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안식일과 초기 교부 문서
비 평 “그러나 사도 요한 이 기록한 계시록 1장 10절 ”주의 날“은 주후 95년경에 기록하였고,
박영관 주후 107.년에 기록된 이그나티우스(Igna-tius)의 서신 '마그네시아인들에게' 제9항[장]에서, ‘그러면 만일 구습을 따르던 사람들이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의 날을 지키는 새로운 소망에 이르게 되었다면 우리의 삶도 주님을 통하여 새로워진 것이다’라고 했다.“42
해 설 박영관 씨는 요한계시록 1장 10절의 “주의 날”이 일요일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요한계시록보다 15년쯤 뒤인 서기 115년경43 안디오 감옥의 감독 이그나티우스가 순교 당하기 위하여 로마로 잡혀가는 길에 서머나에서 마그네시아 교회 선지자들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을 찾아볼 수 없는 일요일 준수를 정당하게 해 줄 수 있을까?
변 증 가. 로마 황제 트라얀(Trajan . A.D. 98~117) 당시 안디옥교회의 감독이었던 이그나티우스가 순교를 앞두고 쓴 것으로 알려진 일곱 개의 편지가 세 가지 형태로 분류되는 여러 개의 사본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내용이 바르게 보존된 것을 확인할 수가 없고 대부분 4세기 이후에 가필한 것들이다. 그 외에도 가짜 편지도 여럿이 있어, 상당수의 학자들은 아예 모든 편지를 믿을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44 편지들의 골자는 교회의 권위에 복종하여 분열을 막으라는 것과 예수께서 육식으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당시의 이단인 가현설을 경계하라는 것이다. 또한 골로새 교회와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사도 바울의 편지처럼, 그리스도를 제쳐놓고 자신이 율법을 지킴으로 이룬 선행의 의로 구원을 얻으려는 유대 주의자들의 가르침을 논박했다.
나. 이러한 배경에서 비평에 인용된 구절의 참 뜻을 보다 분명히 알기 위해서는 앞뒤의 문맥을 주의 깊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다음은 바로 앞의 문장인 8장의 내용이다.
“만약 우리가 아직도 유대교 신앙을 따라 살고 있다면,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
아들이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장 거룩한 선지자들은 예수그리스도와
일치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 역시 핍박을 받았다.....“45
그리고 다음 장인 9장에서는 이토록 구약 시대에 살았으면서도 계시된 말씀의 빛을 따라 장차 오실 그리스도와 일치하게 거룩한 생애를 살았던 옛선지자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들은 이그나티우스 당시의 유대 주의자들처럼 형식적인 율법주의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율법의 영적인 원칙에 따라 살았음을 상기키시고, 그들을 본받도록 마그네시아 교회 신자들을 권면하는 내용이 9장에서 계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박영관 씨가 인용한 [마그네시아인들에게]보낸 편지서의 그“구습을 따르던 사람들”이란 다름 아닌 예수그리스도와 일치하게 거룩한 생애를 살았던 구약의 선지자들인 것이다.
다. 비평에 인용된 9장의 다음 장인 10장에서도 이그나티우스는, 예수그리스도의 영적인 복음을 저버리고 육신 적인 유대교의 율법주의를 내세우는 유대주의적 신앙을 아래와 같이 계속 논박하고 있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해 말하면서도 유대주의적 신앙을 실천하는 것을 괴이한 일이다. 왜냐 하면 크리스트교 신앙이 유대교 신앙에 기초를 둔 것이 아니라, 유대교 신앙이 그리스도 교에 기초했기 때문이다.....”46
이와 같이 비평에 인용된 편지의 앞 뒤 문맥을 이해할 때, 이그나티우스감독이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지 분명해진다.
라. 그런데 박영관 씨가 인용한 것과 같이 “주의 날”에서 “날”이란 말이 가장 근본적이고 잘 보존된 헬라어 원문 사본들에는 없다. 그것이 일요일을 가리키는 “주님의 날”이 되자면, 여성 명사인 “날”의 대격을 삽입해야 하거나, 그것이 문법에서 동족목적어 구문에 함죽되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이그나티우스의 모든 편지들에는 이런 구문을 쓴 예가 한 번도 없다.47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본들의 모체가 되는 가장 오래된 헬라어 사본등에는48 “주님의생명”이라고 쓰여 있어, 여성 명사를 필요로 하는 문법에도 맞고, 같은 문장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대조시킨 문맥에도 적절히 어울린다.49
마, 또한 비평에서 인용된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에서도 안식일은 명사가 아니고 헬라어 원문에는 현재분사를 써서 뜻을 달리하고 있다. 영어로는 “ no longer sabbatizing"으로 번역되는데, 이 뜻은 실제로 문맥에도 나타났듯이 유대교 방식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빗나간 율법주의를 경계한 것임이 다음의 문헌에서도 분명해진다. 즉, 같은 편지를 4세기에 가필하여 확대 설명한 사본의 같은 9장에 아래와 같은 해설이 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유대 인적인 방식을 따라안식일을 지키지 말고, 나태한 날들을 즐기 지 말자. 왜냐하면,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분 모 두는영적인 방식을 따라안식일을 지킬 젓이니, 곧 육체를 느즌하게 하지 말고 율법을 명상하는 일을 즐기고, 하나님의 지으신 것들을 찬양하며, 전 날에 준비한 것들을 먹거나 미지근한 물을 마시는 일들을 하지 말 것이며, 제한된 지역만 걷거나 아무 뜻도 없는 춤 이나 박수 갈채에서 기쁨을 찾으려 하지 말라.”50
바. 마지막으로, 박영관 씨의 비평이 결정적으로 잘못되었음을 입증하는 단서가 있다. 즉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의 날을 지키”게 된 것으로 표현된, 그 “구습을 따르던 사람들”이란 앞에서 본문 문맥을 가지고 지적했듯이 다른 사람이 아닌“가장 거룩한[구약의] 선지자들”임을 기억해야 한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언제 안식일 준수를 그만 두고 주일 중 첫날인 일요일을 지킨 적이 한번이라도 있는가?
문맥을 바로 아는 일이 중요하고, 주어로 쓰인 대명사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그나티우스는 당시의 마그네시아교회 신자들에게, 율법주의에 빠져 안식일의 영적 의미는 상실한 재, 전 날에 준비한 음식이나 먹으면서 게으름으로 안식일을 보내는 역겨운 유대교 방식의 안식일 준수를 논박하고, 구약의 옛 선지자들을 본받아 말씀을 통하여 미리 깨달은 예수그리스도의 영적인 교훈을 따라 영적인 그리스도 인의 삶을 살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그나티우스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주일 중 첫 날이 아니라, 일곱째 날을 준수한 것을 확 실히 알았다. 그렇다면, 이곳의 대조는 [일곱째 날과 첫째 날과 같은] 그러한 날들에 관한 것 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형식적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같은 방식의 생활과 그리스 도인에 게 있어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상징된 새로운 삶의 방식에 관한 것이다.”51
그러므로 비평에서 인용된 [마그네시아인들에게] 보낸 이그나티우스 감독의 편지는 안식일 대신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는 이유가 될 만한 아무 근거가 될 수 없음이 편지 사본의 원문만 편견 없이 읽어보아도 자명해진다. 원문에는 없는 “날”을 삽입하여 편지의 본 뜻을 크게 왜곡시킨 신학적 편견은 위험한 것이다. 문장을 문법과 문맥에 맞추어 바르게 이해하는 일은 본 뜻을 바르게 깨닫는데 필수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