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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2장 8-15절
여자들도
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9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10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11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12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찌니라
13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14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15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디모데 전서가 기록된 배경은 에베소 교회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 사도가 두란노서원에서 2년에 걸쳐
성경을 가르쳤던 곳입니다.
이 교회에 여러 이단들의 공격이 있었습니다.
그 일의 중심에는 1:20절에 보시는 바와 같이
후메내오와 알렉산더 같은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다른 교훈과 신화와 족보들에
착념하였던 자들로 보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세력들은 영지주의 자들의 도전입니다.
이들은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하는 것입니다(4:3).
영지주의에 대하여 잠시 인용하여 봅니다.
"영지주의란 1세기 끝 무렵에
그리스도교회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고
2세기에는 고대 교회가 격렬하게 싸웠던(딤전6:20-21 참조),
후기 고대의 한 정신 사조를 가리켜 '그노시스'라고 합니다.
그노시스의 밑바닥에는 물질과 몸에 속한 것에 대해
아주 비관적인 태도가 깔려 있었다.
그노시스 주의자들이 세상과 몸을 멸시하는 것은
부분적으로 - 성경 바깥의 증언들에 따르면 주로 -
엄격한 금욕 생활로 나타나는데,
특히 혼인과 성을 적대시하는 점에서도 나타나고(딤전4:1-5 참조)
부분적으로는 그와는 반대로 - 삶을 보존시키는 -
윤리적인 질서를 일부러 무시하고 파괴하려는
방종주의로 나타난다(유7-8,18)"
그러므로 이러한 사조들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의 의미를 무시하고
특별한 영적인 지식만 가지면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기에
금욕적으로 나가든가 아니면 방종으로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이러한 이단들이 전하는
다른 교훈에 흔들리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자들에게는 8절에서 보았듯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비 복음적인 것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 올 때에
분노와 다툼으로 싸울 것이 아니라 기도로 싸우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끊임없이 변론과 변론만 나오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복음을 증거 할 때
때로는 반론도 필요하고 변론도 필요할 때가 있겠지만
그것이 논쟁이나 다툼으로 가는 것을
바람직한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분노와 다툼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를 남자들에게 먼저 요구하고
이제는 여자들에게도 교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9절에서 "이와 같이 여자들도"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여자들에게
바울사도가 어떻게 권면하고 있는가를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외모로 단장하지 말고 속사람을 단장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외모를 아무렇게나 하라는 말이 아니라
아담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머리를 꾸미고
금이나 진주가 값진 것으로 꾸미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당시에 신전의 창기들이
머리를 땋아서 높게 하고 거기에 온갖 보석으로 장식하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의 유행이었겠지요!
그러한 외모를 꾸미는 일들이
교회 안에도 밀려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그러한 것들을 따라
꾸미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사람들이 먹고 살만하게 되니
이제는 보암직한 것들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아 보이는 것들이 많습니까?
머리꾸미는 것에서부터 보석, 옷, 핸드백, 속옷에 이르기까지
명품이라는 이름으로
수백만원짜리가 없어서 팔지 못하는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까지 이러한 이야기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이
오늘만이 아니라
이천년 전의 여자들도 그리한 것입니다.
인간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보게 됩니다.
최초의 꾸미는 일이 어디서 일어난 것입니까?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서
자기의 몸을 가린 것에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으로 가린다는 것은
자기의 수치를 가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역사란
자기의 수치를 가려보고자 하는 역사인 것입니다.
단지 여자의 화장술이 발달하고,
옷 입는 것이 화려하여지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역사가
인간들의 솜씨를 뽐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대로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이
죄를 지은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수치를 노출시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화장술로 가리고
성형수술을 하는 것이
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인간들의 자기 가리기인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여자들은
무엇으로 단장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까?
아담한 옷이면 됩니다.
그리고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염치와 정절이란 무엇과 비교를 합니까?
땋은 머리나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선행으로 단장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에 대하여
베드로 사도가 한 말씀을 보고자 합니다.
베드로 전서 3:1-6절을 봅니다.
" 1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1)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3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결국 외모로 꾸미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꾸미려고 하는 것들은 다 썩어지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들은
썩지 아니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여자가 꾸며야할 것은
세상의 여자들이 꾸미는 것으로 꾸미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은혜의 선물로 단장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이 마땅히 할 일이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입니다.
둘째로,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는 것입니다.
여자는 주일학교 교사도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교회의 공개적인 석상에서
남자를 가리키려하는 것을 금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에베소교회가
거짓교사들에 의하여 분노하며 말다툼이 벌어지는 일에
여자들로 함께 가세를 한 것입니다.
교회가 어떤 싸움이 일어나면 누가 더 나섭니까?
여자들이 더 앞장을 섭니다.
그러다보니 무익한 변론밖에 나오지 않는 것이며
이러한 것은 남자들을 이기고 지배하려고하기 까지 하는
결과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외부의 적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더욱 소란스러워지는 것이며
결국 사단에 술책에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들은 남자보다 좀더 쉽게
분노와 말다툼에 잘 빠지는 속성이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조용하라는 문제를
어디까지 소급을 시키고 있는가하면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까지 소급을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이 먼저 만들어 졌고
여자는 남자의 돕는 배필로 주셨다는 것이며,
여자가 먼저 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단이 아담보다 하와를 유혹하는 것이
더 쉬웠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선악과를 보고서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던 것입니다.
지금도 대부분의 여자들이
백화점이나 텔레비전 홈쇼핑 같은 것을 보고서
물건을 사고 싶어서 남편에게 조르지 않습니까?
요즈음은 그렇게 조르지도 않고
여자가 다 결정하는 세상입니다만
그런데 남자는 그런 것을 보고서 시큰둥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남자도 있고
그렇지 않은 여자도 있습니다만
일반적으로 그러하기에 교회에서 좀 종용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 여자들이 기분이 별로 안 좋을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치고
우리에게 기분 좋은 말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러나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말씀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일차적으로는 그 당시의 이단들에 대하여 경계하기 위함입니다.
디모데전서 4:1-3절입니다.
"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2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3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4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영지주의 이단들이 나타나서
혼인도 폐하고 음식도 폐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잘 돌보고 남편에서 순복하며
결혼하여 자녀를 놓게 하는 것을 통하여
이단을 방어하는 것이면
또한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께 순복하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3절입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자가 남자를 머리고 인정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인정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여자가 기도할 때에 머리에 수건을 쓰라고 하는 것은
권세아래 있다는 표시입니다.
그래서 성당에서는 여자들이 지금도 머리에 수건을 쓰고
미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건대신 무엇으로 대신 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긴 머리카락이 대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건을 쓰거나 머리를 기르는 것은
결국 무엇아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권세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하와가 아담의 권세를 떠나 선악과를 따먹은 것입니다.
먹는 날에 정녕 죽으리라고 한 말씀의 권세를 부정한 것입니다.
물론 그 책임이 아담에게 있습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봅니다.
그것은 아담이 여자의 머리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주안에서 이러한 구분도 사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주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는 남자나 여자나 할 것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11-12절을 봅니다.
"11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12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그러므로 구원이란
아이를 낳고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구원이 아니라
주님을 머리로 믿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머리가 되셔서
우리의 잘못을 대신 담당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여자라면
외모로 단장하지 않고
염치와 정절로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으로 가정을 돌보며
해산함이 주님께 순복하는 길임을 아시고
감사함으로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남편이 무리하게 보일지라도
그리스도께 순복하는 마음으로 순복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주님을 섬기는 한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