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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참된 영적 지도자의 부재(딤전1:11-17)
우리에게 있어서 영적 지도자는 참으로 중요하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 어떤 지도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우리 신앙의 모습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믿는 사람들이 신앙적 침체로부터. 벗어나는데. 있어서, 영적 지도자들의 도움은 필수적이다.
진정으로 목자의 바른 인도가 없으면 갈 길을 알지 못하고 허덕이게 되는 것이 양들의 형편이기 때문에, 우리는 지도자들이 영적 통찰력과 분별력을 상실할 때에는, 엄청난 비극이 초래된다는 교훈을 받게 된다.
따라서 성도들은 진정 하나님께서 택하여 세운 사람, 그리고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는 지도자를 만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일하고,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영적 지도자가 되는 것보다 더 영광스러운 것은 없다.
사실 모든 성도가 신분적으로는 목회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해도 모든 사람이 목회자로 소명 받은 것은 아니며, 누구나 능력과 자질을 갖추고 목사의 안수를 받은 것도 아니다.
고귀한 것은 목회직 자체이지, 그것을 수행하는 목회자가 무슨 독특한 신분적 자격이나 인격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목회자가 목회직을 주 안에서 수행할 때 그의 사역은 권위 있는 것으로 존경받게 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보내지 않은 사람이 교회의 지도자 노릇하려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 교회를 다스리신다는 교회통치 원리를 망각한 신성모독 행위이다.
세상에서는 사람 관계나 재능, 학벌, 문벌, 성별 등의 사람 중심적 기준에 따라 사람을 일정한 직위에 앉히지만, 교회의 직분은 그렇지 않다.
교회의 직분은 하나님께서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번드르르한 외모를 보시지 않고 그 중심을 보시는바, 당신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일꾼으로 선택하신다.
선택된 일꾼은 신앙의 안목에서 방향을 제시하는 능력이 필수적으로 요청되고, 유능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확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일꾼들은 먼저 하나님과 개인적인 교제를 깊이 맺어야 하고, 자신들의 사명과 직분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에 힘을 얻어야 한다.
동시에 직분을 주시기도 하며 폐하기도 하시는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하고, 아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을 붙드시고 세우셔서 승리의 도구로 쓰신 하나님에 대해 떨리는 입술을 크게 벌려 감사해야 한다.
현시대의 문제는, 내 노라는 자칭 지도자는 이 땅에 많지만 진실로 그리스도를 그대로 따르는, 하늘의 성덕을 갖춘 목회자는 드물다는 것이다.
신학자는 많으나, 무릎을 꿇는 자는 많지 않다는 점이다.
늘 강단에 선 사람들은, 한결 같이 거룩한 행실을 강조하며 예수께서 가르치신바 높은 수준의 삶을 권면 하지만, 그 가르침대로 실천하여 먼저 모범을 보이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따라서 성도 중에는 설교자의 표리부동한 모습을 보고서 실망하여 비판과 독설을 던진 후, 자신 또한 성경의 가르침을 지키는 생활로부터 멀어져가는 사람이 많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빙자하여 자기가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특별한 사역자인 것처럼 행동하는 사역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런 그릇된 특권의식은 말로만 주를 부르면서, 예수로부터 당연히 상급을 받을 권리가 있는 양 착각하고 있다.
즉 그들은 사랑과 윤리의 종교를, 흥정과 기복의 종교로 오해하고 있는 오늘날의 소위 구원 중개업자들의 자기 착각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참으로 성령의 지배함을 받지 않고 자신의 권위나 경험을 내세우며 잔재주만을 피우는 사람들은 진정한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영적 지도자들은 지금의 역량을 누구로부터 얻은 것인지를 확실히 알고 권위주의적인 자세를 버리고 겸손하여야 할 것이다.
(요10:11-12)요즘 들어 삯꾼 목자들이, 교회를 어지럽히고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악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다.
겉과 형식만 번지르르한 그들의 내부에는 부패한 무덤처럼 위선, 혐오, 교만, 시기, 악독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미명 아래 자기 내부의 더러운 것들을 위장하고 있다.
가라지와 같은 사람들은 교인들의 유익보다 자기의 이익에 더 많은 관심을 두기에, 교회를 해치고 선량한 성도들의 마음을 실족케 한다.
저들은 그리스도께서 몸소 가르쳐 주신 사랑의 본을 따르지 않으며 다만 자기 자신이 선망의 대상이 되려고 획책하는 가식 자들이요, 음모꾼들이다.
그들은 처음에는 자신들의 본색을 숨기고 사람들에게만 인정를 받으려고 한다.
그러다가 우리에게 신앙적으로 허술한 면이 보이기 시작하면 곧바로 자신들의 내면을 드러내 보인다.
그들의 사회의 정의를 부르짖으면서도 결국에 가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고, 사회와 사람들을 더욱 불의한 곳으로 인도해 나가려 하는 것이다.
그는 집에 있으면 꼭 성실한 것 같고, 나가 활동하면 점잖고 덕이 있는 듯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두 그를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칭찬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가 훌륭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비위를 잘 맞추는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올바르다고 생각한 것은 행하지 못하고 다수 사람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따라 행한다.
이러한 사람은 많은, 사람들이 원하면 얼마든지 악을 행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마음에 스스로 중심이 없고 사람들의 칭찬을 듣고자 그들의 눈치만 살피는 사람은 오히려 덕을 혼란 시키는 사이비 군자인. 것이다.
오늘날 현대교회가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려는 열정이 사라지고 사람의 권위와 탐욕이 꿈틀대기 때문이다.
(요2서1:10) 요한은 잘못된 이론을 퍼뜨리는 거짓 교사들과는 상종하거나 인사도 하지 말 것을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는데, 이는 거짓 교사들과의 개인적인 감정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 복음의 순수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교회를 이단으로부터 지켜 보호하려는 목회자의 간곡한 심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참 교사는 언제나 진리가 목적이지만, 거짓 교사는 늘 자신의 이익 추구가 목적이다.
(골3:5)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의 동기는 탐심이다.
거짓 교사들은 탐심을 가지고, 복음을 자신의 개인적인 유익의 도구로 삼으려고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거짓 교사들은 성도들을 자신의 이를 채우는 수단으로 삼는다.
거짓 교사들은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뜻을 내세우며 자기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뻔뻔스럽게 행한다.
거짓 교사들은 언제나 부드러운 말로 사람들을 위로한다.
그러나 그들의 메시지에는 하나님과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 즉 복음이 빠져 있다.
그리스도가 교훈의 중심이 아니라 밖에서 끌어들인 어떤 것이 중심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을 미혹한다.
그들이 지은 말이란, 능란하고 부드럽고 쉬운 말을 뜻한다.
그들의 메시지는 생명에 이르게 하는 좁은 길을 인정하거나 가르치지 않으며, 거짓 평강과 현세적 축복을 강조한다.
경건한 삶보다는 쾌락주의적 생활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육체적 본성에 따라 사는, 삶을 교리적으로 합리화시켜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주장한다.
그들은 염치도 체면도 부끄러움도 모르는 부도덕한 사람들이고 죄를 지어도 회개하지 않는 뻔뻔스러운 사람들이다.
그들의 영적 교훈이나 삶의 모습이 주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 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그것이 자기 마음속에서 지어낸 것이라면, 교회는 파멸에 이르고 말 것이다.
이러한 거짓 교사들은 공동체의 사랑의 배를 파선시킬 암초와 같은 위험인물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마치 추방된 죄인이 가만히 마을에 들어오듯 교회에 들어와서 성도들을 미혹하고 범죄에 빠뜨리는 현상은, 작은 누룩이 빵 전체를 부풀리는 것처럼 전체 교회의 영적 성장을 방해하는 심각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악인들 숫자가 많기, 때문에, 참된 일꾼들이 고난을, 당한다.
왜냐하면. 세상은 다수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소수에 대해서는 무시한다.
어느 한 집단의 범죄도 소수의 범죄자로부터 시작된다.
아홉 명의 선한 사람이 한 명의 악인을 계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 명의 악인이 아홉 명의 선한 사람을 악하게 만들기는 쉬운 것이다.
(창8:21) 사람의 본성이 죄악에 물들어 있고 또 사람의 본성이 죄악을 즐겨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리보다 거짓을 더 쉽게 믿는 것이 사람의 타락한 성품 중의 하나임을 알고 말씀에 대한 분별력을 키워서 어떠한 극한 상황 속에서도 진리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이 일반 성도들의 열심을 일깨우기 위하여서는 강대상 위에서의 공허한 외침보다는, 먼저 하나님 앞에서 신앙으로 모범을 보이고, 또, 늘 격려하는 마음으로 대하여 성도들이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도록 잘 이끄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오늘날 대개의, 사람들은 온갖 양상으로 타락하여 가고 있는 세상을 목도하면서도 아니요.라는 말을 과감하게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비루한 태도는 옳은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옳다는 말을, 못하고 만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든 옳은 것은 옳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진리를 위하여 살아야 할 필요가 있으면 살고, 죽어야 할 필요가 있으면 죽을 수도 있어야 한다.
또한 그 어떤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키지 않고 순수한 언어로 말씀을 전파해야 하며, 지도자는 자기가 속한 사회의 영적상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드러나거나 숨겨진 죄악을 신랄하게 지적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따라서 오늘날 주의 뜻을 전할 특권과 책임이 있는 복음 전파자들은 자신의 욕망과 견해를 일단 접어두고 오직 그 분의 뜻을 바로 분별하고 그것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거룩한 입술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대는 거룩한 분노가 참으로 적다.
오늘날 심판과 종말을 경고하는 공의의 목소리, 분노의 음성은 적고, 상아 상에 누워 비파에 맞춰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는 음성만 가득하다.
따라서 곳곳에서, 삯꾼 목자가 양들이 듣기에 좋은 소리, 귀에 간지러운 소리를 하며 권력과 야합하며, 돈의 노예가 되어 있다는 자성과 비판의 소리가 높습니다.
이 시대에 영적 지도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담대하게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고, 진리를 미워하는 자들 앞에서 마땅히 해야 할 말을 할 수 있는 용기이다.
설교자는 군중의 인기나 욕구에 부응하여 말씀을 왜곡해서는 안 되며,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신앙과 양심에, 입각하여 말씀을 선포해야 한다.
참다운 선지자는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전달하는 사람이다.
영적 지도자는 성령에 온전히 사로잡혀 자신이 속한 집단이 안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간파하고, 그중 죄악 된 현실에 대해서는 결코 주저함이 없이 지적하고 개혁해 나가야 한다.
우리가 선택해야 할 목자는 바로 이런 사람들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열심과 그 뜻을 분별할 줄 아는 능력의 소유자만이 하나님의 사역자가 될 자격이 있다.
오늘의 많은, 종들은 자신의 의욕을 앞세우기만 좋아하지 하나님의 감동을 소홀히 하고 있다.
의욕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감동 없이는 절대로 바르게 수행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께서 답답하고 안타깝게 여기시는 부류는 이와 같이 그리스도 없이 기독교에 열심인 종교인들이다.
하나님은 종교인들이 아닌 그리스도인들을 원하신다.
세계 도처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만나기란 비교적 쉬우나 그리스도로 채워지고, 그들의 목표가 그리스도인, 인 그런 그리스도인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많은 일을 하는 그리스도인, 종교적인 그리스도인, 그리스도를 위해 활동하는 활동적인 그리스도인을 만나기는 쉬우나, 그리스도와 하나 되고, 그리스도로 채워지고, 그리스도로만 점유된, 그리스도인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로 충만한 사람,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람,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부인하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그리스도로 충만한 사람이다.
지도자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으며 어떤 인위적인 수단이나 방법, 노력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의 권능으로 사역을 수행해야 한다.
오직 왕이신 하나님만이 당신의 교회를 온전히 다스리시고 주장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모든 일에 있어 오직 하나님 한분에게만 매달려야 하고, 그 무엇보다도 교회는 먼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이끌려져야 한다.
그리고 조직 체제는 하나님의 능력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보조적 방편에 머물러야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 양떼를 치는 일에 있어 지나친 인위적인 방법들만 이용하고 있는 듯, 하니 참으로 안타깝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의 성취를 작정하셨지만 사람은 그 일의 성취를 위한 책임을 부여받았다.
따라서 목회자는 하나님께 대한 간절한 기도와 회중들에 대한 신실한 말씀 선포만을 목회의 수단으로 삼아야 하고, 하나님께 대한 순결한 신앙을 간직해, 현대 교회의 악습과 죄악에 대해서 책임감을 갖고 회개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경건의 비밀을 가진 사람만이 담대하게 다른 사람들을 책망하거나 교훈하는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이다.
누가 먼저 진리의 횃불을 밝혀 드느냐에 있다.
일단 그런 횃불이 밝혀지면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리로 모여들기 마련이다.
교회에서는 지도자의 이름이 드러나서는 결코 안 되며, 오직 한 분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일꾼은 하나님의 영광을 제일의 목표로 삼아야 하며 이러한 일꾼의 사역은 언제든지 형통하다.
지도자로 부름, 받은 각자는 철저한 자기 부정과 매사에 주를 위해서 인내하며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자신의 이권을 추구하지 않는 자세가 중요하다.
바로 이 같은 지도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