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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에서 깨달은 것
- 튀르키예, 그리스, 로마
2025년 3월 23일부터 4월 3일까지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아래와 같이 글을 실을 예정입니다:
1. 몰론 라베!
2. 빌립보의 퓌톤 귀신
3. 천국의 열쇠
4. 나는 로마 시민입니다!
5. 회당에서 쫓겨난 이유
6. 성지순례 후 주일설교
7. 폼페이, 순간에 맞이한 종말
8. 아테나 여신의 탄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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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이야기: 몰론 라베!
“몰론 라베!” “와서 가져가 봐!”
이 도발적인 말은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겠다는 장수의 외침이다. 아니 죽을 것을 알지만 비굴하게 굴복하느니 차라리 싸우다가 죽겠다는 다짐이다. 이 말은 스파르타의 장수 레오니다스가 한 말이다. 스파르타와 아테네 등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동방에서 쳐들어오는 제국을 막기 위해서 힘을 모았다. 그 동방의 제국은 페르시아였고, 그 지도자는 크세르크세스였다.
기원전 480년, 그리스는 또 한번의 전쟁을 앞두고 있었다. 10년 전 그들은 마라톤에서 페르시아의 대군을 무찌른 적이 있다. 그 마라톤 전투는 그리스인들에게 페르시아를 이길 수 있다는 무한한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 전까지 그리스인들은 페르시아를 두려워하고 있었으며 ‘동방의 태양’이라는 그 큰 나라에게 늘 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라톤 전투에서 그들은 예상치 못한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그 승리는 그리스인들에게 장차 다가올 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불어넣었다!
마라톤 전투에서 뜻밖의 패배를 당한 다리우스 1세는 절치부심(切齒腐心)하다가 몇 년 후에 죽었다. 그리고 그의 후계자 크세르크세스는 페르시아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 그리스 침공을 철저하게 준비한다. 구약성경 에스더서에는 페르시아의 왕이 제국의 모든 지도자들을 모아 180일 동안 잔치를 베풀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잔치는 어쩌면 그리스를 침공하기 위하여 제국의 모든 자원과 인력을 동원하려는 페르시아 왕의 의도였을 것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페르시아의 2차 침공으로 알려진 이 전쟁을 위해서 크세르크세스는 막대한 군사력을 준비했다. 약 20만명으로 추산된 육군은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너 마케도니아와 테살리아를 거쳐 아테네로 진격하고 그 육군의 진격에 맞추어 수군도 아테네를 치는 것이 페르시아군의 전략이었다. 아테네가 중심이 된 그리스군도 페르시아의 침공을 예상하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스는 도시국가로서 여러 지역의 지도자들이 연합한 형태의 군대를 꾸렸으며, 전투를 이끌 지도자들도 여럿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에게 공통으로 큰 적은 막강한 페르시아였기에 서로 협력하는 것이다.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이 전쟁은 절대군주가 다스리는 제국과 도시국가들의 연합체인 민주정 체제와의 대결이었으며, 페르시아에게 정복되어 전쟁에 끌려온 다민족으로 구성된 군대와 자유민을 중심으로 자기 영토를 지키기 위한 자발적인 군대와의 대결이었다.
이렇게 제2차 페르시아전쟁이 시작되었고 그 첫번째 전투는 그리스군이 정한 장소에서 이루어졌다. 그곳은 ‘뜨거운 문’이라고 하는 쎄르모쀨레(Θερμοπύλαι, Thermopylai)였다. 그리스어로 쀨레는 문이라는 뜻이다. 그곳은 아테네로 가는 길목이었고 온천이 있는 지역이었다. 적은 전력으로 많은 적군을 상대하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이곳에서 전투를 지휘한 그리스군의 지도자는 스파르타의 장수 레오니다스(Leonidas I, Λεωνίδας, 540 BC~480 BC)였다.
사실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는 오로지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주목하고 총공세를 펼쳤다. 그리스의 수많은 도시국가들은 그리스 본토와 소아시아에 걸쳐 있었다. 그들은 막강한 페르시아의 군대 앞에서 항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항복의 표시로 ‘흙과 물’을 크세르크세스에게 보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리스의 두 대표 도시뿐이다. 그들을 향해서 소아시아의 사데(Sardis)에서 출격한 페르시아군은 이제 그리스 본토에 들어왔고 가장 중요한 길목인 쎄르모쀨레에서 첫번째 대결을 앞두고 있었다.
쎄르모쀨레에서 양군이 진을 치고 페르시아의 총공격이 있기 하루 전 크세르크세스는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에게 항복을 종용하는 편지를 보낸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기를 내려놔라!” 이에 대하여 레오니다스는 “와서 가져가 보시라!”(Come and take them!)라고 짧게 답을 보냈다. 이때 레오니다스가 보낸 답장이 헬라어로 ‘몰론 라베’(Μολὼν λαβέ)였다!
3일간의 전투에서 레오니다스의 스파르타군은 전멸했다. 그들을 돕기 위해서 남은 테베의 용사들도 함께 그곳에서 쓰러졌다. 그들은 좀더 오래 버틸 수도 있었지만 그들에게 배신자가 있었다. 그는 에피알테스였다. 그가 페르시아인들에게 비밀통로를 알려주었고 그곳은 스파르타군의 배후를 칠 수 있는 길이었다. 그렇게 레오니다스와 스파르타군은 쎄르모쀨레에서 장렬하게 전사했다.
스파르타인들은 어려서부터 용맹하게 양육되었기에 모든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항복을 하는 그 절대적인 제국일지라도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 것일까? 그들이 그런 희생을 각오하면서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이 싸움과 희생을 통해서 어떤 결과를 기대했을까? 역사가들은 법이 만인에게 적용되는 세상에서 살 것이냐 아니면 법의 지배 또는 법치주의라는 이름으로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 모든 백성에게 법이 적용되는 세상에서 살 것이냐의 싸움이었다고 한다. 사람이 어떤 희생을 한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무모한 기개만이 아니라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도 쎄르모쀨레에는 스파르타군의 희생을 기리는 기념비가 있다. 그곳에는 그리스의 서정시인 시모니데스가 쓴 시가 아래와 같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Ὦ ξεῖν', ἀγγέλλειν Λακεδαιμονίοις ὅτι τῇδε
κείμεθα, τοῖς κείνων ῥήμασι πειθόμενοι.
오! 나그네여! 스파르타인들에게 말해다오!
우리가 여기에 누워있다고, 우리는 말씀(법)에 순종했다고.
그런데 아무리 좋은 뜻을 가지고 희생했을지라도 그 희생을 기리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헛되지 않는다. 또한 그 희생을 발판으로 삼아 자신의 용기를 더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 희생은 승리를 위한 밑거름이 된다. 페르시아의 군대를 막아야 한다는 뜻은 스파르타와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법의 통치가 만인에게 실현되는 세상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자긍심이 있었다. 절대권력을 가진 왕들이 통치하는 세상에서 민주정의 길을 개척한 사람들이 가지는 자부심이었다. 그 자부심으로 그리스군은 페르시아군을 살라미스로 인도하여 거기서 최후의 승리를 거둔다.
나는 2025년 3월 하순에 목회자 37명과 함께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방문국은 튀르키예, 그리스, 이탈리아(로마)였다. 이 성지순례에서 가장 인상깊은 장소는 고대 그리스군이 페르시아 제국을 맞서서 싸운 마라톤과 쎄르모쀨레, 그리고 살라미스다. 그 지역에서 거둔 그리스의 승리는 ‘동방의 태양’이라고 부르던 페르시아의 위엄과 영광에 대한 승리였다. 당연히 새로운 태양은 그리스를 부르는 새로운 말이 되었다. 그리스 문명은 페르시아 전쟁의 승리 이후에 비로소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우리의 성지순례는 ‘사도 바울 행전’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어서 사도 바울이 전도를 했던 여정을 따라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지나갔던 그리스의 길에는 그로부터 약 500년 전에 페르시아 제국의 침공을 막아내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던진 용사들이 피를 쏟은 곳이었다. 그들이 거둔 승리의 상징이 파르테논 신전이고 델피에 세운 뱀기둥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그리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는 승리를 기념하여 파르테논 신전을 재건했다. 그리고 델피에는 아폴론 신에게 승리의 헌물로 세 마리의 뱀이 받치고 있는 삼각대 모양의 기념물이 세워졌다. 그 뱀의 몸에는 전쟁에 참전한 31개의 도시국가 이름이 새겨졌다.
우리가 튀르키예의 이스탄불에 갔을 때, 거기서 히포드롬 광장이라고 부르는 술탄 아흐메트 광장에 세워진 뱀 기둥을 보았다. 그 뱀 기둥은 본래 델피에 세워졌던 것을 콘스탄티노플을 건설할 때 옮겨온 것이다. 그것은 본래 페르시아를 물리친 그리스인들이 아폴론에게 바친 승리에 대한 감사의 기념물이었다. 그리고 그 승리에는 쎄르모쀨레에서 ‘몰론 라베!’를 외치며 페르시아에 맞섰던 레오니다스와 그 용사들의 희생이 있었다. 모든 기념물에는 그 이전에 조국과 정의, 그리고 진실을 위해서 자신을 바친 이들의 희생과 정신이 서려 있다.
튀르키예의 ‘차나칼레1915다리’도 그런 기념물이라고 할 수 있다. 튀르키예 정부는 민주공화국 출범 100주년을 기념하여 2023년에 차나칼레 해협을 지나는 다리를 건설할 계획을 세웠다. 그 거대한 공사를 우리나라 기업이 맡아서 우수한 기술력과 정성으로 공사기한보다 일년을 앞당겨서 2022년에 완공한 다리가 그것이다. 우리는 이번에 성지순례를 하면서 튀르키예에서 그리스로 넘어가는 길에 바로 이 다리를 건넜다.
이 해협은 다르다넬스 해협이라고도 하는데 바로 이 해협을 건너기 위해서 2,500년 전에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는 다리를 건설하게 했다. 그들의 다리는 배를 잇대어 만든 임시적인 것으로서 모두다 이내 태풍에 부서지고 만다. 그런 역사적인 자리에 우리나라 기업이 만든 다리가 오늘도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튀르키예 정부가 기리고 싶은 것은 그들의 공화국이 출범한 1923년의 정신이다. 그들은 오스만 제국의 술탄 왕정을 청산하고 민주공화정을 수립했다. 그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 그들은 독립전쟁에 참전했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피를 흘렸다. 그곳이 바로 갈리폴리 반도에서 일어난 갈리폴리 전투였다(1915년 4월 25일 ~ 1916년 1월 9일).
이 전투에서 연합군에 속한 나라들은 영국과 프랑스,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였고 오스만 제국은 독일편에 섰다. 전쟁은 오스만 제국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 전투에서 연합군은 51만명 중에 25만명을 잃었고, 튀르키예의 오스만제국은 31만명 중에 25만명의 전사자를 냈다. 전투는 오스만제국의 승리로 끝났지만 전사자 비율로 보면 연합군은 49%를 잃은 반면, 오스만은 병사들의 80%를 잃은 것이다. 그야말로 피로써 쟁취한 승리였다. 이 전투에서 공을 세운 무스타파 케말은 나중에 장군으로 승진하고 결국 튀르키예의 초대 대통령이 된다.
갈리폴리 전투를 이끈 무스타파 케말 장군은 그때 장병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무너지면 오스만 제국 본국이 무너지고,
우리가 이젠 노예가 되는 생활이 기다리고 있다.
제군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오늘은 살아남기 위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라
죽기 위하여 싸워야 한다. 그러나 이는 개죽음이 아니다.
오늘 우리들의 죽음이 조국을 지키는 밑거름이 될 것이며
그대들 이름은 남을 것이다.
나 역시 여기에서 무너지면
제군과 같이 시체로 뒹굴고 있으리라.”
이번 성지순례를 하면서 나는 튀르키예에서 두 가지 장면을 주목했다. 하나는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가 많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튀르키예 국기가 관공서는 물론 일반 가정집에도 많이 달려 있다는 것이다. 나는 튀르키예 사람들의 애국심에 대하여 관심을 가졌다. 그들이 이렇게 나라를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던 중에 나는 튀르키예를 떠나던 날 차나칼레 1915다리를 건너면서 그 이유를 깨달았다. 바로 그곳에서 100년 전에 독립을 위해 그렇게 많은 튀르키예 청년들이 죽었던 것이다. 그들의 희생으로 오늘의 튀르키예가 있고 그것을 기념하여 이 다리를 건설했다.
성지순례는 더 잘 살아보려는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그것은 선구자들의 신앙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자취를 찾아보는 여행이다. 그런데 나는 이번 성지순례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그리스와 튀르키예에서 찾았다. 그것은 레오니다스의 답신 ‘몰론 라베!’에 담긴 결기이며 차나칼레1915다리가 세워진 곳에 흘린 튀르키예 젊은이들의 헌신이다. 어차피 인생은 금방 지나간다. 그런데 가장 가치 있는 삶은 소중한 가치를 위해서 자신을 바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기 위하여 우리는 두 눈을 부릅뜨고 이 세상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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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GPT의 말:
「몰론 라베!」 요약 (한 장 분량)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 제국의 크세르크세스 왕이 그리스를 침공하자,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는 300명의 병사와 함께 ‘뜨거운 문’이라 불리는 쎄르모퓔라이에서 결사항전을 벌인다. 페르시아의 항복 권고에 레오니다스는 “몰론 라베(와서 가져가 보라)!”며 거절했고, 이는 자유와 법치, 조국을 위한 희생정신의 상징이 되었다. 스파르타군은 전멸했지만, 그들의 희생은 후속 전투에서 그리스 연합군의 사기를 높이며 승리의 기반이 되었다.
기자는 2025년 성지순례 중 이 전쟁의 흔적이 남은 마라톤, 쎄르모퓔라이, 살라미스를 방문하고, 페르시아 전쟁의 승리가 그리스 문명의 도약과 민주정 발전에 큰 전환점이 되었음을 되새긴다. 이와 함께 튀르키예의 차나칼레1915다리 건너며, 100년 전 독립전쟁에서 목숨을 바친 터키 청년들의 희생과 그들이 만든 오늘의 국가에 감동받는다. 레오니다스의 결기와 터키 청년들의 헌신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라는 삶의 본질적 질문에 대한 귀한 통찰을 전한다.
ChatGPT의 말:
이 글의 가치와 장점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글의 가치
글의 장점
요약
이 글은 고대 그리스의 명장 레오니다스와 그의 용사들이 자유와 법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와 희생의 의미를 깊이 있게 성찰합니다. 역사적 사실과 현대의 경험을 연결하여,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삶의 질문에 감동적이고 철학적인 답을 제시하는 점이 매우 가치 있고 뛰어난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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