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5:1~7 세 가지 유언
전도서는 코헬렛이라 하여, 솔로몬의 유언인데,
솔로몬은 유언 중에서 예배와 기도와 서원에 대해서 할 말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유언은 죄악을 무시하는 기복적인 예배를 피하라는 것입니다.
1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을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솔로몬이 보니, 성전에서 말씀 듣는 것보다, 죄를 회개하는 것보다, 발람같이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만 제사를 드리는 모습이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이 그저 슬롯머신같이 돈 놓고 돈 먹기의 재신일 뿐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이 망한 것이나, 남유다가 망한 것이나, 죄의 회개 없는 제사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삼일에 한 번 십일조를 드리고, 수많은 제단을 쌓았으나, 죄를 회개함이 없는 제사였습니다. 마치 도박 배팅하듯이, 기복주의적인 제사를 드리는데, 죄와 상관이 없는 제사요, 말씀을 듣지 않는 제사였습니다.
두 번째 유언은 기도에 관한 것입니다.
2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3 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말입니다. 땅에서 높은 사람을 만날 때도 아무렇게나 말하지 않듯이, 하물며 하늘에 계신 만주의 주 창조주 구원주 심판주이신 하나님께 기도할 때, 경외하는 마음과 정제된 마음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옛날에 효도르가 한국을 방문하였는데, 철모르는 사람들이 효도르에게 달려가 해드락을 걸고, 싸커킥 흉내를 내었는데, 이번에 또 페리이라가 방문하였는데, 역시 또 엄청난 거물을 두고 사람들이 장난을 치고 있었습니다. 페레이라의 표정이 마치 난쟁이 소인국에 온 걸리버. 아무튼 그런데 기도의 관점으로 볼 때,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무례하며 황당한 기도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잘 생각해보면, 기도는 감히 상대할 수도 없는 하늘에 계신 분 만주의 주 창조주 구원주 심판주에게 곧 하나님께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천국에서 예수님을 보았을 때 그는 기절하였습니다. 다니엘도 그러했습니다. 물론 기도의 종류는 다양하다고 합니다. 물론 예수님은 땅에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에게 아무렇게나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께도 진지하게 진실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시편은 공예배용 기도인데, 이 점을 잘 보여줍니다.
세 번째 솔로몬의 유언은 서원에 대한 문제입니다.
4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매한 자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5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으니 6 네 입으로 네 육체가 범죄하게 하지 말라 사자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께서 네 목소리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 7 꿈이 많으면 헛된 일들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서원은 제사 중에 화목제인데, 민28~29장을 보면, 지켜야 할 절기와 제사 종류 중에 화목제만 없습니다. 왜 인가요. 이 제사는 규정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자유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어서 민30장에서 아버지나 남편이 그 서원을 허락하는 것에 대해서만 그 서원을 갚으라고 말하고 있는데, 또한 레위기에서 화목제는 대개 이틀 안에 다 먹어야 하는 것으로, 삼일이 되면 도리어 가증한 것이 된다고 하였는데, 서원은 하나님께 드리는 자유제이므로 마음이 있을 때 빨리 갚아야 합니다. 그런데 한나나 다윗이나 보면, 서원을 지켜서 복을 받은 사람도 있고, 바울도 서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또 보면 아나니아 삽비라처럼 저주를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은혜를 크게 받았을 때는 내가 무엇무엇을 하겠습니다. 덜컥 서원을 하는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어이쿠 내가 너무 경솔하게 서원했구나 그런 경우가 있는데, 말이 많고 꿈이 많으면 경솔하게 서원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오직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라고 결론을 맺고 있는데, 그러므로 성도는 은혜의식으로 감사로 살아야 합니다.
룻기를 보면, 나오미와 룻이 유다 지파로 돌아왔는데, 파산자가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마치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아서, 아무도 그를 책임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고향에 보아스라는 유력한 사람이 있어서, 룻의 가업을 무르게 되었는데, 예수님이 보아스입니다. 기업 무르는 자는 신을 벗는데, 죄인은 하나님 앞에 신을 벗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연약한 죄많은 인간을 책임지실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산상수훈을 볼 때, 예수님은 맹세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5:33~37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그러므로 민수기 30장을 볼 때, 서원이야 말로, 성도가 아버지와 남편과 잘 대화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민30:13~15 모든 서원과 마음을 자제하기로 한 모든 서약은 그의 남편이 그것을 지키게 할 수 있고 무효하게도 할 수 있으니 그의 남편이 여러 날이 지나도록 말이 없으면 아내의 서원과 스스로 결심한 일을 지키게 하는 것이니 이는 그가 그것을 들을 때에 그의 아내에게 아무 말도 아니하였으므로 지키게 됨이니라 그러나 그의 남편이 들은 지 얼마 후에 그것을 무효하게 하면 그가 아내의 죄를 담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성도는 어떤 지경에서도 룻기에서의 나오미처럼 주께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기도드리고 새출발을 하던지 또는 아니라고 하시는 것 같으면 서원한 것을 빨리 갚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찬송가 369장처럼, 죄문제를 남편에게 고백하듯이 서원문제도 아버지와 남편에게 기도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기업무를 자 보아스가 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