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菩提方便門(보리방편문) 2 ♣
- 法門(법문). 淸華(청화) 禪師(선사) -
◈ 머리말 ◈
龍樹(용수) 菩薩(보살)님께서, 著述(저술)한 冊(책) 가운데서,
【菩提心論(보리심론)】이라 하는 論藏(논장)에,
工夫(공부)하는 要諦(요체)가, 많이 說明(설명)되어 있습니다마는,
이【菩提方便門(보리방편문)】은,
그 論藏(논장) 가운데서 工夫(공부)하는 要領(요령)을,
金陀(금타) 큰스님께서, 간추린 것입니다.
여기 있는 文章(문장)도, 金陀(금타) 큰스님께서 쓰신,
文章(문장) 그대로입니다.
前(전)에【金剛心論(금강심론)】을 낼 때는,
저희들이 現代的(현대적)인 語法(어법)을,
좀 構思(구사)해서 냈습니다마는,
생각해 보니까, 별로 오래된 분도 아닌데,
古人(고인)들의 文章(문장)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그 분들의 生命(생명)을, 呼吸(호흡)하는 것 같아서,
金陀(금타) 큰스님의 文章(문장) 그대로 옮겼습니다.
♣ 菩提方便門(보리방편문) ♣
이의 菩提(보리)란, 覺(각)의 義(의)로서,
菩提方便門(보리방편문)은, 見性悟道(견성오도)의 方便(방편)이라,
定慧均持(정혜균지)의 心(심)을,
一境(일경)에 住(주)하는 妙訣(묘결)이니,
熟讀了義(숙독요의)한 後(후), 寂靜(적정)에 處(처)하고,
第一節(제일절)만 寫(사)하야,
端坐正視(단좌정시)의 壁面(벽변)에 付(부)하야서,
觀而念之(관이염지)하되,
觀(관)의 一相三昧(일상삼매)로 見性(견성)하고,
念(염)의 一行三昧(일행삼매)로 悟道(오도)함.
♣ 阿彌陀佛(아미타불) ♣
心(심)은, 虛空(허공)과 等(등)할 새, 片雲隻影(편운척영)이 無(무)한,
廣大無邊(광대무변)의, 虛空的心界(허공적심계)를 觀(관)하면서,
淸淨法身(청정법신) 認達(인달)하야,
毘盧遮那佛(비로자나불)을 念(염)하고,
此(차), 虛空的心界(허공적심계)에,
超日月(초일월)의 金色光明(금색광명)을 帶(대)한,
無垢(무구)의 淨水(정수)가 充滿(충만)한,
海象的(해상적) 性海(성해)를 觀(관)하면서,
圓滿報身(원만보신) 認達(인달)하야,
盧舍那佛(노사나불)을 念(염)하고,
內(내)로, 念起念滅(염기염멸)의 無色衆生(무색중생)과,
外(외)로, 日月星宿(일월성숙), 山河大地(산하대지),
森羅萬象(삼라만상)의 無情衆生(무정중생)과,
人畜(인축) 乃至(내지),
蠢動含靈(준동함령)의 有情衆生(유정중생)과의,
一切衆生(일체중생)을,
性海無風(성해무풍) 金波自涌(금파요통)인,
海中구(해중구)로 觀(관)하면서,
千百億化身(천백억화신) 認達(인달)하야,
釋迦牟尼佛(석가모니불)을 念(염)하고,
다시 彼(피), 無量無邊(무량무변)의 淸空心界(청공심계)와,
淨滿性海(정만성해)와, 龜(구) 相衆生(상중생)을,
空(공), 性(성), 相(상), 一如(일여)의,
一合相(일합상)으로 通觀(통관)하면서,
三身一佛(삼신일불) 認達(인달)하야,
【阿(아)⇒化身(화신)】,【彌(미)⇒報身(보신)】,
【陀(타)⇒法身(법신)】佛(불)을, 常念(상념)하고,
內外生滅相(내외생멸상)인,
無數衆生(무수중생)의 無常諸行(무상제행)을,
心隨萬境轉(심수만경전) 認達(인달) 하야
彌陀(미타)의 一大行相(일대행상)으로, 思惟觀察(사유관찰)할지니라.
♣ 菩提(보리) ♣
菩提(보리)란, 깨달음의 뜻으로서,
【菩提方便門(보리방편문)】은,
見性悟道(견성오도)의 하나의 方便(방편)입니다.
定(정)과, 慧(혜)를, 가지런히 지니는 마음을,
한 가지 境界(경계)에 머물게 하는, 妙(묘)한 秘訣(비결)이니,
잘 읽어서, 뜻을 깨달은 後(후), 고요한 곳에 處(처)하고,
第(제) 一節(일절)만 써서, 端正(단정)히 앉아,
바로 보는 壁面(벽면)에 붙여서, 觀(관)하고, 생각하되,
觀(관)의, 一相三昧(일상삼매)로 見性(견성)하고,
念(념)의, 一行三昧(일행삼매)로 悟道(오도)함이라,
六祖壇經(육조단경)의, 一相三昧(일상삼매), 一行三昧(일행삼매)나,
또는 四祖(사조) 道信(도신)大師(대사)의,
一相三昧(일상삼매), 一行三昧(일행삼매)와도,
相通(상통)이 되기 때문에, 觀心(관심)을 가지고,
特別(특별)히 여기에서, 제가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心(심)은, 虛空(허공)과 等(등)할 새, 片雲隻影(편운척영)이,
조그마한 그림자나, 痕迹(흔적)이나,
흐림이 없는, 廣大無邊(광대무변)의,
虛空的(허공적) 마음 世界(세계)를 觀察(관찰)하면서,
淸淨法身(청정법신) 認達(인달)하야』
『認達(인달)하야』의 이 말은,
무엇, 무엇, 認(인)하는 接續詞(접속사)로, 古語(고어)입니다.
곧, 淸淨法身(청정법신)인 毘盧遮那佛(비로자나불)을 생각하고,
이와 같은 廣大無邊(광대무변)한, 虛空的(허공적) 心界(심계)에,
日月(일월)보다도, 超越(초월)한 金色光明(금색광명)을 띈,
無垢(무구⇒때 묻지 않음)의 淨水(정수)가,
눈부신 世間的(세간적)인 金色光明(금색광명)이 아닌,
純粹(순수)한 金色光明(금색광명)을 띄고 있는,
티끌이 없는, 淸淨(청정)한,
물의 性品(성품)이 充滿(충만)한 海象的(해상적),
卽(즉), 마치 바다와 같은, 佛性(불성) 바다를 觀察(관찰)하면서,
이 자리가 바로,
圓滿報身(원만보신)인 盧舍那佛(노사나불)임을 念(염)하고,
自己(자기) 마음으로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滅(멸)해지는 無色衆生(무색중생)과,
佛敎(불교)에서, 衆生(중생)이라 하면,
自己(자기) 생각, 卽(즉) 觀念(관념)도, 衆生(중생)이라 합니다.
다만 模樣(모양)이 없으니까,
無色衆生(무색중생)인 것입니다.
밖으로, 눈으로 보이는,
日月星宿(일월성숙)이나, 山河大地(산하대지),
森羅萬象(삼라만상)의 無情衆生(무정중생)과,
意識(의식)이 없이 보이는 衆生(중생)은,
우리 衆生次元(중생차원)에서, 無情衆生(무정중생)인 것이지,
本質的(본질적)으로 본다면, 一切存在(일체존재)가 다,
眞如佛性(진여불성)의 化身(화신)인지라, 모두가 다 마음이요,
모두가 다 識(식)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이나, 畜生(축생)이나,
乃至(내지), 꾸물거리면서 識(식)이 있는,
人間(인간) 같은 六識(육식)이 아니라, 五識(오식)을 말하겠지요.
蠢動含靈(준동함령)의 有情衆生(유정중생))과의,
一切衆生(일체중생)을, 廣大無邊(광대무변)한 佛性(불성) 바다에,
갖추어 있는 功德(공덕)으로,
바람도 없이, 金色波濤(금색파도)가, 스스로 뛰는,
마치 바다에서 일어나는 물거품으로, 觀察(관찰)한다는 것입니다.
卽(즉), 앞에 든, 우리 觀念上(관념상)의 無色衆生(무색중생)이나,
또는, 우리가 밖으로 보이는 해나, 달이나,
또는 各(각) 별들이나, 山河大地(산하대지)나,
森羅萬象(삼라만상)의 無情衆生(무정중생)이나,
우리 사람이나, 畜生(축생)이나,
乃至(내지), 蠢動含靈(준동함령)의 有情衆生(유정중생)이나,
이런 것 모두를, 어떻게 觀察(관찰)하는가 하면,
廣大無邊(광대무변)한 佛性(불성) 바다에,
바람도 없이, 거기에 갖추어 있는 佛性功德(불성공덕)으로,
스스로 뛰노는, 佛性(불성)의 물거품으로,
觀察(관찰)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千百億化身(천백억화신)인,
釋迦牟尼佛(석가모니불)이구나 하고, 생각하고,
釋迦牟尼佛(석가모니불)의 名意(명의)를 좁게 본다면,
歷史的(역사적)인 釋迦牟尼(석가모니) 부처님만,
化身(화신)이겠지마는,
廣範圍(광범위)하게, 本質的(본질적)으로 본다면,
頭頭物物(두두물물) 모든 衆生(중생)이,
다 釋迦牟尼(석가모니) 부처님이 되는, 化身(화신)입니다.
따라서 無色衆生(무색중생)이나, 또는 無情衆生(무정중생)이나,
有情衆生(유정중생)이,
모두가 다 千百億化身(천백억화신)이라는 말입니다.
釋迦牟尼(석가모니) 부처님과, 우리 衆生(중생)은,
조금도 差異(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相(상)에서 볼 때에,
釋迦牟尼(석가모니)부처는 깨달은 부처이고,
衆生(중생)은, 깨닫지 못한 부처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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