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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0시경 전 청주인근 벌판의 하우스 안에 있었습니다 제 전화는 저보다 바쁨니다.
우리 큰아이가 다음달 초에는 몸을 풉니다 애비 잘못으로 변변한 결혼식을 못하고 제가 사업을 실패하던 시기에 큰아들(큰사위) 만나 현재 같이 삽니다. 큰아이는 저 때문에 공부도 포기했습니다
애비잘못만나 지 애비가 삼성 이병철이 일가와 평생 싸움질하며 살다보니 서른 넷이 되도록 저 하고픈 일을 못하고 삽니다. 애 갖기전까지 그 아이는 청주와 거제도를 오가며 2.5톤 탑차를 운전하고 다녔습니다. 제가 빚져놓은 많은 돈을 그 아이가 대신 일해 갚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원망이 많을 것 같은 그 애가 제게 펜슬이 달린 휴대폰을 얼마전 사주더군요. 새벽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제가 걸렸었는지 텃치패드 불량으로 잘 걸리지 않던 전화가를 슬그머니 들고나가 바꿔왔습니다 여기에 올리는 간략도면들이 그 애가 사준 펜슬달린 휴대폰에서 그려놓았다 다시 종이 옮겨 그려서 찍은 영상입니다.
돈이 있던 시기에도 옷 한벌 사입으라 하면 시장에 가서 시장 캐주얼 두세벌을 삽니다. 메이커 한벌이면 시장케주얼 열벌을 산다며 5~10,000원짜리 옷 외에는 관심이 없던 아이입니다.
둘째는 바지 하나를 사도 운동화 한켤레를 사도 메이커 좋아하더만 큰 아이는 내색하지않고 그렇게 컸습니다. 둘째가 수능점수에 낙담하여 고득점자임에도 대학을 포기하겠다하자 조용히 설득하여 지방대를 보냅니다. 그 때 우리 둘째 말이 이해찬시대에 산 것이 후회스럽다 했습니다 둘째는 초등학교부터 전체 일등을 놓친적이 없는 만점자였거든요. 사교육으로 고액과외했던 대전 모 학교에서 만점자가 하나 나오고 학교만점자는 수능점수에서 비교할 수없게 낮은 점수가 나온 것에 낙담하며 내뱉은 말입니다. 그 아이는 지금 청주인근 모회사에 아르바이트직원으로 있습니다. 나이 서른 둘에 직장생활을 합니다.
셋째는 유아교육과를 나왔습니다 제가 취직자리 알아보겠다해서 놀다 제 힘으로 청주 모 어린이집에 취직했었습니다 급여 일백만원과 나라 지원금합쳐서 일백삼십여만원을 받고 일년을 일하다 원장의 비윤리에 밀려 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직장을 잃습니다. 두부 한모 닭 한마리로 사십여명의 원아와 교사 급식을 하던 그 원장은 지금도 떳떳한 청주 모 어린이집 원장입니다.
이게 세상인것 같습니다.
남이야 어찌되든 제 배만 부르면 그만이 세상...
전 제 아이들이 딸아이들이지만 저희 족보를 간략하게 기술하여 글을 깨우치던 4~6세 시절에 A4용지 한장분량을 딸딸외게 했었습니다
큰아이가 다니던 유성초교에 제가 일일교사로 가서 우리아이를 세우고 그 외운 것을 친구들 앞에서 발표시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으니 벌써 25년 전 일입니다.
제가 위 제목의 내용을 기술하지 않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저를 올바로 알리려 함입니다.
제 머리는 돈이 궁하니 팔 수 있지만 제 의식은 팔수없는 이유입니다...
내일은 필히 다음 글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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