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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맛집&멋집 스크랩 양양 떡마을과 봉화 한과마을
쇼팽 추천 0 조회 308 07.01.26 18:4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글 :이용한 시인 / 사진 : 심병우 사진가
 
 
똑같은 쌀을 가지고 똑같은 재료를 써서 해도 어떤 것은 맛있고, 어떤 것은 맛이 없다. 때문에 이들 부부는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는다. 정성을 빚는 떡장수 부부. 이제는 어느 정도 허리를 펼 만도 하건만, 이들 부부는 오랫동안 이들의 손맛을 잊지 않고 찾아주는 손님들이 마냥 고마워 오늘도 새벽부터 일어나 찹쌀을 찌고, 떡메를 친다.

오색에서 양양 쪽으로 가다가 구룡령 방면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소나무 숲 사이로 깨끗한 계곡 물이 흐르는 송천계곡을 만날 수 있는데, 이 송천계곡이 있는 양양군 서면 송천리는 민속 떡마을로 더 알려져 있다. 30가구가 조금 넘는 이 마을에서는 10여 가구 이상이 우리네 전통 떡을 만들어오고 있다. 송천리가 떡마을로 불리게 된 것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을에 살던 탁영재 씨(64)와 김순덕 씨(58) 부부가 전통 방식인 떡메로 쳐서 만든 떡을 팔기 시작하면서 주변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까지도 이들은 이런 전통적인 방식을 고집하고 있는데, 그 고집 때문인지 떡 맛 또한 옛 어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맛 내림 해오고 있다.


처음 떡을 만들어 팔겠다는 생각은 부인인 김순덕 씨로부터 나왔다. 어려운 살림을 어떻게든 일으켜야겠다는 생각에서 떡장수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떡은 이 안반하구 떡메하구 이래 딱딱 붙으면서 이래 하기 때문에 끈기가 있구 부드러운데, 기계루 하는 거는 쌀알이 차지지를 않구, 똑똑 끊어지니까 쌀이 굳을 수밖에 없어요. 우리 떡은 이래 놔두면 이게 내일 저녁까지 둬두 요대루 그냥 있어요.'
아무래도 기계가 편하기는 해도 맛에 있어서는 떡메로 치는 떡을 따라올 수가 없다. 메로 친 떡이 기계로 뺀 떡에 견주어 찰기가 더하기 때문에 냉동을 시켰다가 먹을 경우 20일 정도 넣어놓고 먹어도 굳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분명 기계보다는 메로 치는 것이 손도 많이 가고, 불편하고 힘든 것이 사실이다. 탁씨에 따르면 보통 떡이 많이 나가는 추석과 설, 정월 대보름 때가 되면 하도 메를 쳐서 어깨가 굳을 정도란다. 이들 떡장수 부부가 만드는 떡은 '인절미'.'송편','기정','백설기'계피떡(바람떡)','옥수수 경단','영양떡',찹쌀떡을 비롯해 10여 가지가 넘는다. "송편에는 콩두 들어가구, 깨두 들어가구, 밤두 들어가요. 근데, 밤은 금방 쉬어. 송편은 콩 는 게 젤 맛있어. 찹쌀떡두 이래 쳐가지구 하면 너머 맛있어요. 영양떡은 찹쌀만 이래 갈어가지구는 거기다가 마른 호박 있쥬. 잘 익은 호박 말렸다가 부풀려가지구 그거 넣고, 서리태콩이라구 속 파란 거하고 밤 대추 넣구, 찌면 너머 맛있어."
여러 떡 가운데 이들 떡장수 부부가 가장 자신 있게 내놓는 떡은 역시 인절미다. 처음 떡장수를 시작할 때 인절미로 시작을 했거니와 메로 쳐서 손맛을 내기에는 인절미만한 게 없다는 것이 김순덕 씨의 말이다. "인절미는 이래 낼 아침에 찔 거는 하루 전날 담거놔요. 쌀은 푹 불어야지 떡이 맛있어요. 그러구 한 시간 정도 찌구나서 안반에 놓구 치는 거쥬. 잘 쳐야 쫄겨요. 인절미 할 때는 아이밥(애벌밥)이 됐을 때 소금간을 해요. 이 소금간을 맞춰야 맛있는 인절미가 되쥬. 너머 소금물을 많이 넣으면 질어서 못쓰고, 쪼금 넣으면 또 꼬두밥이 돼서 못 써요. 아이밥이 되구서두 한 15분 정도 더 불을 때야 돼요. 소금간 한 상태에서 또 뜸을 들이는 거쥬. 이거를 또 안반에 바로 넣어 치면 다 튀어나와요. 그래 함지에 먼저 쪼끔 쳐서 나가요."
이들 부부가 떡을 칠 때 보면 뚝, 딱, 뚝, 딱 박자가 착착 맞는다. 보통 아무것도 넣지 않는 인절미는 10~15분 정도, 쑥이나 취가 들어간 인절미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쳐야 한다. 사실 떡이라는 것이 손맛에 따라 맛이 결정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똑같은 쌀을 가지고 똑같은 재료를 써서 해도 어떤 것은 맛있고, 어떤 것은 맛이 없다. 때문에 이들 부부는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는다. 정성을 빚는 떡장수 부부. 이제는 어느 정도 허리를 펼 만도 하건만, 이들 부부는 오랫동안 이들의 손맛을 잊지 않고 찾아주는 손님들이 마냥 고마워 오늘도 새벽부터 일어나 찹쌀을 찌고, 떡메를 친다.

 

양양에 전통 떡마을이 있다면 봉화에는 전통 한과마을이 있다. 봉화읍 유곡리 닭실마을이 바로 그 곳이다. 설날과 대보름에 맞춰 닭실마을은 농사철보다 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설날 차례상과 대보름에 쓰일 한과 주문이 전국에서 밀려들기 때문이다. 땅 모양이 마치 금닭이 계란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의 마을이라고 하여 '닭실'이란 이름이 붙은 마을. 안동 권씨 집성촌이기도 한 이 곳 한과의 역사는 무려 45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시대 충신이었던 충재 권벌 선생(1478~1548)이 돌아가시면서 그 제사상에 유과를 올리기 시작한 것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옛날에는 제사 때 종가에서만 한과를 만들었는데, 10년 전부터는 부녀회관에서 여럿이 모여 만들기 시작했어요." 손계순 씨(71)의 설명이다.
한과마을답게 닭실마을에 들어서면 들머리 왼편 부녀회관에 내걸린 '닭실종가 전통유과'란 간판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염치없이 아낙들만 모인 부녀회관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유과를 튀겨내는 기름 냄새가 고소하게 코끝에 감겨온다. 네댓 개의 기름냄비 곁에는 방금 튀겨낸 입유과(크고 넓적한 유과)들이 납작납작 쌓여 있다. 한쪽에서 튀겨내면 한쪽에선 그것을 받아 물엿을 바르고, 또 다른 쪽에선 옷을 입히듯 유과에 '박산(쌀튀밥가루)'을 바른다. 이 모든 과정은 여러 명의 손발이 척척 맞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한과의 대명사격인 유과를 만드는 과정은 이렇다. "쌀을 담아 놓고 이틀 정도 불거 내서 방앗간에다 빻아와요. 그걸 솥에 넣고 3시간 정도 쪄서 반죽기에 넣고 친 다음, 손으로 한 번 더 반죽을 해서 안반에다 놓고 눌러가꼬 썰어요. 잔유과(엄지손가락만한 유과)는 잘게, 입유과는 넓게 썰어요. 그걸 이틀 정도 온돌방에 또 말려서 쌀가루에 녹이요. 녹인다는 것은 너머 딱딱하니까 그걸 몰랑몰랑하게 만드는 거죠. 녹인 다음 기름에다 지져내 물엿을 바르고, 박산을 묻히거나 까만깨, 흰깨를 묻히면 다 끝나는 거죠." 때로 쌀튀밥가루에다 '주치(지치 : 해열, 해독 기능이 있는 뿌리 약재)'뿌리를 우려낸 천연 색소로 붉은 물을 들이기도 한다. 이 물은 진하게 할수록 빨간색에 가깝고 연하게 할수록 분홍에 가깝다. 노란 물을 들일 때도 역시 천연 색소인 치자 열매를 우려 낸 물을 쓴다.


유과를 만들 때 맨 마지막 과정은 '꽃을 놓는 과정'이다. 꽃을 놓는다는 것은 찹쌀튀밥으로 유과에 꽃 모양을 장식해 넣는 것인데, 보기에 좋으라고 하는 것이지만, 이 과정이 보통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꽃을 놓을 때는 우선 유과를 놓고 그 위에 엿물을 살짝 묻힌 찹쌀튀밥을 꽃 모양처럼 네 개를 붙인 뒤, 모양 한가운데다 까만 깨 몇 개를 얹거나 대추를 잘게 썰어 얹는다.
닭실마을의 한과가 다른 지역의 한과와 다른 점은 무엇보다 오랜 맛 내림 전통에 있지만,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까닭으로 명절이 가까워지면 여러 곳에서 주문이 들어오거나 직접 와서 사 가는 통에 그야말로 닭실마을 아낙들은 눈코 뜰 새가 없어진다. 송재규 씨(75)에 따르면, 특히 설밑이 되면 제대로 잠도 못 잘 정도로 바빠진단다. "이게 일일이 수작업으로 하는 거니까 많이 못 빼요. 사람들 얘기로는 다른 데 맛보다 아삭아삭하고 고소하고 특이하대요. 그래서 많이 찾아요. 시장에서 파는 것처럼 방부제 넣거나 기계로 돌리는 게 아니니까, 또 여기서는 유과 반죽을 할 때 참기름을 한 되에 한 숟가락 정도 넣어요. 그래야 훨씬 더 많이 일고, 고소해지거든요." 명절 때가 아니더라도 요즘에는 결혼식 때 이바지 음식으로 쓰기 위해 닭실 한과를 많이 찾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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