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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화라전도사의 전도전략과 분석 -
임화라 전도사의 전도전략은 말씀과 적용에 의한 사랑입니다
임화라 전도사는 지난 10년간 많은 사람을 주께 인도하며 전도와 관련한 많은 사역들을 감당하였습니다 주일학교 교사로서 그의 역할은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며 5명에서 시작한 반인원을 35~40명까지 성장시키며 전체 출석인원의 50%를 차지할 만큼 뚜렷한 두각을 나타내며 열심히 봉사하였습니다 또한 권찰로서 구역관리를 강화하여 6년연속 2~3배가를 달성하였고, 구하라 권사님과 함께 4년연속 전도왕을 앞다투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특히 지난 2004년에는 모혜자권사와 함께 주간 평균 출석 130여명을 꾸준하게 달성하며 1,000명교회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그가 섬기는 여전도회 기관에서도 높은 참여율을 기록하며 그가 움직이는 모든 곳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는 이른바 "임화라효과" 가 나타났습니다
1. 임화라 전도사의 성장기
임화라 전도사는 1971년 5월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 앞바다 작은섬 연홍도에서 태어났습니다 연홍도는 그 크기가 너무나 작아 지도책에도 잘 표기가 되어 있지 않을 만큼 아주 작은 섬이지만 지금은 폐교되어 연홍미술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50년 역사와 전통이 있는 연홍초등학교가 있고 보건지소와 연홍교회가 각각 위치해 30여가구 주민들의 편의시설이 되고 있습니다
섬사람들의 하루일과는 새벽 1시에 시작되고 오후 8시에 끝나는 거의 24시간 연속적인 노동이 다반사였습니다 임화라 역시 어린 나이에 공부만 하며 지낼 수 없는 형편이었기에 자매들과 함께 집안일을 도와야 하는 일들을 감당하였습니다 그 와중에서도 집에서 유일하게 교회를 출석하였고 중등학교시절부터 주일학교 교사와 찬양대 등 교회의 중요한 사역들을 감당하며 성장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교회로 인하여 집안일을 게을리 하거나 요령을 피우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욱더 열심히 일함으로서 교회에 대한 좋은 인식을 갖게 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학교생활에 있어서도 중고등학교를 장학생으로 보내면서 학우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하는 사회생활을 집으로 부터 400km 이상 떨어져 있는 경상남도 울산의 현대중공업에 취업이 되어 6년 기간 회계부에서 근무하였으며 그곳에서도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지 않고 울산 큰빛교회 찬양대와 주일학교 등에서 봉사하며 교회의 사역들로 부터 잠시라도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며 교육의 열정이 남달랐던 가정 환경속에서 바르고 선하며 진실되게 성장함으로서 바른 가치, 바른 교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거칠고 강한 환경의 연홍도 섬사람들은 의외로 각종 바다 미신 등 토테미즘을 신앙하지 않고 기독교와 무종교를 이루면서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하나의 대가족처럼 상호 동반자 관계라는 의식이 강해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을 거주민 전체가 동일한 직업을 소유하고 있고 동일한 업무와 생활을 하고 있는 특징에서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협력관계와 신뢰관계 속에서 성장한 임화라 전도사는 긍정적이고 평화적인 환경에서 정신적인 영향을 받았으며 또한 공동의 이익을 발현하는 동일 구역내의 해양권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분쟁과 오해로 부터 화해와 조정자의 역할을 부친께서 담당함으로서 그에게 바다와 같은 넓은 마음을 가지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짐작하는 것입니다
2. 임화라 선생님과 임화라 집사님, 그리고 임화라 회장님
- 갈등과 조정자의 역할을 하다
임화라 전도사의 가치는 그가 하늘샘교회에 등록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그의 교회내에서의 역할은 항상 중요한 포지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은석 목사님 부임보다 1개월 늦은 교회 등록과 정은석 목사님과의 만남은 그에게 중요한 역사의 서막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등록과 동시에 주일학교 유초등부 교사와 할렐루야 찬양대를 맡아 열심히 봉사하였으며 더 나아가 교회의 공식적인 중창단인 온맘찬양대 대원으로서 조정자 역할을 잘 감당해 왔습니다 특히 주일학교 교사로 섬김을 시작한 이래 주일학교의 교세를 급성장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대부분의 주일학교 학생들이 임화라 선생님과 같은 반이 되고 싶어서 줄을 설 정도였고 5명으로 시작한 지 1년만에 40명의 반원으로 성장했는데도 학생들의 선생님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 인해 분반이 불가능할 정도였습니다
그러한 주일학교의 분반공부와 지도방식에 있어서 다른 선생님들과 구별되는 점이 있다면 임화라 선생님은 항상 언제 어디서든지 출석부와 생활기록부를 핸드백속에 가지고 다녔으며 생각날때 마다 전화와 이메일, 문자메세지등을 통해 학생들과 생각을 나누며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담자와 우정이 담겨있는 친구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해 왔다는 점입니다
그 중에 소외받은 학생들과 편부모 학생들은 임화라 선생님을 친어머니 처럼 생각할 정도로 각별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서 그들이 또 다른 도태자가 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와 정성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그의 개인적인 재정적 투자 또한 뒷받침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관계형성은 학생들이 중고등부에 가서도 교회를 이탈하지 않는 강한 성향을 보여 주었고 대학에 이르기 까지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을 잃지 않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지금도 그의 제자들은 교회의 중심 세대로 성장하여 찬양단과 교사로 열심히 봉사하고 있는 점에서 그의 진심에서 나온 관계적 지도는 다른 교사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각양각색의 다양성을 가지고 있는 온맘찬양단은 교회 음악이라는 동일성 속에서도 심리적 갈등은 항상 존재해 왔습니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내면의 갈등속에서 상호 존중과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조정자가 필요한 시점에 임화라가 그 역할과 조정을 담당함으로서 찬양단은 보다 음악에 열중하며 서로를 향한 존중과 사랑을 가지게 하였던 것입니다
지식과 자존심의 극한 내면적 상황이 항상 내재되어 있는 여전도회는 외면적으로는 서로 웃고 즐기며 하루를 보내는 듯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질투와 오해가 존재하는 특별한 기관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전도회 기관은 끊임없이 분회되고 분류되어 소규모 집단화 함으로서 그러한 문제를 보다 빠르고 신속하게 해결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입니다 5~6명이 모이던 갖 결혼한 여전도회의 모임을 보다 다양화하고 개별적인 접근과 상호이해 증진을 위한 큐티와 커리큘럼을 구성함으로서 15~20명이 모이는 기관으로 활성화 하였습니다 또한 자원봉사활동을 통하여 교회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거나 물질적인 지원을 함으로서 회원의 필요성과 목표의식을 고취시켰습니다
임화라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하나님앞에서 진실하자는 것입니다 때로 억울함과 슬픔과 오해가 있어도 그것을 억지로 풀려고 애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먼저 기도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다시한번 생각하고 배려함으로서 그 문제의 해결점을 찾아 조금씩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 있고 때로는 지금 바로 클로징해야 하는 프로세스가 존재할때 매 건 마다 매뉴얼을 구성한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는 습관을 이룩하였다는 것입니다
또 한 교회도 하나의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것을 인정함으로서 이러한 문제 해결의 근원지를 찾기 위한 캐내기식 접근을 지양함으로서 되도록이면 문제를 덮고 이해하는 것으로 조정하였다는 것입니다 우유부단하고 편향적이라는 이야기들과 악의적 공격성향들이 존재할 때 그것을 일일이 따지는 것보다 당사자인 내가 잘못했다고 공표함으로서 더 이상의 진전을 없게 하는 대의를 지켜 나갔음을 지난 6년의 세월을 통해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3. 임화라 집사의 전도와 구역원 관리
임화라 집사는 지난 6년간 2000명 정도를 전도한 것으로 통계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 가운데는 동원인력이 대다수이고 교회 정착율을 높이는 수치는 제한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화라 전도사의 전도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그의 전도에는 다른 전도왕들과는 다른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한 번 임화라 집사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그와 전혀 다른 반대의 상황으로 다시 만나는 경우는 현재까지 거의 없었고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임화라와 만나면 그 사람은 임화라를 좋아하게 되어있다"라는 공식이 적용될 정도로 이러한 유형은 흔히 발견되었고 전도와 학습을 통하여 이러한 지속성은 더욱 더 두드러지는 경향을 보여 주었습니다 특히 할머니 들은 임화라를 마치 자신의 딸과 친손녀 처럼 대해 주었고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까지 늘어났습니다 가장 큰 예로 화명동 벽산 아파트 노인정의 경우, 거기에 살고 있을 때에는 물론 거기를 떠난지 수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임화라를 혈육처럼 기억하며 아무런 조건없이 교회를 나와 예배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만남도 아니고 지극정성이 대단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할머니들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해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음식을 함께 만들며 시간을 보내 준 것이 그들에겐 너무나 고맙고 친절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일회성이 아니라, 물질로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다가가서 그들속에서 그들과 함께 동행하였다는 것이 그들에겐 너무나 소중하고 중요한 의식이 되었던 것입니다 외롭고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사람들에겐 돈도 중요하지만 말동무와 같은 친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임화라는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용하지 않고 진심으로 다가가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임화라의 전도는 전략과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이었고 삶의 적용이었던 것입니다 교회속에서 존재하는 말씀을 생활속에서 적용함으로서 또한 그러한 적용적 가치를 생활화함으로서 자연스럽게 전도로 연결된 중요한 교훈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도방식을 임화라 집사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은 결코 아닙니다 자신의 평소 습관대로 삶을 산 것이 바로 그들에게 아름다운 선행으로 전달되었던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와 이웃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불신자들이지만 임화라 집사를 친자매처럼 너무나 사랑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게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그들은 불신자들이지만 임화라 집사에게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들 또한 그들에게 말씀을 증거할때 그들은 임화라의 생각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들어 줄려고 애쓰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결국엔 진심이 승리한다"는 원칙이 말이 아니라 삶에서 묻어 남으로서 사람들은 "임화라" 라는 한 인간을 좋아하고 신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굳이 하나님의 말씀을 강요하거나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그의 삶을 보여주며 전해 준 것이었습니다 임화라 집사에게 있어서 지금의 상황은 경제적으로 심히 어려운 지경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하나님을 신앙하는 불변의 삶을 선택하였습니다 모자라는 생활비의 일부를 떼내어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전심으로 복음에 사용하였으며 돈 한푼 없는 수일을 보내면서도 결코 비관적이거나 원망하지 않는 삶을 체험하며 살았습니다
그의 하나님에 대한 일관된 신앙의 힘은 결국 70년 세월을 무종교 원칙으로 삼았던 시부모를 전도하는 역할 을 하였습니다 성격이 강하고 자존심 하나로 인생을 살아오신 시아버지에게 그가 전한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다른 가족들은 모두 부친을 두려워 하며 경멸과 미움을 쏟아 보낼때 임화라는 일관된 심정으로 사랑을 보내주었던 것입니다 그 어떠한 모습속에서도 일관된 원칙을 잃지 않고 건강을 염려하며 진심으로 다가섰던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일관된 삶의 적용이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철옹성인 시아버지를 회심케 하였고 그분들은 지금 구포제일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임화라로 인하여 변화를 받은 시아버지는 자신이 교회를 다닐 뿐만 아니라 예수를 믿지 않는 장남에게도 교회를 다닐 것을 여러번 강조하였습니다
인생을 철학관에 맡기며 살고 있는 불쌍한 사람에게 진심으로 호소하며 "똑같은 사람에게 의지하여 당신의 인생을 맡기지 말라" 고 눈물로 호소하는 그의 진심을 바라본 40대 주부가 하나님을 만나고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 하게 되었으며 지금은 친자매처럼 서로 아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처음엔 그를 오해하였던 사람들, 세월의 흐름속에서 진실이 통하여 졌고 그를 통하여 새로운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 - 오늘날 말씀이 사라진 교회내에서 하나님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불신자들은 끊임없이 존재하고 있음에 가슴아파 하며 자신의 일처럼 기도하고 있습니다
임화라 집사의 구역관리 또한 사랑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그 사람의 문제를 따지고 묻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증거하고 보여 줌으로서 서로 친구가 되게 하고 그들 스스로가 마음을 열게 함으로서 구역은 성장하고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팬처럼 생겨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임화라 집사가 이러한 원리를 이용하고 적용할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시도한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진실되게 보여 주려는 삶 그 자체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은 쇼다"라고 외치는 그 속에서 임화라 집사는 오늘도 여전히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뛰어노는 어린아이와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임화라 집사에게 있어서 전도란 말씀과 적용인 것입니다 전략이 아니라 진심으로 진실되게 살아가는 삶 그 자체인 것입니다 인생은 때로 어려움을 우리에게 안겨다 줍니다 그때마다 임화라 집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럴수록 하나님께 의지하는 습관을 생활화 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이를 통하여 임화라 집사는 성령을 확신하였고 그의 신앙은 더욱 더 굳건히 세워져 나갔습니다
4. 임화라의 또 다른 인생, 전도사의 길
임화라 집사 스스로가 전도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같은 교회에 다니던 허두임 전도사님과 이득자 전도사님이 사임을 하기전 부터 수년동안 전도사의 길을 준비하라고 끊임없이 요구되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그러한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크게 생각하며 준비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후의 일이지만 하나님의 계획에 의하여 평신도신학과 큐티와 말씀공부 등 여러가지 훈련과정을 통하여 조금씩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어느 정도 완료되었지만 본 교회에서의 역할과 사역들에서 차지하는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고민을 않할 수 가 없었습니다 그러한 고민을 잠재우며 도와주신 분은 허두임 전도사님과 이득자 전도사님이었습니다 그분들의 도움과 은혜로 말미암아 임화라 전도사는 시온성교회 전도사로 가는 축복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뿐만아니라 홍모가 여섯살로 너무 어려서 가족들의 동의가 필요했습니다 가족들 모두가 크리스챤이고 다들 교회생활을 중심으로 생활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것이 일방적으로 진행될 수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많은 기도와 고민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은 하나님 앞에서 무조건 복종하며 상호 협력할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더우기 전도사 생활은 근무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초상과 병원심방같은 돌발상황도 빈번하여 임화라 전도사는 더이상 가족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는 것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모든 현실을 가족들 모두가 지원하고 기도해야 할 당위성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지나온 10개월 우리는 현재 서로를 도와가며 안정적인 시스템을 갖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신앙을 지키며 서로 협력자가 되고 중재자가 되어 서로에게 공격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직 어린 홍모와 자녀들이 크게 다치거나 불의의 사고로 인한 돌발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항상 기도하고, 자녀를 축복함으로서 세상의 범죄와 질병과 고통으로 부터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시작에 불과한 것이므로 임화라에 대한 분석과 전망은 섣부른 것일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온 일련의 삶을 통하여 분명한 것은 임화라에게 나타난 "말씀과 적용" 이 두가지 특징이 변하지 않고 지속될 수 있도록 항상 기도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기대하고 있습니다 화명제일교회에서 너무나 잘했다는 임화라 전도사가 시온성교회에서는 얼마나 잘 할 것인지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하나님의 선택에 따라 움직인 임화라 전도사가 사람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진실되고 바르게 사역을 감당하는가 하는것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또한 그의 가족들이 지금처럼 임화라 전도사의 사역을 계속 지원하고 함께 동역하며 불변의 역할을 감당해 낼 것인가 하는 것도 빠트릴 수 없는 과제가 될 것입니다 현재 중학교 3학년인 큰 딸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어린 홍모의 일차 보호자는 아빠가 될 것입니다 유치원 선생님의 역할과 주위 인맥들의 도움은 교회와 인접하여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이 모든 핵심은 문제해결의 일등이신 하나님과의 절대적인 관계형성인 기도의 필요라 생각됩니다
지금까지 전도와 구역관리에서, 주일학교 교사와 찬양대와 기관에 이르기까지 좋은 역할을 감당하였던 임화라 전도사가 시온성교회에서도 수많은 불신자를 전도하고 소외받은 교인들을 위하여 사랑을 베풀고 그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며 또다른 문제의 중요한 중재자로서의 사역을 아름답게 감당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또한 스스로를 더욱 더 낮춤으로서 겸손과 자비로움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선한 일군으로서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가 새로운 길을 선택한 것은 영화로움과 존경받는자의 위치에서 부귀의 손을 잡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언제나 모자람과 나약함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결정이었다는 것을 항상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5. 임화라 전도사 - 새로운 스승이신 이성구 목사님을 만나다
참으로 다행스러운것은 지금 임화라 전도사는 시온성교회에 새롭게 부임하신 이성구 목사님을 만나게 됨으로서 그에게는 훌륭한 목사님을 보필 할 수있는 좋은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성구 목사님은 부임과 동시에 70년만에 교회를 찾은 시부모님의 가장 중요한 조언자요 친구가 되셨으며 교회의 바른 정착을 위해 헌신함으로서 목회자상의 바른 철학을 몸소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또한 두 분의 부목사님과 남여 전도사님들의 사랑과 배려속에서 첫번째 사역을 잘 감당 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시온성교회는 지난날의 아픔을 딛고 새롭게 부흥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떠났던 사람들이 하나씩 복귀하고 있으며 매주마다 새로운 교인들이 등록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제 2의 개척기를 맞는 시온성교회는 이성구 목사님의 강력한 추진력과 함께 북구지역의 영혼을 깨워 나갈 것으로 기대 합니다 시온성교회의 화명동 새성전건축을 과감하게 중단하고 지역의 발전과 상생을 위해 역사적 흔적을 유지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로서 시온성교회는 그 옛날의 명성을 회복하고 양산을 포함하는 북구지역의 영적 중심지 역할 을 감당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이러한 교회의 성장을 위하여 임화라 전도사가 지금까지 해 왔던 말씀과 적용이라는 중요한 중재자의 역할을 더욱더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임화라전도사의 교구와 구역관리에 대한 성장원리 연구
만남의 가치, 함께 흘리는 눈물, 그리고 평화의 시간에 이르기까지
임화라전도사는 현재 시온성교회의 전도사로서 교구와 함께 초등부를 섬기고 있습니다 임화라전도사가 주일학교 초등부의 성장과 함께 교구와 구역관리를 어떤 시각과 어떤 방향으로 설계하고 있으며, 이것이 기존의 교회관리와 어떤 방식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에 대하여 접근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이 글은 임화라전도사가 초등부와 함께 교구관리의 성장을 이끄는 원동력과 차별성을 통하여 우리가 배우고 적용할 수 있는 트렌드는 무엇인지를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임화라전도사는 2007년 12월25일 시온성교회(구,구포제일교회)에 여전도사로 부임하였습니다 그곳에 부임하기 까지 임화라전도사는 화명동지역의 한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와 구역권찰, 여전도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었습니다
[1] 임화라 선생님, 그리고 아이들을 향한 눈물의 기도
임화라 전도사가 평신도로 있을 때 그는 사랑받는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스스로도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임화라 선생님을 매우 사랑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속에서 그에게 맡겨진 주일학교는 풍성한 열매가 가득하였고, 아이들이 선생님을 자기의 친엄마였으면 좋겠다는 말을 할 정도로 임화라 선생님은 사랑의 교사였습니다 반 아이들 가운데 부모의 이혼과 빈곤으로 인하여 상처가 크게 자라난 아이들은 임화라 선생님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게는 더욱더 미세하고 섬세한 관리가 필요하였습니다 문자를 나누고 통화를 하고 때로는 주중에 만남을 가지며 그들을 다독거려야 했지만 그들이 처한 가정의 문제까지 접근하는데는 많은 걸림돌이 있었습니다 당시 임화라 선생님이 처한 환경도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다른 사람까지 되돌아 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아이들을 마냥 방치할수도 없었습니다 임화라 선생님은 부모와의 통화를 시도했고, 때로 진심어린 상담을 통하여 서로 힘을 내자는 응원도 있었습니다 늘 힘겨운 삶에 지쳐있는 빈곤계층의 가정은 아버지의 붕괴가 그 원인이었습니다 폭력 남편, 알코올 중독의 아버지, 오랜 실직으로 어머니가 생계를 어렵게 꾸려 나가는 가정들에서 아이들은 늘 그렇게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있어도 해결해 줄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던 임화라 선생님은 언제나 그렇게 기도의 자리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의 상처를 보듬어 줄 것을 바라는 것이 단지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습니다 임화라 선생님은 사랑하는 아이들을 가끔씩 집으로 초대해 밥을 해주었습니다 가진 것이 없어서 그들에게 마음껏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따뜻한 밥 한끼라도 먹이고 싶은 엄마의 심정이랄까요? 그렇게 임화라 선생님은 그들을 한명씩 한명씩 안아주며 자신이 가진 사랑을 표현해 주었습니다 임화라 선생님은 지금도 그 때 그 아이들을 생각하면 눈에 눈물이 맺혀 있습니다 가진게 너무 없어서 더 잘해주지 못한 미안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참혹한 환경을 원망하지는 않았습니다 스스로가 너무나 힘들었기에 그들을 품에 안을 수 있었고 그들을 위해 울며 기도라도 할 수 있었다고 그는 고백합니다 그 가운데 몇몇은 멀리 이사를 가고 그 후로 그들의 삶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수 없게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중등부와 고등부로 올라가며 교회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2] 임화라 집사님, 사랑하는 지체들을 향한 눈물의 기도
① 구역에서 몇 않되는 식구들 가운데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늘 눈에 밟히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남편의 실직으로 가정은 붕괴될 위기에 처하였고 어려운 형편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남편과 아내가 만나기만 하면 다툼과 분쟁과 욕설로서 시간을 다 허비해 버리는 그야말로 대책이 없는 그런 가정이었습니다 싸움을 말리고 밥을 먹이며 그들을 다독거려 집으로 보내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돌아간 자리에서는 평화를 찾았을까요? 교회 올 차비가 없어서 교회에 결석한다는 말을 들은 임화라 집사는 그들의 아이들이 행여 굶고 있지 않을까 염려가 되어서 택시를 타고 무조건 오라고 하였습니다 임화라 집사에게도 가진 것은 없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돈이라도 그들의 손에 쥐어 주어야만 마음이라도 편할 것 같아서 였습니다 스스로도 힘든 시기를 지내고 있었던 임화라집사는 그렇게 또 누군가의 아픔에 울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이었습니다 임화라 집사는 그들을 배웅하고 집으로 오지 못했습니다 문이 잠긴 교회 문턱에 쪼그리고 앉아 새벽 1시가 되도록 울고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 와서도 그 울음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임화라 집사는 단 한마디의 말도 없이 밤이 맞도록 그렇게 울고만 있었습니다 그 기나긴 울음은 새벽 6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지만 속에서 흐르는 눈물은 그 다음날도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수많은 세월의 시간들속에 그녀의 지친 눈물을 하나님께서도 들으셨을까요? 다음날은 하루 내내 비를 내리며 모두를 그렇게 아프게 하였습니다
임화라 선생님은 정말 공주와 같은 딸이었습니다 부모의 자랑이었고, 훌륭한 딸이었습니다 늘 웃음이 가득하였던 임화라 집사는 웃음을 잃어 버리고 그 대신 원하지 않는 울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신으로 인해 울고, 남을 위해서 늘 그렇게 울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상처를 치료하며, 다른 사람의 상처도 함께 살펴 보아야 하는 시절은 잠간 지나가는 소나기가 아니었습니다 참으로 긴 세월을 임화라 집사는 어떻게 견디며 살았을까요?
자신이 어렵지 않았을 때에는 임화라 집사의 눈에 그들이 보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어렵게 되자 자신의 주변에는 온통 어렵고 힘든 사람들만 있더라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매일매일의 삶속에서 수많은 눈물을 흘렸지만 사랑하는 남편앞에서는 늘 웃는 모습을 보여 주려고 애썼던 임화라 집사는 남편에게 언제나 용기를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② 화명주공아파트가 강제 철거되던 날, 임화라집사 구역의 한 가정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 초등학교 1학년 아들과 중학교 3학년 아들이 학교에 가기 위해 아침밥을 먹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철거반이 들이닥쳐 그들의 가재도구와 사람들을 강제로 이끌어 내려 하였습니다 겁에 질린 어린 아들이 울고 있고 하루 아침에 갈곳을 잃은 가족들은 끼니도 거른채 망연자실해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한달전 부터 예고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대책이 없었던 이들 가족은 하루하루를 마음조려가며 그냥 그렇게 보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임화라집사는 모든 것을 잃은 그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밥을 먹이고 남편 집사에게 집을 알아 보라고 하였습니다 때마침 S마을에 빈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보증금도 얼마 되지 않고 주인도 매우 좋은 분들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이들에게는 그 집도 너무나 큰 짐이었습니다 참으로 대책이 없는 가족이었습니다 이지경이 되도록 왜 아무런 준비조차 하지 않았을까? 답답하기만 하였습니다 친척들도 이들에게 빌려주고 못받은 돈이 너무 많아 전화조차 받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수십번의 통화 끝에 “어른들은 벌을 받는다 해도 초등학교 1학년 어린 아이까지 길바닥에 버려둘 것인가” 하며 설득한 끝에 결국 친척들의 주머니에서 보증금 500만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용달차를 불러 화명주공에 버려둔 가재도구와 옷가지들을 모두 챙겨와 늦은 밤이 되어서야 그들은 새로운 터전에서 첫날 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한동안 밥을 해 먹이고, 김치와 밑반찬과 쌀을 주며 그들의 삶을 도왔습니다 어려운 환경은 그들이나 임화라집사나 다를게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속에서 그들에게 무엇인가 작은 것이라도 줄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그때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③ 임화라집사가 여전도회 회장을 하는 동안 작은 바자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집에 있는 많은 옷가지들이 여전도회의 집에서 나왔습니다 바자회를 통하여 어려운 이웃을 돕는 행사에 생각보다 많은 성도님들이 참여해 주었습니다 여전도회 회원의 참여로 얻은 수익금은 교회내의 어려운 가정과 교회밖의 어려운 가정들에게 미력하나마 유익하게 사용되었고 함께하는 지체들의 보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기증품들이 들어와서 행사가 끝난 후에도 많은 옷가지들이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11월이라 겨울을 앞두고 있을 때 였고, 노숙자 쉼터에서 옷을 구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100여벌에 달하였던 옷가지들이 자칫 버려지거나 그로 인하여 여전도회 내에 불평이 나올 여지도 있었으나, 노숙자 쉼터의 겨울나기에 유용하게 사용됨으로서 좋은 사례가 되었습니다 노숙자 쉼터 방 게시판에는 H교회 제 7여전도회(회장,임화라집사) 기증 물품이라고 하여 겨울의류 120벌의 가치를 온기와 함께 전하고 있었습니다
가진 것이 많아야 꼭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작은 힘들이 모여모여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임화라 선생과 집사와 회장은 고난과 어려움속에서 낙심의 길을 걸어갔던 것이 아니라 한나와 같이 많은 눈물을 뿌리며 사무엘과 같은 희망의 나눔을 잉태하였던 것입니다 임화라는 그렇게 하나님이 보내주신 사람들과 함께 그들의 아픔과 상처를 눈물로 씻어 내며 스스로도 성장하였습니다 주의 길에서 결코 뿌리치지 않았던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는 조금씩 자립해 가고 있고, 또 누군가는 소식조차 끊어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날, 그들을 생각할 때 마다 임화라의 눈에는 또다시 눈물이 맺혀 옵니다 이것이 그에게 주어진 엄마와 같은 삶이고 아픔이라면 안고 가야만 하지 않을까요?
[3] 시온성교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들을 위해 흘린 눈물이 가져온 평화의 시간들
H교회가 신도시를 중심으로 중산층이 주류를 이루는 곳이라면, 시온성 교회는 구포와 덕천과 만덕을 중심으로 하는 서민층이 주류를 이루는 곳이었습니다 옛 구도심으로 영광을 누린 적이 있지만 세월의 변화속에 이들의 걸음은 지친 듯 하였습니다 이들의 거친손으로 일한 댓가로서 자녀들은 중산층 아파트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언제나 힘겨운 삶은 교회에서도 이들의 흔적이 묻어 있습니다 오랜 역사속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시온성교회는 이들에게 좋은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시장통 사람들과 그들의 이웃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따뜻한 커피를 나누는 교회는 그들이 두고온 고향이거나 어머니의 품일수도 있었습니다
① 성도들 가운데에는 어려운 환경으로 인하여 연락이 잘 되지 않고 소외되는 사람이 늘 있기 마련입니다 무릎에 물이 차오르고 통증이 심해 늘 고생이 심하였던 한 집사님은 평소 지인으로부터 건강보조식품을 먹어 보라는 권유를 받고 처방받았던 약을 모두 끊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후 통증은 예전보다 훨씬더 심해졌고 무릎에는 진물이 날 정도로 극심하여 병원에 한달간 입원을 한 것이었습니다 몇 번을 심방을 가도 만날 수 없었던 집사님이 퇴원을 한 후 찾아갔을땐 조금씩 나아지고 있을때였습니다 임화라전도사는 교회당에 엎드려 기도를 하였습니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은 아플때에도 언제나 혼자인 것이 너무나 아팠기 때문이었습니다 교역자인 자신이 양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죄책감과 그 집사님의 아픈 시간들이 뇌리를 스치며 그녀는 기도의 자리에서 한참을 있어야 했습니다
② 시온성교회에는 구포시장에서 장사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래도록 터전을 잡고 살아온 시장한켠에서 장사를 하는 집사님은 단골고객들만 해도 꽤 되었습니다 가게를 확장하며 먹고 살만한 시절이 가고 지금은 은퇴준비를 하며 부산인근에 집을 사두기 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사정이 여의치 않으며 단골고객까지 하나씩 다른 집으로 가기 시작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어쩔수 없이 주일에도 문을 열어 한명의 고객이라도 붙들어야 하는 집사님의 마음은 갈수록 애가 타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를 옮겨볼까 하는 마음의 상심까지 겹치며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누군가의 기도는 큰 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기도란 그런 것이었습니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기도는 그 사람의 마음을 놀라게 할 만큼 위력을 가지고 평안을 선물로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집사님은 그후로 마음의 평안을 되찾고 상심을 회복하였으며 단골고객도 다시 찾는 아름다운 가게가 되었습니다
③ 때로는 타이밍이 중요할때가 있습니다 심방을 가기위해 교역자실에서 나가던 중 권사님께서 교회앞에서 쓰러질듯하며 부축을 받고 있었습니다 상태가 심상치 않은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 교역자들이 심방을 미루고 환급히 차에 태워 병원으로 모시고 가게 되었습니다 오랜 투석으로 금지된 음식을 드신 것이 문제가 된데다 기력이 떨어져 순간적으로 쇠약하여 일어난 것이지만 늦었다면 입원을 해야하는 것이었습니다 함께 가신분들이 기도에 동참하고 위로를 드리는 동안 권사님은 안정을 취해 갔습니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타이밍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옆에 누군가 한사람만 있었어도 살 수 있었던 사람이 외롭게 죽음을 맞이하는 가슴아픈 일이 주위에 있습니다 또다시 무너져 내릴 듯한 심장은 권사님이 안정되어서야 제대로 뛰는 듯 하였습니다
④ 새롭게 등록하신분들 가운데 열심히 하시는 분들에 대한 예우는 각별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김해에서 사업을 하시는 부부집사님의 경우에는 남다른 달란트들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남편은 H태권도 시범단 선교사로 활동하다가 부친의 사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부인 집사님 역시 선교원교사와 찬양단과 영어강사 등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교회 등록과 동시에 많은 부서에서 섬기게 된 집사님이 여름성경학교 준비과정에서 엉덩이쪽 꼬리뼈 상단에 염증이 생기는 일이 있었습니다 많은 일들을 감당하고 있었던 집사님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봉사에만 전염하였으나 염증은 갈수록 커져 결국엔 수술까지 하게 되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그후로도 40일간이나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큰 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집사님은 여전히 교회 곳곳에서 아름다운 섬김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가운데에는 이런 일 저런 일들이 있습니다 항상 좋은일만 있는 것도 아니고 항상 나쁜일 만 있는 것도 아닌 것이 교회의 사역입니다 때로 이와같은 질병을 만났을 때 우리는 힘든 사역의 탈출구로 삼으려 할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과 기도와 부부간의 화합속에서는 이런 일들이 아무런 장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⑤ 전국규모의 화원을 운영하셨던 부부 집사님은 자녀들을 대학교수와 서울의 직장인으로 성장시킨 행복한 가정이었습니다 새롭게 교회를 나오게 된 여성도님은 한주 중 예배드리는 한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할 정도로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평소, 음식에 관심이 많았던 성도님에게 우연찬은 기회가 찾아와 저렴한 비용으로 식당을 개업하게 되었습니다 식당개업 5개월만에 몸에 무리가 찾아왔고 혈변이 나오는 등 심각한 증세가 있었지만 예약손님들이 많아 2개월이나 연기 끝에 병원에 가게되었을땐 몸무게가 17KG나 줄어 있었습니다 대장에서 용정이 11개나 발견되고 암조직까지 발견되어 결국 수술까지 하게되는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병원 심방중에 집사님을 만났을 때 임화라 전도사는 무슨말로 위로를 해야할지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비록 암이 발견되어 수술을 하게 되었지만 지난날 많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인도하심을 감사드린다“는 고백앞에서 눈물을 흘린 것은 임화라 전도사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때로 성도가 교역자를 위로하며 은혜를 끼칠때를 만납니다 성도와의 교통을 느끼는 순간 우리에게 나타난 피로감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주님의 평강만이 남게 됨을 고백하게 됩니다
교구와 구역은 어떻게 관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것일까요? ① 그것은 “진심”입니다 꾸미고 기획하고 드라마틱하게 연출해도 진심이 없는 액션들은 비싼 댓가의 쇼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쇼”(SHOW)는 이벤트와 같아서 한번 정도는 통하지만 계속하면 식상하기 쉬운 것입니다 사실 임화라전도사에겐 이런 쇼를 할만한 돈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에겐 “진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스스로가 가진 것이 없고 보여 줄것이 없기 때문에 그녀는 “진실”로서 나아가려는 것입니다
② “교구와 구역”은 조직이 아니라 결국 “사람”입니다 사람과 사람들이 모여서 구역이 되고 교구가 되는 것입니다 자라온 배경과 성장환경이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기독교 교회공동체속으로 들어와 하나의 가족이 된 것입니다 때론 불편하고 때로 부담스러운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반갑다고 내미는 손 가운데는 진심이 있는것도 있고 불편한 것도 섞여 있습니다 사람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진심이 통한다는 것입니다 거짓과 꾸밈이 없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들여다 보고 확인합니다 그 다음 손을 내밀지, 아니면 문을 닫을지 결정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임화라 전도사는 진심이라는 그리스도의 중요한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③ 그 다음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누구에게 하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기도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진실하였다면 하나님께도 진실을 보여 줄 것입니다 아름다운 미사어구와 현란한 언변으로 하나님을 설득시킬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책망만 들을 뿐입니다 임화라 전도사는 기도의 힘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눈물과 무릎속에서 깨달은 것이 기도였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왜 하는 것일까요? 교구와 구역관리와 같은 예수님의 양을 임화라 전도사가 지킬수 없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도 지키지 못하는데 예수님의 양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성장시킨다는 것일까요? 모두 허구일 뿐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분량을 늘여 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사역 가운데 자기에게 주어진 소명일 뿐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의 중심입니다 어떤 참신한 계획서를 들고 나와 브리핑하는 것이 기도가 아닙니다 내가 다하고 하나님이 할 일이 없는 그런 기도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라는 것을 기도의 체험을 통하여 임화라전도사는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④ 그리고 “말씀”입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계획과 뜻을 아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속에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계획을 세상에서 찾으려 합니다 인터넷을 검색하여 손쉬운 방법과 전략들을 찾습니다 그것이 우리 교회의 옷에 맞을까요? 하나님이 검색을 통하여 일을 하시길 원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알고 계시다는 가장 보편적 진리”를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답은 성경입니다 우리가 찾지 못하고 깨닫지 못할뿐 성경에 없는 것이 아닙니다 임화라 전도사는 하나님께 묻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좀 구태의연하게 보이고 어리석게 보일 수 있어도 그것이 맞는 행로라는 것을 자신의 삶을 통해서 배운 것입니다
⑤ 말씀을 읽었다면 이제 그것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 교구와 구역을 관리하기 원하고 있을까요? 복음서에는 “양들을 양육하는 목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울타리를 튼튼히 하고 끊임없는 보수를 통해 “안전성”을 확보합니다 교구와 구역이 “건강성”을 잃지 않게 신앙중심으로 세워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처, 저런 말들에 휘둘리며 끊임없는 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젖먹이 아이처럼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자라나도록 키워 간다는 것입니다 ▶또한 “푸른 초장”을 찾아다니는 쉼없는 수고를 계속합니다 말씀을 갈구하며 쉼없는 연구와 발견을 찾아 “성령의 인도함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때론 집착처럼 느껴질 정도로 성령을 간구하는 일은 많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양들의 “건강성”입니다 양이 아무리 많아도 질병에 걸려 있거나 전염병이 돌고 있는데도 방치하고 있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달란트를 아무리 많이 받아도 그것을 수익창출에 사용하지 않고 땅속에 묻어 두고만 있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주인의 책망만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목자가 성도를 돌보는 일 만큼 중요한 일은 없을 듯 합니다 목자가 성도를 빈부격차에 따라 구별하고 성별에 따라 차등을 둔다면 그 목자는 진정한 목자가 아닌 것입니다 사람의 성격에 따라 차별을 두어서도 않될 것입니다 그 성격에 맞게 조정하는 조정자의 역할이 오늘날 구역관리에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갈등관리 조정자의 역할이 오늘날 중요한 화두가 되었습니다” 갈등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해주지 않아도 될 말을 전해주거나 싸움을 부추겨서 흥밋거리를 삼으려는 악한 사람이 어디에나 있습니다 스스로는 해결사 노릇을 하지만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갈등을 일으켜 문제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갈등관리는 갈등의 당사자를 중심으로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갈등의 해결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 주는 것입니다 말을 들어주면 갈등의 당사자들은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자연치유와 함께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해 나가는 시간의 여유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임화라 전도사는 무엇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설득을 하고 납득을 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충분히 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의 마음과 공유하고 함께 느끼려 한다는 것입니다
임화라 전도사에게 있어서 교구와 구역관리는 서비스가 아니었습니다 달래고 말리는 신생아실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태연해 보여도 바람잘 날이 없는 교회에서 그가 가꾸고자 하는 것은 “건강성”이었습니다 건강할 때 오는 감기는 약으로 다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백혈병이나 폐암환자가 걸리는 감기는 치명적인 독약이 될수도 있습니다 모든 원리는 말씀과 기도와 내려놓음에 있습니다 이 평범한 진리를 다른 사람도 아닌 그리스도인들이 외면하는 현실에서 임화라 전도사는 여전히 기도에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우리는 한 사람을 통해서 보편적 진리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직의 중요성이 아니라 사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해 나가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들의 몫이 될 것입니다 시도하지 않는 자가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금 시작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