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회개는 과정 누가복음 13장 3절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우리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들과 같이 멸망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회개는 어느 한순간이 아니고 과정 프로세스(과정 절차 처리 가공하다 공정)이다.
어느 순간에 회개를 경험하고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함을 받았으며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고 완전히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버리는 그런 일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회개는 우리가 그 즉시로 결단하고 내리는 선택과 어떤 행동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이다.
어느 순간에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울며 부르짖으면서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였다. 많이 볼 수 있는 이 광경은 교회의 어떤 집회 때 일어난 것이 분명하다. 이런 경우에 경험하는 것 같다. 또 설교 말씀이 끝나고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받았는데 자신의 잘못이 생각이 나서 그 죄를 깨닫고 울며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회개라 생각한다. 목사들은 성도들의 이런 모습을 보며 회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회개로 이어질 수 있지만 많은 경우 자신의 죄를 후회하여 울고 있는 것일 뿐 회개가 아니다. 사도행정 5장 1-11절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세 시간쯤 지나 그 아내가 그 생긴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 오니 베드로가 가로되 그 땅 판 값이 이것 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가로되 예 이뿐이로라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한대 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 남편 곁에 장사하니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의를 외치기보다, 사랑의 하나님을 외치기 쉬운 시대가 되었다. 요한일서 4장 7-9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설교자들이 설교할 때에 성경을 한마디로 말하면 사랑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인 것 같으나 회개와 믿음과 성령을 빼버린 쭉정이 같은 말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저버린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신데 그 사랑을 완성하는 것은 먼저 하나님을 믿고 회개하는 것이고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으면 성령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되어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게 되어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된다. 요한복음 16장 13절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즘 설교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복과 성공과 그리고 치유에 초점이 맞춰 설교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공의와 의를 설교하지 아니하고 성도들이 좋아하고 관심 있어 하는 설교에 집중하다 보니 그런 설교를 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설교가 틀린 것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적절하게 필요한 것이지만 성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말씀을 무너뜨리고 성경의 진리를 빼고 더하는 것으로 성경 진리를 왜곡하는 것이 된다.
지금은 하나님의 공의와 의를 외치면 자유주의 신학이거나 사회복음을 외치는 자라고 오해받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사람이 무엇을 행하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 가서 잘못했다고 말하며 용서를 구하면 모두 용서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말이다. 히브리서 6장 6절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우리가 세상에서나 교회에서 목격하는 것은 바로 이런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진리의 길을 가르치실 때, 하나님의 공의와 의가 하나님의 진리이며 기준이라고 말씀하신다. 요한일서 5장 7절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하나님은 자비와 인애의 하나님이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이다. 디도서 3장 4절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하나님은 의로우셔서 죄를 용납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이 용서하실 때는 의로운 방식으로 용서하신다. 베드로후서 2장 4절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가 당할 모든 죄에 대한 책임을 예수 그리스도께 담당시키셨다. 히브리서 9장 28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죄의 책임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가 시킴으로 죄를 사하셨다. 죄 사함에 대한 성경에서의 정확한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서 정확한 진리가 우리의 삶에 실제가 되지 않고 있다.
사도행전 26장 18절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자신에게 선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과 전적으로 타락한 자신을 보고 죄책감에 몸부림 쳐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