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벌레 백 마리와 죽은 벌레 백 마리를 상자에 차례로 넣었다. 다음날 살펴보니 벌레들이 고루 섞여 있었다. 산 벌레가 죽은 벌레 쪽으로 이동했겠는가 아니면 죽은 벌레가 산 벌레 쪽으로 이동했겠는가? 당연히 산 벌레가 이동했다. 바람이 불어서 우연히 죽은 벌레가 산 벌레쪽으로 이동했을 수도 있지만 이는 실험의 오염에 의한 노이즈다. 파스퇴르가 백조목 플라스크를 사용해서 노이즈를 제거했듯이 실험조건을 엄격히 하면 무조건 산 벌레가 이동한다. 살아있기 때문이다. 열은 물질의 살아있는 정도다. 절대 영도에서 열은 죽는다. 상온의 물질과 절대 영도의 물질을 같은 장소에 놓고 시간이 지나서 온도를 측정해보면 온도는 같아져 있다. 절대 영도의 물질에서 상온으로 열이 옮겨왔을 리는 없다. 이것은 확률이 아니다. 열은 절대적인 기준점이 있다. 열 뿐만 아니다. 모든 압력이 있는 것은 절대적인 기준점이 있다. 0기압이 있다. 수압도 0이 있다. 전압도 0볼트가 있다. 유압도 마찬가지다. 사회압도 있고 진화압도 있다. 모든 변화하는 것, 움직이는 것, 흘러가는 것에는 압력이 걸려 있고 압력은 절대기준 0도가 있다. 빛도 마찬가지다. 완전 암흑이 있다. 우리는 플러스와 마이너스 양쪽이 있다고 믿는다. 밝은 것도 있고 어두운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천만에. 밝은 것은 무한대고 어두운 것은 완전 암흑에서 멈춘다. 더 이상 어두워질 수 없다. 광자 0개, 광자 1개의 밝기를 셀 수 있다. 그 사이는 없다. 광자 0.5개의 밝기는 없다. 우리가 플러스, 마이너스 양쪽이 있다고 착각하는 이유는 우리가 적당한 압력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밝기를 광자 한개 단위로 측정하기는 어렵다. 열역학이 확률로 접근하는 것은 더 좋은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종의 꼼수다. 편법이다. 그것은 인간의 한계이지 세상이 원래 확률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에너지는 압력이고 압력은 방향이 있다. 압력 0이 있기 때문이다. 엔트로피의 법칙은 에너지의 방향성을 매우 어렵게 설명하지만 사실은 간단하다. 에너지가 방향성이 있는 이유는 에너지가 압력이고 파동이기 때문이다. 파동은 상쇄되어 멈춘다. 파동은 기준점 0이 있다. 보강간섭은 커지고 상쇄간섭은 작아진다. 커지는 것은 무한이고 작아지는 것은 0에 도달하여 멈춘다.
압력이 걸린 계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는 열역학과 같은 원리에 지배된다. 시야를 넓혀 사건의 메커니즘 전체를 봐야 한다. 열역학은 그 중에서 극히 일부분이다. 사건학, 의사결정학, 메커니즘학, 구조학의 눈을 떠야 한다. 자연과 인간의 모든 의사결정은 궁극적으로 메커니즘이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