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 료 방 법 |
1년후 재발율 |
치료를 전혀 하지 않은 집단 |
70-80% |
정신치료만 하는 집단 |
70-80% |
재활치료만 하는 집단 |
70-80% |
약물치료만 하는 집단 |
20-30% |
약물치료와 정신치료를 병행 |
20-30% |
약물치료와 재활치료를 병행 |
10% 미만 |
<표 8-1>에 제시되어 있는 것처럼 이 병은 약물을 복용하지 않을 때 1년내에 재발할 가능성이 70-80%에 이른다. 또한 약물복용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여하한 치료법도 효과를 보지 못한다. 즉 약물복용으로 일단 뇌를 안정시켜야만, 그 바탕 위에서 추가적인 노력의 결실이 가능하다.
<표 8-1>에서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약물치료를 꾸준히 하는 경우에도 재발율이 20~30% 정도 된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 병을 치료하는데 약물치료만으로는 부족하며, 약물치료에 더하여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까지 밝혀진 가장 좋은 치료법은 약물치료와 재활치료를 병행하는 방법인데, 이 경우 재발율이 10% 미만으로 감소한다.
참고적으로 전문가들이 말하는 재발이란 재입원을 필요로 할 정도로 증상이 다시 악화된 경우를 의미한다. 환자가 재발하면 겨우 안정권에 접어들기 시작한 환자의 뇌가 다시 심하게 흔들리게 된다. 따라서 치료는 원점으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된다. 그만큼 치료기간이 길어지고 환자와 가족의 고생이 연장된다. 따라서 재발방지는 매우 중요하며, 이를 위하여 약물복용은 필수적이다.
4) 약효와 부작용의 출현시기
이 병에 사용하는 약물은 복용을 시작한 후 한동안 아무런 효과가 없다. 그리고 약을 끊으면 처음에는 오히려 상태가 좋아진다. 따라서 약물복용 이후 언제 약효가 나타나는지, 약을 끊으면 언제 약효가 사라지는지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자연히 약물복용을 소홀히 하거나 임의로 약물복용을 중단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환자와 가족들이 이러한 지식의 부족으로 임의로 약물을 중단한다. 이 병에 사용하는 약물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① 약효는 천천히 나타나고, 천천히 없어진다. 즉 약효(항정신병 효과)는 약물복용을 시작한지 수일이 지나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하여 최소한 2-3주가 지나야 정상적인 약효가 나타나게 된다. 환청이나 불면증은 이보다 빨리 없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망상은 더 오랜시간이 필요한데, 약물복용후 5-8주가 지나야 호전된다. 약물복용을 중단할 경우, 약효는 바로 사라지지 않고 1-3개월 정도 계속 지속된다. 이것은 기존에 복용하였던 약물이 한동안 체내에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② 부작용은 즉시 나타나고, 즉시 없어진다. 부작용은 약물복용후 1시간 내에 시작되며, 한가지 부작용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새로운 부작용이 시작된다. 약물복용후 2-3개월 때 가장 많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이후 점차 사라지며, 5-6개월 지나면 거의 모든 부작용이 사라진다. 그러나 부작용이 심한 기간이라도 약물복용을 중단하면 다음날이면 부작용은 깨끗이 사라진다.
이러한 이유로 처음 2주간은 약물치료가 아무런 효과가 없어 보이고, 부작용만 나타나서 환자의 상태가 오히려 훨씬 못해진 것으로 생각된다.
약물복용후 수개월이 지나면 대다수 환자들의 경우 증상이 없어지거나 경미한 수준으로 떨어진다. 이 시기에 병이 나은 것으로 생각하여 약물복용을 중단하는 사례가 많은데, 절대로 그래서는 안된다. 증상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단지 눌려 있을 뿐이다. 이 시기에 약물복용을 중단하면 약효가 아직까지 체내에 남아 있기 때문에 한동안은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부작용은 즉시 없어지므로, 환자의 입장에서는 활기도 넘치고 생각도 또렷하여 병이 완전히 나은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1-3개월 지나면 체내에 남아 있던 약효가 떨어지게 되어 환자가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며, 약물복용 중단 후 4~5개월 후에는 재입원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된다. 약물복용 중단과 재발 간의 관련성을 <그림 8-1>에 제시하였다.
<그림 8-1>. 약물복용 중단과 증상재발 간의 관계
5) 처방에 따른 약물복용
환자는 의사의 처방대로 약물을 복용하여야 한다.
① 환자나 가족이 임의로 약물을 가감하는 경우가 있는데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약물의 용량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여야만 약효가 있으며, 그 범위를 벗어나면 약효가 없다. 따라서 의사의 약물처방에 불만이 있으면 솔직하게 의사와 상의하여야 한다.
② 다른 약물을 항정신병약물과 함께 복용하고자 할 경우에도 반드시 의사와 상의하여야 한다. 항정신병약물과 함께 다른 약물(예로서 한약, 신체질환치료제, 때로는 건강식품)을 복용하게 되면 약효가 달라지며, 엉뚱한 결과가 초래되기도 한다.
③ 반드시 술을 금해야 하고, 커피, 콜라 등 카페인이 함유된 음료수를 자제하고, 담배도 가급적 줄이는 것이 좋다. 그 이유는 이러한 물질들이 약효를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6) 약에 대한 오해
약에 대한 오해 때문에 약물복용을 중단하거나, 임의로 약의 용량을 조절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저자들이 환자나 가족들로부터 자주 듣는 몇가지 오해를 소개하고 답변하고자 한다.
① 흔히들 조현병에 사용하는 약을 ‘독한 약’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생각은 겉으로 보이는 환자의 약물부작용을 보고서 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 약은 오히려 매우 순한 약이다. 약물부작용이 몸을 처지게 하거나, 입이 마르게 하거나, 근육을 뻣뻣하게 굳게 만들거나, 안절부절하게 만들지만 이것은 모두 겉으로 드러나는 부작용의 양상이며, 신체적으로 아무런 해가 없다. 그리고 한동안 지나면 이러한 부작용은 모두 사라진다. 더욱이 이 약은 위장, 간장, 심장 등 내장계통에 거의 해를 끼치지 않는다.
② 흔히들 약을 계속해서 먹게 되면 ‘약물에 중독된다’거나, ‘약을 못끊게 된다’거나, ‘내성이 생겨서 점점 더 양을 늘려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약은 그러한 약이 아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약을 복용하더라도 중독되지 않으며, 아무 때라도 약을 끊을 수 있다. 그리고 약을 끊더라도 금단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약을 장기간 복용할수록 점점 더 소량으로 줄여나가게 되며, 소량으로도 이전과 같은 약물효과를 유지한다.
③ 환자나 가족들은 서로간에 ‘약을 몇알 먹느냐’, 또는 ‘약을 몇 mg 먹느냐’라고 물어보며 그것을 기준으로 서로의 상태를 비교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비교의 기준으로 적합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같은 mg이라도 약의 종류에 따라 그 강도가 50배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에 약의 종류가 서로 다른 것을 놓고 비교해서는 안된다. 또한 같은 약을 복용하는 환자라 할지라도, 사람의 체질에 따라 약의 흡수력이 몇십배 차이가 나므로, 약을 더 많이 먹는다고 해서 상태가 더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러한 방법은 단지 한 개인내에서만 비교의 기준으로 사용할 수 있다. 즉 한 개인이 이전에 비하여 약의 양이 줄었다면 의사가 상태가 좋아졌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고, 약의 양이 늘었다면 그 반대의 경우에 해당한다.
④ 환자와 가족 중에는 ‘약을 한꺼번에 많이 복용하면 치료효과가 당연히 크지 않겠느냐’라고 질문하는 경우가 있다. 약은 일정한 범위내에서 사용하여야 치료효과가 나며, 그 범위를 넘어서 많이 쓰면 오히려 치료효과가 떨어진다. 따라서 병을 빨리 낫게 하고 싶은 마음에 약을 높여서 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약을 얼마나 높게 쓰느냐’가 아니라, ‘약을 얼마나 꾸준히 복용하느냐’가 치료의 관건이다.
2. 약물교육의 필요성
1) ‘약물비순응’의 문제
방금 설명한 바와 같이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약물을 꾸준히 복용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처방된 약물을 복용하지 않는 것을 ‘약물비순응’이라 하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약물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에서는 첫치료후 5년이 지난 환자를 추적하여 그동안 약물을 꾸준히 복용하였는지를 조사한 적이 있다. 그 연구에 따르면 조사대상 환자의 92%가 도중에 약물복용을 중단한 적이 있었다. 또다른 연구에 의하면 조현병 환자의 32%가 현재 약물을 복용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현재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 환자들 중 27%가 약물복용을 중단할 생각이라고 응답하였다.
약물을 복용하지 않을 경우 1년내 재발율이 70-80%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렇듯 많은 환자들이 약물복용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이 점에서 전문가들의 반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라도 환자와 가족에게 약물교육을 철저히 하여 이 수치를 낮추어야 한다. 인간은 단순히 타인의 지시에 따르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의사는 약물을 처방하는 것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고 할 수 없으며, 그 약물을 잘 챙겨 먹을 수 있도록 동기화시키고, 필요한 또다른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
현재 국내에서는 환자나 가족이 약물에 관하여 질문하면 화를 내는 의사들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태도이다. 치료에 관하여 상세히 설명하는 것은 의료행위의 가장 기본적인 윤리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약물치료를 포함한 모든 치료행위에 관하여 환자와 가족에게 반드시 설명해 주어야 할 의무가 법으로 명시되어 있다.
의사는 처방에 즈음하여 최소한 다음과 같은 사항을 알려야 한다(민성길, 1994).
① 약물의 이름(약물명과 상표명)
② 약물이 치료용인지, 증상의 완화용인지, 그리고 약물복용이 어떻게 중요한지에 대해
③ 효과가 있으면 또는 효과가 없으면 그 다음 어떻게 할 것인가
④ 복용 시기와 방법
⑤ 복용기간
⑥ 용량이나 약봉지 수가 부족할 때의 조처
⑦ 부작용과 그에 대한 조치
⑧ 운전, 작업 등에 대한 약물의 영향, 그리고 그 때의 조처
⑨ 술이나 다른 약물과의 상호작용
⑩ 예상되는 약물의 가격
⑪ 동류의 제품과의 효과 비교
2) 마음가짐과 약효와의 관계
약물에 대한 연구에는 ‘위약효과’라는 것이 있다. 사람들에게 아무런 약효가 없는 밀가루를 약처럼 보이게 만들어서 복용하게 하면 실제로 20-30% 정도의 치료효과가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인간의 기대심리가 신체작용을 바꾸어 놓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신약을 개발한 경우에는 반드시 환자를 두 집단으로 나누어, 한 집단에게는 신약을 처방하고 다른 집단에게는 위약(가짜 약물)을 처방하여, 신약의 효과가 위약에 비하여 우수하여야만 약효가 있다고 결론내린다.
위약효과와 비슷한 현상이 다른 경우에도 나타나는데, 환자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약을 먹는가에 따라 약효가 달라진다. 즉 약에 대하여 고마움을 느끼며 즐거운 마음으로 약을 복용하는 집단이 의무적으로 약을 복용하는 집단에 비하여 약효가 훨씬 우수하다. 국내에서 행해진 연구에서 약물복용 중인 환자의 56%가 약을 억지로 먹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는데, 이는 교육을 통하여 환자들에게 약물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환자와 의사 간의 관계도 약효에 영향을 미치는데, 같은 약이라도 환자가 의사를 신뢰하고 좋아할 때 약효가 보다 우수하다.
3. 약물의 명칭
1) 항정신병약물과 향정신성약물
조현병 치료에는 항정신병약물(antipsychotic drugs)이 사용된다. 여기서 ‘항정신병’이라는 용어는 ‘정신병에 대항한다’는 의미이다. 이 용어는 향정신성약물(psychotropic drug)과 발음이 비슷해서 일반인들이 듣기에 혼동되기도 하는데, ‘향정신성’이라는 용어는 ‘정신을 향한다’, 즉 ‘정신에 작용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향정신성약물은 ‘뇌에 작용하여 정상적 또는 비정상적인 정신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약물’로 정의되며, 정신과에서 치료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모든 약물을 일컫는다. 그리고 그 중의 한가지가 항정신병약물이다. 참고적으로 향정신성약물이 어떻게 분류되는지 그 명칭을 나열한다(민성길, 1994).
* 항정신병약물
* 항우울제
* 항불안제
* 항조증약물
* 정신자극제
* 환각제
* 수면제
* 뇌기능개선제
이외에도 술, 담배, 마취제, 마약, 본드, 연탄가스, 부탄가스 등도 정신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것은 향정신성약물로 분류되지는 않으며 별도로 분류된다.
2) 약물명과 상표명
가족들은 약물명과 상표명을 구분하기 힘들어 한다. 그것을 굳이 구분하지 않아도 약물복용에 별다른 불편은 없으나, 다른 사람들과 약물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거나, 환자들의 회복수기를 읽을 때 약물명 또는 상표명이 등장하므로 편의를 위하여 이를 간략히 설명한다.
약물이란 ‘신체에 흡수되어 신체기능을 변화시키는 화학물질’을 의미하며, 약으로 사용되는 화학물질들에는 일정한 명칭이 부여되어 있다. 이를 약물명 또는 ‘약물의 일반명’이라 한다. 그런데 제약회사에서 약을 만들어서 시판할 때, 약물명을 그대로 상표명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다른 회사 제품과 명칭의 중복을 피하기 위하여, 또는 광고효과를 위하여 보다 참신한 명칭을 붙이기도 한다. 이것이 상표명이다. 참고적으로 국내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는 항정신병약물의 약물명과 상표명을 대조하여 표로 제시하였다. <표 8-2>에서 약물의 종류를 저역가, 중역가, 고역가, 비정형으로 구분하여 두었는데, 이 차이를 알아두면 약물부작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에 관해서는 잠시 후에 설명하겠다.
<표 8-2>. 약물명과 상표명
구 분* |
약물명 |
상표명 (국내) |
상표명(국외) |
저역가 |
클로르프로마찐 |
클로르프로마찐, 쎄파민 |
토라찐 |
티오리다찐 |
멜라릴 |
멜라릴 | |
메소리다찐 |
세렌틸 | ||
중역가 |
클로프로티센 |
트록센 |
타락탄 |
프로클로페라찐 |
콤파진 |
스테메틸 | |
록사핀 |
록사펙 |
록시탠 | |
퍼페나찐 |
페페나, 트리민 |
트릴라폰 | |
티오티센 |
나베인 |
네이반 | |
트리플르오페라찐 |
트리반 |
스텔라찐 | |
고역가 |
플루페나찐 |
프로릭신 |
프롤릭신 |
할로페리돌 |
할리돌, 세레네이스 |
할돌 | |
피모자이드 |
후리나 |
오랍 | |
비정형 |
클로자핀 |
클로자릴 |
클로자릴 |
리스페리돈 올란자핀 |
리스페달 자이프렉사 |
리스페리달 |
<자료출처: 민성길, *표시는 길틴>
4. 약물의 역사
과거에는 정신병에 효과적인 약물이 없었다. 그래서 단지 환자를 가두어 두고, 환자의 증상이 심하면 묶어 두었다. 1930년대부터는 몇가지 방법이 새로 개발되었는데, 수면제를 지속적으로 투여하여 계속 잠을 재우거나(지속수면요법), 인슐린을 혈관에 주사하여 인슐린쇼크로 며칠간 혼수상태에 빠지게 하거나, 전기충격요법을 사용하여 뇌를 일시적으로 흔들어 놓거나, 뇌수술로 뇌의 전두엽을 일부 제거함으로서 환자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국내에서도 1960년대까지는 주로 지속수면요법이나 인슐린쇼크 요법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들은 환자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귀찮은 행동을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환자를 멍청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방법이지 실제로 환자를 치료하는 방법이 되지는 못했다.
최초의 항정신병약물은 클로르프로마찐이다. 이 약물은 1950년에 개발되었으며, 현재까지도 항정신병약물 중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1959년에 도입되었는데, 이 약물의 색깔이 빨간색이기에 환자들은 이 약을 흔히 빨간약이라고 한다.
클로르프로마찐이 시판되기 시작한 이후 제약회사들은 다투어 신약을 개발하였는데, 1957~1958년에 개발된 할로페리돌이 클로르프로마찐과 함께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는 약물이다. 할로페리돌의 경우 국내에서 시판되는 제품에는 약의 표면에 HL(할로페리돌의 약자)이라는 글자가 찍혀 있다. 이 약물은 항정신병효과 뿐만 아니라 항조증효과도 크기 때문에 조증환자에게도 흔히 사용된다. 클로르프로마찐이 ‘몸을 처지게 만드는 부작용’과 ‘몸의 수분을 앗아가는 부작용’이 심한데 비하여, 할로페리돌은 이러한 부작용이 별로 없다. 그러나 할로페리돌은 ‘몸의 근육을 뻣뻣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심하다는 단점이 있다.
1980년대에는 ‘몸의 근육을 뻣뻣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거의 없는 신약이 개발되었는데, 클로자핀, 리스페리돈, 그리고 올란자핀이 대표적이며, 1990년대 중반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시판되기 시작하였다.
현재까지 개발된 항정신병약물의 종류는 30여종이며, 한가지 약물을 여러 제약회사에서 각기 다른 상표명으로 시판하므로 상표명으로는 수백종의 제품이 사용되고 있다. 불행히도 현재까지 개발된 약물들 중 부작용이 전혀 없는 약물은 없다. 서로 종류와 정도가 다를 뿐 모든 약물이 다소간의 부작용을 지니고 있어서, 약물을 복용하는 환자로서는 수개월 동안은 부작용으로 고생하게 된다. 그리고 전체 환자의 10% 정도는 현재까지 개발된 약물로는 양성증상에 차도가 없으며, 더욱이 음성증상에 뚜렷한 효과를 보이는 약물은 아직까지 개발되지 못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가급적 부작용이 없고, 약효는 탁월한 보다 좋은 신약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지금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5. 약물의 처방
1) 처방에 관한 상식
① 항정신병약물은 조현병에만 처방되는 것은 아니다. 약물은 진단에 따라 처방한다기 보다는 증상에 따라서 처방한다. 항정신병약물은 망상, 환각, 사고장애, 이상한 행동 등 양성증상에 효과가 있지만, 그 외에도 항조증효과가 있으며, 흥분과 격정을 가라 앉혀 주는 효과도 있다. 따라서 조울증 환자에게 처방하는 경우도 있고, 치매환자나 뇌손상환자가 지나치게 흥분되어 있거나 난폭한 행동을 보일 때 처방하기도 한다.
② 항정신병약물은 현재까지 약 30여종이 개발되어 있는데, 약물에 따라 목표증상들이 조금씩 다르고, 또한 부작용의 양상도 다르다. 그러므로 환자의 증상과 부작용에 따라 약물을 선택한다. 의사가 처방하는 약물은 보통 세종류이다. 즉 항정신병약물, 부작용 방지약물, 기타 약물(비타민이나 소화제 또는 수면제 등)이다. 이 중 필수적인 약물은 항정신병약물이며 나머지는 보조적인 약물이다.
③ 항정신병약물을 처음 투여할 때는 소량으로 치료를 시작하며, 하루에 3~4회로 분할하여 복용토록 한다. 이후 부작용을 관찰하며, 조금씩 양을 늘려나간다. 대개 2~3주가 지나야 적절한 용량에 도달하게 되며, 이 시기가 되어야 약효가 제대로 나타난다.
④ 환자의 정신병증상이 가라앉고 회복기(잔류기)로 접어 들면 용량을 줄이면서 유지요법을 시행한다. 유지요법 도중에 재발 위험이 있으면 용량을 다소 늘리고, 환자가 잘 지내면 용량을 점차 줄여서 최소용량으로 계속 치료해 나간다. 이 기간 중에는 하루분의 약물을 밤에 자기전에 한 번만 복용하도록 처방할 수도 있다.
2) 약물의 종류
원칙적으로는 약물을 화학구조식의 유사성에 따라 분류한다. 그러나 환자나 가족들에게 이러한 분류법을 소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 대신 저역가, 중역가, 고역가, 비정형으로 구분하여 설명하는 것이 간명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구분방식은 약물의 유지용량과 부작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분방식에 따라 대표적인 항정신병약물들을 다음의 <표 8-3>에 제시하였다.
약물의 용량를 비교할 때는 클로르프로마찐을 표준약물로 하여 그 용량과 비교한다. 즉 표에서 고역가 약물인 할로페리돌을 예로 들자면, 할로페리돌 2mg은 클로르프로마찐 100mg에 상응하는 용량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을 술에 비유하여 설명하자면, 할로페리돌은 도수가 높은 양주에 해당하고, 클로르프로마찐은 도수가 낮은 맥주나 막걸리에 해당한다.
사람에 따라서 양주가 몸에 맞는 사람이 있고, 맥주가 몸에 맞는 사람도 있듯이, 항정신병약물도 환자의 체질에 따라 적합한 약물이 따로 있다. 이때 적합한 약물이란 약효는 좋으면서 부작용은 적은 약물이다. 어떤 환자는 고역가 약물을 써야 이러한 효과가 나고, 다른 환자는 저역가 약물을 써야 이러한 효과가 난다.
그리고 <표 8-3>에서 비정형으로 분류된 약물은 기존의 약물과는 작용방식 자체가 다른 약물을 일컫는다. 즉 이전에 개발된 모든 항조현병약물이 ‘도파민 D2 수용기 차단제’였는데 비하여, 최근에 시판되고 있는 클로자핀은 도파민 수용기를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5-HT2 수용기(세로토닌 수용기)를 차단한다. 그리고 리스페리돈은 ‘도파민 D2 수용기’와 ‘세로토닌 5-HT2 수용기’를 동시에 차단한다.
<표 8-3>. 대표적인 항정신병약물들
구 분* |
약물명 |
클로르프로마찐 상응량 |
1일 용량 (mg) |
저역가 |
클로르프로마찐 |
100 |
200-900 |
티오리다찐 |
100 |
100-600 | |
메소리다찐 |
50 |
25-400 | |
중역가 |
클로프로티센 |
40* |
100-400 |
프로클로페라찐 |
15 |
25-150 | |
록사핀 |
10 |
60-100 | |
퍼페나찐 |
10 |
8-24 | |
티오티센 |
5 |
5-30 | |
트리플르오페라찐 |
5 |
10-40 | |
고역가 |
플루페나찐 |
2 |
2.5-20 |
할로페리돌 |
2 |
1-12 | |
피모자이드 |
2 |
2-6 | |
비정형 |
클로자핀 |
50 |
50-600 |
리스페리돈 올란자핀 |
2 |
5-10 |
<자료출처: 민성길, *표시는 길틴>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은 조울증과 관련된 물질이다. 도파민 수용기가 아닌 세로토닌 수용기를 차단하는 이러한 항정신병약물의 등장으로 연구자들은 기존의 도파민 가설을 새로 검증하고 있다. 즉 조현병이 도파민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도파민의 이전의 어떤 화학물질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를 검토하고 있다.
아무튼 비정형 약물인 클로자핀과 리스페리돈은 추체외로계 부작용이 없고, 음성증상에 효과가 있다고 선전되고 있다. 현재까지의 임상연구 결과는 심한 음성증상에 다소의 효과가 있는 것이 보고되고 있으나, 그 정도는 크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클로자핀의 경우 100명에 1명꼴로 백혈구가 감소되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혈액검사를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현재 전문가들은 이 약들의 임상적 사용결과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 약들이 신약이기 때문에 많은 환자와 가족들이 이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신약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신약은 기존의 약물로 효과를 보지 못하거나, 부작용이 심한 환자를 위한 것이다. 만일 기존에 사용하는 약물로 양성증상이 가라 앉고 부작용도 크게 느끼지 않는다면 그 약이 본인에게 가장 적합한 약이다. 마찬가지로 적합한 약물은 가격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체질에 따라서 어떤 환자는 10원짜리 약이 가장 잘 듣기도 하고, 어떤 환자는 비싼 약이 잘 듣기도 한다. 그러므로 현재 사용하고 있는 약물로 별다른 불편을 못느낀다면 굳이 약을 바꾸어야 할 이유가 없다.
3) 약물의 용량
술도 적당히 마실 때 기분좋은 상태가 되며 너무 많이 마시면 인사불성이 된다. 이와같이 각각의 약물마다 가장 효과적인 용량의 범위가 있으며, 그 이상 초과할 경우에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즉 약효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약물부작용이 심해져서 환자가 힘들어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사회생활을 제대로 못해내게 된다. 이렇게 되면 상황이 악화되어 오히려 증상이 더욱 심해지는 악순환을 일으키게 된다.
대개 활성기에는 약의 용량을 높게 쓰다가, 회복기에는 그보다 낮은 선에서 일정한 용량을 꾸준히 쓰게 된다. 일반적으로 클로르프로마찐 용량을 기준으로 활성기(발병초기 약 2개월간)에는 매일 300~750mg, 회복기에는 매일 300~600mg 정도가 적합한 용량으로 추천된다.
<그림 8-2>. 적합한 유지용량의 범위 (자료출처: 길틴)
<그림 8-2>에서 곡선은 약물 용량에 따른 재발방지 효과의 정도를 나타내는 곡선이다. 그림을 통하여 용량이 너무 적어도 효과가 없고, 용량이 너무 많아도 효과가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가운데 범위(300~600mg)가 재발방지에 가장 적합한 유지용량이라는 점을 보여 주고 있다.
6. 약물의 작용방식
항정신병약물은 거의 다 도파민 억제제이다. 항정신병약물이 도파민을 어떤 방식으로 억제하는지 이해하려면 뇌에 관한 다소의 지식이 필요하다.
1) 약물의 작용부위 : 도파민 D2 수용기
뇌에는 약 200억개의 뇌세포가 있으며 이들은 서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뇌세포와 뇌세포의 연결방식은 서로 완전히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연결부위에 아주 미세한 틈이 벌어져 있는데, 이 틈을 시냅스 공간이라 한다. 뇌세포와 뇌세포간에는 이 미세한 틈을 사이에 두고 정보전달이 일어나는데, 한쪽 뇌세포에서 어떤 화학물질을 방출하면, 다른쪽 뇌세포에서 그 화학물질을 접수하는 방식으로 정보가 전달된다.
뇌세포들 간의 정보전달에 사용되는 이 화학물질을 신경전달물질이라 하는데, 현재까지 50여종 이상의 신경전달물질이 발견되었다. 도파민은 그 중의 한가지이다. 각각의 뇌세포는 각기 특정한 신경전달물질을 보유하고 있다가, 정보를 전달해야 할 때가 되면 시냅스 공간으로 신경전달물질을 방출한다. 그러면 다음 세포가 그 신경전달물질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시냅스공간 내의 신경전달물질을 전부 다 받아 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받아 들일 수 있는 양만큼만 받아 들인다. 이때 그 양은 그 세포가 보유하고 있는 수용기의 수와 민감도에 의해 좌우된다.
조현병과 관련이 있는 신경전달물질 수용기는 도파민 D2 수용기이다. 조현병 환자는 이 수용기의 수가 많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민감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항정신병약물은 도파민 D2 수용기를 차단하는 역할을 하며, 결과적으로 각 세포로 유입되는 도파민의 양이 줄어들게 된다. 도파민 D2 수용기를 차단하는 항정신병약물의 작용방식을 그림으로 <그림 8-3>에 표현하였다. 이 그림은 세포와 세포간의 연결부위를 확대하여 그린 그림이다.
<그림 8-3>. 약물의 작용방식: 도파민 D2 수용기의 차단
항정신병약물은 그림에서와 같이 도파민 D2 수용기를 차단함으로서, 환자의 뇌가 불필요한 격발(뇌세포가 활동을 개시하는 것)을 하는 것을 막아 준다.
뇌세포들이 격발하는 과정은 실제로는 매우 복잡하다. 왜냐하면 뇌세포 한 개가 수천개의 뇌세포로부터 정보를 전달받기 때문인데, 수천개의 뇌세포로부터 유입된 특정 신경전달물질의 총합이 일정수준 이상에 달하면 격발하여, 수천개의 또다른 뇌세포에게 신경전달물질을 조금씩 방출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뇌의 한쪽끝에서 다른쪽 끝까지 정보가 전달되는 일은 순식간에 일어난다.
2) 도파민의 분포 부위 : 3군데
항정신병약물이 뇌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파민이 어느 부위에 특히 많이 분포되어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현재까지 밝혀진 50여종의 신경전달물질은 뇌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뇌의 특정 부위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다. 뇌에서 도파민이 집중적으로 분포된 부위는 3군데이다. 즉 전두엽의 앞쪽부위(이마쪽), 전뇌변연계(뇌의 아래쪽), 그리고 기저핵(뇌의 중심부)이 그곳이다. 아래 <그림 8-4>에 그 부위를 표시하였다. 항정신병약물은 이 부위들에서 도파민 D2 수용기를 차단한다. 결과적으로 뇌세포의 과잉활동에 의한 정보의 교란을 방지하여 항정신병 효과를 얻지만, 한편으로는 정상적인 뇌세포의 활동까지 억제하게 되어 원하지 않는 부작용이 초래된다.
<그림 8-4>. 대뇌의 3가지 도파민계
7. 약물부작용
모든 항정신병약물은 부작용을 갖고 있다. 그러나 약에 따라서 부작용의 종류가 서로 다르다. 또한 같은 약이라도 사람의 체질에 따라 부작용이 덜하기도 하고 심하기도 하다. 그러나 어떤 약이 환자에게 적합한지 미리부터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일단 약을 사용해 보는 방법 밖에 없다. 또한 어떤 약물을 사용하더라도, 항정신병약물 사용 초기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부작용을 겪을 수 밖에 없다. 부작용이 심하면 부작용 방지약을 처방한다. 국내에서 시판되는 부작용 방지약의 명칭을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민성길, 1994).
* 벤즈트로핀* 비페린* 알탄
* 닉신* 스락신* 오페릴
* 페나신* 시메탄* 파킨트렐
* 피케이멜즈* 레젤핀* 부로미딘
* 세로크립틴* 팔로델* 인데놀
* 인데랄* 프라놀
그러나 회복기에는 웬만한 부작용은 다 없어지며, 환자들의 90% 이상은 부작용 방지약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약물부작용은 급성부작용과 만성부작용으로 구분한다. 급성부작용이란 약물복용 초기에 심하다가 이후 점차 약해져서 수개월이 지나면 사라지는 부작용이다. 이에 비하여 만성부작용은 약물을 4~5년 이상 장기복용할 경우 일부 환자에게서 뒤늦게 나타나는 부작용으로서 ‘지발성 운동장애’가 이에 해당한다.
먼저 급성 부작용부터 설명하겠다. 급성부작용은 추체외로계 부작용, 항콜린성 부작용, 진정작용, 기타의 부작용이 있다. 이들 중 추체외로계 부작용은 고역가 약물에서 심하고, 항콜린성 부작용, 진정작용, 그리고 기타의 부작용은 저역가 약물에서 심하다. 따라서 환자가 부작용으로 힘들어 할 경우에는 다음의 3가지 방법이 있다.
① 부작용 방지약을 처방받아 복용한다.
② 부작용은 일정기간 지나면 저절로 없어지므로 그때까지 참고 견뎌낸다.
③ 다른 계열의 약물 종류로 바꾸어 본다. 다음 <표 8-4>에 약물의 종류에 따른 부작용의 양상을 비교해 두었다.
<표 8-4>. 약물의 종류에 따른 부작용의 양상
구 분 |
부작용의 양상 |
저역가약물 |
중역가약물 |
고역가약물 |
비정형약물 |
추체외로계 부작용 |
* 근육의 경직과 떨림 - 근긴장증 - 운동저하증 - 정좌불능증 |
가벼움 |
중간 |
심함 |
없음 |
항콜린성 부작용 |
* 체내의 수분 감소 - 입마름 - 피부건조 * 소변장애 * 변비 * 주의집중장애 |
심 함 |
중간 |
가벼움 |
심함 |
진정작용 |
* 힘이 없음 * 졸림 |
심 함 |
중간 |
가벼움 |
심함 |
기 타 |
* 기립성 저혈압 * 피부가 검어짐 * 발기부전 * 월경불순 * 체중증가 |
심 함 |
중간 |
가벼움 |
심함 |
<자료출처: 길틴>
1) 추체외로계 부작용 (가성파킨슨병 부작용)
모든 항정신병약물은 추체외로계 부작용을 일으킨다. 단 클로자핀과 리스페리돈은 예외이다. 특히 할로페리돌(할리돌, 세레네이스), 플루페나찐(프로릭신), 피모자이드(후리나) 등 고역가 약물이 추체외로계 부작용이 심하다.
추체외로계 부작용에는 근긴장증, 운동불능증, 정좌불능증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신체의 근육이 뻣뻣해 지거나, 수축되는 부작용들이다.
신체의 근육활동, 즉 운동기능은 대뇌와 소뇌에서 담당한다. 그런데 대뇌에서 운동기능을 담당하는 부위는 다시 두군데로 나누어지는데, 한군데는 뇌의 맨꼭대기 정수리 부분에 위치한 대뇌운동피질이고, 또한군데는 뇌의 한복판에 위치한 기저핵 부위이다. 이 두 부위로부터 신경섬유다발이 시작되어 척수를 타고 발끝까지 내려오는데, 뇌의 맨꼭대기 정수리 부분의 대뇌운동피질로부터 시작되어 척수의 중앙부를 타고 내려오는 신경섬유다발을 추체로라 하고, 뇌의 한복판 기저핵으로부터 시작되어 추체로의 바깥쪽을 타고 내려오는 신경섬유다발을 추체외로라 한다. 여기서 추체로라는 명칭은 세포의 모양이 추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추체외로라는 명칭은 신경섬유다발이 척수를 타고 내려올 때 추체로의 바깥쪽을 타고 내려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추체외로계 부작용을 설명하기 위하여 앞에 나왔던 그림을 다시 한 번 제시한다.
<그림 8-5>. 대뇌의 3가지 도파민계
<그림 8-5>에서 보듯이 대뇌에는 도파민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부위가 3군데 있다(전두전엽, 기저핵, 전뇌변연계). 이 중의 한군데가 추체외로가 시작되는 기저핵 부위이다. 만일 항정신병약물이 전두전엽의 도파민 활동만 억제하고 다른 부위의 도파민 활동은 억제하지 않을 수 있다면 추체외로계 부작용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항정신병약물은 정상적인 방식으로 활동 중인 기저핵 부위의 도파민 활동도 억제해 버린다.
기저핵이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는 아직까지 완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기저핵은 ‘운동의 개시’와 ‘운동의 종료’를 관장한다. 기저핵 또는 추체외로계가 손상되면 사지의 떨림, 근육의 심한 강직 등의 현상이 나타나는데, 파킨슨병이 대표적인 예이다. 파킨슨병에 걸린 사람은 종종걸음을 걷고, 몸의 움직임이 어색하다. 파킨슨병은 기저핵 부위의 도파민이 지나치게 적은 것이 그 원인이다. 항정신병약물이 기저핵 부위의 도파민 수용기를 차단하면 환자의 동작이나 자세가 마치 파킨슨병에 걸린 사람처럼 된다. 이러한 이유로 ‘추체외로계 부작용’을 ‘가성파킨슨병 부작용’이라고도 한다.
추체외로계 부작용은 다시 몇가지로 구분되며, 각각의 부작용은 그 발생시기와 소멸시기가 서로 다르다. 따라서 환자는 처음에는 근육의 강직현상이 주가 되는 부작용을 겪다가 몇주일이 지나면 근육이 저절로 떨리고 한자리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는 부작용을 겪게 된다. 추체외로계 부작용에 속하는 각 부작용의 종류별 발생시기와 소멸시기는 <그림 8-6>과 같다.
1.근긴장증 2.운동저하증 3.경직 4.진전 5.정좌불능증 6.토끼증후군
<그림 8-6>. 추체외로계 부작용의 발생시기와 소멸시기
① 근긴장증(dystonia)
‘근긴장이상증’이라고도 한다. 약물복용후 1시간-1일 이내에 시작되며, 전체 약물복용 환자의 1/4에서 나타난다. 처음 약물을 복용하는 환자에게서 나타나며 또한 갑자기 약물을 증량한 환자에게서 나타난다. 수일 이내에 사라지며 이후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증상은 목 또는 턱 등의 근육이 갑자기 강직되어 움직일 수 없거나, 눈동자가 위로 치켜 올라가는 것이다. 이러한 증상은 수일 이내에 사라지며 위험한 증상은 아니다. 그러나 환자와 가족들이 매우 놀라게 되므로 약물을 복용시키기 전에 그러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으며, 위험하지 않다는 점을 설명해 주어야 한다.
② 운동저하증(akinesia)
‘운동불능증’이라고도 한다. 약물복용후 3-4주경에 가장 심하다. 앉은 자세에서 다리를 꼬지 못하거나, 자세를 바꿔 앉지 못하거나, 얼굴표정이 로봇처럼 무표정하고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자세가 구부정하고 걸을 때 손을 적게 흔들거나 발을 질질 끌거나 몸이 뻣뻣해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나무토막처럼 보인다. 환자들은 이 부작용으로 인하여 동작이 느리고 뻣뻣하며 어색해 보인다. 흔히 “정신병자는 보기만 해도 알아 볼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환자들의 이 약물부작용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부작용은 느릿느릿한 행동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동작이 느려질 뿐만 아니라, 인지적, 정서적으로도 느려진다. 즉 동기와 자발성이 저하되며, 감정이 둔해지고, 생각도 느려지고 적어진다. 이러한 인지적, 정서적 부작용은 음성증상과 구분하기가 어렵다. 또한 우울증과도 구분하기가 어렵다.
③ 경직과 진전
경직이란 몸의 근육이 뻣뻣하게 굳는 증상이며, 진전이란 손이나 몸의 근육이 저절로 떨리는 증상이다. 약물복용후 1-2개월 사이에 가장 심하게 나타난다.
④ 정좌불능증(akathisia)
점잖게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하는 증상이다. 약물복용후 3-4개월경에 가장 심하게 나타난다. 앉아 있을 때 다리를 꼬았다 폈다 한다든지, 몸을 비비 꼰다든지, 계속 자세를 고쳐 앉는다든지, 다리를 계속 문지른다든지, 다리를 떠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되며, 지적하면 잠시 중단할 수 있으나, 신경을 딴데로 돌리면 다시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된다. 추체외로계 부작용 중 가장 흔하며 20~45% 정도의 환자에게서 나타나고, 특히 중년층 여성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이 부작용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계속 안절부절해 하는 동작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심리적으로도 아무런 이유없이 초조하고 불안하며, 근육불편감, 불쾌한 기분, 불안정감, 짜증이 동반된다. 또한 잠을 자려고 누워도 자세가 불편하게 느껴져서 계속 몸을 뒤척이게 된다. 가족들은 정좌불능증을 정신병의 증상으로 착각하기 쉽다.
⑤ 토끼증후군
입주변의 근육이 자신도 모르게 움씰거린다. 그 모양이 마치 토끼가 입으로 무엇인가를 씹는 모양 같다고 해서 토끼증후군이라 한다. 약물복용초기에는 나타나지 않으며, 3~4개월 이후부터 나타난다. 발생빈도는 약 15% 정도이며, 여성에게서 남성보다 2배 정도 많이 나타난다.
추체외로계 부작용은 환자에게 신체적, 심리적으로 심한 불편감을 준다. 따라서 환자의 불편감이 경감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이 좋다. 추체외로계 부작용은 근육이 긴장(수축)되어 있는 것이 문제이므로, 근육을 이완시켜 줘야 한다. 근육을 이완시키는 방법은 다양하다.
첫째, 가벼운 운동은 근육을 이완시켜 준다. 환자와 함께 산책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환자가 운동하기를 싫어하면 가족이 장난치듯이 몸을 당겨주고 밀어주고 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운동이 된다. 그리고 환자가 통증을 호소하는 부위를 안마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둘째,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면 근육이 이완된다. 환자가 목욕하기를 싫어하면 따뜻한 물수건으로 찜질을 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셋째, 마음이 편안해지면 근육이 이완된다. 환자에게 근육의 강직이나 경련 또는 안절부절하는 것이 약물부작용이고, 몇주일만 지나면 저절로 없어진다고 설명하여 환자의 마음을 안심시켜 준다. 음악을 듣거나, 재미있는 놀이나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어서 기분을 전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넷째, 환자에게 근육이완훈련을 가르쳐 주고 추체외로계 부작용이 나타날 때 근육이완훈련을 하도록 한다. 그 원리는 심호흡을 하면서, 해당부위의 근육에 5~10초 동안 천천히 힘을 주었다가, 10~20초동안 서서히 힘을 빼는 동작을 5~10분간 반복하는 것이다. 긴장과 이완을 교대로 반복하면 근육은 이완상태를 기억하여 점차 저절로 이완하게 된다.
다섯째, 환자가 지속적인 추체외로계 부작용 때문에 정 견디기 힘들어 하면 의사와 상의하여 부작용방지약을 복용하거나, 약물용량을 줄이거나, 저역가 약물로 약물의 종류를 바꾸도록 한다. 이때 저역가 약물로 바꾸게 되면 추체외로계 부작용은 줄어들지만, 항콜린성 부작용, 진정작용, 그리고 기타의 부작용들은 늘어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저역가 약물로 바꾸는 것은 결국 현재의 부작용을 버리고 다른 종류의 부작용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2) 항콜린성 부작용
대뇌에는 50여종 이상의 신경전달물질이 있으며, 뇌세포들 중에는 도파민 수용기를 지닌 뇌세포도 있고, 다른 수용기를 지닌 뇌세포도 있다. 콜린성 수용기를 지닌 뇌세포는 아세틸콜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에 반응한다. 항정신병약물이 도파민 수용기 뿐만 아니라 콜린성 수용기를 차단함으로서 생기는 부작용이 항콜린성 부작용이며, 클로르프로마찐(쎄파민), 티오리다찐(멜라릴), 메소리다찐 등 저역가 약물에서 심하다.
항콜린성 부작용은 크게 나누어서 ‘체내의 수분을 앗아가는 부작용’과 말초신경계통의 부작용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체내의 수분이 부족하여 생기는 부작용으로는 입마름과 코마름이 가장 심한데 이것은 침의 감소 때문이며, 이 때문에 충치나 잇몸질환이 생길 수도 있다. 땀이 감소하기 때문에 피부가 건조해지고, 갈라지며, 심하면 체온상승이 생길 수 있다.
말초신경계통의 장애로는 눈의 초점을 맞추기 힘들어서 시야가 흐릿하고 작은 글씨를 읽을 수 없는 것, 동공이 커지기 때문에 눈이 부시다고 호소하는 것, 변비가 생기는 것, 소변보기가 어려운 것, 발기가 잘 안되는 것,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것, 소화가 잘 안되는 것, 속이 미식거리고 메스꺼운 것, 구토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항콜린성 부작용에 대한 대응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입이 바짝바짝 타는 것은 체내의 수분이 부족하기 때문이므로 물을 소량 마셔준다. 그리고 자주 입을 헹구어 준다. 충치나 잇몸질환의 가능성이 있으므로 필요하면 치과검진을 받고, 사탕이나 단 음식을 피하도록 한다.
둘째, 피부가 건조해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영양크림을 발라주고 피부마사지를 자주해 준다. 비누와 샴푸는 순한 것으로 사용한다.
셋째, 눈이 부시다고 호소하는 것에 대해서는 외출할 때 창이 넓은 모자를 쓰거나, 선글라스를 끼도록 한다.
넷째, 소화가 잘 안되고 속이 미식거리는 것은 위장의 말초신경에 장애가 생겨서 위장운동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야채와 과일을 많이 먹도록 하고, 즙이나 죽처럼 소화가 잘되는 음식을 먹도록 한다. 과식하지 말도록 하고, 위장기능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적당한 운동을 해준다.
다섯째, 변비가 생기는 것도 항문의 자율신경이 원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채나 과일 또는 수분이 많은 음식을 섭취하여 변을 묽게 만들어야 한다.
3) 진정작용(sedation)
몸에 힘이 없고, 나른하고, 축축 처지고, 가라지고, 무기력하고, 졸립다. 매우 흔한 부작용이다. 클로르프로마찐(쎄파민), 티오리다찐(멜라릴), 메소리다찐 등 저역가 약물에서 심하다. 이 부작용이 심할 때는 운전, 기계조작 등을 할 때 실수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약물을 하루 1회 취침시에만 복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낮시간 동안에 1-2시간 정도 오침을 취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4) 기타의 부작용들
① 기립성 저혈압
저역가 약물에서 심하다. 누웠다 일어날 때 순간적으로 혈압이 저하되어 어지러움을 느끼는 증상이다. 갑자기 일어나다가 쓰러져서 외상을 입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천천히 일어나도록 해야 하며, 어지러우면 곧 다시 누워야 한다. 누워 있을 때 다리를 높히고 누워 있으면, 일어날 때의 어지러움이 덜해진다.
② 체중증가
저역가 약물에서 심하다. 정확한 원인은 모르며 아마도 약물이 식욕을 증가시키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환자들의 운동부족이 체중증가를 더욱 심하게 한다. 저칼로리 음식섭취, 운동 등으로 체중증가를 방지하여야 한다.
③ 성기능저하
발기부전, 성욕감퇴, 오르가즘 장애가 있을 수 있다. 저역가 약물인 티오리다찐(멜라릴)의 경우 통증이 수반된 역방향 사정(정액이 방관쪽으로 사정됨)이 나타난다. 성기능저하는 약물복용을 꺼리게 하는 요인이 되므로, 의사와 솔직히 상의하여야 한다. 처방은 약물의 종류를 바꾸거나 약물의 용량을 줄이는 것이다.
④ 피부가 검어짐
장기간 약물복용시에 피부가 검어질 수 있다. 클로르프로마찐(쎄파민)에서 심하다. 햇빛을 피하는 것이 좋고, 여름에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자외선 차단크림을 사용하며 외출시 창이 넓은 모자를 쓴다.
5) 심한 약물부작용
① 항정신병약물 악성증상
전체 환자들 중 1% 미만에서 나타나는 드문 부작용이다. 모든 종류의 항정신병약물에서 가능하다. 원인에 대하여 탈수증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근육의 경직, 고열, 의식변화, 자율신경계 이상 등을 보이며, 심하면 호흡곤란, 경련, 의식변화, 자율신경계 이상 등을 보일 수 있다. 매우 심각한 부작용이므로 약물복용을 중단하고 즉시 병원에 데려가서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② 피부발진
소수의 환자에게서 알레르기성 피부염이 생기거나, 얼굴이 벌개지거나, 피부색깔이 청회색으로 변하거나, 기타 다양한 피부발진이 나타날 수 있다. 심한 약물부작용이므로 의사와 상의하여야 한다.
③ 체온조절장애
도파민이 뇌의 시상하부에서 담당하는 체온조절기능을 억제하기 때문에 항정신병약물을 복용하면 체온이 떨어질 수 있고, 또는 쉽게 더위를 먹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면 즉시 치료를 받도록 해야 한다. 예방책은 덥고 습기찬 곳을 피하고 과로하지 않는 것이다.
④ 내분비계 부작용
호르몬분비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 결과적으로 남성의 경우 유방이 커지고, 여성의 경우 월경이 없거나, 임신하지 않았는데도 젖이 나올 수 있다. 의사와 상의하여야 한다.
⑤ 과량복용에 의한 독성
항정신병약물은 과량복용하더라도 술이나 또는 뇌의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약물을 같이 복용하지 않았다면 대체로 안전하다. 그러나 저역가 약물인 티오리다찐(멜라릴)이나 메소리다찐은 항콜린성 부작용이 강하기 때문에 위험할 수도 있다. 또한 중역가 약물인 프로클로페라찐(콤파진), 퍼페나찐(페페나, 트리민), 트리플르오페라찐(트리반) 등은 과량복용시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독성증상은 졸리움, 섬망, 혼수, 경련, 맥박증가, 혈압강하 등이다. 어떤 약물이든 과량복용시 즉시 병원에 가서 위세척을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6) 지발성 운동장애(TD: tardive dyskinesia)
이 용어는 운동장애가 뒤늦게 나타난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영어 약자로 티디(TD)라고 부른다. 4-5년간 약물을 복용한 환자의 3-4%에서 이 장애가 나타나며, 10년 이상 약물을 복용한 환자의 10-20%에서 나타난다. 이 부작용을 보이는 환자의 15% 정도에서 이 부작용 때문에 사회생활에 상당한 지장이 초래된다. 주로 고역가 약물을 장기간 복용한 환자들에서 지발성 운동장애가 많이 나타난다.
추체외로계 부작용 중에는 지발성 운동장애 이외에도 근긴장증, 정좌불능증 등도 약물복용후 수년후에 나타날 수 있지만, 가장 흔하면서도 문제가 되는 것이 지발성 운동장애이다. 이것은 입술을 빨거나 내미는 것, 혀를 말아서 파리를 잡듯이 날름거리는 것, 턱을 좌우로 움직이는 것, 무엇인가를 씹는 듯한 행동, 턱을 꽉 무는 것, 입을 옆으로 쫙 벌리는 것, 눈을 깜빡거리는 것 등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증상은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며, 지적하면 잠시동안은 그러한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신경을 다른데 쓰면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불안하거나 스트레스를 느낄 때 더욱 심해지며, 잠을 잘 때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 부작용이 나타나면 약물복용을 중단하거나, 약물용량을 최소한으로 줄이거나, 약을 며칠 걸러 한 번씩 먹는 방법으로 이 부작용을 없애야 한다. 이 부작용을 예방하는 방법은 평소에 가급적 약을 소량으로 쓰고, 불필요하게 오랫동안 복용하지 않는 방법이다. 또다른 방법은 클로자핀을 복용하는 방법인데, 이 약물은 추체외로계 부작용이 없다고 선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지발성 운동장애는 회복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약물복용을 중단한 후 4-5년 후에 5-40% 정도에서 이 장애가 없어졌다는 보고가 있다.
8. 환자의 약물복용을 지원하는 방법
가족은 환자가 약을 규칙적으로 복용하게 하고, 약의 작용결과를 관찰하고, 약물부작용도 관찰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약물치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평소에 환자에 대한 관찰결과를 일기식으로 기록하여 두었다가 환자가 병원에 갈 때 지참하게 하거나, 환자와 함께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설명해 준다. 현실적으로 의사와 환자의 면담시간은 5-15분 밖에 되지 않는다. 이 짧은 시간에 가능하면 의사가 환자를 제대로 파악하여야 적합한 약의 종류와 용량을 결정할 수 있다. 따라서 의사가 짧은 시간에 환자를 파악할 수 있도록 의사를 도와 주어야 하는데, 그 방법이 위에 말한대로 노트나 메모지에 환자에 대한 관찰결과를 적어 가는 방법이다.
가족과 환자는 흔히 면담시간에 초조해져서 조리있게 말하기가 어렵고, 말하려던 내용을 잊어버리기도 하여, 면담후에 할 말을 다 못하고 나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노트나 메모지를 활용하면 짧은 면담시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약물치료는 조현병 치료에서 필수적이면서도 재발방지에 상당히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약을 규칙적으로 먹을 때만이 그 효과를 볼 수 있으며, 불규칙하게 먹으면 증상을 감소시키지 못하고, 재발을 예방하지 못한다.
1) 환자가 약을 먹지 않는 일반적인 이유
① 많은 환자들이 약물 부작용에 따른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경험 때문에 약을 먹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약을 안 먹으면 오히려 머리가 맑아지고 기운이 나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② 사회적 편견과 낙인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조현병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싶어한다. 더구나 약물복용으로 활성기를 넘기고 나면 더 이상 아무런 증상이 없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에 다 나았다고 생각하기 쉽다. 또한 약을 먹을 때마다 환자라는 사실이 상기되므로 회피하고 싶어한다.
③ 병의 기간이 길어지면 좌절감과 우울감이 커져서, 희망을 상실하고 노력을 포기하게 되어 약을 안먹게 된다.
④ 환자는 자신의 삶에서 통제력을 잃고 있다. 자기의지와는 반대로 증상이 일어나고, 전문가의 생각과 가족의 손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다. 그래서 약에 대해 거부하는 것이 자신의 자율성을 유지하는 듯한 느낌을 가져다 주므로 약물복용을 거부한다.
⑤ 자신이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약의 이점을 모르는 경우가 있다. 사람들에 따라서는 말이나 글을 통하여 약이 효과가 없다거나, 약을 먹는 것은 의지력이 약한 증거라거나, 심지어 약을 계속하여 먹으면 바보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러한 주장을 믿고 약에 대하여 반감을 갖는 경우가 있다.
⑥ 약을 먹고자 하여도 인지적인 결함 때문에 자주 잊어버리게 되어 약을 걸르기도 한다.
⑦ 병의 증상 때문에 약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즉 망상과 환청의 내용이 약물을 권하는 행동을 자신을 해치려 하는 행동으로 생각하거나, 약물을 독약으로 생각하여 거부하기도 한다.
2) 약물복용 지원을 위한 지침
① 약을 환자의 구체적인 생활욕구와 연결시켜야 한다. 모든 환자는 현재의 생활을 바꾸기를 원하며, 보다 나아지고 싶어 한다. 그래서 약이 상황을 바꾸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인식하면 부작용과 약먹는 번거로움을 참아낼 수 있다. 그러므로 환자의 구체적인 생활욕구에 연결시켜서 약의 이점을 부각시켜야 한다. 즉 잠을 잘 자고 싶다, 밖에 나갔을 때 덜 불안하고 싶다, 집중력을 높이고 싶다 등 나름대로의 욕구가 있는데 이러한 구체적인 일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면 약을 먹으려는 의욕이 생길 것이다. 막연히 ‘약을 먹어야 병이 낫는다’는 식의 설명은 조현병과 같은 장기적인 질환에는 설득력이 없다.
② 약을 먹고 있는가를 관심있게 지켜보아야 한다. 환자에게 약을 먹고 있는지, 처방된 대로 먹고 있는지를 자주 물어 보아야 한다. 환자와 같은 방을 쓰지 않는 한 환자가 약을 먹었는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으며, 실제로 많은 환자들이 처방된 것보다 양을 적게 먹거나, 때때로 약을 걸르기 때문이다. 만일 환자가 약을 먹지 않았거나 마음대로 용량을 달리 하여 먹었다면 그 이유를 물어 보아야 한다. 환자에게는 반드시 나름대로의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③ 약먹기를 잊어버려서 자주 약물복용을 거르는 경우에는 약을 매일 일정시간에 먹도록 정해 놓아야 한다. 그냥 하루에 세 번이라고 하는 것은 시간을 놓치기 쉽다. 가능하면 약을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약물복용을 하고 나면 달력에 표시를 하도록 한다. 이 경우 가족들이 매일 달력의 표시를 확인하도록 한다.
④ 환자가 전문가로부터 약물교육을 받아야 한다. 현재 약물교육을 실시하는 병원의 수가 점차 늘고 있다. 만일 환자가 다니는 병원에서 약물교육을 하지 않고 있다면, 가까운 가족협회에 문의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가급적 약에 관하여 자세히 교육받는 것이 좋은데, 비록 어려운 약리학적 설명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약물복용이 중요하다는 느낌은 받을 수 있다. 가족도 약물교육을 받아서 환자에게 약의 이득을 가르치거나 설득할 수 있다. 환자가 자신의 약에 대하여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고, 약에 대한 결정에 환자가 참여하여 함께 의논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⑤ 약에 대한 편견과 정신병환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에 약을 거부하거나, 희망의 상실, 자신감의 상실 등으로 약물복용을 소홀히 하는 경우라면, 우선 가족이 환자의 회복을 포기하지 않는 일관된 태도를 보여야 한다. 즉 환자가 어떤 상태에 처하더라도 가족에게는 중요한 존재이며, 언제라도 가족은 환자를 도울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은 행동으로도 보여야 하지만,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환자가 모를 수 있기 때문에 계속하여 말로서 표현하고 설득하여야 한다. 만일 약을 먹는 것이 환자라는 느낌을 상기시키기 때문에 약물복용을 꺼린다면, 한달에 한 번씩 맞는 데포주사(근육주사)로 약물복용방법을 바꿀 수 있다.
⑥ 약을 먹지 않는 이유가 부작용 때문이라면, 가벼운 부작용인 경우 몇주일 정도 참고 기다리면 고통이 가벼워지므로, 일단 참고 기다려 본다. 이 기간 동안 가족이 환자의 부작용을 덜어 주려는 노력을 하면 환자가 고통을 이겨내기가 훨씬 수월한데, ‘약물부작용’ 부분에서 설명한 대응방법들을 참고로 하고, 환자에게도 어떻게 해주면 좋겠는가를 물어 보아서 환자를 돕도록 한다. 지속적인 부작용인 경우 의사와 상의하여 부작용 방지약을 처방받거나, 약물을 바꾸거나, 약을 용량을 낮추도록 처방받는다.
⑦ 이 모든 방법이 실패하는 경우에는 단호하게 대처하며, 어떤 방법이라도 동원해야 한다. 왜냐하면 환자의 입장에서도 증상이 악화되어 재발하면 다시 입원하게 될 것이고, 나머지 가족들도 불안하지 않게 살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는 약물복용을 집안규칙으로 정하여 환자에게 한 집에 살려면 의무적으로 먹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집안규칙을 정하는 방법은 14장 ‘가족의 생활’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그리고 약을 거부하는 이유가 증상(망상, 환각) 때문이라면 입원치료를 시켜야 한다. 또한 다른 이유라도 끝내 약물복용을 거부하면 입원치료를 시켜야 한다.
9. 맺는 말
이제까지 약물치료에 관하여 알아보았다. 가족들이 상세한 내용을 모두 기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장기간 꾸준히 약물복용이 필요하다는 점과, 가족이 환자의 약물복용을 도와 줄 수 있다는 점은 꼭 기억해 주기 바란다.
아울러 가족이 환자가 복용하는 약물의 명칭과 용량을 알아두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약물처방은 의사가 하는 것이므로 약의 명칭과 용량을 몰라도 의사를 믿고 처방대로 꾸준히 약물을 복용하면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환자의 치료과정에서 병원이나 주치의가 바뀌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이전에 어떤 약물이 효과가 좋았는지, 그리고 어떤 약물이 부작용이 심하였는지를 담당의사에게 알려 주면, 이전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환자에게도 약의 명칭과 용량을 알려 주는 것이 좋은데, 그렇게 하면 환자가 자신이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치료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의사가 환자에게 약물교육을 충분히 실시하고, 환자가 일정한 처방범위 내에서는 스스로 약물의 양이나 종류를 어느정도 조절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경우 약에 대한 통제력을 느끼고 더욱 철저히 약물복용을 하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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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eser, K. T., & Gingerich, S.(1994). Coping with schizophrenia: A guide for families. CA: New Harbinger Publications,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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