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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어화”(解語花)
한국영화, 개봉:2016.04.13
감독:박흥식, 각본:하영준, 관객:485,663명(2016.07.04.현재)
제작:박선진, 주연:한효주,천우희,유연석
“말을 이해하는 꽃이라 하여 기생을 아름다운 꽃에 비유한 것”
1930년대, 온습회(溫習會)를 운영하는 “대성권번(券番)”은 “한성준의 연극단”, “창극의 상연” 등과 함께 일제시대 판소리와 창극(唱劇)을 주도해 왔다 춘향전과 흥부가에 빛나는 “김창환”, 가왕 송흥록의 종손으로 조선성악연구회를 창설한 “송만갑”, 적벽가의 “김창룡”, 춘향가의 “정정열”, 광복을 눈으로 목도한 “이동백” 등 조선근대 5대명창들은 일제 식민지 통치하에서 조선의 노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지도자들이었다 판소리는 그 후 “창극”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판소리로 이어졌고, 창극은 일본식 전통가요의 출현과 레코드 출판으로 또다시 쇠퇴의 길로 이어져 갔다
“예로부터 기생이란 말을 알아듣는 꽃, 해어화라 했다”
1934년, 조선의 유일한 기생학교 “대성권번”에 심금을 울리는 천혜의 목소리를 가진 “서연희”(천우희역)가 부친의 부채청산 일환으로 매매되어 들어왔다. 그곳에는 탁월한 미모와 창법으로 최고의 예인으로 불리는 동갑내기 “정소율”(한효주역)이 있었다 연희와 소율은 “산월”(장영남역)선생의 총애속에 그들의 미래 또한 창창한 햇살처럼 느껴졌다
“난 이시대의 아리랑을 만들거다. 조선의 마음이 부르고 불러서 비로소 완성되는 노래”
“오라버니, 꼭 부르고 싶어, 오라버니가 만든 노래...조선의 마음이 되고 싶어요”
당대 최고의 작곡가인 “김윤우”(유연석역)는 조선민중의 마음을 달래는 “조선의 마음”이라는 노래를 작곡하고 싶어하는 조선갑부의 아들이다 그는 대성권번의 소율과 사랑에 빠져 있고 미래를 약속한 연인이었다 소율은 대성권번에 소속되어 있는 산월의 후계자이지만 언제나처럼 윤우의 노래를 부르고 싶은 가수를 꿈꾸고 있다 조선의 마음을 작곡하고 그 노래를 불러줄 가수를 찾는 윤우와 그러한 조선의 마음을 부르고 싶은 소율의 마음이 통한 것일까? 두 사람의 사랑은 깊어만 간다
그러나 사랑의 잿빛 그림자는 어디선가 나타나는 신기루 같은 것이다 어느날 윤우는 당시 최고의 가수인 “이난영”(차지연역)을 소율에게 소개하기 위해 친구의 차를 빌린다 거대한 궁궐과 같은 저택에 사는 이난영과 소율의 만남은 이렇게 아름다운 동화처럼 그려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이난영을 만난 소율은 자신의 절친인 연희를 부르고 소율은 대성권번의 손님접대 약속으로 길을 나선다 소율은 “경무국장”(박성웅역)의 접대를 위해 일본관사를 찾는다 창가를 부르고 유희를 즐기는 동안 경무국장은 소율에게 반하고 그와 동침할 것을 요구하지만 정조를 지키려는 소율은 단호히 거부 한다 오직 한 사람, 윤우의 여자가 되고 싶었던 소율은 대성권번을 찾아 산월에게 대항하며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밝힌다
인생의 여정은 때로 바람같은 것이다 소율이 윤우를 위해 목숨을 담보로 하는 정조를 지키는 동안, 이난영의 집에서는 연희의 노래에 감탄의 시간이 이어지고 있었다 독특한 창법의 연희는 이난영과 윤우의 심성을 울리며 사랑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소율과 연희의 곁으로 다가오는 윤우의 사랑은 이렇게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새삼 노래하는 행복을 되찾아 준 그 아가씨가 지금 이 자리에 있답니다 다시한번 들려 줄거죠?”
이난영의 공연장, 음반제작자 홍석과 당대 최고의 작곡가 윤우, 그리고 소율과 연희가 나란히 앉아 이난영의 빛나는 공연을 바라보고 있다 노래를 끝낸 이난영은 자신이 새롭게 발견한 한 여인을 무대로 부른다 소율 자신도, 윤우도 소율이라고 생각한 공연장에서 이난영이 발견한 새로운 여자는 그녀의 소망대로 소율이었을까? 모든 인연은 때로 빗나가며 누군가의 심장을 겨눈다 이난영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소율이 아닌 연희였다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에서 소율은 연희를 축복해 줄 수 밖에 없었다 당황한 눈빛은 윤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 뿐 이었다
가수가 꿈이었던 소율과 연희, 소율의 소개로 가수의 꿈을 시작한 연희와 연희의 천부적 재능을 발견한 윤우와 음반제작자 “홍석”(장인섭역), 이 엇갈려 가는 그림자는 누군가를 절망에 빠뜨리며 이들의 미래를 어둡게 이어가도록 몰아 부치고 있다
“지금 내 노래엔 너의 목소리가 필요해”
가수로 새롭게 발돋움한 연희는 빠른 속도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 음반제작을 위한 스튜디오에서는 연희에 집중되어 있고, 이들을 위해 도시락을 싸온 소율에게 어느 누구하나 눈길을 주지 않는다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소율의 눈빛에 작은 눈물이 고여 있지만 뺨으로 흘러 내리지는 않는다
“그래 너를 위해서 마음껏 노래를 작곡해 줄게”
윤우의 마음은 무엇일까? 연희에게만 집중되어가는 윤우를 바라보는 소율의 마음은 착찹하기만 하다 그녀의 질투는 윤우에게 나도 가수가 되고 싶다고 부르짖는다 소율은 소낙비가 내리는 길에 서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녀의 자존심은 바닥에 떨어졌고 사랑의 눈물은 비애속에 잠기며 원망으로 이어지고 있다 소율을 위해서는 세상 모든 노래를 작곡해 줄 수 있다는 윤우의 다짐은 참으로 공허하게 메아리 치고 있다
“조선의 마음”
연희는 새롭게 나온 음반과 초대장을 들고 소율을 기다리고 있다 소율의 인력거가 나타나고 인력거에서 내린 소율은 연희의 새로운 음반에 진심으로 축하를 보낸다 그러나 스케쥴에 바쁜 연희는 소율과 짧은 대화조차 나눌 여유도 없이 자리를 떠난다 연희의 인력거가 떠나는 길목에는 쓸쓸하게 남은 소율의 외로운 눈빛만이 남아 있다
이난영 이후 새롭게 등장한 연희의 공연장, 그녀의 노래는 관객들을 매료시키며 매혹적인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소율은 멀리서 그녀의 노래를 바라보며 낯선 모습으로 우두커니 서 있다 연희가 노래를 끝내고 사랑하는 자신의 절친인 소율을 무대로 불러 함께 노래를 열창하지만 윤우의 눈빛은 이제 소율이 아닌 연희에게로 옮겨가고 있었다
“당신은 내게 초대장을 주지 않았네”
다른 곡을 준비하기 위해 무대에서 나가던 연희가 무심코 밧줄을 밟고 발을 다친다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도 모든 일정을 마무리한 연희의 프로다운 면모는 그녀의 훌륭한 자질을 느끼게 한다 윤우가 자신이 준비한 꽃다발을 연희에게 선사하는 모습을 바라본 소율이 윤우에게 건넨 말 속엔 뼈가 있다
공연이 끝나고 돌아가던 소율은 거리에서 꽃가게를 발견하고 연희에게 주기 위해 발길을 돌린다 그러나 운명은 이렇게 빗겨 가는 것일까? 윤우의 음반제작 사무실에서는 윤우가 건반을 두드리고, 모든 일정을 끝낸 연희는 옷을 갈아입고 퇴근을 앞두고 있다 계단을 내려오는 연희의 걸음걸이가 이상한 것을 우연히 발견한 윤우는 그녀를 안아 세우고 발에 얼음찜질을 하고 있다 사랑때문일까? 모든 것에 짜증을 내는 윤우는 연희의 입술을 훔치며 길게 이어지는 키스에 젖어 있다 아무것도 모른채 꽃다발을 들고 나타난 소율이 바라본 것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배신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희생한 소율, 그녀는 지금 사랑을 복수로 되갚을 준비를 하고 있다 경무국장을 찾아간 소율은 가수가 되게 해달라고 요청하며 그 댓가로 자신의 몸을 바친다 권력을 손에 쥔 소율의 마음에는 이제 복수의 칼날만 있을 뿐이다
홍석의 음반 제작사무실이 폐쇄되고 연희의 음반은 모두 강제 소각된다 소율은 일본제국주의가 운영하는 경무국 산하의 음반 사무실에서 가수의 꿈을 키워 가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오직 가수가 꿈이었던 소율의 노래에는 무엇이 부족하였을까? 참으로 답답하기만 하다
노래를 더 이상 작곡할 수 없었던 윤우는 지금 술에 저려 있다 제국주의 술집에서 윤우는 술에 취해 아리랑을 두드리고 있다 이 일로 같은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일본 군관들과 시비가 일어나고 장교 한명에게 위해를 가하는 일이 발생하여 감옥에 수감되고 만다
증오를 부르는 사랑은 집착이 되는 것일까? 감옥에 수감된 윤우는 더 이상 작곡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연희는 이제 그 어느 곳에서도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떠난 공연장을 독차지 할 수도 없었던 소율의 노래에는 언제나 증오의 불씨만이 가득차 있었다
“왜 내가 아니라 연희예요?”
“한번 변한 마음, 두 번이라도 못 변할까”
오직 자신만을 사랑한다던 한 남자의 말은 거짓이었다 기생이라는 미천한 신분속에서도 한 남자만을 바라 보았던 소율에게서 배신을 낚아챈 윤우로 인하여 창녀의 굴레속으로 빠져들어간 소율은 지금 윤우와 소율을 원망하고 있다 소율이 윤우의 면회를 가서 확인한 것은 이미 연희에게로 가버린 윤우의 마음이었다 그러나 소율은 그러한 윤우의 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 그가 작곡한 노래로 인하여 그의 마음을 돌려 놓고 싶었다 비록 몸은 경무국장에게 바쳐 버린 창녀의 몸이 되었지만 마음 만큼은 윤우로부터 떠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나, 노래가 너무 하고 싶어”
윤우의 소식을 궁금해 하던 연희가 소율을 찾았을 때 연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였다 그저 윤우의 소식이 궁금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싶었던 것 뿐이었다 그러나 소율의 복수는 연희의 심장을 향하고 있었다 일본제국주의의 기생집에 연희를 넘겨버린 소율은 그곳에서 연희가 겪게될 살인을 예고하지는 못했다 그저 그렇게 너도 한번 당해보라는 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희는 자신을 겁탈하려는 일본장교를 죽이고 대성권번으로 도주하는 비극을 초래하였다 일본군이 들이 닥치고 대성권번은 초토화가 될 위기속에서 소율의 지략과 지혜로 연희와 대성권번은 몰락의 위기를 벗어난다
“너는 창녀야”
“난 왜 아무것도 남아있질 않지? 너도, 오라버니도”
“니가 없어졌으면 좋겠어 연희야”
그러나 모든 진실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밝혀지고 소율로부터 생명을 보호받던 연희는 권번밖으로 뛰쳐 나온다 그리고 때마침 찾아온 일본군에 의해 총살을 당하고 만다
“사랑, 거짓말이”
감옥에서 나와 소율을 찾은 윤우는 연희의 행방만 궁금해 할 뿐이었다 그녀의 죽음뒤에 가려진 진실은 모른채 윤우조차 그녀를 창녀 취급하며 외면하고 있었다 그러나 진실된 사랑은 누군가의 잘못된 마음을 움직이는 것일까? 술에 취한 윤우의 마음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이미 모든 것을 돌이킬 수 없게 되었을 때 였다 때늦은 후회는 항상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 버린 후가 된다 그토록 노래를 부르고 싶어 했던 소율에게 윤우는 죄책과 함께 한곡의 노래를 보낸다 “사랑, 거짓말이”, 자신이 저지른 무책임한 언행으로 빚어진 사태는 참으로 참담한 것이었다 노래 한 곡으로 모든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창녀다! 경무국장에게 몸을 판 창녀가 저기 있다!”
1943년, 이 노래는 빛을 발하지 못한채 잊혀져 갔다
1945년, 광복이 되고 대성권번은 세로운 세상에서 종말을 맞이하였다 경무국장의 저택에서 빠져나온 소율은 그렇게 정처없이 떠도는 신세가 되어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1991년, “사랑, 거짓말이”를 부른 “정소율”은 “조선의 마음”을 부른 “서연희”로 다시 이 땅에 돌아왔다 그러나 인생의 뒤안길에서 지우지 못한 흔적들은 여전히 남아 우리를 힘들게 한다 “김옥향”(류혜영역)이 객석에 앉아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진실의 그림자를 선명하게 바라보고 있다 서로에게는 씻겨지지 않은 지난날의 상처가 있고 이것은 역사속에서 영원히 묻혀지기를 바라는 기대가 맞물려 있다
“그땐 왜 몰랐을까요 그렇게 좋은 것을”
방송국을 나서는 소율을 붙든 것은 PD가 소유한 지난날의 레코드 두장이었다 “조선의 마음을 부른 서연희”의 레코드와 “사랑, 거짓말이를 부른 정소율”의 레코드 중에서 들려준 것은 “사랑, 거짓말이”였다 무엇인가 참으로 애절한 숨결을 담은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서 소율은 5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가수로서 인정을 받는 평가를 듣고 있다
“해어화”, 이 영화는 참으로 어렵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남자는 왜 첫사랑의 약속을 버리고 두 번째 사랑의 손을 잡았을까? 그리고 그것이 남긴 족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남자들은 의외로 여자에게 수많은 미사어구로 사랑을 표현한다 그것이 가져오는 책임과 댓가를 모른채 무심코 던지는 장난같은 것이었을까? 여자는 남자가 던진 사랑을 진실로 받아 들인다 그로 인하여 그 사랑이 복수의 화살로 되돌아 오기 까지 수많은 상처가 충격적으로 재생된다
사랑은 결국 거짓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사랑은 수많은 말보다 신의(信義)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에 따라 움직여 가는 신행(信行)이 필요하다 순수한 사랑을 찾기가 어려운 시대에 이러한 순애보같은 이야기가 허구로만 들려질 수 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한 시대, 해어화와 같은 소중한 사랑을 발견하였다면 이제 그 사랑에 진실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사랑도 진실하였다 그래서 자신의 독생자를 내어 주시겠다던 약속과 신의를 지키고 그 신행위에 우리의 삶이 세워진 것이다 사랑에는 신념이 필요하다 그 신념은 반석위에 올려져 있어야 하고 흔들림없는 고백이 살아 있어야 한다 이 시대, 그러한 순애보 같은 사랑의 인생여정을 성공적으로 이어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