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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아래 이광헌 군이 쓴 노원부 선생님 관련 글을 읽고, 저도 그 선생님에 대해 비슷한 경험이 있기에 옛 기억을 되살려 술회합니다. 우리 동기회원이 아니면서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분이 몇분 계십니다. 그분들은 카페 가입이 안 돼서 앞으로는 제 글 읽지 못하실 것이기에 구 홈페이지 살아 있을 동안 만이라도 동시 게재합니다.)
고교 시절, 학교 안에 자기만의 은밀하고 아늑한 독방을 가져본 사람 있으면 나와들 보셔. 수업 빼먹고 실컷 잠잘 수 있고 라면 끓여 먹을 수도 있으며 심지어 집에는 독서실 간다 하고서 며칠씩 뒹굴고 묵어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 독방. 교정 안에 그런 나만의 밀실을 갖고 있다는 건 환상 그 자체 아닐까요? 격물당(格物堂)이라는 그럴듯한 옥호를 지어놓고, 개씹에 보리알 끼이듯 갈마 드는 친구 놈들의 부러움과 질시 속에서 저는 고3 몇 달 동안 꿈같은 톰 소여 생활을 즐겼지요. 경희의 옛 궁터 학교 전체를 홀라당 잿더미로 만들 뻔한 화재를 일으켜, 깜씨 한정호와 함께 1주일 정학처분을 받기 전까지 말입니다. 오로지 광화문 시청 쪽 소방서 망루 한곳에서 소방수 아저씨가 ‘어디 불나는 곳 없나’ 하며 서울 전역을 휘휘 둘러보던 당시의 소방 방재 시스템으로 보아, 조기 진화 못 했으면 불길이 미술반을 태우고 별관으로 번져 본관과 후관을 집어삼키는 건 순식간이었을 겁니다. 저는 퇴학당했을 테고 여러분은 운동장 바닥에 천막치고 수업을 받아야 했겠지요.
교정 서쪽 구석에 있는 미술반은 관상대 밑 숲에 연해 있어서 우리 미술반 애들 외에는 간혹 담배 피우러 오는 녀석들만 찾는 외진 곳이었지요. 그 미술반 건물 뒤편에서 어느 날 저는 나무로 된 문이 대못으로 쾅쾅 박혀 밀폐된 수상한 방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발견했다기보다 전부터 눈여겨 보던 보물섬 같은 그 방을 탐사하기로 맘먹은 거지요.
건물 뒤 산 쪽에서 본 미술반
집에서 연장을 가져와 창문의 대못을 하나하나 뽑아 열었습니다. 훌쩍 넘어들어가 어둠이 눈에 익자, 이러 저러 허접쓰레기들뿐인 3평 정도의 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당장
‘이 방을 나만의 개인 공부방으로 만들자.’
하고 마음먹었지요. 깨끗이 청소한 후 근처 교실에서 책걸상을 훔쳐왔습니다. 그리곤 원예반 창고에서 박찬홍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며 짚을 지어 날랐습니다. 푹신한 짚 침대를 만든 거지요. 또 지붕에 올라가 지나가는 전선을 까서 선을 연결해 60W 백열등을 설치했습니다.
방 꾸미는 아이디어 중 백미는 출입하는 창문의 잠금장치입니다. 버스나 전차의 창문에 장착하는, 손으로 꾹 눌러 들어 올리는 걸쇠를 구해와 나무 창문에 달았습니다. 걸쇠 손잡이 위에 3mm정도의 구멍을 뚫었지요. 밖에서 들어올 때 그 구멍에 ㄱ자 모양의 철사를 집어넣어 돌리면 손잡이가 제쳐져 철컥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밖으로 나갈 땐 그냥 문을 닫으면 철커덕하고 저절로 잠깁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참 기발한 장치입니다.
밖의 동정을 살펴볼 감시 구멍도 뚫었습니다. 밖에서 누군가가 그 구멍을 통해 들여다보다가 둘의 눈이 딱 마주치면 곤란하므로 키보다 한 뼘 높은 곳에 아래를 향해 비스듬히 뚫었지요. 밖에선 구멍으로 들여다본들 천정만 보이겠지요. 구멍마다엔 불빛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회전식 빛 차단 판을 달았습니다.
다음엔 라면 끓여 먹을 전기 곤로를 장만하기로 했습니다. 완제품은 비싸겠기에 철물점에서 부품을 사와 조립했습니다. 곤로 그거 뭐 별것인가요? 전압(V) 있고 전류(I) 흐르는 곳에 저항(R)이 생길 때 (V=IR), 저항이 곧 열이고 빛이라는 건 물리 시간에 배운 기본 실력이지요. 흙판과 니크롬선을 사다 조립해서 전원을 연결했더니 빨갛게 열이 나는 훌륭한 곤로가 되었습니다. (곤로는 일본어이므로 풍로나 화로로 순화하라지만 옛 습관과 말맛이 곤로에 익숙해서 그대로 썼습니다.)
그 당시 저는 대학에 꽂혀 있었습니다. 서울대 연고대의 대학이 아니라 논어 맹자 중용 등 사서의 古之欲明明德 於 天下者...하는 그 대학(大學) 말입니다. 전문을 외워야겠다고 마음먹고 미친놈처럼 중얼거리며 다녔습니다. 처음엔 주희 해설의 대학을 공부하다가 다음엔 왕양명의 양명학 연론을 파고들었습니다. 致知在格物이니라 하는 대목에선 머리칼이 곤두서는, 소위 법열을 느꼈지요. 격물치지란 사물의 이치를 궁극에 이르도록 탐구하여 나의 앎 良知에 이른다는 말이랍니다. 옥호인 격물당도 그 격물치지에서 따왔지요. 남들이 대학 입시 준비하는 동안 저는 미술반 골방에서 대학의 본질을 공부한 셈입니다.
꿈같은 톰 소여의 생활 즐기기 4개월 남짓 되었을 무렵, 미술반 선배인 최지병 형이 내 방에 놀러왔습니다. 선배 형이 곤로를 켜서 담배에 불을 붙였습니다. 하필이면 그 순간 정전이 되었습니다. 정전되면 칠흑이 되는지라 우린 밖으로 나와 미술반에 들어갔습니다. 곧 다시 전기가 들어왔지만, 내방 곤로 켜 놓은 걸 까맣게 잊고 있었지요. 니크롬선과 흙판이 과열되어 책상이 타기 시작했습니다. 불길이 번지고 연기가 문틈으로 콸콸 새어 나왔습니다.
여러분도 기억하시겠지만 정문 수위실을 지키는 수위아저씨는 이승만 대통령을 쏙 빼 닮았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대통령 각하라고 불렀습니다. 대통령 각하가 우연히(?) 그곳을 지나다가 불길을 발견하고
“불이야~!”
고함치며 도끼로 격물당 문을 까부수고는 놀라 튀어나온 우리와 함께 미술반과 식당에서 물을 날라다 가까스로 진화했습니다. 지금도 궁금한 건 그곳에 잘 안 오던 대통령 각하께서 왜 그날따라 거길 지나다 불길을 발견했는지, 또 순식간에 어디에서 도끼를 구해 왔는지 하는 겁니다.
속인주의 원칙을 따른 건지 졸업생 선배들과 서울예고로 전학 갔다 놀러 온 계성근 군은 면책을 받았습니다. 저는 주범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자기 책상도 들여 놓자느니 철사 열쇠 하나 만들어 달라느니 조르던 이영근이나 이혜석 군은 마침 그날 없어서 빠져나가고, 우연히 놀러 왔던 애먼 한정호가 억울하게 공범으로 몰렸습니다. 남이 눈 똥에 주저앉은 꼴이지요. 요즘도 한정호 군을 만나면 그 일이 생각나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이렇게 눙치곤 합니다.
“야, 정호야 ‘고교 때 정학 한 번 안 당한 놈하곤 인생 논하지 말라’는 말도 있단다. 흐흐.”
사법권이 없는 대통령 각하 대신, 소식 듣고 달려온 노원부 선생님에 의해 저와 한정호는 교무실로 끌려갔습니다. 교무실까지 가는 동안 선생님은 저의 어깨를 감싸며 계속 이렇게 안심시키셨습니다. “괜찮아. 별일 없을 거야. 승남아, 걱정하지 마.” 그러나 교무실 문을 들어서 교장 선생님 앞에 온 선생님은 돌변했습니다. “이런 싸가지 없는 나쁜 자식들. 너희가 학생이야? 혼 좀 나봐야 해!” 하고 닦아세우며 귀싸대기를 연거푸 넉 대나 후려갈겼습니다. 권투선수 출신답게 꼬꾸라지는 저의 안면을 겨냥해 정확히 가격했습니다. 뺨에 불이 번쩍번쩍 나는 짧은 순간에도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우리한텐 갑이지만 자기보다 윗급인 수퍼 갑 교장에게 사냥해온 포획물을 자랑하는 거로군.’
다음날 오후 정문 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공고문이 붙었습니다.
공 고
학칙위반으로 다음 두 학생을 각 1주일씩 유기정학에 처함
3-4 이승남, 한정호
위반 사항 : 화기 부주의
이튿날 등교하던 애들은 게시판을 보며 이렇게 수군거렸을 겁니다.
“화기 부주의라니, 저 새끼들 담배 피우다 걸렸군.”
이제 와서 실토하건대, 우리 그 당시 담배 안 피웠걸랑요. 화기 부주의라 하지만 불은 다 껐걸랑요. 노원부 선생님에 대한 배신감으로 가슴에 난 화기는 아직 못 껐지만요.
십몇 년 전 미술반 총동창 모임이 있다 해서 서초동 서울고 근처 식당에 갔더니 은사로 모신 노원부 선생님께서 와 계셨습니다. 그간 나이 하나 안 드신 듯, 반지빠른 모습이 예나 똑같았습니다. 반갑게 악수하며,
“저 기억하시겠어요?”
했더니,
“오 그럼, 이승남이...기억하고 말고. 옛 얼굴 그대로군”
하십니다. 마침 이춘삼 군이 총동창회 기자 자격으로 취재차 참석했기에 춘삼 기자 들으라는 듯 옛이야기를 말씀드렸지요.
“아직도 뺨이 얼얼하네요.”
너스레 떨며 말입니다. 선생님께선
“그런 일 있었어? 전혀 기억 안 나는데..”
하십니다. 전
“야 이 녀석아. 맞을 짓 했잖아. 그때 덜 맞은 거 오늘 마저 맞아 볼래? 하하”
라거나
“인마. 교장 선생님 앞에서 그 생쇼를 했기에 네 죄가 희석된 거야. 내가 의도적으로 물타기 한 거 몰라?”
라고 하셨으면 차라리 낫겠다 생각했습니다. 제 얼굴과 이름까지 기억하시면서 사건 생각 안 난다는 선생님의 심리 상태를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신분석학적으로 뭐라 용어가 있던데 글로 쓰긴 싫고...개인적으로 만나면 설명해 드리지요.
저는 제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청소부 아저씨에게 대하는 거와 대통령에게 대하는 걸 똑같이 하도록 해라.”
물론 그거 쉬운 일 아닙니다. 세상은 온통 갑과 을, 병 정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경제력이나 권력, 덩치, 말발, 신분이나 지위 등에 의해 카스트 제도처럼 확연히 구분되어 있지요.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우선 더듬이를 펴서 아래위로 스캔한 후 갑과 을을 가르거나, 심지어 친구끼리도 은근히 갑과 을을 구분해야 속 시원해 하는 녀석도 있습니다.
“식당 아줌마에게 늘상 반말하는 아무개야. 너는 친밀감 표현이라 하지만 그분은 친밀하게 느끼지 않는단다. 널 개좆으로 여기지. 최소한 나와 식당 갈 때만은 그러지 말아줘. 침 뱉어서 들고 나온 음식을 난 먹기 싫거든. 가는 방망이에 오는 홍두깨란 말도 모르냐?”
이하 갑 중의 갑, 모든 인류의 울트라 수퍼 갑에 관해 장황히 글을 썼습니다만 사안이 민감해 삭제했기에 마무리가 엉성해졌습니다. 이해 바랍니다.
첫댓글 모범생을 능가하는 비범생이 있었군
나홀로 별장까지 소유했던 거에 비하면 따귀 몇대에 특별방학까지 얻었으니 너무 억울해 하지마. 이건 아주 영웅담인데 그려'
사건 이후론 별장이 없어졌나? 미술반 뒤에 모이는 애들 모두 담배 피러 온 줄 알았는데 안폈다니 ㅎ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