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나무 토막
이탄
여름날, 헤엄을 치고 놀 때
즐거웠다,
물을 먹으며 공을 던지며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대개 우리들은 노는 일에 몰두했다
어깨 위로 조금씩 어둠이 내려앉을 때
바위처럼 살리라
구름처럼 살리라
그러면서 산속을 둘러보기도 했다
그 여름날 해변가는 그냥 있는데
또 다른 물결이
앞에 서서
길 떠날 준비를 한다
이제는
나무토막처럼 물 위에
떠 있을 것이다.
정말?
시
바람 불다 / 이탄
지표 위의 시간이 인다.
도미의 피리소리와
사원입구의 목탁소리
그리고 저 산언덕의 포성
내가 오늘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은
전부, 꽃잎같이 지표 위에 쌓여 있다,
지난 밤, 어머니의 신음소리도 어느 나무등걸 밑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신라 마지막 임금의 애화哀話도 깊은 갈잎 속에 묻혀 있을 테지'
어느해 가을 코스모스 핀 묘지에서
나는 이상한 꽃을 보았다.
소녀, 소년, 노인과 아주머니의 얼굴을 한 꽃송이들
생명의 빛깔들.
세계의 공기가 엷은 목에서 흘러내리고 가냘픈 손을 흔들면
손 사이로 흐르는 애정의 감도와
세월의 매듭,
지구의 모퉁이에서 접히는
생명의 나래
십여년전 낯선 고장의
피난 살이와 풍물은
지나간 것일까.
절망이 천장보다 낮아
목을 주리며
일구오십년一九五十年 이후의 거리와
실내에서
항시 난무하듯 헝클린
머리칼
당시 이백간통二百間通의 아이들과 그녀석들의 철없는 시간은
비듬처럼 떨어져
지표를 덮었다.
휘트먼의 달구지는 지나갔는지 모른다.
에머슨의 '죽은 인간과 헤밍웨이의 '노안' 의 죽음을,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사람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다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나의 피가 흐르는
지표가 있다. 여기서 부는
생명의 바람이여
나의 목숨을 돌아가는 바람에
나는 인정人情을 안다.
바람부는 지표 위의 시간은
지나갈 수 없는
피의 샘,
여기서 탄피彈皮의 목적目的을 설명하라.
여기서 르노와르의 여인을 사랑하라.
여기서 나의 학문은 무엇인가 물어보라.
지표 위의 시간이 인다.
피의 샘,
훈훈한 아지랭이 같은
저 뿌리 밑의 시간이 인다.
詩
옮겨 앉지 않는 새 / 이탄
우리 여름은 항상 푸르고
새들은 그 안에 가득하다.
새가 없던 나뭇가지 위에
새가 와서 앉고,
새가 와서 앉던 자리에도 새가 와서 앉는다.
한 마리 새가 한 나뭇가지에 앉아서
한 나무가 다할 때까지 앉아 있는 새를
이따금 마음속에서 본다.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겨 앉지 않는 한 마리의 새
보였다 보였다 하는 새.
그 새는 이미 나뭇잎이 되어 있는 것일까.
그 새는 이미 나뭇가지일까.
그 새는 나의 언어를 모이로
아침 해를 맞으며 산다.
옮겨 앉지 않는 새가
고독의 문에서 나를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