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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511장 ♬. 요11:39-44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엎드려 비는 말 들으소서
내 진정 소원이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이 애절하고도 은혜가 넘치는 찬송은 미국 메인주 태생의 여류 문학가이며 찬송작가인 '엘리자베스 페이슨 프렌티'(E.P.Prentiss; 1818-1878) 여사가 1856년에 만들었다.
프랜티스 여사는 시와 산문에 재능이 많아서 16살 때부터 '젊은이의 벗'의 상임 기고자(寄稿者)가 되는 등 문필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체질적으로 약하여 늘 누워있기를 좋아했다. 그런 그녀가 27세 때(1845년) 장로 교회의 목사이며 후에 뉴욕 '유니온' 신학교의 설교학과 교회 행정학 교수가 된 '조오지 루이스 프렌티스' 박사와 결혼을 하여 두 자녀를 낳았다.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행복한 나날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갑작스런 불행이 다가왔는데 1856년 당시 유행했던 무서운 전염병이 사랑하는 두 자녀의 생명을 빼앗아 가버리고 말았다. 한 명도 아니고 두 자녀 모두를 잃어버린 그녀의 슬픔은 너무나도 컸다. 평생 병약자로서 자신의 육체적 고통을 믿음으로 이겨내는 것도 힘에 겨운 일인데 사랑하는 두 자녀 마저 다 잃어버렸으니 그 슬픔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프랜티스 여사는 자신의 연약한 육체도 부족하여 사랑하는 두 자녀들까지 빼앗아간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더욱이 자신과 남편은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 하는 목회자의 가정으로서 타인보다 더 열심히 기도하고 주의 뜻을 쫓아 선하게 살며 열심히 주의 일에만 충성 봉사하며 살아왔는데 어떻게 이런 고통이 우리에게 임할 수 있단 말인가? 거기다가 부친마저 독실한 크리스천의 가정이 아니던가? 그런데 무엇이 부족하여 하나님은 내게 이런 고통과 시련의 형벌을 주시는지 알 길이 없도다."하며 원망과 낙담과 실의 속에 빠져있을 때 남편인 프랜티스 목사는 " 여보 당신이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있소.....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성도들에게 설교하고 가르치며 증거해 온 예수의 사랑과 믿음을 우리의 실생활에서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만들어 봅시다."하며 위로를 하였다.
그 후 프랜티스 여사는 기도와 말씀과 명상 속에서 "한 때 세상의 기쁨과 행복만 구했습니다. 그곳에서 영광과 안식과 참 평안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님만 바라옵나니 가장 선한 것을 주옵시고 바로 이것이 내 감사기도가 되게 하옵소서."라는 시를 적었다. 바로 이 시가 지금의 511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의 찬송시가 된 것이다.
하지만 프랜티스 여사는 자신이 쓴 이 시를 남편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자신도 이 시를 까마득하게 잊어버렸고 그렇게 13년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이 방 정리를 하다가 지금의 시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4행을 마무리지어 1870년 "헌신의 노래집"에 이 찬송 시를 실으므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1절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엎드려 비는 말 들으소서
내 진정 소원이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1절에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부모와 처자, 전토(田土), 가산(家産), 자기 생명보다 더욱 사랑해야 함을 강조하며 그것이 믿음의 사람들의 소원이 되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제일로 사랑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은 천지 만물보다 우리를 더욱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먼저 하늘과 땅과 해와 달과 하늘을 나는 새와 땅의 기는 모든 동식물들을 만들어 주신 후에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 인간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런 후에 복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 리라"(창1:28)명령하셨습니다. 이는 천지 만물보다 우리 인간들을 더욱 사랑하시고 아끼시는 증거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하늘 보좌의 영광을 버리고 낮고 천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죄인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천상에서 지극한 영광을 한없이 누리실 독생자 예수님께서 자기를 비어 인간의 육체를 입으시고 이 세상에 강림하사 온갖 고난과 멸시와 조롱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죄 값으로 죽어야 할 터인데 대신 십자가에 예수님이 못 박히심은 순전히 우리를 사랑해서입니다.
셋째: 예수님은 그 가족(모친 형제)들보다 우리를 더욱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성장하신 이후 줄곧 복음을 위해 자신의 젊음을 다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상에서 "누가 내 형제요, 네 어머니냐? 곧 나의 뜻대로 행하는 자 곧 그가 내 형제요 친구라"(마12:48-50)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복음 증거를 위해 온 인류를 가족처럼 아끼고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악에서 죽음에서 건지시기 위하여 단 하나뿐인 생명을 십자가에서 내어주시므로 죄 사함을 받아 구원함을 얻게 되었고, 하늘나라 우편보좌에 앉게되는 영광을 얻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사랑은 한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사랑이십니다.(요13:1)
그러므로 한이 없으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덧입은 하나님의 성도들은 "내 진정 소원은 내가 받은 예수님의 사랑을 나도 예수님처럼 증거하며 살다가 주님 앞에 가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소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1절 가사)
2절 이 전엔 세상 낙 기뻤어도 지금 내 기쁨은 오직 예수
다만 내 비는 말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사람은 무엇을 소유했다가도 그 보다 더 귀한 것을 알거나 만나게 되었을 때, 둘 다 소유할 수 없는 경우에는 조금 덜 귀한 것을 버리고 보다 더 귀한 것을 소유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이 가장 고귀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예수님을 제일로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세상 것이 더 귀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등장할 때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예수님을 떠날까 두렵고 떨립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게 된 후 자신이 알던 모든 것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고 소중함을 인하여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주님을 따라 나섰습니다.(빌3:8) 수제자 베드로도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된 후 그 즉시 배와 그물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 나섰습니다.(마4:19-20)
그뿐만 아니라 오늘 이 찬송가를 작시한 프랜티스 여사도 자신이 그렇게 보물처럼 소중하게 아끼고 사랑했던 자녀들이 세상을 떠나자 처음에는 낙담과 절망에 빠졌으나, 모든 사람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하여 하나밖에 없으신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아낌없이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 후에는 그 즉시 원망했던 마음과 비탄의 마음을 감사와 기쁨의 감격으로 바꾸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찬양하였습니다.
우리에게도 예수 믿고 변화된 영적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내 비록 세상 낙 즐기는 기쁨으로 한 세상 살았다 할지라도 주안에서 누리는 영적 기쁨과 평화가 더 귀하고 아름다움을 깨달았다면 자신이 가장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며 보관해왔던 향유를 아낌없이 예수님의 발에 부어 유월절을 예비하였던 막달라 마리아처럼 (막14:3,요12:3)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주님께 드려 주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누가복음 7장 43절과 47절에서 "많이 탕감(蕩減)받은 자와 사랑함을 많이 받은 자가 더 많이 사랑하듯" 지금 현재 우리가 받고 있는 고난과 어려움이 클수록 더 크고 귀한 하나님의 사랑이 임할 것을 믿고 범사에 감사하며 "지금 내 기쁨은 오직 예수 다만 내 비는 말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하며 살아갈 때 십자가의 사랑이 내 안에서 하나가 되는 참 감격과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귀한 기쁨과 영광을 위해 오늘도 애통하는 마음, 인내와 온유와 겸손함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절 이 세상 떠날 때 찬양하고 숨질 때 하는 말 이것일세
다만 내 비는 말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아멘
3절은 생명을 마치는 마지막 순간까지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하며 늘 찬양하는 삶을 살겠다는 작시자의 고백입니다.
프랜티스 여사가 이 같은 고백을 하기까지에는 너무나도 큰 고통과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나 목사의 아내가 되기까지 그녀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악한 일들 거짓행위들을 하지 않고 선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 출석과 봉사에도 힘을 다하며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정이 목회자의 가정이니까? 하나님이 더 특별한 관심과 사랑의 배려를 가지고 자신의 가정을 돌아보실 것을 은근히 기대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머지않아 자신의 질병도 깨끗하게 고침 받게 되리라는 희망과 기대감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런 프랜티스 여사에게 전염병으로 하루아침에 두 아들을 잃고 나니 ..... 그 같은 기대감과 희망이 모두 심한 배반감이 되어 자신의 영과 혼과 마음을 짓눌러 버렸습니다.....
식사는 물론 사람 만나는 것도 꺼려하며 깊은 시름과 상처 속에 빠져있는 프랜티스 여사를 위로하고자 인근 교회 목사님들과 본 교회 성도 님들이 찾아왔습니다. 많은 위로와 격려의 말 외에도 성도들은 손수 음식과 반찬을 만들어 주었고 집안 곳곳을 청소하고 정돈해주는 등 수시로 사택을 방문하며 필요한 것을 채워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적 침체가 쉽게 회복이 안되었습니다..... 이렇듯 프랜티스 여사에게는 너무나 큰 슬픔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녀의 눈에는 항시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자주 한숨 섞인 말로 목사인 남편에게 "하필이면 왜 허구 많은 가정들 중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정을 택하여 이 같은 고통을 허락하시는지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그때마다 남편인 목사는 "여보! 이 같은 불행이 우리 가정에만 예외란 법은 없지 않소, 이런 슬픔이 우리 가정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보다 더 어려운 가정에도 일어나지 않소.... 더욱이 우리는 목회자의 가정으로서 이보다 더 큰 슬픔도 이겨내야 한다는 주님의 가르침이 필요하였기에 우리에게 허락한 것이 아니겠소....그러니 하나님의 가르침과 교훈을 깨닫고 우리보다 더한 슬픔을 당한 가정을 위로해주고 또 일평생 주님의 사랑을 나누어주는 사랑의 화신(火神)이 되어 사십시다."하며 위로하였습니다.
프랜티스 여사는 "그럴지도 몰라요 하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단 일초도 이대로는 도저히 살아갈 것같이 느껴지지가 않아요?" 남편이 다시 격려하며 말을 합니다. "하나님은 이럴 때 우리를 더 사랑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오, 마치 우리의 어린 자식들이 병을 앓던가 괴로움이나 번민(煩悶)으로 가득 차 있을 때 더 측은히 여기고 안쓰럽게 여기며 더욱 관심과 사랑을 펼치듯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더욱 따듯하고 자상한 손길로 위로하시고 보살펴주시고자 눈동자 같이 지켜보고 계신다오..... 이 같은 고난은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기 위함이 아니요, 또 이것을 핑계로 세상과 타협하거나 쓸데없는 사색이나 하라고 보내신 것이 아니니....어서 훌훌 털고 잃어 서시오.... 우리는 주의 영광을 위하여 쓰임 받도록 선택받은 사람들이오 우리가 이번 기회에 좀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의 귀한 은혜를 받읍시다......"
하루에도 수 차례 프랜티스 목사와 여사간에 격려와 원망의 열띤 공방이 오고갔습니다.
그런 어느 날 프랜티스 여사는 문뜩 이런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남편도 지금 나처럼 힘들고 고통스럽고 마음이 무거울 텐데....거기다가 설교를 준비하고 성도를 돌아보느라 피곤할 텐데 나마져 도움이 되지는 못하고 오히려 나를 위로하느라 저렇게 무진 애를 쓰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미안하다는 마음이 들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그런 속에서 목회자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고 모든 일을 정상적으로 펼쳐나가야 할 남편의 모습을 생각하니 더 이상 남편에게 안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오랜 묵상과 생각 속에 조용히 입을 열어 프랜티스 목사를 위로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이 한 지난주 설교가 꽤 마음에 들더군요, 그 말씀이 저에게 무척 큰 위안과 힘이 되었어요?" "그게 뭐였지?" "<사랑은 영혼을 눈멀지 않게 보호한다>는 말을 대 여섯 번 되풀이 하셨지요" "여보 그것은 진실이라오, 우리가 예수님을 잘 알지 않소? 우리가 하나님을 더 사랑하면 할수록 우리 가슴에 치유와 신유의 기적이 더 많이 일어난다오, 이런 때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적으면 적을수록 우리가 당하는 고통은 더욱 커져 견딜 수 없게 될 것이오...." 그 순간 프랜시스 목사와 사모는 서로 두 손을 꼭 잡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하심을 찬양하였습니다.
저녁 식사 전 프랜티스 목사는 슬픔을 당한 몇 집을 더 방문하고 오겠다면 심방을 나갔습니다. 프랜티스 여사는 혼자 거실에 앉아서 성경을 뒤적이기도 하고 찬송을 부르기도 하다가
364장 1절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3절 천성에 가는 길 험하여도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생명 길 되나니 은혜로다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천사 날 부르니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를 부르면서 은혜를 받고 자신도 그러한 삶을 살고자 찬송 시를 썼는데 그것이 오늘의 찬송 511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이라는 귀한 찬송이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우리도 이 세상 떠날 때까지 크고 험한 파도와 강한 비바람이 내 삶에 몰아 쳐와도 절대로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내게 주어진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며 기쁜 마음을 가지고 죽도록 충성하며 늘 찬양함 속에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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