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조판서를 모두 역임한 인물들...
6조판서를 모두 역임한 인물들
6조판서를 번갈아 역임한 인물들
6조 판서 역임자 모두 문과출신 이었다.
형제 6조판서 역임자 정태화, 정치화
지적 균형 감각이 뛰어나고 문무를 겸비한 인물들
조선시대의 판서는 6조의 장관으로서 상서(尙書), 전서(典書), 정경(正卿)이라고도 불리워졌다. 각조 주요임무
이조: 문신선발, 훈봉(勳封), 인사권
호조: 호구(戶口), 공직(貢職), 전량(田糧), 식화(食貨)
예조: 예악, 제사, 연향(宴享) 학교, 과거시험
병조: 무신선발, 군무, 의위(儀衛) 인사권
형조: 법률, 소송, 노예
공조: 치산치수, 공장(工匠), 영선(營繕), 도야(陶冶)
1405년(태종5) 6조의 권한이 강화되면서 정2품으로 승격되고, 의정부와 6조를 중심으로 국정운영이 실현되었다. 주요 임무는 각 조의 소속된 속아문을 당상관이나 제조로서 지휘하였다. 또한 의례상정소, 전제상정소, 육조수찬색, 실록청관복색...천릉도감 등의 제조나 당상관으로 참여하여 국정을 운영하였다.6조는 이렇듯 각조마다 고유의 업무를 관장하여 政事를 보도록 되어있다.
사실 조선시대 판서(6조)자리에 오르기가 어디 쉬운 일이었던가. 그럼에도 6조 판서를 번갈아 가며 모두 역임한 인물들이 있으니 이 또한 기네스북에 오를만한 사건인 것이다. 그 인물들을 정리해 보았다. 필자조사에 의하면 이조 500년 모두 29명이 조사되었다.
이름 본관 연령 관직 기록사항
김 구 청풍 56 6조판서, 우의정 문과 장원급제
김동필 상산 60 6조판서, 한성판윤 소론 온건파
김명원 경주 69 6조판서, 우. 좌의정 평난공신3등
김병시 신안동 67 6조판서, 영의정 세도정치가문 출신
김상헌 신안동 83 6조판서, 좌의정 청백리, 대제학, 척화파(병자호란)
김수항 신안동 61 6조판서, 영의정 장원급제(3과장원), 대제학
김좌근 신안동 73 6조판서, 영의정3회 세도정치의 핵심인물
노공필 교하 72 6조판서, 영중추부사 노태우 전대통령 14대 직계조
민치상 여흥 64 6조판서, 관창사 민비외척세력가
박윤수 반남 72 6조판서, 판두병부사 전형적인 관료생활
박종훈 반남 69 6조판서, 좌의정 경서의 박학다식
서거정 달성 69 6조판서, 좌찬성 조선왕조 최초 양관 대제학
오상 해주 62 6조판서, 대사헌7회 문무겸비함, 청백리
이세화 부평 72 6조판서, 4도관찰사 청백리에 녹선됨
윤우 해평 64 6조판서, 대사간2회 신임사화의 주동자
이돈우 전주 84 6조판서, 대사헌3회 철종실록편찬참여
이만수 연안 69 6조판서 대제학,
이면승 전주 60 6조판서, 우참판 전형적 관료생활
이조원 연안 75 6조판서, 좌참판 풍양조씨의 일당으로 안동김씨에 희생
이존수 연안 58 6조판서, 좌의정 직언하여 아첨하지 않았다.
이태좌 경주 80 6조판서, 좌의정 무난한 벼슬생활
정민시 온양 83 6조판서, 판돈녕부사 세도가 홍국영과 함께 발탁
정종영 초계 77 6조판서, 우찬성 3도 관찰사 역임. 세도가 응징, 청백리
정치화 동래 69 6조판서, 좌의정 당파싸움이 절정, 중도 노선
정태화 동래 72 6조판서, 영의정 한국역사상 가장 벼슬을 잘함, 청백리
조태구 양주 64 6조판서, 영의정 소론의 영수
홍 석 남양 88 6조판서, 지충주부사 비교적 무난한 관료생활
황 흠 창원 92 6조판서, 판돈녕부사 청렴검소.
황 희 장수 90 6조판서, 영의정 청백리, 조선 제일의 정승
ㆍ본관별로는 신안동김씨가 4명으로 가장 많고 연안이씨가 3명,반남박씨, 동래정씨, 전주이씨가 2명씩이고 나머지 16명은 본관별 한 명씩이다.
ㆍ연령별로는 90대 2명, 80대 5명, 70대 6명, 60대 13명으로 가장많고 50대가 2명이었다. 이들의 평균연령은 우리의 편견을 벗어나는 71.5세로 고희(7인)를 넘긴 대단한 연령으로 볼 수 있다.
ㆍ관직별로는 삼정승에 오른 사람은 13명으로 생각보다는 정승진입을 하지 못한것으로 나타났다. 대제학은 네 명이 나왔다.
ㆍ청백리는 모두 5명이 배출되었는데 황희, 김상헌, 오상, 정종영, 이세화 등이다. 고위관직을 지내면서 청렴결백한 생활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ㆍ과거시험은 모두 문과출신으로 다섯 명의 장원급제자가 나왔다. 또 하나의 특징은 형제 6조 판서 역임자가 나왔다는 점이다. 조선조 '가장 벼슬을 잘하는 사람'으로 알려진 정태화ㆍ치화형제로 이들은 형제동방(兄弟同榜)이면서 형제 6조판서라는 진기록을 역사에 남기고 있다.
이상 각 분야별로 분석해 보았다.이들은 6조의 판서를 모두 거쳤다. 여기에는 몇가지 의미가 있는데 그 첫째는 이들이 어느 부서를 맡겨도 해낼 수 있다는 왕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는 점이다. 적어도 6조는 각각 고유업무가 있는데, 이를 모두 처리 할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을 가진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둘째는 지적 균형감각이 뛰어나고 문무를 겸비한 관료였다는 점이다. 조선조가 문신중심의 사회였으나 수많은 전쟁, 정란, 반란등으로 조정은 문무를 겸비한 관리가 필요했으며, 문무겸전의 관료가 폭넓게 기용되었다는 점이다.