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 독후감 — 『이반 일리치의 죽음』
<강화백북스> 회원여러분!
우리들 ‘3월의 책’인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The Death of Ivan Ilyich)을 잘 읽어보고 계시는지요? 저는 처음 도서관에서 대출해 읽었다가, 어제는 가망불망 서점에 잠시 들러 한 권 구입했습니다. 아무래도 책을 사 놓으면 언젠가, 틈틈이, 다시 찾아 읽어보기가 쉬울 테지요. 내주 3월24일
저녁에 ‘이반 일리치(Ivan Ilyich)’를 읽어보신 여러분들이 어떻게 책 이야기를 하실까 벌써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19세기 근대 러시아에서의 한 사람의 죽음과, 21세기 현대에서 만나는 내 주변 가까운 죽음의 모습이 거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에 새삼 가슴이 저렸습니다.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있는 것 같기도 하고, (책에도 나와 있지만) ‘살아 간다’는 말에는 곧, ‘죽어 간다’라는 양면성이 공존했다는 걸 ‘나의 죽음’에 직면해서야 깨닫게 되는 이반의 자의식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책의 해설에서 번역자인 이강은 교수께서 ‘도스토옙스키가 인간(人間)에 대해 사고했다면, 톨스토이는 삶(生)에 대해 생각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억척스런 ‘생의 탐구자’인 톨스토이가 ‘죽음’의 의미에 대하여 이처럼 상세히 기록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의 진지한 ‘생의 탐구’의 한 부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습니다.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 ~ 1867)가 『악(惡)의 꽃』을 쓴 것은 ‘악(惡)’을 노래함으로써 오히려 드러나는 ‘선(善)’에 대한 갈망이 더욱 절실하였듯이 말이죠.
‘삶(生)과 죽음(死)’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추상적인 주제가 될 듯도 싶고, 저도 이 문제에 대해서 몇 가지 개인적인 의견을 가지고는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런 저런 생각 중에 문득 가진 의문에서 시작되어 찾아보게 된 어떤 지식(知識)을 미리 알려드리려고 이 글을 씁니다. 본격적인 토론 전에 예고편으로 쓰는 한 독후감이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저는 이 발견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그것은 소설 속 주인공 ‘이반(Ivan)’의 이름에 관한 것입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바보 이반』(톨스토이, 사진),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솔제니친)... 생각해보자니 이처럼 러시아 소설에서는 ‘이반(Ivan)’이 들어간 이름이 많더군요. 그래서 그냥 지나가는 호기심에 컴퓨터에게 살짝 한 번 물어보았다가는 깜짝 두 번이나 놀랐습니다. 러시아 인명 ‘이반(Ivan)’은 영어식 인명으로 ‘존(John)’이라는 것이지요. 저는 드넓은 유럽대륙의 여러 국가들이 모두 ‘보이지 않는 거대한 헤브라이즘(Hebraism)의 영향 아래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정말로 다시 한 번 또 놀랐습니다.
자~, 이거 한 번 같이 보시자구요. 다음은 러시아어 인명 ‘이반(Ivan)’에 해당하는 유럽 여러 나라의 각기 다른 발음과 인명들입니다. <하나의 기의(記意, 시니피에)를 표현하는 다양한 기표(記表, 시니피앙)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예수님께서 어부 베드로(Peter)와 동생 안드레아(Andrew),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James)와 그의 동생 요한(John)을 첫 번째 제자로 부르신 이 분,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분이며, 「요한복음」(Gospel of John)과 「요한계시록」 등을 기록하여 남기신 거룩하신 이 분 — 성 요한(St. Johann)!
영어 → 존(John)
러시아어 → 이반(Ivan)
그리스어 → 이오안네스(Ioannes)
네덜란드어 → 얀(Jan)
노르웨이, 덴마크어 → 한스(Hans)
독일어 → 요한(Johann), 요하네스(Johannes)
라틴어 → 요한네스(Johannes), 요안네스(Joannes)
스웨덴어 → 요한(Johan)
스페인어 → 후안(Juan)
체코어 → 얀(Jan)
포르투갈어 → 주앙(Joan)
폴란드어 → 얀(Jan)
프랑스어 → 장(Jean)
헝가리어 → 야노슈(Janos), 얀(Jan)
< 터키 에페소(Efesus)에 있는 사도 요한(St. John)의 무덤, THE TOMB OF ST. JOHN >
존, 얀, 후안, 주앙, 장, 이반, 요한 등으로 쓰여지고 발음되는 이 기표들의 원래 의미(記意)는 ‘주님께서는 은혜로우시다’(God is gracious!)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제 여러분들께서도 혹시 이런 이름들이 떠오르지 않으십니까? 『장 크리스토프(Jean-Christophe)』(로맹 롤랑), 『돈 주안(Don Juan)』(바이런),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의 「장 발장(Jean Valjean)」(빅토르 위고) 등 서양의 문학작품과 그 주인공들,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작곡가 요하네스 브라암스(Johannes Brahms),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경제수도 요하네스버그(Johannesburg) 등의 인명, 지명들이 모두 이 성자(聖者) 요한의 자비와 은혜로움에서 나온 이름들이랍니다. 예전에 재미있게 본 영화 ‘연인(戀人)’을 감독한 장 자크 아노(Jean-Jacques Annaud) 감독의 이름도 새삼 새롭게 느껴지는군요. 어찌 이들 뿐이겠습니까? 존 덴버(John Denver), 존 레논(John Lennon), 존 바에즈(Joan Baez) 등 제가 좋아하는 가수들의 이름과, 존슨즈 베이비 오일(Johnson’s baby oil : 존슨은 ‘존의 아들’이라는 뜻이랍니다.) 등의 상품명에도 요한의 역사가 깃들어있는 것이겠지요. 지금부터 눈을 비비고 찾아보자면 더욱 많은 ‘존’과 ‘이반’과 ‘요한’을 만날 수 있겠지만, 존에서 파생되는 더욱 많은 패러다임(paradigm)을 구성할 수도 있겠지만, — 어원과 구조를 이미 알았으니 이쯤에서 접고 그만 ‘이반의 죽음’으로 되돌아가는 게 좋겠습니다.
저는 첫 독서에서 이반의 죽음을 개별적(個別的)이고, 사회적(社會的)인 관계의 죽음으로 읽었습니다. 우주의 단독자(憺者)인 한 인간이 마지막으로 마주한 모든 관계의 단절, 이반은 ‘죽음이 죽는 것’까지도 마지막으로 확인하고는 숨을 거둡니다. (이하 원문)
그는 오랫동안 곁에서 떠나지 않던 죽음의 공포를 찾으려 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 죽음은 어디에 있지? 죽음이 뭐야? 죽음이란 것은 없었기 때문에 이제 그 어떤 공포도 있을 수 없었다.
죽음 대신 빛이 있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갑자기 그는 소리쳤다.
“아, 이렇게 기쁠 수가!”
이 모든 것은 한순간의 일이었고 이 한순간의 의미는 이제 흔들리지 않았다.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그가 그러고도 두시간이나 더 괴로워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의 가슴에서 뭔가 부글부글거렸다. 쇠약할 대로 쇠약해진 그의 몸에 경련이 찾아왔다. 부글거리는 소리와 숨이 차서 쉭쉭거리는 소리는 점차 잦아들었다.
“임종하셨습니다!”
누군가 그를 굽어보며 말했다.
그는 이 말을 듣고 마음 속에 되뇌었다.
‘끝난 건 죽음이야. 이제 더 이상 죽음은 존재하지 않아.’
그는 길게 숨을 들이마시다가 그대로 멈추고 온몸을 쭉 뻗고 숨을 거두었다.
그런데, 이제 다시 다르게 생각해보자니, 이반의 아버지와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까지 먼~ 먼 시간을 한 이천년쯤 거슬러 올라가보면 ‘주님께서는 은혜로우시다’(God is gracious!)라는 ‘이반(Ivan)’의 시니피에가 거기 있다고 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그가 마지막으로 본 ‘빛’과 ‘기쁨’은 그의 이름 ‘이반’의 상징으로 전승(傳承)되어 온 거대한 문화전통 속에 이미 내재되어 그와 함께 늘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부활을 믿는 헤브라이즘(Hebraism) 문화의 넓고 오랜 전통 속에 놓여있다고 저는 말하겠습니다. ‘삶(生)의 탐구자’ 톨스토이는 ‘죽음’에 깊이 천착(穿鑿)하여 인간의 ‘삶’에 대한 마지막 도덕적 교훈을 ‘빛과 기쁨’으로 표현함으로써, 어떤 경우에라도 ‘우리들의 삶이 무의미하고 헛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설사 삶의 실상이 ‘무의미하고 헛된 것’일지라도, 톨스토이처럼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구성해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후세 사람들에게 싫은 말씀을 남길 수 있겠습니까? 저라도 톨스토이처럼 말하고 죽겠습니다. “인생은 살만한 것이여~, 늘그막에 <백북스>도 하고, 아~ 이 빛과 기쁨!”)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종이컵은 위에서 보면 원이고, 옆에서 보면 사다리꼴로 보입니다. 우리들의 삶은 ‘복합다면체(複合多面體)’의 어떤 입체 구성물일 것도 같습니다. 저는 제가 보는 한 시점으로 ‘이반의 죽음’에 관한 짧은 이야기를 구성해 보았습니다. 이제 다음 주에 톨스토이에 관한 여러분들의 다양한 관점이 모이면 우리들의 3월 주제가 더욱 의미 있고 풍성해지겠지요. 특.별.히 3월의 책을 선정하고 발제를 해 주실 함민복 대표께서, ‘시인(詩人)의 감수성’으로 무슨 말씀을 하실지 기대해 봅니다. 다시 특별한 백북스 공지가 없더라도 오프라인에서 반갑게 뵙기를 바랍니다. (2016, 3. 18)
※ 어디선가 복사해서 편집한 <러시아(Russia)의 인명과 지명>을 참고삼아 붙입니다.
<러시아(Russia)의 인명과 지명>
우선 러시아란 ‘강과 호수를 오가며 노 젓고 사는 루시(Rusi) 민족명’에서 온 국명이다. 지금도 항도 부산에 가면 러시아인 거리도 있고 전문 상점도 있어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지만, 부산은 1890년대의 영도(절영도)에 러시아 극동함대의 저탄장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북한과는 국경을 맞대고 무역을 활발히 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1, 러시아 인들의 이름은 <개인이름 + 부칭명(父稱名) + 가문명(가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칭은 아버지의 이름을 말하는 것이다. ‘고르비’로 불렸고 러시아 대통령이었던 고르바초프의 풀네임은 ‘미하일 세르게예비치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였다. 즉 고르바초프는 그의 개인명이 아니라 가문명이고 자신의 이름은 ‘미하일’인 것이다. 미하일은 영어의 ‘마이크, 마이클’로 불리는 이름으로 기독교 성경에 나오는 미카엘 대천사 이름에서 차용한 이름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풀네임도 ‘표드로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였다. 표드로는 예수의 제자였던 ‘베드로’의 러시아 말이다. 톨스토이도 ‘레프 니콜라이비치 톨스토이’였고, 푸시킨은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이었다.
누구의 아들일 경우는 접미사로 ‘~비치(ovic, evic, vith)’를, 딸일 경우는 ‘~예브나(ovna, evna)’ 등을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처럼 러시아 인명은 ‘누구의 아들, 누구의 딸’로 표현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부칭이 ‘알렉세이비치’인 남자나 ‘알렉세예브나’인 여자는 그들의 부친 이름이 ‘알렉세이’였음을 자동으로 알게 한다. 그런데 기독교 국가들이 거의 그렇지만 여자인 어머니(부인)성과 이름이 자식에게 이전되지 않는다. ‘알렉산더 블라드미르비치 이바노프’의 딸 안나의 정식 풀네임은 ‘안나 알렉산더비치 이바노프’가 되어 안나의 할아버지 이름인 블라드미르는 풀네임에서 자동으로 탈락한다.
2, 러시아도 일반인들이 성과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고급관료들이 성과 이름을 갖게 된 것이 18세기 후반인 예타카리나 2세 여왕 때(1762~1796)였고, 그 후 하급관리들의 사용은 19세기 중반(알렉산드르 2세)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다. 러시아는 1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니콜라이 2세가 죽는(1917년) 때까지도 농노사회였었다. 모든 것은 황제와 귀족들 소유였기 때문에 러시아 평민들이 성을 가질 수 있었던 역사는 대체로 사회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세기 중반을 기점으로 논해야 한다.
3, 끝에 ‘~인’ ‘스키’ 등을 붙이는 성이 있는데 사물 명칭에서 따온 ‘~인(~in)’에는 스탈린(강철)이 있고, 레닌(레나강 유역), 옐친(가문비나무), 푸틴(길), 푸시킨(대포) 등이 있다. 출신을 뜻하는 ‘스키(skiy, ski)’에는 차이코프스키(차이코 출신), 트로츠키(제3도시 출신)가 있다. 또 끝에 ‘~ov(프)’와 ‘ev(브)’를 붙여서 누구의 아들임을 표시하기도 하는데, 영국의 존슨(존의 아들)에 해당하는 이바노프는 ‘이반의 아들’, 페트로프는 ‘표드로의 아들’, 니콜라예프는 ‘니콜라이의 아들’, 파블로프는 ‘파우로(바울)의 아들’, 마렌코프는 ‘작은아들’로 표현한다. 로마노프란 ‘로만의 아들’이란 뜻이고. 고르바초프는 ‘곱추’를, 코시킨은 ‘사팔뜨기’를, 후르시쵸프는 ‘투구벌레풍뎅이’란 뜻을 지닌 가문명이다
4, 러시아 부칭은 남자이름에서 나오는 만큼 그 수가 제한되어 있어 복잡하지 않다.러시아계 이름에는 ‘이반, 세르게이, 안드레이, 알렉세이, 알렉산드르, 미하일, 표도르’란 명칭이 대부분이다. 러시아로 귀화하면 대체로 이런 이름들을 부여받는다.(러시아로 귀화한 한국 스케이트 선수의 이름, <안현수→빅토르 안>을 참조하면 도움이 된다.) 특히 ‘알렉세이, 알렉산드르’란 이름들이 많은 것은 마케도니아 왕으로 제국을 건설했던 ‘알렉산드르 대왕’에서 빌려온 이름들로 대황제의 후손임을 자칭하고자 하는 바람도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싱어(가수)로 활동하는 ‘알렉스’란 가수의 이름도 러시아 알렉산드르에서 따온 애칭으로 보면 된다.
러시아에 사는 고려인들 가운데 ‘~가이’(유가이, 리가이, 김가이, 최가이)란 호칭이 많은 것은 우리말의 ‘김가, 박가, 이가, 최가’ 등의 러시아식 가문 표기를 말하는 가명이다. 러시아 말 ‘가이’는 우리말 가(家)와 같다. 러시아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학생(옛날 한국의 철수나 영희처럼)들이 많아서 반드시 성을 함께 불러 출석을 체크한다.
|
|

첫댓글 잘읽었습니다^^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제 '어머니인 女人'이 되셨군요. 세상 모든 이들의 첫사랑인 "아~,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