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9
ㅡ 신채호와 '조선상고사' ㅡ
[고조선시대를 논하면서 단재의 조선상고사 내용에 대한 언급이 없네요
'조선상고사'를 위서로 보시는지요?]
어떤 분이 어제 올린 제 글에 단 댓글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제가 '단재 신채호 선생(이하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이 부족해서 언급하지 못했습니다.
윗 댓글을 보고 '조선상고사'를 다 읽어 보지는 못했지만 이번 기회에 인터넷을 찾아보며 공부는 했습니다.^^
'조선상고사'는 위서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저 또한 신채호가 말하는 왜곡된 한국사를 철저히 교육받은 사람으로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신채호 주장을 곧이 곧대로 모두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신채호는 본디 영웅주의적 민족주의 성향을 짙게 띠었으나, 러시아 혁명 이후 민중사관을 받아들여 사회주의와 아나키즘(무정부주의) 성향으로 사상의 변화를 보였습니다. 그래서 극우단체는 신채호를 공산주의자로 매도하기도 합니다.
'고대사는 흐른다' 제가 쓴 글 중에서 신채호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신채호가 '일천년래대사건'이라 평가한 '묘청의 난'과 '김부식 삼국사기'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신채호의 '묘청의 난'에 대한 평가를 감동적인 정설로 받아 들였습니다.
'김부식과 삼국사기'를 표피적 으로만 바라보며 비판한 글을 일간지에 기고문으로 쓰기도 했습니다.
이번 고대사도 흐른다 시리즈 글에서 그런 나의 역사적 편견에 대해 사과하고 '김부식과 삼국사기' 에 대해 좀 더 깊이있게 바라보며 정리했습니다.
그렇다고 신채호 민중적 역사관을 비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신채호가 당시 처한 상황과 그가 가지고 있던 역사관으로는 충분히 주장할만한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좀 더 넓어진 역사적 시각으로 바라본 신채호 역사적 시각은 지나치게 민족주의와 투쟁과 저항주의에 빠져있어 객관성과 공정성에서 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신채호 역사관은 기존 역사 인식을 거부하고 새로운 역사 인식체계를 수립하려 했습니다.
아래는 신채호 역사관에 대한 평가한 내용 중 인터넛 나무위키에 나온 내용입니다.
<신채호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서의 역사’를 파악하고 있다. 즉, 그는 역사 발전의 원동력을 사물의 모순·상극관계에서 파악하고 있는데, 이는 헤겔류의 소박한 변증법적 논리가 도입된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그는 이러한 모순·투쟁 관계가 역사로서 채택되기 위해서는 시간적인 상속성과 공간적인 보편성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시간적인 상속성과 공간적인 보편성을 가져야 한다"는 문구가 너무 어려워 찾아보니 "일반적으로 어떤 개념, 원칙, 또는 법칙이 특정한 시공간에 국한되지 않고 널리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즉, 더 쉽게 말하면 '시간적 상속성' 은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변함없이 적용될 수 있어야 하고, '공간적인 보편성'은 어떤 개념이나 원칙이 특정 지역이나 문화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채호는 ‘역사는 역사 이외의 다른 목적 때문에 기록해서는 안 되지만’ 우리 상고사는 ‘작자의 의도에 따라 많은 사실 관계가 달라진’ 불완전한 역사라 규정하면서, 신채호도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분명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조선상고사'를 집필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신채호가 조선상고사 집필 이유로 드는 것은 <묘청이 유교도 김부식에 패배한 이후 이 땅에는 유교도가 득세하게 되었으며, 그 영향으로 중국을 높이고 스스로를 낮춰 역사를 서술하는 경향이 지배하게 되었다고 단언하고, 또한 “내란의 빈발과 외적의 출몰이 우리나라 고대사를 쓰러뜨리고 무너뜨렸다”는 조선시대 실학자 '안정복' 의견에 대해서도 “내란이나 외환보다는 조선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 조선사가 쓰러지고 무너졌다”고 밝히고 새로운 한국사 인식체계를 바로잡기 위해서 신채호는 그 당시 “현존하는 서적들을 갖고 장단점을 파악하고 대조”하여 1천 년 이상 역사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되거나 축소된 우리 고대사를 바로잡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신채호가 조선상고사에서 삼국사기에서는 찾을 수 없는 단군시대를 많은 부분 할애해 서술하고, ‘대중국 투쟁’ 선봉에 선 고구려 역사를 중요하게 기록한 것 등은 ‘작자 의도로 사실 관계가 달라진 불완전한 역사’를 제대로 서술하고자 한 신채호 의지가 반영되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럼 '조선상고사' 전체는 아니지만 우리가 상식선에서 쉽게 알 수있는 정도로만 정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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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조선상고사'는 조선시대 이야기가 아닌 단군시대부터 백제부흥운동까지 다루고 있으며, 지난 1천 년간 역사가들이 감추고 축소한 우리 고대사 진실을 규명한 책이다고 주장한다.
또한 '조선상고사'는 반제·반봉건 민족주의에 입각하여 유교사학과
개화기사학·일본황국사학의 한국사 왜곡을 시정하고 이들 잘못 된
역사인식·역사연구방법을 극복하려 한 한국근대역사학 중요한 책이다.
'조선상고사'는 신채호가 독립운동으로 10년 실형을 받은 뤼순감옥에서 1931년 6월부터 10월까지 조선일보에 '조선사'라는 제목으로 연재하는 도중 1936년 옥중에서 뇌일혈로 순국할 때까지 쓴 책이다. '조선상고사'는 신채호가 순국한지 12년이 지난 1948년이 되어서야 출간되었다.
조선상고사는 총 12편으로 단군시대부터 7세기 백제멸망과 백제부흥운동까지 서술했다.
신채호는 1910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1910년대 후반에 저술한 '조선상고문화사' 에서는 만주·한반도와 부여족 식민지로서 중국본토 일부까지 한국고대사 영역에 포함시켰다.
그후 1922년경까지 전체 한국사를 구상하면서 이때 '조선상고사' 본문이 완성되었다.
'조선상고사'에서 신채호는 <단군·기자·위만·삼국>으로 계승과 <단군·기자·삼한·삼국>으로 계승되는 인식체계를 거부하고 조선시대 실학자 '이종휘의 동사' 에서 영향을 받은 듯,
<대 단군조선·고조선·부여·고구려> 중심 역사인식체계를 수립하였다.
신채호는 부여를 우리민족 계보 중심으로 아주 중요시 했다. 고구려 백제가 부여족 후손들이 건국했다고 보았다.
조선상고사는 제1편 총론, 제2편 수두시대, 제3편 삼조선 분립시대, 제4편 열국쟁웅시대(중국과의 격전시대), 제5편(一) 고구려의 전성시대, 제5편(二) 고구려 중쇠와 북부여의 멸망, 제6편 고구려·백제 충돌, 제7편 남방 제국 대(對)고구려 공수동맹, 제8편 삼국 혈전의 개시, 제9편 고구려의 대(對)수나라 전쟁, 제10편 고구려의 대(對)당나라 전쟁, 제11편 백제의 강성과 신라의 음모 등 모두 11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편 총론에서 신채호는 그의 역사이론을 전개했다. (앞 서문 참고)
신채호는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하기 위하여서는 사료의 선택·수집·비판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역사학 연구 방법론으로서 '실증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 이념과 방법을 제시하면서 신채호는 과거 사대주의적 이념에 입각하여 한국사를 서술한 유학자들과 당시 근대적인 역사학을 한다던 식민주의 사가들을 비판하고, 그 비판 위에서 이 저술 목적과 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신채호 또한 감옥에서 쓰다보니 자료부족과 기억력 쇠퇴로 '실증주의'에서 아예 벗어난 내용도 꽤 된다.
특히 삼국 중에서 고구려를 가장 최고로 생각하며, 신라를 비하하는 내용이 많다.
신채호는 역사를 투쟁의 역사로 보는 시각인데 고구려나 백제는 단군으로부터 내려온 우리민족 정통성을 이어온 부여국 후손들로서 중국과 대외투쟁을 하면서 성장된 국가인데 신라는 부여국 후손들도 아니어 민족적 정통성도 없으며 중국과 대외투쟁도 거의 없었다 주장한다. 게다가 신라는 중국 당나라를 끌어들여 우리민족 정통성을 잇고있던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키고 축소통일을 이룩했다 하여 신라에 의한 통일을 '김유신 음모론'에 불과하다고 언급하며 심하게 평가절하했다. 이에 반해 신채호는 '백제부흥운동'을 크게 다루며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는 신채호가 일제강점기시대에서 민족중심적인 시각이 투영되어 역사 서술을 했다는 점이 분명해 보인다.
이는 원간섭기 시절에
'승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하고 단군신화를 실은 목적과 동일했다.
신채호가 쓴 조선상고사는 우리민족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인 일제강점기 때 민족뿌리를 찾고자 하는 의도에서 그 당시 열악한 연구 현실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고대사를 밝히려 시도한 근대적 역사학 시초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는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
신채호가 서문 중에서 "역사는 역사 자체를 위해 기록해야 한다"는 말과 역사 '실증주의'를 주장했는데, 그와는 다르게 신채호가 주장하는 고조선, 고구려가 만주를 넘어 중국 중원까지 영역을 넓혔다는 것이나 백제가 중국은 물론 일본까지 식민지로 두었다는 주장은 앞으로 더 많은 유물이나 기록이 발견되지 않는 한 '환단고기' 같은 조금은 허황된 소리가 될 소지도 있다.
어쨌든 신채호는 역사를 아래와 같이 생각했다는 말로 부족하나마 오늘 글 끝을 맺는다
["역사란 무엇인가?
인류 사회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으로 발전하고 공간으로 확대되는 심적(心的)활동 상태의 기록이니, 세계사라 하면 세계 인류가 그렇게 되어온 상태의 기록이요, 조선사라 하면 조선 민족이 이렇게 되어온 상태의 기록이다."]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 제1장, "역사의 정의(正義)와 조선역사의 범위" 중
ㅡ 초롱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