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년 전 어느 살롱에서 일할 때 일이다.
거의 문 닫을 시간이 됐는데 한 여자가 급하게 들어오는 것이었다. 내일 병원에 가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며 제발 머리를 잘라 달라고 사정하는 것이었다. 차마 거부하지 못하고 자리에 앉으라 했는데 갑자기 고민거리가 생겼다. 이 여자가 키가 거의 어린 아이 수준인데 부스터를 깔자니 그래도 어른인데 예의가 아닌 것 같고 안 깔자니 너무 낮아서 자르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결국 차라리 내가 불편을 감수하기로 하고 그냥 앉혔다. 앉혀 놓고 보니 등에 커다란 혹이 있는 걸 알았다.
여자는 참 말이 많았다. 그러나 이런 몸을 하고서도 발랄하게 말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긴 했다
그러나 그녀의 얘기를 듣다보니 그녀의 불행이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녀는 자기 몸에 얼마나 많은 암이 들어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더군다나 아마도 자기는 6개월 이상은 살지 못할 거라고도 했다. 자신의 얘기를 마치 드라마의 등장인물 얘기하듯 덤덤히 말하는 그녀의 태도에 나는 충격을 받고 있었다. 죽음을 저렇게 독감이나
되는 듯 받아들이는 모습이 놀라웠다. 이렇게 그녀는 자신의 불행을 천연덕스럽게 말하고 있었고 그걸 듣는 나는 오히려 깊은 시름에 잠겨 남이 보면 내가 오히려 환자처럼 보일 만한 장면이었다.
머리를 다 깎고 났더니 그녀는 자신의 머리칼이 너무 드라이하지 않냐고 물었다. 내가 그저 담담하게 그런 것 같다고 했더니 그녀는 좋은 프라닥을 좀 권해 달라고 했다. 나는 짚히는 대로 몇가지를 보여줬다. 그랬더니 그녀는 그것 모두를 다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머리가 아찔했다. 아니 6개월 후면 죽을지 모른다는 여자가 이 많은 걸 다 뭐 하자는 건지 그건 족히 1년은 쓸 수 있는 양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못 판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아무 소리 못하고 다 계산해 주고 그녀를 보냈다. 나는 차마 good luck이라는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를 보내고 나서 나도 모르게거울에 비친 내 얼굴로 눈이 갔다. 그녀에 비해 엄청나게 건강하게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러자 여러가지 생각이 공격적으로 뇌리를 스쳐갔다 그 중에 하나
'넌 얼마나 복받은 인간인가'
감사하지 못하고 언제나 더 큰 것만을 바라는 파렴치한 인간의 슬픈 모습이었다.
첫댓글 어머나 세상에 이런일이~~~~
머리를 잘라주고 짤리고도 살아서 돌아가다니 대단하십니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