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난하(騎虎難下)
▶ 騎(말탈 기) 虎(범 호) 難(어려울 난) 下(아래 하)
▶ 이미 시작된 일을 중도에서 그만 둘 수 없음을 비유한 말. 호랑이를 타고 달리다가 도중에 내리지 못한다는 뜻으로 무슨 일을 하다가 도중에 그만두거나 물러설 수 없는 형편을 이르는 말이다.
▶ 수서(隋書) 독고황후전(獨孤皇后傳)에는 수나라의 건국에 관한 대목이 있다.
남북조(南北朝)시기, 북주(北周)의 자사(刺史)인 양견(楊堅)은 북주 대사마 독고신(獨孤信)의 딸을 부인으로 맞았다.
독고신의 또 다른 딸은 주나라 명제(明帝)와 결혼하여 황후가 되었으며, 양견은 또 자신의 맏딸을 명제의 아들인 선제(宣帝)에게 시집보내어 황후가 되게 하였다.
서기 580년, 선제가 세상을 떠나자 8세된 정제(靜帝)가 자리를 계승하였다. 이때 양견은 정제를 보좌하며 쉽게 국가의 실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의 아내 독고씨는 양견이 이미 조정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판단하여 그에게 제위를 차지하도록 종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라의 일이 이미 이렇게 된 바, 당신은 맹수의 등에 올라탄 것과 같으니, 내릴 수 없는 일입니다(大事已然, 騎獸之勢, 必不得下)."
581년 3월 정변(政變)을 일으킬 시기가 되었다고 확신한 양견은 마침내 정제를 죽이고 제위에 올랐으니, 그가 바로 수(隋)나라 문제(文帝)였다.
[騎虎難下(Needs must when the devil drives)]는 [騎虎之勢]라고도 하는데, 이는 [이미 시작된 일을 중도에서 그만 둘 수 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수서(隋書) 독고황후전(獨孤皇后傳)
▶ [동의어]騎虎之勢(기호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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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척이란 황실종족들과 달리 제왕의 어머니 혹은 아내의 친척들을 이르는 말이다. 예로부터 외척들은 제왕과의 이러한 특별한 관계로 천권하고 권력을 탈취하는 일들이 아주 많았다.수나라 개국황제인 양견(杨坚)이 바로 이렇게 정권을 탈취하여 제위에 오르게 되었다.
양견의 부친인 양충(杨忠)은 북주시기의 개국 공신 이였기에 "수국공"(隋国功)으로 봉하였다.북주의 무제 자문 창(字文 昌)의 집권시 양견은 이미 조중에서 상당한 직위에 있었다.주태자 자문 옹(字文 邕)이 양견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여 양견은 황제와 사돈을 맺음으로서 그 지위는 더욱더 높아졌다.이로하여 무제의 일부 측근들은 상주문을 놀려 양견이 모반할 상이라며며 그를 죽이라고 간고하였다.하지만 무제는 사돈간의 정분을 생각하여 차마 손을 쓰지 못하였다.
주무제가 죽은후 태자 자문 찬(字文 赞) 이 자리를 계승하였는데 주선제(周宣帝) 였다.마침 주선제가 양견의 딸을 왕후로 봉하여 양견은 황제의 장인이 되었고 그 지위와 신분은 배로 높아져 사대재상중의 한 사람으로 되어 조정의 대권을 틀어쥐었다.
주선제는 음란하고 잔폭하며 선량한 충신들을 살해하여 조정의 인심을 뒤흔들리게 하였다. 한번은 주선왕이 신하들로 하여금 법율을 제정하게 하였는데 형벌이 아주 가혹하였다.이에 대하여 양견은 부동한 이견을 제출하였지만 주선제는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큰 소리로 양견을 꾸짖었다. 그로부터 양견은 마음속에 앙심을 품고 주선제를 폐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루는 대장군 우문경(宇文庆)이 양견댁에서 술을 마시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의기투합이 잘 되었다. 양견이 주위의 사람들을 물리치고 나서 조용히 자문 경에게 말하였다."황제의 행실이 부덕하니 얼굴색만 보아도 그의 명이 길것 같지 않고 , 그의 법령이 가혹하고 그의 언행으로 보아서는 제위에 오래 있을것 같지 않네, 또한 제후들도 연약하여 각자의 봉지에서 부귀영화만 누리려 하고 큰 포부가 없으니 북조 왕조는 곧 위험에 부닥칠 것이네." 우문경이 듣고나서 놀라는듯 하더니 금방 양견의 참뜻을 알아차렸다.그뒤로 둘은 말이 필요 없이 마음이 맞아 각자의 주변에 많은 사람들을 집결시켰다. 문무백관중에서 양견의 위망은 날로 높아졌다.
주선제 자문 윤(字文 赟)도 차츰 낌새를 보아내고 양견이 북주 자문왕조에게 일종 위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그는 차츰 경계하고 공포를 느끼던 데로부터 마지막에는 질투하고 미워하기까지 이르렀다.한번은 자문 윤이 술에 취하여 후궁에 들자 양황후가 맞이하여 용상에 모시고 시중을 들었다. 그러자 자문 윤이 술에 취하여 말하였다.
"니가 아무리 아첨하여도 언젠가는 너의 일족을 멸할 것이다."
또 한번은 주선제가 한 궁녀를 희롱하는것이 황후의 눈에 띄여 황후가 몇마디 하였다.그랬더니 주선제는 크게 노하여 "너희 부녀가 뭐길래 감히 천자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가"하며 자칫하면 양황후에게 가법을 쓸번 하였다.
양견의 부인 고독씨()孤独氏가 딸을 보러 입궁하였을때 양황후는 황궁에서 벌어졌던 모든 일들을 울면서 어미니한테 하소연하였다.
"요즘 그이의 성깔이 점점 더러워 지고 우리 양씨가문에 대하여 골수에 사무치는 원한이 있기라도 한지 아무일 없이 큰소리로 떠들고 욕합니다.어머니 저…저는 무섭습니다. "말을 마치고 나서 그는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고독씨가 집으로 돌아와 양견에게 주선제의 이야기를 하였다.이야기를 듣고 나서 양견의 왕위를 탈취하려는 의기가 굳어졌다.부인은 그 틈을 타서 말하였다."금지사세,의무현종,기맹수안가중하재(今之事势,义无旋踵,骑猛兽安可中下哉!)"뜻인즉 지금의 정세가 아주 명백하다. 이미 호랑이등에 올라 탄것과 같으니 호랑이를 때려 죽이지 않고는 절때 내려올수 없다.중도에서 내려오면 더욱 위험하니 결심을 내려 하라는 뜻이었다.
"기호난하(骑虎难下)"는 이로부터 유래 된 것으로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어려움에 부딪쳤지만 도중에서 그만두면 더욱 큰 손해를 볼수 있기에 그만두지 못하는 형편을 이르는 말이다.
양견은 부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어 더욱 많은 인심을 모으고 심복을 배양하여 차츰 군권을 틀어쥐고 정권을 탈취할 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북주대성 2년 주선제는 양견이 손을 쓰기도 전에 병으로 쓰러졌다.그는 제왕의 자리를 태자인 자문 천(字文 阐) 에게 넘겨 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선제는 목숨을 거두게 되었는데 종년 22세 였다.재위한 주정제는 9살로 아무것도 몰랐다.양견은 정권을 탈취할 좋은 기회라 여겨 어린 황제를 죽이고 자신을 제왕으로 자칭하여 수나라를 건립하였다. 국호를 "수(隋)"로 정한 원인은 아마도 부친 양충한테서 계승받은 작호가 "수국공"인 연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