관의 문제다. 그것을 면밀히 따지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어야 한다.
메커니즘 중심으로 사유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메커니즘은 이것과 저것 두 변화를 연결한다. 그냥 이것만 말하거나 저것만 말하면 명사와 동사, 주어와 술어, 전제와 진술이 호응하지 않아 어색하다. 언어감각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