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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의 대성(大城)이여 영원하라 (9) 청년 승리의 7월
정의의 사제산(師弟山)은 당당하게 우뚝 서 있다
비행기 안에서 흰 눈으로 뒤덮인 알프스산맥을 바라보았다. 창가 사제가 구축한 것은 민중승리의 대산맥이다! (이케다 SGI 회장 촬영. 1994년 5월, 독일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도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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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효고에 가노라.”
내게는 엄격한 아버지 같던 도다(戶田) 선생님이 좋아하신 ‘다이난코(大楠公)’다. 결전을 벌이러 미나토가와로 길을 나서는 아버지 구스노키 마사시게와 아들 마사쓰라의 유대를 읊은 노래다.
선생님 슬하에서 수없이 불렀다. 사제가 함께 춤을 춘 적도 있다.
선생님은 아버지 마사시게처럼.
나는 아들 마사쓰라처럼.
나와 아내의 간소한 결혼식에서 선생님이 소망한 노래도 ‘다이난코’였다.
일전에 창가세계여성회관을 방문했을 때, 존귀한 부인부와 여자부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하며 피아노로 ‘어머니’를 치고 ‘다이난코’를 연주했다.(6월 25일)
우리 후계 마사쓰라들이여! 어서 성장하여라! 사명의 무대에서 청춘 승리의 춤을 추어라!는 마음을 담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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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달’이 찾아왔다.
1951년 7월, 남자부와 여자부를 결성한 지 65성상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세계 곳곳에 창가의 젊은이가 생명존엄의 사회를 창조하려고 용기 넘치는 대화를 펼치고 있다.
1957년 6월 30일, 영지의 대학부를 결성했다. ‘유바리탄노사건’에서 시작한 탄압은 ‘오사카사건’으로 발전해 민중을 억압하는 권력과 한창 공방전을 벌일 때였다.
남녀대학부는 결성기념의 달에 정의로운 언론전을 펼치고 우정을 확대하는 데 앞장섰다.
결성 40주년을 맞은 남자부 창가반(한국의 화랑반)과 45주년을 맞은 아성회(한국의 보성회) 또 명명한 지 50주년을 맞은 여자부 백련그룹(한국의 무궁화반)의 전진에 기쁠 따름이다.
같은 훈도를 받은 선배 장년부와 부인부들도 각지에서 긍지 드높게 큰 활약을 펼치고 있다.
선사 마키구치(牧口) 선생님과 은사 도다 선생님도 큰 박수갈채를 보내며 틀림없이 기뻐하실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군부정부의 탄압으로 투옥되어도 불굴의 신념을 관철한 두 선생님이시다. 옥사한 선사의 유지를 이어받아 출옥한 도다 선생님은 광선유포의 대원을 함께 짊어질 ‘깃발을 든 젊은이’의 출현을 마음속 깊이 바라셨다.
그렇기에 청년부를 만들고 그 누구보다도 청년을 사랑하셨다.
젊은이가 있는 한
잊지 못할 광경이 있다.
65년 전(1951년) 7월, 도다 선생님은 결성한 지 얼마 안 된 남녀청년부 대표를 총회 단상에 불러 참석자에게 말했다.
“여러분, 이 청년부들의 활약을 아무쪼록 기대하기 바랍니다. 이 젊은이들이 대법전을 해낼 사람들입니다. 앞으로 청년이 있는 한, 학회는 반석과 같습니다.”
나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배어난 스승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제일선을 달리고 정의를 꿋꿋이 외쳤다.
당시 어서강의에 다니기 시작한 사랑하는 사이타마에서 모두 함께 배독한 “각자는 사자왕의 마음을 발휘해서” “니치렌의 일문(一門)은 사자가 짖는 것이로다”(어서 1190쪽) 라는 성훈대로 실천했다.
그리고 지금 불굴의 ‘사자왕의 마음’으로 21세기 광포의 대법전을 해낼 사람은 틀림없이 젊은 여러분이다!
얼마나 깊은 숙연으로 이때를 골라 뛰어나와 상승(常勝)의 큰 깃발을 치켜들 지용보살인가!
역전극을 만드는 저력
남미에서는 처음으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할 예정인 올림픽과 패럴림픽(국제신체장애인체육대회)이 얼마 남지 않았다.
브라질에서도 창가의 젊은 주자가 불법(佛法)의 인간주의를 기조로 한 평화, 문화, 교육운동을 쾌활하고 힘차게 전개하고 있다.
나는 1966년 3월, 리우데자네이루를 처음 방문했다. 당시 멤버는 몇 명에 불과했다. 그것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브라질의 간사이’라는 추앙 속에 청년의 숨결이 가득한 ‘상승 리우데자네이루’로 크게 발전했다.
어느 곳에서나 청년은 무상의 보배다.
청년의 대국 브라질을 사랑해 마지않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전기 작가 츠바이크가 있다. 그는 어느 작품에서 대서양을 해저전선으로 연결한다는 장대한 꿈을 꾼 젊은이를 그렸다.
전문가조차 ‘말도 안 된다!’고 냉소를 퍼부은 그 도전은 고난과 실패 게다가 비난과 중상의 폭풍우를 계속 받아야 했다.
그러나 젊은이는 굽히지 않았다. ‘용기를 내자. 다시 한번 용기를!’이라며 힘을 쥐어 짜냈다. 세 번, 아니 네 번, 아니 다섯 번의 도전으로 결국 1866년 7월, 대서양횡단전신케이블 부설공사에 성공한다. 150년 전의 일이다.
츠바이크는 ‘어제 기적이라 생각한 일이 오늘 자명한 일이 되었다’고 칭송했다.
청년의 본뜻은 역전극이다. 어떤 비웃음을 당하고 모욕을 당해도 꾹 참고 또 참아 ‘마지막의 마지막’에 통쾌한 역전 승리를 해낸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궁극의 지지 않는 정신이 신심이다.
‘함께 싸우자’
저 ‘오사카투쟁’도 모두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기적을 실현한 큰 투쟁이었다.
내 나이 스물여덟이었다. 스스로 한 축이 되어 같은 또래 청년들을 규합하는 도전이기도 했다.
청년들은 사회의 모순과 불합리, 이상과 현실의 격차, 지도층 인사들의 기만과 부패에 괴로워 바동거리며 분노했다.
내 청춘도 전쟁으로 엉망진창이 되었다. 가난과 병에 크게 괴로워했다. 모든 이의 마음을, 가슴이 저릴 만큼 알고 있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가장 위대한 지용의 생명에 눈떠, 행복하고 승리한 인생을 활보했으면 하고 바랐다.
효고가 낳은 철학자 미키 기요시는 “자신의 사명과 힘을 결코 가볍게 보지마라. 나는 할 수 있다. 다른 것을 부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 사람 또 한 사람을 만나 괴로움을 듣고 격려했다. 성실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벗이 되자’ ‘함께 싸우자’고 악수를 나누었다.
사회를 파괴와 분단으로 치닫게 해 혼란을 야기 시키거나 역행시키면 안 된다. 건설과 연대의 방향으로 힘을 모아 안정시키고 전진시켜야 한다는 신념으로 민중이 이체동심(異體同心)하는 연대를 만들었다.
간사이 전역에 ‘입정안국’의 사명에 불타오른 청년들이 속속 일어섰다.
파동은 주고쿠와 시코쿠 그리고 규슈로 더 나아가 오키나와로 넓혀져 서일본 전체에 광선유포 확대의 돌파구가 열렸다.
아직도 규슈에서는 구마모토지진이 일어난 뒤에 폭우가 겹쳐 크게 고생하고 있다.
나는 ‘지지 않겠다!’고 분투하는 동지의 건강과 무사안전 그리고 변독위약(變毒爲藥)을 기원하며 제목을 계속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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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의의 깊은 광포의 역사를 겹겹이 새기는 해다.
간토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첫 지방지도에 나선 지 70주년이고 도호쿠는 광포 65주년을 맞았다. 홋카이도는 ‘난공불락의 삼대성(三代城)’이라고 내건 지 25주년이고, 도카이도도 ‘혼의 독립’을 한 지 똑같이 4반세기다. 또 ‘주부의 날’ 40주년이고 7월 1일부터 기념 월간도 시작했다.
마키구치 선생님, 도다 선생님이 법난을 만난 7월, 두 분 선생님이 태어난 신에쓰, 호쿠리쿠는 서원의 공전(共戰)을 장식하겠다고 일어섰다.
전통 있는 학회 정신의 진수를 각지 청년부가 역주하며 계승하는 모습이 무엇보다 믿음직스럽다.
성훈에 “미래까지의 설화로 무엇이 이보다 더하리오”(어서 1086쪽) 하고 씌어 있다.
창가의 영웅도, 화양 자매도 일본 열도를 희망에 빛나는 우정으로 맺고 새로운 ‘설마가 실현’라는 이야기를 용감하게 만들고 있다.
마음껏 나아가라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은 대난 속에서 유연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만 생애 본래부터 각오하였던바 지금에 와서 번의(翻意)하지 않으며 게다가 또한 유한(遺恨)도 없노라. 모든 악인은 또한 선지식이니라”(어서 962쪽)
우리는 헤아릴 수 없는 어본불의 위대한 경애에 어깨를 나란히 해 마음껏 싸우고 승리해야 한다. 시련은 우리를 단련하게 하고 부처로 만드는 선지식이다.
나도 인연이 있는 작가 야마오카 소하치 씨는 지금의 아이치와 주부를 기반으로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등장하는 유명한 장편소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장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한 사람이 가장 크게 번영한다.”
노고를 거듭한 성실한 서민은 민중이라는 대지에서 자란 정의로운 청년의 승리를 무엇보다 기뻐하고 긍지로 삼는다.
광포를 위한 노고는 모두 자신의 성장과 생명의 재보를 쌓는 인(因)이 된다. 그곳에 다부진 부모님에게 큰 환희와 큰 복운을 바치는 영예로운 길이 열린다는 점을 잊지 말기 바란다.
여러분을 믿고 기다린다
7월, 고적대를 결성한 지 60주년을 맞는 가절이다.
올해도 5월 3일에 가나가와문화회관 앞 야마시타공원 거리에서 퍼레이드를 시작해 전국 각지에서 ‘평화의 천사들’이 상쾌한 춤과 연주를 펼치고 있다.
생각해보면 폭풍우가 불어 닥친 1979년 5월 3일, 나는 가나가와문화회관에서 ‘사제산(師弟山)’이라고 한 장의 글을 썼다.
내 가슴 속에는 ‘사제산’이 높게 당당하게 우뚝 서 있다. 그것은 어떤 풍파도 내려다보는 사제공전으로 세운 정의로운 ‘창가산’이다.
내게는 불이(不二)의 제자가 있다. 가장 신뢰하는 지용의 청년들이 있다. 그러므로 사제산은 흔들리지 않는다.
사랑하는 청년이여.
‘용기’라는 두 글자로 일어서라!
부모가 구축한 민중의 대성(大城)을 단호히 지켜 승리하라!
나는 여러분을 굳게 믿는다. 여러분의 승리를 기원하며 기다린다.
원초부터
진정한 후계
여러분이여
지용의 용전(勇戰)
승리를 부탁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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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회장에서 물러난 1979년 5월 3일, 나는 하치오지에서 가나가와문화회관으로 달려가 붓으로 ‘사제산’이라고 크게 썼습니다.
‘공전(共戰)’ ‘정의(正義)’보다 먼저 쓴 휘호입니다.
우리에게는 삼장사마(三障四魔)의 거센 바람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사제공전의 산’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강적도 겁내지 않고 입정안국의 깃발을 자랑스럽게 내건 ‘사제정의의 산’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이때’를 함께 싸우는 가장 숙연 깊은 진실한 동지로서 제목의 사자후를 울리며 ‘사제상승(師弟常勝)의 산’을 더욱 이체동심으로 더욱 위풍당당하게 우뚝 세우지 않겠습니까.
소중하고 소중한 전 세계 벗들의 ‘건강장수’와 ‘대승리’를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