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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산천사공사기 (甑山天師公事記)-3
이월 십오일(二月十五日)에 천사(天師)께서 갑칠(甲七)을 더불고 부안 고부 등지(扶安古阜等地)에 순유(巡遊)하시다. 고부 흑암 주점(古阜 黑岩 酒店)을 지내실 새 이 때 화적(火賊)이 크게 성(盛) 하야 백주횡행(白晝橫行)함으로 순검(巡檢) 한사람이 미복(微服)으로 야순(夜巡)하다가 이 주점(酒店)에 와서 쉬는지라. 천사(天師)께서 주모(酒母)다려 일러 왈(曰) 저 사람은 죽은 땅에 다다른 사람이니 주식(酒食)을 주지 말라. 만일 주식(酒食)을 주었다가 죽는 땅에 빠진 후 대금(代金)을 받지 못하면 손해(損害)가 아니냐 하시니, 그 순검(巡檢)이 이 말을 듣고 크게 분노(憤怒)하야 천사(天師)를 때리며 무리(無理)한 말을 하였다고 꾸짖는지라. 천사(天師)께서 우서 가라사대 주검한테 맞아 무엇이 아프랴 하시고 밖으로 나가시니, 주모(酒母)가 순검(巡檢)다려 일러 왈(曰) 저이는 신인(神人)이니 나가서 사과(謝過)하고 연고를 물어보라한대 순검(巡檢)이곳 천사(天師)의 뒤를 따라와서 사과(謝過)하고 연고를 물으니 천사(天師) 가라사대 오늘밤은 사무(事務)를 폐(廢)하고 다른 곳으로 빨리 가라 하신 지라. 순검(巡檢)이 명(命)을 쫓아 옮겨갔더니 얼마 못되어 여러 화적(火賊)이 몰려와서 주모(酒母)를 난타(亂打)하면서 순검(巡檢)의 거처(去處)를 물으니라. 이것은 화적(火賊)이 순검(巡檢)을 죽이려고 미리 약정(約定)한 일이 있었더라. 익일(翌日)에 그 순검(巡檢)이 천사(天師)의 머무시는 곳을 찾아와서 재생(再生)의 은(恩)을 감읍(感泣)하니라.
갑진 육월(甲辰 六月)에 천사(天師)께서 김형렬(金亨烈)의 집에 가사 형렬(亨烈)다려 전주부(全州部)에 가서 김병욱(金秉旭)을 보고 맛날 기회(期會)를 약정(約定)하고 오라 명(命)하시니, 형렬(亨烈)이 명(命)을 받들고 전주부(全州部)에 가서 병욱(秉旭)을 맛나 그 익일(翌日) 야반(翌日 夜半)에 천사(天師)께서 병욱(秉旭)을 차자 만나시기로 약정(約定)하고 돌아오든 길에 장효순(張孝淳)의 사망(死亡)한 소식(消息)을 들으니라. 형렬(亨烈)이 돌아와서 천사(天師)께 병욱(秉旭)과 약회(約會)한 것을 복명(復命)하고, 이어서 효순(孝淳)의 사망(死亡)를 보(報)하야 왈(曰) 이 사람은 우리 손에 죽어야 할 것인데 절로 병사(病死) 하였으니 천도(天道)가 어찌 공정(公正)하다 하오리까. 천사(天師) 가라사대 이 무슨 말인가. 죽은 자(者)는 불쌍하니라. 그 익일(翌日)에 천사(天師)께서 병욱(秉旭)을 맛나지 아니하시고 형렬(亨烈)로 더불어 고부(古阜)로 향(向)하야 떠나가시니 형렬(亨烈)이 병욱(秉旭)과의 약회(約會)를 어기심이 이상(異常)하야 천사(天師)께 물었으나 웃으며 대답을 아니하시더라.
이 때에 천사(天師)께서 태인 신배 김모(泰仁 新培 金某)의 집에 가실 새, 그 리중(里中)에 이르시니 어떤 집 한 채에 불이 나서 모진 바람에 화세(火勢)가 맹렬한지라. 천사(天師)께서 가라사대 저 불은 그대로 두었다가는 전동리(全洞里)가 초토(焦土)가 될 것이니 맞불을 노와 구(求)하리라 하시고 형렬(亨烈)을 명(命)하사 섶으로써 불을 피우니 순식간(瞬息間)에 그 불이 스스로 소멸(消滅)되니라.
이해 칠월(七月)에 김형렬(金亨烈)이 천사(天師)의 게신 곳을 찾아갈 새, 마침 동학도당(東學徒黨)이 원평(院坪)에 모여 잇는지라. 천사(天師)께 뵈온 후 그 일을 고하니 천사(天師) 가라사대 속(速)히 원평(院坪)에 가서 그 회(會)의 취지(趣旨)와 행동(行動)을 조사(調査)하여 오라 하심으로, 형렬(亨烈)이 명(命)을 쫓아 원평(院坪)에 가서 탐사(探査)하니 그 회(會)의 명칭(名稱)은 일진회(一進會), 목적(目的)은 보국안민(保國安民), 대회(大會)의 처소(處所)는 충남 강경(忠南 江景)이라. 곳 돌아와 복명(復命)한대 천사(天師) 가라사대 그네들로 하여금 금후(今後)에도 갑오(甲午)와 같은 약탈(掠奪)의 폐(弊)가 업게 하고 각각(各各) 제 재산(財産)을 쓰게 하리라 하시더니, 그 후(後) 일진회(一進會)의 행동(行動)은 남의 것을 약탈(掠奪)치 않고 제 재산(財産)을 써서 회원(會員)의 가산(家産)이 탕패(蕩敗)되니라.
이 때 김형렬(金亨烈)이 천사(天師)를 모시고 원평(院坪) 김성보(金成甫)의 집에 머무시더니 정남기(鄭南基)[천사(天師)의 처제(妻弟)]가 일진회원(一進會)이 되야 천사(天師)의 가입(加入)을 강권(强勸)하다가, 군중(群衆)으로 더불어 천사(天師)의 두발(頭髮)을 늑삭(勒削)코저 하야 가위로써 베어 보아도 베어지지 안는지라. 천사(天師)께서 머리 한 모슴을 친(親)히 버혀시며 가라사대 내 이것으로써 여러 사람의 뜻을 풀어주노라 하시고, 웃으시며 정남기(鄭南基) 다려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너의 보좌(補佐)가 되리라 하신 후(後) 다시 남기(南基)에게 탈회(脫會)하기를 권(勸)하시고 가라사대 네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면 일후(日後)에 후회막급(後悔莫及)하리라 하시더니, 과연 (果然)그 후 에 남기(南基)는 패가망신(敗家亡身)하고 그 유족(遺族)이 유리(流離)하니라.
일진회(一進會)가 발흥(勃興) 함으로부터 천사(天師)께서는 관(冠)을 버리시고 삿갓을 쓰시며 내의(內衣)는 검게 하시고 외의(外衣)는 희게 하야 가라사대 저 일진회(一進會)가 흑의(黑衣)를 입음으로 나도 흑의(黑衣)를 입노라 하시고, 문(門) 밖에 나시와 하늘을 가리켜 말씀하시되 구름이 안은 검고 밖은 흼이 나를 모형한 것이라 하시다.
갑진(甲辰)에 김덕찬(金德賛)이 모상(母喪)을 당(當)하야 장차(將次) 장례(葬禮)를 지낼 새, 전주(全州)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용두치 주점(龍頭峙 酒店)에서 천사(天師)께 뵈니 천사(天師) 가라사대 오늘 장사(葬事)는 못 지내리니 파의(罷蟻) 하리라. 덕찬(德賛)이 돌아가 장례(葬禮)를 행(行)할 새 소점(所占)한 땅을 파매 곳 큰 의혈(蟻穴)임으로 다시 다른 곳을 파니 그곳도 또 그러함으로 부득이(不得已)하야 토롱(土壟)을 하니라.
천사(天師)께서 비록 지천(至賤)한 사람을 대(對)할지라도 반듯이 존경(尊敬)을 하신 지라, 김형렬(金亨烈)의 노자(奴子) 지남식(池南植)에게도 대(對)할 때마다 존경(尊敬)을 하시거늘 형렬(亨烈)이 가로되 이 사람은 곳 내의 노자(奴子)니 존경(尊敬)치 마르소서. 천사(天師) 가라사대 이 사람이 곳 너의 노자(奴子)니 나에게 관계(關係)가 없나니라 하시며, 또 일러 가라사대 이 향리(鄕里)에는 아소(兒少)로부터 숙습(熟習)이 되었으니 말을 고치기 어려우나 다른 곳에 가면 어떠한 사람을 물론(勿論)하고 다 존경(尊敬)하라. 이 뒤로는 적서명분(適庶名分)과 반상(班常)의 구별(區別)이 없나니라.
김갑칠(金甲七)이 천사(天師)께 모든 일에 매양 응석 부리며 고집(固執)을 잘 부리되 천사(天師)께서 잘 달래어 일깨우실 뿐이요 한번도 꾸짖지 아니하시니 갑칠(甲七)은 일향(一向) 더욱 심(甚) 하야 고치지 않거늘, 하로는 형렬(亨烈)이 성내여 꾸짖어 가로되 저런 못된 놈이 어데 잇느냐 하니 천사(天師) 가라대 아직 언행(言行)이 덜 풀려서 독기(毒氣)가 있도다. 악장제거무비초, 호취자래총시화(惡將除去無非草 好取看來總是花)라. 말은 마음의 소리요, 행실은 마음의 자취라. 말을 잘하면 복(福)이 되야 점점(漸漸) 큰 복(福)을 이루어 내 몸에 이르고, 말을 잘못하면 화(禍)가 되야 점점(漸漸) 큰 화(禍)를 이루어 내 몸에 이르나니라.
천사(天師) 가라사대 난(亂)을 지은 사람이 있어야 다스리는 사람이 잇나니, 치우(蚩尤)가 작란(作亂)하야 능(能)히 대무(大霧)를 지음으로 황제(黃帝)가 지남거(指南車)로써 치란(治亂)하였나니 난(亂)을 지은 자(者)도 조화(造化)요, 난(亂)을 다스린 자(者)도 조화(造化)라. 그럼으로 최제우(崔濟愚)는 작란(作亂)을 하는 사람이요 나는 치란(治亂)을 하는 사람이라. 전명숙(全明淑)의 난은 곳 천하(天下)의 난(亂)을 동(動)케 하엿나니라.
형렬(亨烈)이 천사(天師)께 고(告)하야 가로되 정(鄭)집신 이라 하는 사람은 지식(知識)이 신이(神異)한 사람이라, 내의 증조(曾祖) 때에 내 집에 오래 있었는데 동리(洞里)에 맥환상(麥還上)으로 크게 곤난(困難)이 있음을 보고 금광(金鑛)을 가르쳐 써 면(免)케 하였고, 또 영삼(靈蔘)을 만이 얻어 병인(病人)을 구제(救濟)하였으며, 지낸 임술년(壬戌年)에 경상도(慶尙道)에서 일어난 민란(民亂)을 미리 말하였으나 내의 증조(曾祖)는 그의 지식(知識)을 빌어 명당(明堂) 하나라도 얻어 써 그 여음(餘蔭)을 후세(後世)에 끼친 것이 업사오니 한(恨)이 되는 일이로소이다. 천사(天師) 가라사대 그러한 지식(知識)을 가진 사람이 어찌 남의 밥을 헛되이 먹으리요, 천리(天理)의 극진(極盡)함이 일호(一毫) 인욕(人慾)의 사(私)가 없나니라 하시니라.
동월(同月)에 천사(天師)께서 전주 용두 주점(全州 龍頭 酒店))에 게실 새 이 때에 일진회(一進會)와 전주(全州) 이속(吏属)이 서로 교쟁(交爭)하야 최창권(崔昌權)이 부내(府內) 이민(吏民)을 모와 사문(四門)을 굳게 닫고 일진회(一進會)의 입성(入城)을 거(拒)하고, 각군 각면(各郡 各面)으로 통문(通文)을 발(發)하야 민병(民兵)을 모집(募集)하야 일진회(一進會)를 초멸(剿滅)하려 하는지라 천사(天師)께서 가라사대 어렵게 살아난 것이 또 죽겠으니 구원(救援)하리라 하시고, 화정리 이경오(花亭里 李京五)의 집에 가서 돈 칠십양(七十兩)을 청구(請求)하시니 경오(京五)가 돈이 없다고 사절(謝絶)함으로 다른 곳에서 돈 칠량(七兩)을 구(求)하시고 가라사대 이 돈이 능히 칠십량(七十兩)을 대(代)하리라 하시고, 형렬(亨烈)과 함께 용두 주점(龍頭 酒店)에 돌아오사 모인 사람을 많이 청(請)하야 술을 권(勸)하시고 종이에 글을 써서 여러 쪽으로 끊은 후 그것으로 끈을 꼬아서 그 주점(酒店) 문추(門樞)와 문(門)고리 쇠에 연결(聯結) 하시더니, 그날 석모(夕暮)에 이르러 이속(吏属)과 일진회(一進會)가 화해(和解)되야 사문(四門)을 통개(通開)하고 일진회(一進會)가 입성(入城)하니라. 이 때 천사(天師)께서 소비(消費)된 돈이 육량(六兩)이라. 천사(天師) 가라사대 고인(古人)은 바둑 한 점(點)으로써 백만병(百萬兵)을 물리쳤다 하는데, 나는 육량전(六兩錢)으로써 이속(吏属)과 일진회(一進會)외 싸움을 끌렀은 즉 내가 고인(古人)만 같지 못하다 하시더라.
그 후(後) 연일(連日) 그 주점(酒店)에 게실 새 이 때 순검(巡檢)이 부내(府內)에 잇는 일진회원(一進會員)을 조사(調査)하야 밤마다 순회(巡廻)하면서 경계 취체(警戒 取締)함으로, 천사(天師)께서 일진회원(一進會員) 다려 일러 가라사대 그대들이 이같은 고난(苦難)을 당(當)하고도 면(免)할 줄을 모르고 무슨 일을 하느뇨. 내가 그대들을 위(爲)하야 관부(官府)의 취체(取締)가 업게 하리라 하시더니, 과연(果然) 이로부터 그 엄중(嚴重)한 취체(取締)가 풀어지니라.
그 후 천사(天師)께서 이경오(李京五)다려 일러 왈(曰) 내가 그대에게 돈 칠십량(七十兩)이 있음을 알고 청구(請)한 것인데 왜 그렇게 속였느뇨. 경오(京五)가 정색(正色)하야 왈(曰) 참으로 업었나이다 하더니 그 익일(翌日)에 화적(火賊)이 경오(京五)의 집에 들어서 그 돈을 탈거(奪去)한지라. 천사(天師)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그 돈에 적신(賊神)이 범(犯)함을 알고 창생(蒼生)을 건지려고 청(請)한 것 이언마는 경오(京五)가 듣지 아니하였다 하시니라.
이해 팔월 이십칠일(八月 二十七日)에 천사(天師)께서 형렬(亨烈)을 데리고 익산군 만중리(益山郡 萬中里) 황사성(黃士成)의 집에 이르시니, 마침 어떤 사람이 노기(怒氣)를 띄고 문(門)을 홱 닫음에 벽토(壁土)가 무너지는지라. 천사(天師)께서 동리(洞里) 정춘심(鄭春心)의 집에 옴기시다. 원래(元來) 황사성 외부 숙경((黃士成) 외父 淑京)이 전주 용진면 용암리(全州 龍進面 龍岩里))에 사는 황참봉(黃叅奉)의 돈을 쓰고 갚지 못하였더니, 참봉(叅奉)이 죽은 뒤에 그 아들이 차인(差人)으로 하여금 숙경(淑京)에게 채무변상(債務辨償)을 독촉(督促)하야 왈(曰) 네가 빗을 갚지 아니하면 경무청(警務廳)에 말하여 너를 옥중(獄中)에서 썩이며 받으리라고 하면서 위협(威脅)한 것이다. 이날 밤에 사성 부자(士成 父子)가 춘심(春心)의 집에 와서 천사(天師)께 뵈고 이 사실을 고(告)하거늘, 천사(天師) 가라사대 그대의 집이 파벽(破壁) 되었으니 그 일은 끌러지리라 하시고 숙경(淑京)으로 하여금 입자(笠子) 한 입과 백목(白木) 한 필을 사오게 하신 후(後)에, 숙경(淑京)다려 일러 가라사대 이 후(後)로는 아무 염려(念慮)도 말나. 일이 순조(順調)로 풀릴지니라. 입자(笠子)와 백목(白木)은 채권채무간(債權債務間) 길 닦는 것이라 하시니라. 이해 세말(歲末)에 이르러 문득 순검(巡檢)이 숙경(淑京)을 잡아가거늘 숙경(淑京)이 순검(巡檢)에게 간청(墾請)하야 채주(債主)의 집에 가니 황참봉(黃叅奉)의 아들이 숙경(淑京)을 보고 쟁힐(爭詰) 하는지라. 참봉(叅奉)의 미망인(未亡人)이 그 아들을 불러 책(責)하야 가르되 저 어른은 너의 부친(父親)의 친구인데 어찌 참아 옥(獄)에 가두어 금수(禽獸)의 행위(行爲)를 하랴 하느냐 하고 그 증서(證書)를 앗아 불살라 버리니라.
구월 십일(九月 十日)에 천사(天師)께서 함열군 회선동(咸悅郡 會仙洞) 김보경(金甫京)의 집에 가시니 개가 짖고 나오더라. 이 때 보경(甫京)의 병(病)이 위독(危篤)하야 문(門)에 나서 통접(通接)치 못하고 시료(施療)하심을 청(請)하거늘, 천사(天師)께서 웃으시며 가라사대 주인(主人)의 병(病)은 임이 저 청구(靑狗)에게 옮겼으니 근심 말라 하시더니 과연(果然) 보경(甫京)이 쾌복(快服)되고 청구(靑狗)가 병(病)들어 삼일(三日)을 지나 죽으니라.
이때에 회선동(會仙洞) 부근에는 도적(盜賊)이 출몰(出沒)하야 밤마다 촌락(村落)을 겁략(劫掠) 하거늘, 보경(甫京)이 천사(天師)께 고(告)하야 가로되 제 집이 요족(饒足)하지 못하오나 외간(外間)에서는 부자(富者)라고 함으로 도적(盜賊)을 두려워하나이다. 천사(天師) 가라사대 근심을 하지 말나. 이 후(後)에는 도적(盜賊)이 업게 하리라 하시더니 과연(果然) 그 뒤로는 도적(盜賊)의 자취가 없어지니라.
그 때에 천사(天師)의 거룩하신 소문이 사방(四方)에 들리게 된지라. 천사(天師)께서 보경(甫京)으로 하여금 고(鼓)를 구(求)하여 오사 새끼로써 대량(大樑)에 달고 종야(終夜)토록 처 울리시며 가라사대 이 북소리가 서양(西洋)까지 울려 들리리라 하시니 보경(甫京)은 그 의의(意義)를 알지 못하니라.
천사(天師)께서 만이 함열(咸悅)에 계셨는데 이것은 만인함열(萬人咸悅)의 의(意)를 취(取) 함이라 하시더라.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하심으로부터 두루 순회(巡廻)하시는 곳은 전북칠군(全北 七郡)이니 곳 전주(全州) 태인(泰仁) 정읍(井邑) 고부(古阜) 부안(扶安) 순창(淳昌) 함열(咸悅)이러라.
천사(天師)께서 보경(甫京)을 명(命)하사 유불선(儒彿仙) 삼자(三字)를 쓴 후(後) 합안정좌(合眼正坐)하야 삼자중 일자(三字 中 一字)를 짚어라 하시니 보경(甫京)이 불자(佛字)를 짚음에 천사(天師)께서 기꺼운 빗을 나타내시다. 또 한사람[미상(未詳)]을 명(命)하사 전례(前例)와 같이 하시니 그 사람은 유자(儒字)를 짚음에 천사(天師) 가라사대 유(儒)는 부유(腐儒)라 하시더라.
천사(天師)께서 익산(益山)에 가세서 월여(月餘)를 계시다가 다시 회선동(會仙洞) 에 이르시니 보경(甫京)의 모가 병(病)들어 위독한지라, 천사(天師)께서 외당(外堂)에 계시사 보경(甫京)다려 일러 가라사대 금야(今夜)에 명부사자(冥府使者)가 병실(病室)에 침입(侵入)하야 나의 사자(使者)의 틈을 엿보아서 병인(病人)을 해(害)할지니, 병실(病室)을 떠나지 말고 한사람식(式) 체번(替番)하야 잠을 자지 말고 밤을 새우라. 보경(甫京)이 명(命)을 쫓아 가인(家人)을 단속하야 잠들지 않고 한사람씩 서로 체번(替番)하야 밤을 새웠으나, 이렇게 여러 날을 계속(繼續)한 까닭에 모다 곤뇌(困惱)하게 되었는데 보경(甫京)이 문득 잠이 든 지라. 천사(天師)께서 외당(外堂)으로부터 급(急) 히 소리쳐 보경(甫京)을 부르시니 보경(甫京)이 놀라 깨니 발서 그 모친(母親)이 명종(命終) 하니라. 대개 천사(天師)의 말씀하신 바 내의 사자(使者)라 함은 시병인(侍病人)을 가리켜 이르심이니라.
십일월(十一月)에 천사(天師)께서 전주부중(全州部中)에 이르시니 마침 민요(民擾)가 일어나서 인심(人心)이 흉흉(汹汹)한지라. 김보경(金甫京)이 천사(天師)께 뵈니 천사(天師)께서 보경(甫京)다려 일러 가라사대 김병욱(金秉旭)이 국가(國家)의 중진(重鎭)에 처(處)하야 민심(民心)의 동요(動搖)를 진무(鎭撫)하야 그 천직(天職)을 다하여야 할지라. 그 방책(方策)을 어떻게 하였는지 병욱(秉旭)을 차자가서 물어오라 하심으로 보경(甫京)이 병욱(秉旭)을 보고 천사(天師)의 명(命)을 전(傳)하니, 병욱(秉旭)이 가로대 내의 무능(無能)으로는 물끓듯하는 민요(民擾)를 진정(鎭定)할 수 업사오니 다만 천사(天師)의 신위(神威)를 바라나이다 한지라. 보경(甫京)이 복명(復命)하니 천사(天師)께서 웃고 들으실 뿐이러니 그날 밤에 우설(雨雪)이 크게 나리고 천기(天氣)가 혹한(酷寒)하야 설한방어(雪寒防禦)의 설비(設備)가 없이 노영(露營)에 모였든 민중(民衆)은 할일 없이 해산(解散)하야 집으로 돌아가고, 그 우설(雨雪)은 삼일간(三日間) 계속(繼續)한 까닭에 군중(群衆)는 다시 모이지 못하고 소란(騷亂)은 스스로 평정(平靜)하니라.
십이월(十二月)에 천사(天師)께서 동곡(東谷)에 게시다. 이 때 동곡인(銅谷人) 김갑진(金甲振)이 나병(癩病)으로 인(因)하야 면부(面部)에 부기(浮氣)가 나며 미모(眉毛)가 다 빠짐으로 천사(天師)께 시료(施療)하심을 청(請)하거늘, 천사(天師)께서 갑진(甲振)을 명(命)하사 정문(正門) 밖에서 방(房)을 향(向)하야 서게 하신 후(後) 형렬(亨烈)과 기외 수인(其外數人)으로 하여금 대학 우경일장(大學 右經一章)을 송독(誦讀)케 하사 십분(十分)을 지낸 후(後) 돌려보내시더니, 이로부터 갑진(甲振)의 병(病)이 차효(差效)가 있어 얼마 못되어 전쾌(全快)되니라.
동곡리(銅谷里) 전주점주(前酒店主) 전순일(田順一)이 신병(病)으로 오랫동안 위통(委痛)하다가 천사(天師)께 뵈이기를 원(願)하는지라. 천사(天師)께서 한공숙(韓公淑)을 불러 함께 가사 병인(病人)을 보시고 죽 한 그릇을 먹게 하신 후(後) 공숙(公淑)다려 일러 가라사대 이 병(病)에는 은영자(銀纓子)가 있어야 치료(治療)하리라. 공숙(公淑)이 가로대 나에게 잇나이다 하고 낭중(囊中)으로부터 은영자(銀纓子) 한 개를 내여 들이니 천사(天師)께서 그 방중(房中)에 잇는 파경(破鏡) 한 조각을 취(取)하사 그 우에 은영자(銀纓子)를 노아서 은벽(隱僻)한 곳에 두시고, 병인(病人)다려 나 잇는 곳에 주안 일상(酒案 一床)을 차려 오라 하시고 십분간(十分間) 지낸 뒤에 천사(天師)께서 떠나시며 가라사대 의사(醫士)가 떠나니 병인(病人)은 문(門)에 나와 송별(送別)하라. 순일(順一)이 그대로 한 후(後) 곳 쾌차(快差)하니라. 그 뒤에 순일(順一)이 주안(酒案)을 차려오지 않거늘 천사(天師) 가라사대 그 사람이 구미(口味)를 일어 신고(辛苦)하리라 하시더니 과연(果然) 순일(順一)이 병(病) 은 나았으나 구미(口味)를 일어버려 수삭(數朔)을 두고 고통(苦痛)하니라.
또 동곡리(銅谷里) 전 주점주(前酒店主) 김사명(金士明)의 아들이 크게 병(病)들어 사일(四日)만에 죽는지라. 그 모(母)가 사아(死兒)를 안고 천사(天師)께 와서 살려 달라고 애원(哀願)함에, 천사(天師)께서 웃어 가라사대 사자불가복생(死者不可復生)이니 내 어찌 살리랴 하시고 사아(死兒)를 안아 무릎에 누이시고 배를 만져 내리며 허미수(許眉叟)[미상(未詳)]를 불러 송우암(宋尤庵) 잡아내라는 소리를 하신 후(後) 목과(木果)를 입에 씹어 춤을 흘려 사아(死兒)의 입에 넣으니 사아(死兒)가 문득 항문(肛門)으로 추즙(醜汁)을 쏘며 놀라 소리치고 회소(回甦)한지라. 그 모(母)를 명(命)하사 미죽(米粥) 한 그릇을 쑤어 아해(兒孩)를 먹이니라.(편자(編者) = 그 아(兒)는 지금(只今) 장년(壯年)이 되다).
동곡인(銅谷人) 김창여(金昌汝)가 적체(積滯)로 음식(飮食)을 잘먹지 못하여 형모(形貌)가 초췌(憔悴)한지라. 천사(天師)께서 그를 평상(平床)에 눕게 하신 후(後) 배를 어루만지시며 (亨烈)을 불러 [규화세침능보곤 평수부종빈읍결 일년월명임술추 만리운미태을궁 청음교무이객소 왕겁오비삼국진(葵花細忱能補袞 萍水浮踵頻泣 一年月明壬戌秋 萬里雲迷太乙宮 淸音蛟舞二客簫 往刼烏飛三國塵)]이라는 시구를 읊게 하시더니 그 후(後)로 창여(昌汝)의 체증이 전쾌(全快)되니라.
전주 용두치(全州 龍頭峙) 김모(金某)[미상명(未詳名)]가 앉은뱅이로서 천사(天師)께 와서 그 병(病)을 고쳐 주심을 애원(哀願)하는지라. 천사(天師)께서 그 병인(病人)을 앞에 안치시고 한참 한화(閒話) 하시다가 연죽(煙竹)을 들어 가라사대 이 연죽(煙竹)을 들어 올림에 따라서 차차 일어서라 하시고 연죽(煙竹)을 서서히 들어 올리시니, 그 병인(病)이 힘을 다하여 그에 따라서 무릎과 다리를 피여 서며 점점(점점) 발을 옴기는지라. 천사(天師)께서 (亨烈)을 명(命)하사 글 한 장을 고성대독(고성대독)하시니 그 글은 곳 예고신 예팽신 석란신 동서남북중앙신장 조화조화 운오명령훔(曳鼓神 曳彭神 石蘭神 東西南北 中央神將 造化造化云 吾命令 吽)이라. 이 글을 읽은 뒤에 병인(病)으로 하여금 정중(庭中)에서 구보(驅步)케 하시며 광찬(光賛)을 명(命)하사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려 빨리 걸게 하시고 교자(轎子)를 버리고 도보(徒步)로 전주(全州)에 돌아가게 하니라.
태인군 감곡면(泰仁郡 甘谷面)에 한 병인(病人)이 있어 조반(朝飯)을 먹으면 오시(午時)에 토(吐)하고 석반(夕飯)을 먹으면 효두(曉頭)에 토(吐)하는 증세(症勢)로 고민(苦悶)하다가 천사(天師)께 와 뵈옵고 시료(施療)를 청(請)하거늘, 천사(天師)께서 병인(病人)다려 일러 가라사대 집에 돌아가서 주효(酒肴)와 병(餠)을 많이 장만하야 이곳으로 가져 오라. 약을 가르쳐 주리라. 그 사람이 명(命)을 쫓아 집에 돌아가서 주효(酒肴)와 병(餠)을 만이 장만하야 가져오는지라. 천사(天師)께서 흔연(欣然)히 바다서 모든 제자(弟子)와 열좌(列坐)하야 한가지 잡수려 하시다가 문득 성내시며 그 물건을 도로 주어 보내시니 그 병인(病人)이 원분(怨憤)을 품고 돌아가서 자기(自己)의 허물이 업는가 자성(自省) 하더라.
수일(數日) 후(後)에 천사(天師)께서 그 병인(病)을 찾아가시니 병인(病)이 무심(無心)히 대(對)하는지라. 천사(天師)께서 일러 가라사대 내가 신약(神藥)을 가리키리라 하시고 나무공이를 쪼개어 다려 먹으라 하시며 손으로 복부(腹部)를 만져 내리시고 도라 오셨더니, 그 사람이 곳 명(命)하심을 쫓아 나무공이 조각을 다려 마신 후(後) 그 병(病)이 쾌차(快差)되니라. 대개 천사(天師)께서 그 식물(食物)을 도로 돌려보내며 성내심은 그 병인(病人)으로 하여금 분노(憤怒)케 하야 장부(臟腑)를 뒤집으려 하심이니 이는 시료(施療)하는 대에 필요(必要)가 있음으로 인(因)하심이러라.
금구군(金溝郡) 수류면(水流面) 구미동(龜尾洞) 최운익(崔雲益)의 아들이 병(病)으로 사경(死境)에 이른지라. 운익(雲益)이 천사(天師)께 와서 살려 주심을 청(請)하거늘 천사(天師) 가라사대 그 병인(病人)의 형모(形貌)가 매우 추루(醜陋)하야 일생(一生)에 깊이 한(恨)을 품었음으로 그 혼(魂)이 이제 지나 심양(支那瀋陽)에 있어 돌아오기를 싫어하니 어찌할 수 업노라. 운익(雲益)이 듣고 그 형모(形貌)의 추루(醜陋)함을 알아 말씀함을 크게 신성(神聖)히 여기는 동시(同時)에 그 회소(囘甦)치 못하리란 말씀에 더욱 슬퍼하면서 굳이 약(藥)을 청(請)하거늘 천사(天師)께서 사물탕(四物湯) 한 첩을 지어서 그 봉피(封皮)에 구월음(九月飮)
이라 써서 주시니 운익(雲益)이 약을 가지고 집에 돌아간 즉 그 아들이 발서 죽었더라. 운익(雲益)이 간 후(後) 제자(弟子)들이 구월음(九月飮)의 뜻을 물으니 천사(天師) 가라사대 구월(九月)에 장시황어여산하(葬始皇於驪山下)라 하였으니 곳 살지 못할 뜻을 표시(表示)함이라. 그러나 약(藥) 을 물어 얻지 못하면 함원(含怨)하겠기로 그같이 한 것이라 하시더라.
동곡(銅谷) 박순여(朴順汝)의 모(母)가 연육십여(年六十餘)에 병(病)들어 매우 위독(危篤)하야 회복(囘復)할 희망(希望)이 없음으로 치상준비(治喪準備)를 하고 장례(葬禮)에 쓸 술까지 빚어 넣은 지라. 천사(天師)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순여(順汝)를 명(命)하사 시장(市場)에 가서 초종(初終)에 쓰는 모든 물건을 보고 그것이 쓰이지 않도록 하여 달라는 심고(心告)를 성의(誠意)로 하고 돌아 오라 하시고, 사물탕(四物湯) 한 첩을 끓여서 그 병실(病室) 정문(正門) 밖 계하(階下)에 땅을 장방형(長方形)으로 파고 그 약(藥) 을 부으며 가라사대 병(病)이 이미 장기(葬期)에 이르렀으니 약(藥)은 땅에 써야 되리라 하시더라. 이 때 순여(順汝)가 시장(市場)으로부터 돌아오거늘 천사(天師) 가라사대 시장(市場)에 가서 누구에게 심고(心告)하였나뇨. 순여(順汝) 가로대 선생님(先生任)에게 심고(心告) 하였나이다. 그 후(後) 병인(病)이 곳 회생(囘生)하거늘 천사(天師)께서 이웃 사람을 모아 놓고 그 빚어 넣은 술을 다 마시니라.
천사(天師)께서 원평(院坪)에 게실 새 그 때에 어사(御使) 안종덕(安鍾悳)이 부안(扶安) 정읍(井邑) 고부(古阜) 순창(淳昌) 등(等) 칠읍(七邑) 군수(郡守)를 파면(罷免)하고 또 전주(全州)에 출도(出道)하게 되야 군수 권직상(郡守 權稷相)의 지위(地位)도 위태(危殆)케 된지라. 김병욱(金秉旭)은 당시(當時) 전주부(全州部) 군관(軍官)으로서 권씨(權氏)와 우의(友誼)가 있을 뿐더러 순치(脣齒)의 관계(關係)가 있음으로 이것을 근심하다가 천사(天師)께 와 뵈고 그 대책(對策)을 묻거늘, 천사(天師) 가라사대 권직상(權稷相)이 파면(罷免)되면 군(君) 의 지반(地盤)도 안전(安全)치 못할 것이오 따라서 내 주용(酒用)이 끊어질 것이라. 내 장차(將次) 도리(道理)가 있으니 군(君)은 걱정 말라 하시더니 그 후(後) 안어사(安御史)가 권직상(權稷相)을 파면(罷免) 하려고 전주부(全州部)를 들어오는 동시(同時)에 안어사(安御史) 면관(免官)의 비훈(秘訓)이 서울에서 전주부(全州部)에 도착(到着)한지라. 병욱(秉旭)이 천사(天師)께 와서 크게 감사(感謝)하더라.
을사 정월 회일(乙巳 正月 晦日)에 천사(天師)께서 형렬(亨烈)을 더부리고 부안군 성근리 (扶安郡 成根里) 이환구(李桓九)의 집에 가서 여러날 머무시니, 환구(桓九)가 부안읍인(扶安邑人) 신원일(辛元一)을 자조 거천하거늘 천사(天師)께서 원일(元一)을 불으시니 원일(元一)이 와서 뵈고 천사(天師)를 모셔다가 제집에서 공양(供養)하니라. 원일(元一)의 부(父)와 제(弟)가 천사(天師)의 오래 머무심을 싫어하거늘 원일(元一)이 천사(天師)께 청(請)하야 가로대, 가친(家親)이 본래(本來) 어업(漁業)을 좋아하여 해마다 어업(漁業)을 경영(經營)하다가 작년(昨年)에 폭풍(暴風)으로 인(因)하야 큰 손해(損害)를 보았으니 선생님(先生任)께서 금년(今年)에 풍재(風災)가 없게 하여 주시면 가친(家親)을 위(爲)하야 다행이 되겠나이다. 천사(天師) 가라사대 풍재(風災)를 없게 하고 어업(漁業)을 흥왕(興旺)케 하리니 다익(多益)을 얻은 후(後) 돈 천양(千兩)을 가져 오라. 원일(元一) 부자(父子)가 기뻐하여 승낙(承諾) 하더라. 그해에 풍재(風災)가 없을 뿐 아니라 칠산해(七山海) 어업(漁業) 중(中)에 원일부(元一父)의 영업(營業)이 가장 흥왕(興旺)한지라. 천사(天師)께서 원일부(元一父)에게 사람을 보내어 돈 천양(千兩)을 가져 오라 하시니 원일부(元一父)가 전약(前約)을 어기고 보내지 안는지라. 천사(天師)께서 원일(元一)다려 일러 가라사대 이는 대인(大人)을 기망(欺罔)함이라. 내 일은 일언일동(一言一動)이라도 사사로이 못하나니 금후(今後)로는 군가(君家)의 어업(漁業)이 철폐(撤廢)케 되리라 하시더니 그 후(後)로는 일미(一尾)의 어린(魚鱗)도 잡히지 못함으로 드디어 그 어업(漁業)을 폐지(廢止)하니라.
삼월(三月)로부터 수삭(數朔)동안 천사(天師)께서 객망리(客望里) 앞 주점(酒店)에 머무사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行)하시니 종자(從者)가 많아 점주(店主) 오동팔(吳東八)이 돈을 많이 모았더니, 그 후(後) 천사(天師)의 경용(經用)이 부족(不足)함을 보고 배척(排斥)하는지라. 모든 제자(弟子)가 그 점주(店主)의 무의(無義)함을 노(怒)한대 천사(天師)께서 금지(禁止)하야 가라사대 지우무학(至愚無學)한 무리가 어찌 예절(禮節)을 알 것이냐. 내가 만일 그 무의((無義)함을 성낼진대 천사(天師)신명(神明)이 그에게 대화(大禍)를 줄 것이라. 대인(大人)의 과차(過次)에 덕(德)을 흘리지 못하고 도리어 화(禍)를 끼치게 되면 그 어찌 참아 보리요 하시더라. 그 후(後) 태인읍(泰仁邑)에 가사 깊은 밤에 여러 제자(弟子)로 더불어 산(山)에 올라가서 공사(公事)를 행(行)하신 후(後) 제자(弟子)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 공사(公事)에는 천사(天師)대신명(大神明)이 회집(會集)하였었는데, 그들의 해산(解散)에는 반드시 참혹(慘酷)한 응징(膺懲)이 있으리라 하시더니 말씀이 마치시자 뜻밖에 태인읍(泰仁邑)으로부터 군중(群衆)의 고함(高喊)소리가 일어나더라. 제자(弟子)들이 천사(天師)를 모시고 산(山)에서 나려와서 살피니 신경현(辛京玄)의 주점(酒店)에 군중(群衆)이 모여들어 가장집물(家藏什物)과 주항(酒缸)을 모다 파괴(破壞) 하였더라. 원래(元來) 신경현(辛京玄)이 주업(酒業)을 경영(經營)한 이후(以後) 읍중(邑中) 소년(少年)의 동정(同情)을 얻어 돈을 모은 후(後), 그 소년(少年)들의 군핍(窘乏)한 때를 당(當)하야 무리(無理)하게 냉대(冷待)함으로 소년(少年)들이 그 무의(無義)함을 노(怒)하야 필경(畢竟) 이와 같이 습격(襲擊)한 것이라.
익일(翌日)에 천사(天師)께서 경현(京玄)의 집에 가시니 경현 부처(京玄夫妻)가 서로 호읍(號泣)하면서 다른 곳으로 이거(移居)하려 하거늘, 천사(天師)께서 그 주모(酒母)다려 술을 가져 오라 하시니 주모(酒母)가 답(答)하되 주항(酒缸)을 모다 깨트렸은 즉 무슨 술이 있사오릿가 하거늘 천사(天師) 가라사대 저 독중(櫝中)에 감추어 둔 소주(燒酒)를 가져 오라. 주모(酒母) 가로대 어룬 앞에는 조금도 은휘(隱諱)할 수 업나이다 하고 적은 병(甁)에 담겨 있는 소주(燒酒)를 따라 올리더라. 천사(天師)께서 경현부처(京玄夫妻)다려 일러 가라사대 모든 일의 옳고 그름이 다 내게 잇고 위치 여하(位置如何)에 잇지 아니하니 이 후(後)로는 온갖 일을 잘 생각하야 삼갈지어다. 그리하면 전로(前路)가 다 펴이고 영업(營業)이 흥성(興盛)하리라 하시니 경현(京玄)이 명(命)하심을 쫓아 이거(移居)를 중지하고 허물을 고쳐 주업(酒業)을 계속(繼續)하더니 얼마 안 되어 영업(營業)이 흥왕(興旺)하니라. 그날 밤에 객망리(客望里) 앞에 잇는 오동팔(吳東八) 주점(酒店)에서 뜻밖에 우뢰같은 큰소리가 나며 인축(人畜)과 모든 가산(家産)은 아무 상해(傷害)없이 집이 저절로 움직여 뜰 밖에 가서 전복(顚覆)된지라. 그 후(後) 동팔(東八)이 재목(材木)을 수습(收拾)하야 집을 개축(改築)하다가 이회(二囘)를 거듭 하여 그같이 전복(顚覆)됨으로 하릴없이 건축공사(建築公事)를 중지(中止)하고 의막(依幕)을 치고 농업(農業)을 경영(經營)하더니, 하로는 어떤 사람이 와서 그 참상(慘狀)을 보고 연장을 갖고와서 반일내(半日內)에 집을 개축(改築)하고 공전(工錢)도 받지 않고 돌아갔는데 보통 사람의 힘으로는 대공(大工) 수십일(數十日) 품을 요(要)한 공사(公事)임으로 이웃 사람은 크게 신기(神奇)히 여기고 천사(天師)의 제자(弟子)들은 모다 천사(天師)께서 긍측(矜惻)히 여기사 신장(神將)을 보내신 것이라고 생각 하니라.
천사(天師)께서 매양 제자(弟子)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삼계대권(三界大權)을 맡았으니 선천(先天)의 모든 도수(度數)를 뜯어고치고 후천(後天)의 새 운명(運命)을 열어서 선경(仙境)을 만들리라 하심으로 제자(弟子)들은 항상(恒常) 그 더딤을 한하야 하루바삐 개벽(開闢) 하시기를 기다리더라.
신원일(辛元一)이 개벽공사(開闢公事)를 하루바삐 행(行)하시기를 천사(天師)께 강청(强請)한대 천사(天師) 가라사대 인사(人事)는 기회(機會)가 있으며 천리(天理)는 때가 잇나니, 그 기회(機會)를 지으며 때를 기다릴 것이어늘 이제 기회(機會)와 천시(天時)를 어기고 억지로 인모(人謀)만 쓰면 이는 천하(天下)에 재(災)를 기침이며 억조(億兆)의 생명(生命)을 앗음이라. 어찌 참아 할 바이랴. 원일(元一)이 듣지 않고 천사(天師)께 굳이 청(請)하야 가로대 방금(方今) 천하(天下)가 무도(無道)하야 선악(善惡)을 분별(分別)키 어려오니 속(速)히 이를 잔멸(殘滅)하고 후천(後天) 신운(新運)을 열으심이 옳을까 하나이다. 천사(天師)께서 심(甚)히 괴롭게 여기사 칠월(七月)에 원일(元一)을 데리고 부안(扶安) 변산(邊山) 우금암하(遇金岩下) 개암사(開岩寺)에 가사 원일(元一) 다려 우두(牛頭) 한 개와 술 한 병을 준비(準備)하라 명(命)하신 후(後), 청수(淸水) 한 그릇을 방(房) 한판에 놓으시고 우두(牛頭)를 삶아서 청수(淸水) 앞에 진설(진설)하신 후(後) 원일(元一)을 그 앞에 꿇어 안치시고 양황(洋黃) 삼개(三個)를 그 청수(淸水)에 넣으니 문득 풍우(風雨)가 대작(大作)하고 홍수(洪水)가 도천(滔天)하더라. 천사(天師)께서 원일(元一)다려 일러 가라사대 이제 청수(淸水) 일분(一盆)에 양황 일갑(洋黃一匣)을 넣으면 천지(天地)가 수국화(水國化) 할지라. 개벽(開闢)이란 이렇게 쉬울 것이니 그리 알지어다. 만일 이것을 때 이르기 전(前)에 쓰면 재해(災害)만 기칠 뿐이니 그리 믿고 기다려라 하시고 모든 설치(設置)를 거두시니 풍우(風雨)가 곳 그치더라. 천사(天師)께서 원일(元一)을 돌려보내심으로 원일(元一)이 집에 돌아가니 아우의 집이 풍우(風雨)에 도괴(倒壞)하고 그 권솔(眷率)이 원일(元一)의 집에 피난(避難)하야 왔는데, 원래(元來) 원일(元一)의 아우는 천사(天師)를 믿지 아니하였더라. 원일(元一)이 이로부터 더욱 두려워하여 무리(無理)한 언사(言辭)를 아니하더라. 익일(翌日)에 천사(天師)께서 원일(元一)의 집에 오시사 원일(元一)다려 일러 가라사대 제생의세(濟生醫世)는 성인(聖人)의 도(道)오, 재민혁세(災民革世)는 웅백(雄伯)의 술(術) 이라. 이제 천하(天下)가 웅백(雄伯)에게 괴로운지 오랜지라. 내가 상생(相生)의 도(道)로써 화민정세(化民靖世) 하리니 너는 이제로부터 마음을 고치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대인(大人)을 공부(工夫)하는 자(者)는 항상(恒常) 호생(好生)의 덕(德)을 가져야 할 것이라. 어찌 억조(億兆)를 사멸(死滅)케 하고 홀로 살기를 도모함이 도리(道理)에 당(當)할 것이냐 하시더라.
부안(扶安)으로부터 고부(古阜) 입석리(立石里) 박창국(朴昌國)(천사(天師)의 매가(妹家))의 집에 와 머무사 각종(脚瘇)으로 수일(數日) 신고(辛苦)하시다.
이때에 천사(天師)의 매(妹) 박창국 부인(朴昌國夫人)이 발을 벗고 풀밭에 다니거늘 천사(天師)께서 보시고 민망히 여겨 가라사대 이 근처(近處)에 독사(毒蛇)가 있으니 만일 벗은 발을 물면 어찌 하느냐 하시고, 길게 휘파람을 부시니 큰 독사(毒蛇) 한 마리가 담장 풀밭으로 부터 뜰 아래에 들어와 머리를 들고 잇는지라. 이때에 박창국(朴昌國)은 상인(喪人)이라. 밖으로 부터 들어오다가 독사(毒蛇)를 보고 크게 놀라 상장(禪杖)으로 타살(打殺)하거늘 천사(天師)께서 보시고 노래하야 가라사대 독사혜(毒蛇兮) 독사혜(毒蛇兮) 상인견지상장타살 도승견지선장타살(喪人見之禪杖打殺 道僧見之禪杖打殺) (이 노래는 의의(意義)가 미상(未詳)하니 아마 궐문(闕文)이 잇는 듯)이라 하신 후(後), 독사(毒蛇)의 피가 땅에 있음을 보시고 가라사대 내 누이가 벗은 발로 밟으면 해(害)를 보리라 하시고 친(親)히 그 혈흔(血痕)을 밟아서 독기(毒氣)를 제(除)하시다.
팔월 이일(八月 二日) 김형렬(亨烈)이 입석리(立石里)에 와서 천사(天師)께 뵈오니 각종(脚瘇)이 좀 나으시다. 이에 천사(天師)를 모시고 함열(咸悅) 회선동(會仙洞) 김보경(金甫京)의 집에 가실 새 일일(一日)에 이삼십리식(二三十里式) 행(行)하시더라. 보경가(甫京家)에 다일(多日) 체류(滯留)하실 새 함열읍인(咸悅邑人) 김광찬(金光賛)이 보경(甫京)의 천인(薦引)으로 천사(天師)께 와 뵈고 사사(師事)하니라. 이때에 형렬(亨烈)과 보경 부자(甫京父子)와 소진섭(蘇鎭燮)과 김광찬(金光賛)이 모시니라.
임피 군둔리(臨陂 軍屯里) 김성화(金性化)가 또 천사(天師)를 사사(師事)함으로부터 천사(天師)께서 수월간(數月間) 함열(咸悅) 임피(臨陂) 간(間)으로 내왕(來往)하시고 형렬(亨烈)은 자가(自家)로 돌아가니라.
십월(十月)에 김형렬(亨烈)이 함열(咸悅)에 가서 천사(天師)께 뵈오니 천사(天師)께서 형렬(亨烈)등(等) 제제자(亨烈等諸弟子)를 거느리시고 익산군(益山郡) 만중리(萬中里) 정춘심(鄭春心)의 집에 가사 춘심(春心)을 명(命)하야 우두(牛頭) 일개(一個)를 사다가 자숙(煮熟)한 후(後), 선제(船祭)를 지내리라 하시고 백지 일속(白紙 一束)을 길이로 무수(無數)히 절단(切斷)하야 풀로 붙여 연속(連續)한 후(後) 절반(折半)하야 말아서 두 덩이를 만들어 각각(各各) 그릇에 담아 두었다가, 야반(夜半)에 이르러 정문창(正門窓) 에 이공(二孔)을 통(通)하고 우두(牛頭)를 문(門) 앞에 놓은 후(後) 형렬(亨烈)과 광찬(光賛)을 명(命)하사 절지 이축(切紙 二軸)을 나누어 갖고 문(門) 밖에 나가서 각각(各各) 풀어서 창공(窓孔)으로 들여보내고 문(門) 안에서는 지단(紙端)을 다시 말아, 이렇게 지권(紙卷)이 다 풀리자 문득 천동(天動)이 일어나서 기적(汽笛) 소리 같아 외인(外人)은 그 불시(不時)의 뇌성(雷聲)에 놀라니라. 천사(天師)께서 성백(成伯)다려 미건시(未乾柴)를 취(取)하야 부엌에 불사르되 그 연기(烟氣)가 기선(汽船) 연통(烟桶)의 연기(烟氣)가치 연돌(烟突)에 일어나게 하라고 명(命)하시고 가라사대 해람(解纜) 하였으니 발묘(拔錨) 하리라 하시니 문득 일실중(一室中)에 잇는 사람이 다 현훈(眩暈)이 나서 혼도(昏倒)하야 혹(或)은 구토(口吐)하며 혹(或)은 정신(精神)을 잃는지라. 이때에 참재(參在)한 사람은 소진섭(蘇鎭燮), 김덕유, 김광찬(金光賛), 김형렬(金亨烈), 김갑칠(金甲七), 정성백(鄭成伯)과 정(鄭) 의 가족(家族)이라. 그 중 김덕유(金德裕)는 문외(門外)에서 거꾸러져 하사(下瀉)까지 하고, 정씨 가족(鄭氏家族) 사오인(四五人)은 각각(各各) 침실(寢室)에서 넘어지고 갑칠(甲七)은 인사불성(人事不省)되야 호흡불통(呼吸不通)의 지경에 이른지라. 천사(天師)께서 청수(淸水)로써 갑칠(甲七)의 입에 넣으며 불으시니 갑칠(甲七)이 곳 소소(蘇甦)된지라. 차례차례로 혹(或) 얼굴에 청수(淸水)를 뿌리며 혹 마시게 하시니 모든 사람이 낱낱이 기운(氣運)을 차리더라. 김덕유(金德裕)는 폐병(肺病)으로 중기(重期)에 이르렀든 바, 이 후(後)로 곳 완쾌(完快)되니라. 대개 이것은 무슨 공사(公事)인지 미상(未詳)하나 진묵(震黙)의 초혼(招魂)이라는 말도 잇더라.
십월(十月)부터 세말(歲末)까지 만중리(萬中里) 주점(酒店)에 게시니 김성화(金性化)의 부자(父子) 숙질(叔侄)과 보경 부자(甫京父子)가 모셨는데 그 경용(經用)은 정춘심(鄭春心)이 지변(支辨)하니라.
납월(臘月)에 전기제자(前記弟子)들과 동곡(銅谷)으로 가실 새 길이 이녕(泥濘)으로 심악(甚惡)하거늘 천사(天師)께서 신명(神明)에게 치도령(治道令)을 내리시니 이로(泥路)가 곧 얼어 굳는 고(故)로 말은 신발로 동곡(銅谷)에 가시니라. 그때 치도령(治道令)은 [어재함라산하(御在咸羅山下)]라는 육자(六字)를 써서 불사르신 것이니라.
병오 정월 초삼일(丙午 正月 初三日) 천사(天師)께서 동곡(銅谷)에 게실 새 김형렬(金亨烈)과 김성화(金性化) 부자(父子)와 김보경(金甫京) 부자(父子)와 김광찬(金光賛) 숙질(叔侄)이 시좌(侍坐)하더니 천사(天師)의 명(命)으로 일주야(一晝夜) 동안 말도 못하고 담배도 끊으니라.
병오 오월(丙午 五月)에 천사(天師)께서 여러 제자(弟子)를 벌여 안치고 가라사대 오늘은 호소신(好笑神)이 올 것이니 너이들은 웃지 말라. 만일 한사람이라도 웃으면 이 신명(神明)이 공사(公事)를 보지 않고 갈 것이다. 그가 한번 가면 어느 때 다시 올는지 모르니 깊이 주의(注意)하라 하시니 여러 사람이 크게 조심하다가, 정성백(鄭成伯)이 크게 웃으니 일좌(一座)가 함께 웃으니라. 그날 오후(午後)에 성백(成伯)이 문득 악한대통(惡寒大通)하야 삼일(三日)을 일지 못하거늘 천사(天師)께서 성백(成伯)을 앞에 누이고 한 글구(句)[미상(未詳)]를 읽으시니 성백(成伯)이 곳 쾌차(快差)되다. 이때에 천사(天師)께서 날마다 양지(洋紙)에 물형(物形)같은 약도(略圖) 글자(字)를 써서 불사르시더라.
김해(金海) 유수면(流水面) 평목점(坪木店)에 정괴산(丁槐山) 주점(酒店)[점주(店主) 정씨(丁氏)가 충북 괴산(忠北 槐山)으로부터 이거(移居)한 까닭에 인리(隣里)가 이렇게 칭(稱)함]이 잇는데, 집이 가난하야 주업(酒業)으로 겨우 호구(糊口)하되 매양 천사(天師)를 지성(至誠)으로 공양(供養)하더니 정월(正月)에 천사(天師)께서 그 주점(酒店)에 가사 술을 마시랴 하실 새, 괴산(槐山)이 천사(天師)께 드리려고 개국을 토정(土鼎)에 끓이다가 문득 토정(土鼎)이 깨어진지라. 괴산(槐山)의 처(妻)가 낙담(落膽)하야 울고 섰거늘 천사(天師)께서 긍측(矜惻)히 여기사 신경원(申敬元)을 명(命)하야 그의 경영(經營)하는 철공장(鐵工場)에서 철정 일좌(鐵鼎 一座)를 갖다 주었더니, 이로부터 괴산(槐山)의 가세(家勢)가 점점(漸漸) 유족(裕足)하여지니라. 그 후(後) 괴산(槐山)이 태인 방교(泰仁 方橋)로 이주(移住)할 때에 그 철정(鐵鼎)을 수류면 환평리(水流面 환坪里) 정동조(鄭東朝)에게 팔았더니 괴산(槐山)은 다시 가난하게 되고 정가(鄭家)가 도리어 유족(裕足)하게 되야 모든 사람들이 이 솟을 이름하야 복정(福鼎)이라 하더라.
정월 이십일일(正月 二十一日) 신원일(辛元一)이 천사(天師)께 와 뵈고 가로대 내가 궁감(宮監)이 되야 도조(賭租) 수백석(數百石)을 작포하야 변상(辨償)치 못한 고(故)로 그 궁(宮)에서 부안군수(扶安)에게 위촉(委囑)하야 독촉(督促)이 자심(滋甚)함에 부득이(不得已) 피신(避身)하야 왔나이다. 천사(天師) 가라사대 이 일은 어렵지 아니하니 이곳에 머물라 하시더라. 원일(元一)이 이곳에 머물다가 수삭(數朔) 후(後) 경성(京城)에 갔다가 집에 돌아가니 궁토(宮土)의 제(制)가 혁파(革罷)되고 따라서 궁감제(宮監制)와 그의 작포도 일체(一切)로 면제(免除)된지라. 원일(元一)이 가로되 나로 인(因)하야 각처(各處) 다수(多數)의 궁감(宮監)이 생도(生道)를 얻었다 하더라.
이월 회(二月晦)에 여러 제자(弟子)가 동곡(銅谷)에 모이니 김광찬(金光賛) 신원일(辛元一) 정성백(鄭成伯) 김선경(金善京) 김보경(金甫京) 김갑칠(金甲七) 김봉규(金鳳圭) 정남기(鄭南基) 등(等)이러라.
삼월 이일(三月 二日)에 천사(天師)께서 경성(京城)으로 향(向)하야 떠나실 새 여러 제자(弟子)에게 일러 가라사대 전함(戰艦)은 순창(淳昌)으로 회항(回航)하리니 김형렬(金亨烈)은 지방(地方)을 선수(善守)하라 하시고, 남기(南基) 성백(成伯) 광찬(光賛)을 데리고 군항(群港)에 가서 기선(汽船)을 타기로 하시고 남은 사람은 대전(大田)에 가서 기차(汽車)를 타라 하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수륙병진(水陸幷臻)이라 하시더라. 신원일(辛元一)을 불러 명(命)하야 가라사대 너는 입경(入京)하는 날로 지면(紙面)에 [천자부해상(天子浮海上)]이라 정서(淨書)하야 남대문(南大門)에 붙이라 하시니, 원일(元一)이 영명(領命)한 후(後) 여러 사람과 함께 대전(大田)에서 기차(汽車)로 경성(京城)에 이르러 [천자부해상(天子浮海上)]이라고 쓴 지편(紙片)을 남대문에 붙이니라. 일행(行)은 광찬(光賛)의 인도(引導)로 황교(黃橋)에 잇는 그의 재종(再從) 김영선(金永善)의 집에 유숙(留宿)하니라.
익일(翌日)에 천사(天師)께서 여러 제자(弟子)와 함께 인천(仁川)으로부터 경성(京城)에 이르시다. 천사(天師)께서 김영선(金永善)의 집에 머무실 새 그 이웃 사는 오의관(吳議官)이 삼년 전(三年前)부터 해수(咳嗽)와 불매증(不寐症)에 걸려 매우 고민(苦憫)하다가 천사(天師)의 신성(神聖)하심을 듣고, 영선(永善)을 통(通)하야 천사(天師)께 시료(施療)하심을 간원(懇願)하거늘 천사(天師)께서 글을 써서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을 군(君)의 침방(寢房)에 갊아 두라 하시니, 오씨(吳氏)가 명(命)하신 대로 시행(施行)함에 그날 밤부터 온면(穩眠)하고 해수(咳嗽)도 그치어 곳 완쾌(完快)되니라. 김갑칠(金甲七)이 전주(全州)로부터 떠나올 때에 설사(泄瀉)로 고민(苦悶)하다가 천사(天師)께 품(稟)하거늘, 천사(天師)께서 소왈(笑曰) 이로부터 설사가 막히고 구미(口味)가 증진(增進)하리라 하시더니 과연(果然) 그날부터 설사(泄瀉)가 그치고 구미(口味)가 증진(增進)되니라. 그러나 전주(全州)에 돌라온 후(後) 이십팔일(二十八日)이 되도록 대변(大便)이 불통(不通)되는지라. 갑칠(甲七)이 다시 근심하야 천사(天師)께 품(稟)하거늘 천사(天師)께서 소왈(笑曰) 너의 대변(大便)은 터져도 걱정이오 막혀도 걱정이라 하시고, 냉면(冷麪)집에 가서 냉면(冷麪) 다섯 그릇을 먹이신 후(後) 권연(卷煙) 십사본(十四本)을 주어 가라사대 금야(今夜)에 이것을 다 피우라. 갑칠(甲七)이 숙소(宿所)에 돌아와서 사본(四本)을 피우고 문득 잠이 들었다가 익조(翌朝)에 놀라 깨달아 십본(十本)을 마저 피우니 대변(大便)이 크게 통(通)하더라.
오의관(吳議官)의 처(妻)가 청맹(靑盲)으로 다년(多年) 폐인(廢人)이 되었더니 오씨(吳氏)가 천사(天師)께 시료(施療)하심을 애원(哀怨)하거늘, 천사(天師)께서 그 환자(患者)와 방(房) 문전(門前)에 이르사 환자(患者)를 향(向)하야 서서 양산(陽傘)대로 땅을 그어 돌린 후(後) 돌아오시더니 이로부터 눈이 곳 밝아지니라. 오의관(吳議官) 부부(夫婦)가 크게 감읍(感泣)하고 지성(至誠)으로 천사(天師)를 공양(供養)하며 일행(一行)의 경용(經用)을 지변(支辨)하니라. 십여일(十餘日) 후(後) 여러 제자(弟子)를 돌려보내시고 오직 광찬(光賛)으로 더불어 머무시다가 또 수일(數日) 후(後) 광찬(光賛)에게 돈 백양(百兩)을 주어 가라사대 네가 만경(萬頃)에 가서 나의 통지(通知)를 기다려라 하시더라. 그 때 신원일(辛元一)은 남대문(南大門)에 글을 부치고 곳 돌아 가니라.
김형렬(金亨烈)이 집에 있어 아무리 생각하되 전함(戰艦)을 순창(淳昌)으로 대인다 하신 의의(意義)를 알지 못하니라.
사월회(四月晦)에 천사(天師)께서 동곡(銅谷)에 돌아오사 일야(一夜)를 지나시고 만경(萬頃) 김광찬(金光賛)의 주소(住所)로 가시니 형렬(亨烈)이 수종(隨從)하다. 이때에 최익현(崔益鉉)이 홍주(洪州)에서 거의(擧義)하니 마침 이앙시기(移秧時期)에 날이 가물어 인심(人心)이 흉흉(洶洶)하야 안업(安業)하지 못하고 의병(義兵)에 투입(投入)하는 자(者)가 날로 증가(增加)하야 군세(軍勢)가 대진(大振)하거늘, 천사(天師)께서 수일간(數日間) 만경(萬頃)에 머무시면서 비를 많이 오게 하시니 인심(人心)이 비로소 안정(安定)하야 각각(各各) 농무(農務)로 돌아감으로 의병(義兵)의 형세(形勢)가 부진(不振)하고 최익현(崔益鉉)은 순창(淳昌)에서 피금(被擒)하니라. 천사(天師)께서 최익현(崔益鉉)의 사로잡힘을 들으시고 만경(萬頃)을 떠나 익산(益山) 만중리(萬中里) 정춘심(鄭春心)의 집에 가시며 가라사대 만일(萬一) 의병(義兵)을 제거치 아니하면 조선(朝鮮)이 전멸(全滅)되리라 하시더라.
육월 초(六月 初)에 익산(益山) 만중리(萬中里)를 떠나 임피(臨陂) 군둔리(軍屯里) 김성화(金性化)의 집에 가사 김광찬(金光賛)과 함께 머무시다. 이때에 이웃 사람 김모(金某)가 급병(急病)으로 사경(死境)에 이르러 그 가인(家人)이 천사(天師)께 와서 살려주심을 애원(哀怨)하거늘, 천사(天師) 가라사대 그 병(病)은 그대로 치료(治療)키 어려움으로 함열(咸悅) 수림사(祟林寺) 노승(老僧)에게 옮겼으니 그 노승(老僧)이 명일(明日)에 죽을지라. 명일(明日)에 병인(病人)이 그 절에 가서 노승(老僧)을 조문(吊問)하고 돌아 오라 하시니 이로부터 그 병인(病人)은 곳 전쾌(全快)되야 익일(翌日)에 그 절에 간 즉, 과연(果然) 한 노승(老僧)이 죽었음으로 조문(吊問)하고 돌아 오니라.
칠월 초(七月 初) 에 천사(天師)의 부(부) 흥주(興周)가 동곡(銅谷)에 와서 김형렬(金亨烈)다려 천사(天師)의 게신 곳을 물어 만나랴 함으로 형렬(亨烈)이 흥주(興周)와 함께 임피(臨陂) 군둔리(軍屯里) 김성화(金性化)의 집에 가니, 천사(天師)는 수일 전(數日 前)에 군항(群港)으로 가신지라. 형렬(亨烈)이 흥주(興周)를 모시고 군항(群港)에 가니 천사(天師) 가라사대 군항(群港)은 오래 머물 곳이 못되니 속(速)히 돌아가라 하심으로 흥주(興周)는 익일(翌日)에 집으로 돌아 가니라. 천사(天師)께서 군항(群港)에 머무신 지 월여(月餘)에 익산(益山) 만중리(萬中里) 정춘심(鄭春心)의 집에 돌아오시다.
천사(天師)께서 여러 제자(弟子)를 데리고 어디로 가실 새, 어떤 사람이 천사를 따라오며 살려 주시기를 애원(哀怨)하거늘 천사께서 응답(應答)치 아니하시고 가시니 제자(弟子)들이 민망하여 천사께 청(請) 하야 그 사람을 돌려보내시라 하니, 천사께서 돌아보시며 돌아가라 하시더니 그 사람이 돌아간 뒤에 성광(成狂)하야 죽으니라.
구월 이십오일(九月 二十五日)에 천사(天師)께서 김형렬(金亨烈)을 데리고 함열(咸悅) 김보경(金甫京)의 집으로 가시다.
십월(十月)에 신원일(辛元一)이 건재약국(乾材藥局)을 설(設)하고 무약(貿藥)하러 공주영(公州令)으로 갈 새 김보경(金甫京)의 집에 와서 천사(天師)께 뵈옵고 왈(曰) 방금(方今) 도로(道路)가 이녕(泥濘)하야 행인(行人)의 불편(不便)이 심(甚)하오니 청(請)건대 길을 얼게 하소서. 천사(天師)께서 웃으시며 술을 사 오라 하시니 원일(元一)이 술을 사오니 그날 밤부터 길이 얼어붙어 세말(歲末)까지 이녕(泥濘)치 아니하더라.
십월(十月)에 전주부인(全州府人) 문태윤(文泰潤)이 천사(天師)께 와 뵈거늘 천사(天師)께서 그의 보자(褓子)가 큰 것을 보시고 가라사대 방금(方今) 의요(義擾)가 있어 각처(各處)에 정찰(偵察)이 심(甚)하니 속 모르는 사람을 그대로 재우지 못할지니 저 보(褓)를 끌러 보아라. 태윤(泰潤)이 재삼(再三) 고집(固執)하다가 부득이(不得已) 끄르니 그 중(中)에 태윤(泰潤) 숙질간(叔侄間)의 금전관계(金錢關係) 쟁송서류(爭訟書類)가 잇는지라. 천사(天師)께서 그 내용(內容)을 물으시니 태윤(泰潤)이 가로되 이러한 불미(不美)의 일이 있음으로 선생(先生)께 그 해결방법(解決方法)을 물으려 왔나이다. 천사(天師)께서 글을 써서 봉(封)하야 주어 가라사대 이 봉서(封書)를 갖고 너의 조카의 집 문에 이르러 불사르라. 태윤(泰潤)이 종명(從命)하더니 그 뒤로 과연(果然) 화해(和解)되니라.
천사(天師)께서 야소교당(耶蘇敎堂)에 가사 모든 의식(儀式)과 교의(敎義)를 문견(聞見)하신 후(後) 가라사대 족히 취(取)할 것이 업다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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