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어디서 누가 문제인가 ?
역사는 인류의 스승이다. 역사성이 없는 민족은 발전할 수 없다.
덴마크 구국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는 구룬트 비히(1783-1872)는 1864년 프로이센(독일)과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많은 전쟁 배상금을 물게 되었고 비옥한 공창지대를 빼앗기는 국가적 아픔을 겪기도 했다.
남은 땅이라고는 북해와 발트 해의 거친 해풍에 시달리는 돌, 모래, 잡초가 거의 차지하고 있는 스칸디나비아의 황무지뿐이었다. 잿더미로 변한 도심의 처참한 모습, 국민들은 희망을 잃고 실의와 좌절과 절망에 빠져 암울(暗鬱)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때 종교지도자이고 역사학자이며 시인인 구룬드비히가 등장했으며 동역자(同役者)이며 정신적 후계자인 프랑스계 공병 장교출신 달가스( 1828-1894)가 동참하여 오늘날 세계적 낙농부국의 기틀을 닦았다.
지금 우리나라의 사회 현실을 보며 생각해 본다.
육당 최남선(六堂 崔南善)선생님은 일찍이 “우리민족의 성격상 장점으로 인내성(忍耐性)이 강하다. 의지(意志)가 굳다. 강인성(强靭性)이 높다. 변화에 잘 적응한다(應和能). 창조성이 강하다. 숭문(崇文)사상이 강하다고 했고 단점으로는 단결성이 약하다. 의타성이 강하다. 사대성이 강하다. 배타성(排他性)이 강하다. 이기심이 강하다고 했다.“
더 이야기하면 적당요령주의(適當要領主義). 절차주의(節次主義). 현시주의(現示主義). 찰라주의(刹儸主義). 향락주의(享樂主義). 소비주의(消費主義). 기회주의(機會主義). 보신주의(補身主義) 등 부정적인 요소가 적지 않다. 여기에다 산업화 과정에서 뿌리내린 몇 가지의 우상 즉 물질신(物質神)의 우상. 명예권세력역신(名譽權勢力神)의 우상. 기계문화신(機械文化神,컴퓨텀,매스컴등).의 우상. 사상신(思想神,이데오르기)의 우상 등이 복합 공생하므로 써 우리의 의식구조를 더욱 병적으로 전락(轉落)시켜 왔다고 하겠다.
이와는 별도로 우리민족의 특성을 연구, 고찰한 학설도 적지 않게 많다. 한국인들은 전체적으로 볼 때 매우 부지런한 성격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성실성에서는 부족한 점이 적지 않다. 성취에 대한 욕망은 큰 반면 윤리의식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요즘사회를 보면 "하면 된다"는 신념은 강하나. 어떻게 하면 될까하는 철학은 약하다. 난관을 향해 돌진하는 배짱은 넘쳤지만 물러서는 사려(思慮)는 모자랐다. 솔직한지는 몰라도 정직한쪽은 아니었다. 직관을 중시 한 반면 객관은 소홀이 했다. 냉철함보다는 열정, 공정보다는 인정에 치우치는 경우가 많다. 결론적으로 인간적일지는 몰라도 존경받고 신뢰받을 대상은 못된다.
교회들도 그동안 사회의 영향에서 배우고 들어온 잘못된 풍조들이 많다.
현실을 보면 교회들은 여러 가지 영적, 정신적. 사회적 위기(危機)상황에 봉착해 있다. 정통성동요(正統性動搖) 위기, 정체성퇴색(正體性退色) 위기, 교단정치불안(敎團政治不安) 위기, 재정고갈(財政不安) 위기, 가치관변질(價値觀變質) 위기, 상호신뢰(相互信賴)위기, 심지어 많은 목사님들이 현실과 노 후대책까지 걱정하며 있지 않는가? 이러한 상황을 가리켜 총체적(總體的) 위기(crisis)라 하겠다.
지금 타 종교를, 누구를 운운.... 하기보다, 더 늦기 전에 사회와 교회의 임무의 역할을 보여 주어야 하며, 성화(聖化)되는 모습의 빛을 발해야 교회도 인정받고 일어날 수 있음의 현실을 직시하자.
성도는 성도답게, 목사는 목사답게, 교회는 교회답게, 교단은 교단 다워지록 더욱 노력하여야겠다.
교회는 할수 이다. 우리가 주님영광을 위해 하고자하는 의지만 보니면, " 주께서 하신다."
(2014.9.15.총회신문. 목회칼람.기고문.성산순복음교회. 류길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