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자유기업원
글쓴이 - 조동근
글 제목 - 재벌기업 경영권 승계, ‘금지된 허용’인가
육상 계주 경기에서 바턴 터치 실패는 레이스의 탈락을 의미한다. 기업도 최고경영자의 경영권 승계가 매끄러워야 경쟁력 있는
계속기업(going concern)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근대기업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는 전문경영인 체제가 아직 충분히 정착되지 않아 경영권
승계는 ‘대물림’인 경우가 많다. 재벌의 경영권 승계는 재벌체제의 아킬레스건(腱)이었으며, 늘 편법승계 시비가 따랐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편법적 경영권 승계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재벌기업의 탐욕과 도덕적 불감증에서 비롯된 것인가. 재벌 기업에게
윤리경영은 사치에 지나지 않는가. ‘기업의 탓’으로 모든 것을 돌리기는 쉽다. 하지만 이는 정도(正道)가 아니다. 빠져서는 안 될 함정일 수도
있다.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대기업을 편법을 일삼아 온 부도덕한 존재로 몰아세우는 것은 일종의 자학(自虐)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재벌의
편법적 경영권 승계를 부추겨 온 구조적 요인이 없는가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재벌 기업과 지배주주를 분리하려는 사회심리
흔히들 ‘가업(家業)을 잇는다’는 말을 한다. 선대(先代)의 유업을 물려받거나 세대에 걸쳐 전문화를 꾀해 경지에 이른다는 말이다. 그러나
가업을 잇는다고 후대(後代)가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성공 여부는 시장이 판단한다. 그렇다면 재벌의 경영권 승계는 ‘가업을 잇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다르다면 ‘작은 것’의 대물림과 ‘큰 것’의 대물림의 차이일 것이다. 크기의 차이는 본질이 아님에도, ‘큰 것의 대물림’에는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다. 지나치리만큼 사회적 책임, 공공성, 윤리 등이 강조된다. 우리 사회는 ‘큰 것’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소위
‘이중 잣대’이다.
우리나라 반(反)기업 정서의 실체는 ‘반(反)기업인’ 정서이다. 예컨대 삼성과 현대그룹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이들 그룹의 총수는
심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 기업은 온 국민이 뒷바라지한 결과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국민기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국민기업은
모든 국민이 주인인 기업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들 기업은 주주의 ‘사유재산’일 뿐이다. 기업과 그 주인을 분리하려는 사회심리가 현실과
부딪치면서, ‘큰 것’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형성된 것이다. 경영권 승계도 그 대상 중의 하나였다.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제기되는 단골 메뉴는 ‘자질론’이다. 한마디로 경영능력이 ‘유전’되느냐이다. 경영능력에 대한 검증 없는 피붙이에 대한
‘맹목적 승계’라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자기 것을 지키려는 본성이 있다. 자식에게 물려줄 때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자식에게 물려줄 것인가를,
그리고 자식이 과연 물려받은 것을 잘 지켜낼 것인가를, 물려주는 당사자만큼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이는 하이에크(Hayek)가 설파한, 당사자가
가장 정통할 수밖에 없는 특정상황하의 ‘현장지식’인 것이다. 따라서 외부에서 전문경영인을 영입하느냐 아니면 기업의 승계프로그램에 의해 자식세대를
최고경영자로 기르느냐는 기업의 선택에 맡길 일이다. 사(私)영역에 대해 사회가 ‘여론의 옷’을 입고 관여할 이유는 없다.
‘전문경영’체제로의 사실상 강제
현행 상속세법 구조 하에서 ‘정상적’ 경영권 승계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편법 승계 시도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최근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현대차 그룹의 경우를 보자.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정몽구 회장이 행사하고 있는 지배권을 ‘그대로 승계’받기 위해 정 회장의 그룹 지분
전부를 증여(상속)받는다고 가정하면, 정 사장은 2005년말 기준으로 1조 3000억원의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 정 회장의 현대차 그룹 지분의
주식평가액이 2조 6천억원이고, 30억 이상을 상속할 때의 증여ㆍ상속세율이 50%이기 때문이다. 상속세 납부액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의선 사장이
“현대차, 모비스, 기아차”로 연결되는 상장 주력 계열사만을 지배한다고 해도 상속세는 8,000억원에 이른다. 보수적으로 계산하더라도 정사장은
8,000억원을 ‘납세용 재산’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 아니면 물려받은 주식을 처분해 세금을 내야 하는 데 이것 역시 현실적이지 않다.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시가총액과 주주 지분분포 등을 감안하면 현행 상속세법 구조 하에서 경영권 승계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같은 사정은 4대 재벌의
공통 사항이기도 하다.
최고 상속ㆍ증여세율 50%는 그리 가혹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어차피 자식세대가 물려받은 재산은 ‘이전’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분 상속’의 경우는 다르다. 경영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지분’을 보유해야 하는 데, 상속받은 주식을 처분해 세금을 내고 나면
경영권을 행사할 만큼 지분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모가 물려 준 재산의 ‘크기’가 아닌 ‘권리’가 반(半)으로 감가(減價)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권리 승계는 경영에 대한 ‘기회’를 의미하기 때문에, 권리의 감가는 기회의 박탈로 이어진다. 이는 부모세대만 ‘소유경영’을
하고 자식세대는 경영에서 손을 떼거나 ‘전문경영’을 하라는 것이다. 전문경영 체제로의 사실상의 ‘강제’는 사적자치(私的自治)와 사유재산권 행사를
제약하는 것이다. 이는 좌(左)편향으로 진정한 의미의 시장경제라 할 수 없다.
경영권 승계의 투명성 제고 vs 투명성 함정
편법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또 다른 단골메뉴는 ‘비상장 계열사’를 이용한 부의 축적이다. 오너 일가가 대주주로 참여하는 비상장회사를 설립한
뒤 계열사들이 신설회사를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력 계열사의 지분을 인수할 수 있는 ‘실탄’을 편법으로 마련한다는 것이다. 현대차 그룹의 경우
‘글로비스’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글로비스 같이 안정적 수익이 보장되는 계열사를 공개(IPO)모집하지 않고 사모(私募)해 상장하지 않음으로써
유망한 사업기회를 지배주주가 편취했다는 것이다.
글로비스를 분사(分社)하지 않고 사업부제로 운영했다면, 탁송으로부터 발생하는 이익은 소액주주를 포함해 현대차와 기아차 주주전체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사업부를 분사해 독립 기업화하는 것은 ‘경영상의 판단’이며, 신설법인을 상장회사로 할 것인가 비상장회사로 할 것인가 역시
경영진이 선택할 문제이다. 따라서 적법한 경영상의 판단을 ‘사업기회의 편취’로 몰고 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 글로비스에 대한 ‘물량 몰아주기’도
신중하게 해석해야 한다. 계열사를 통해 거래함으로써 거래비용과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주주를 위하는 길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경우는, 완성차의 해외탁송료를 터무니없이 비싸게 책정해 현대(기아)차 주주의 이익을 글로비스 주주에게 이전시키는 것이다. 이는 비상장법인에
대한 ‘부당내부지원’으로 ‘내부거래’와는 무관한 것이다. 재벌의 경영권 승계의 투명성은 높아져야 하나, 투명성 함정에 빠지지는 말아야 한다.
투명성 함정에 빠지면 정상적인 기업 성장마저 제약되게 된다.
에필로그
어찌 보면 편법상속 시도는 높은 상속세율 등으로 정상적인 경영승계의 길이 사실상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풀리지 않는 방정식을 풀 방법은
없다. 이는 ‘금지된 허용’으로 일종의 정책 유희(遊戱)이다. 도덕과 윤리도 경제적 유인과 별개일 수는 없다. 지분 상속의 경우 상속재산의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세율을 낮춰 편법상속의 유인을 줄여야, 정상적인 경영권 승계가 이루어질 수 있다. 상속세율 인하가 어려우면
‘차등의결권’제도를 검토해야 한다. 스웨덴의 발렌베리 그룹(가문)은 차등주식을 통해 4.46%의 지분으로 20%의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
아니면 지분을 파킹(영구 예치)시킬 수 있는 주식신탁재단을 만들어, 이 재단을 우호적 기관투자가로 삼는 것도 정상적 경영권 승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이상(理想)사회에 살고 있지 않다. 따라서 편법을 척결할 수는 없다. 대신 편법의 유인을 줄여 편법의 여지를 최소화해야 한다.
마녀사냥이 잦은 사회가 청렴한 사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사회심리는 ‘큰 것’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개별 기업의 가족경영이
무한히 지속될 수는 없기 때문에, 성과를 유지할 수 있다면 가족기업을 굳이 백안시 할 필요는 없다. 백안시하면 기업 생태계의 다양성을 제한하는
자승자박(自繩自縛)인 것이다. 한편 경제적 비중이 큰 재벌의 사회적 책임은 막중하다. 때에 따라서는 엄격한 도덕적 잣대가 적용된다. 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사회의 기업에 대한 배려’와 짝을 이뤄야 한다. 현실에 비춰볼 때, 전자와 후자 간에 균형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 조만간 그리 될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적개심을 조장하려는 정치권의 행태를 보면 알 일이다.
- 조동근 (명지대 교수, 시장경제제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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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사실 기사도 아니고 특정 기업의 사례에 대한 내용도 아니지만
'기업 승계'라는 주제를 가진 세미나를 준비함에 있어서 전문가의 의견을
읽어보고 참조하는 것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 생각하여 글을 올립니다.
시가총액:전상장주식을 시가로 평가한 총액.주식시장이 어느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있는가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따라서 다른 금융자산과의 비교, 주식시장의 국제비교에도 유용하다. 시가총액의 증감과 다른 주가지수를
비교함으로써 주가변동의 내용을 알 수 있다.
사모 [私募]
1. 새로 주식이나 사채를 발행할 때에 널리
일반으로부터 모집하지 않고, 발행 회사와 특정한 관계가 있는 곳에서 모집하는 일. ≒비공모발행·사모발행·연고 모집.
2 =장외 거래.
사업부제:기업의 조직을 제품별·지역별·시장별 등으로 구분하여
개별적인 경영단위로서의 사업부를 만들고 각 사업부에 대폭적인 자유재량을 주는 분권관리의 한 조직형태.
Initial Public Offering(기업공개):일정
규모의 기업이 상장절차 등을 밟기 위해 행하는 외부 투자자들에 대한 첫 주식공매를 말한다.법률적인 의미로 기업공개란 상장을 목적으로 50인
이상의 여러사람들을 대상으로 주식을 파는 행위를 말한다. 대주주 개인이나 가족들이 가지고 있던 주식을 일반인들에게 널리 팔아 분산을 시키고
기업경영을 공개하는 것이다.
계속기업:기업은 계속적으로 존재한다는 가정 아래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 투자원금의 회수로 청산하는 1회적 사업과는 달리 기업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계속적인 재투자 과정 속에서 구매·생산·영업
등 기본활동을 수행해 나가는 기업을 말한다.
지분:기업의 재산에 대한 자본주 및 채권자의 권리 또는 청구권,
즉 부채는 채권자지분을, 자본은 주주지분을 뜻한다. 채권자지분은 과거의 활동으로부터 생긴 기업실체에 대한 청구권으로 이의 충족을 위하여는 보통
회사자산의 지출을 요한다. 주주지분은 주식의 종류별로 계약상 다른 유사권의 순위가 부여되나, 어느 경우든 회사자산에 대한 잔여청구권을
말한다.
비상장계열사: <경제> 증권 시장에 상장되어 있지
아니한 유가증권을 발행하는 회사
사업부제: 기업의 조직을 제품별·지역별·시장별 등으로 구분하여 개별적인 경영단위로서의 사업부를 만들고 각
사업부에 대폭적인 자유재량을 주는 분권관리의 한 조직형태.
지배주주 : 주주총회에서 의결권행사를 통하여 회사의
주요의사결정사항, 즉 경영 권을 지배할 수 있는 대주주를 말한다. 주식이 많이 분산될수록 회사의 경영권을 지배하는 데 필요한 주식의 수는
상대적으로 적어지게 된다.
주주: 주식회사 사원인 지위(주주권)로서의 주식의 귀속자.
실질적으로는 기업의 소유자로서 회사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인 주주총회를 구성하는 구성원이다.
사적자치의 원칙. 私的自治─原則. principle of
private autonomy. 사법상(私法上)의 법률관계는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자기책임하에서 규율하고, 국가는 이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근대 사법의 원칙. 계약자유의 원칙. 법률행위자유의 원칙.
탁송. 남에게 부탁하여 물건을 보냄.
소액주주. 少額株主. minority shareholders.
한 회사의 주식을 소량 가진 주주. 어떤 법인의 발행 주식 총액 또는 상장 기업의 경우에는 발행 주식 총액 또는 출자 총액의
0.01%~0.3%, 비상장 기업의 경우에는 5%에 해당하는 금액과, 액면가를 기준으로 하여 1억 원 미만의 금액 가운데 적은 금액에 해당하는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주주.
편취. 남을 속여 재물이나 이익 따위를 빼앗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