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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말 >
자개 화병과 문인화가 만납니다.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날의 공기 속에서,
전시를 준비하여 여러분을 맞이합니다.
이번 전시는 꽃과 소나무를 주요 소재로 삼아,
화병에 자개를 더해 입체적인 조형미를 구현한 문인화를 선보입니다.
전통적인 꽃꽂이의 형식을 화폭에 옮겨와
꽃과 자개 화병이 어우러지는 새로운 아름다움을 모색하고,
그 고요한 풍경 속에 정적인 아름다움과 내면의 깊은 평온을 담고자 하였습니다.
빛의 방향에 따라 미세하게 표정을 달리하는 자개의 조각들은 단순한 장식을 넘어,
오랜 시간의 흐름 속에 켜켜이 스며든 감정과 기억의 결을 은은하게 드러냅니다.
빛과 색, 질감이 서로 어우러지는 순간,
화면에는 정적인 가운데에서도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명의 기운이 머뭅니다.
이어지는 소나무 작업에서는 묵직한 정신성과 강인한 생명력을 담고자 하였습니다.
굽어도 꺾이지 않는 줄기와 거친 껍질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
그리고 사계절 푸름을 잃지 않는 기상을 바라보며,
묵묵한 인내와 절제의 미학을 붓끝에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부디 전시장을 찾으시는 모든 분께서 꽃이 전하는 따뜻한 위로와
소나무가 품은 깊은 기개를 함께 느끼시기를 바랍니다.
한 점 한 점의 붓질에 담은 고요한 울림이 잠시나마 지친 일상에 작은 쉼표가 되고,
마음이 쉬어 가는 따뜻한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026년 8월 思霓堂에서 예원 박영란
< 평문 >
입체와 평면, 전통과 현재가 만나는 자리
-예원 박영란 작가의 작품세계-
정태수(한국서예사연구소장)
작가는 이번 작업에서 자개 장식을 입힌 입체 화병과 꽃그림의 조우를 통해, 둥근 조형의 촉각성과 평면의 서사성을 한 화면 안에 포개어 놓는다. 입체와 평면, 물성과 정신성이 서로 만나면서 공간에는 생기와 깊이가 동시에 깃든다. 이는 단순한 재료의 결합을 넘어, 서로 다른 조형 언어가 하나의 미적 경험으로 수렴하는 순간이다.
화병은 더 이상 꽃을 담는 용기에 머물지 않고 그 자체로 하나의 오브제가 된다. 꽃그림은 자연의 생명력을 예술적 상징으로 확장한다. 이 둘은 질감과 여백, 형태의 조화 속에서 하나의 풍경을 이루며, 사물과 그림 사이에 새로운 긴장과 울림을 만들어낸다.
자개를 입힌 입체 화병은 실제 공간을 점유하는 부피감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시선의 출발점이 된다. 시선은 화병의 둥근 윤곽과 표면의 질감을 따라 움직이다가 어느 순간 그림 속 꽃의 선과 색으로 옮겨간다. 이때 꽃은 단순히 ‘꽂혀 있는 생화’가 아니라, 한순간을 붙잡아 놓은 동시에 끊임없이 피어나는 생명의 상징으로 읽힌다.
특히 화병 표면에 돌출된 자개 문양과 세부 장식은 빛에 따라 그림자와 하이라이트를 만들어낸다. 평면의 꽃그림이 선과 색을 통해 생명감을 드러낸다면, 입체 화병은 빛과 질감, 물성을 통해 생명감을 구현한다. 꽃그림이 이야기를 말한다면 화병은 그 이야기를 몸짓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화병은 꽃을 담지 않았을 때조차 공간의 밀도를 변화시킨다. 표면에 자개 조각을 한 땀 한 땀 입힌 정교한 장식은 그 자체로 오브제의 존재감을 획득하며, 여기에 꽃그림이 더해질 때 화면에는 물성과 정신성이 교차하는 깊은 감성이 형성된다.
얼핏 보면 서로 어울리지 않을 듯한 소재의 결합이지만, 작가의 화면에서는 문인화 특유의 여백이 여전히 살아 숨 쉰다. 문인화에서 여백은 단순한 빈 공간이 아니라 화면에 깊이와 호흡, 운동감을 부여하는 적극적인 조형 요소이다. 따라서 입체 화병과 꽃그림의 만남에서도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얼마나 채우느냐가 아니라, 서로 다른 형상들이 마음껏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어떻게 마련하느냐에 있다.
화병의 질감 또한 화면의 깊이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자개 특유의 영롱함과 유리의 투명함, 금속의 단단함은 각각 다른 무게감과 촉각적 인상을 만들어낸다. 꽃그림이 부드러운 색채와 선으로 정서를 빚어낸다면, 화병의 물성은 그 정서에 구체적인 촉감과 실재감을 더한다. 즉 평면의 감성이 입체의 물성을 만나면서 작품은 시각을 넘어 촉각적인 경험으로 확장된다.
한편 화면 속 꽃꽂이의 형식에서는 일본 전통 꽃꽂이인 ‘이케바나(生け花)’의 미감도 떠올릴 수 있다. 이케바나는 꽃을 단순히 아름답게 배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식물의 생명성과 자연의 질서를 공간 안에 구현하는 조형 예술이다. 비대칭적인 구성과 절제된 형식, 그리고 빈 공간의 적극적인 활용을 통해 계절의 정취와 자연의 호흡을 드러낸다. 화려함보다는 절제와 여백 속에서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작가의 화면과도 일정한 미적 공명을 이룬다.
다시 화면으로 돌아가 보면, 은빛과 보랏빛이 감도는 자개가 자갈길처럼 촘촘히 박힌 둥근 화병 위로 이른 봄의 절개를 상징하는 청매화가 피어난다. 화병은 화면 왼쪽으로 비껴 자리하고, 오른쪽 아래로 길게 뻗은 가지 너머에는 광활한 여백이 펼쳐진다. 형상을 그리는 것만큼이나 비워내는 것의 중요성을 아는, 작가의 ‘여백 경영’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매화는 문인화에서 익숙한 전통적 소재이지만, 작가는 이를 단순히 관습적인 상징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그에게 전통은 박물관 속에 보존된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새로운 의미로 건네는 지혜의 조형 언어다. 그러므로 그림 속 매화는 단순한 지조의 상징을 넘어,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인고의 시간이며, 역경을 견디며 자신의 길을 이어가는 인간의 의지를 상징한다.
모란에 대한 해석 역시 그러하다. 모란은 흔히 부귀와 영화의 상징으로 이해되지만, 작가의 시선은 그 화려한 표면 너머에 놓인다. 어둡고 힘겨운 시간을 견뎌낸 뒤 비로소 화사한 꽃을 피워내는 생명의 과정은, 고뇌와 시련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가능성을 꽃피우는 인간의 삶과 맞닿아 있다. 화려한 꽃은 단순한 부귀의 표상이 아니라, 견딤 끝에 도달한 생의 충만함으로 다시 읽힌다.
이처럼 작가는 선조들이 남긴 전통적 상징을 오늘의 감각과 삶의 언어로 다시 해석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전통을 이야기하면서도 결코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오래된 상징은 작가의 붓끝을 거치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자연스럽게 맞닿는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동아시아 미학의 관점에서 보아도 이 조합은 자연물을 단순히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꽃과 소나무, 화병은 단순한 장식의 소재가 아니라 자연의 질서와 삶의 지혜를 담아내는 그릇이 된다. 장식이 더해진 입체 화병과 꽃그림의 만남 역시 ‘꽃을 닮은 물건’과 ‘꽃을 그린 그림’의 단순한 결합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의 생명력이 사물의 형태와 그림의 상징으로 번역되는 과정에 가깝다. 화병의 입체성과 그림의 평면성이 충돌하지 않고 서로를 보완할 때, 공간은 장식의 차원을 넘어 사유와 감성이 교차하는 장으로 확장된다.
오늘날 우리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는 경쟁과 불안 속에서 지치고 상처받는다. 작가의 작품이 잔잔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의 그림은 현란한 기교를 앞세우기보다 삶에 지친 이들에게 조용한 위로를 건넨다. 매화와 소나무처럼 쉽게 꺾이지 말고, 모란처럼 긴 시간을 견딘 끝에 다시 피어나라고 말한다.
한 점의 그림이지만, 그 안에는 삶을 향한 따뜻한 응원이 있다. 이미 중진 반열에 오른 작가의 예술 여정 또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붓끝에서 한 획 한 획이 깊어지듯, 그의 예술 역시 시간과 함께 조금씩 더 깊어지고 있다. 입체와 평면, 전통과 현재, 자연과 인간을 잇는 그의 작업은 그렇게 오늘의 삶에 조용히 말을 걸며, 오래도록 한국 문인화의 한 의미 있는 울림으로 남을 것이다.
2026년 初伏 日損齋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